소설리스트

노력천재 미대생-35화 (35/203)

■ 35. 직원 채용 □

나는 승희씨가 보낸 이력서 이메일을 확인했다.

승희씨가 선별한 사람은 3명이었고, 그들의 포트폴리오도 첨부되어 있었다.

승희씨는 포트폴리오를 확인하고, 직접 전화까지 걸어 경력 등도 세세히 따져본 모양이었다.

"우리 회사 상품들이 훌륭하니까, 거기에 맞춰서 지원자 실력도 상향되는 것 같아요."

승희씨가 웃으며 말했다.

"저번에도 그랬어요. 그 중에서 승희님을 뽑았죠."

"이젠 띄워주기도 잘하시네요. 대표님 요새 분위기가 점점 달라지시는 것 같아요."

"제가요?"

"네. 처음 제가 들어왔을 때보다 많이 밝아지신 것 같아요. 농담도 많이 느셨고."

두 번 째 삶에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내 주위의 몇몇 얼굴이 떠올랐다.

어리고 활기찬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지내다보니 자연스레 내가 바뀌고 있었다.

"정말 그랬다면 승희님 덕분일 겁니다. 회사가 잘 돌아가니까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영광이네요. 영화사 쪽으로 또 제의가 들어올 줄 몰랐네요. 쇼핑몰 디자인 판매도 계속 문의가 들어오는데. 역시 빨리 사람을 뽑아야 했었네요. 대표님이 정확히 맞히셨네요."

다행히 구매 후기가 좋아서 그런지 다수의 고객들이 재촉하지 않고 우리의 일정을 기다려주고 있었다.

"요즘 혼자서 너무 정신없으시죠?"

"바쁜 게 좋죠, 뭐."

승희씨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빨리 직원을 늘려야했다.

승희씨는 정말 좋은 직원이었고, 그녀와 오래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서 그녀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

"제가 포트폴리오 확인하고 직접 세 명에게 연락해보겠습니다. 직원 채용될 때까지, 승희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말아주세요."

"대표님이나 무리하지 마세요. 대체 새벽 몇 시까지 일하시는 거예요?"

우린 새벽에 일한 로그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 서로의 근무 시간을 대강 알 수 있었다.

새벽까지 일하기는 승희씨도 마찬가지였다.

전화를 끊고 나는 이력서를 꼼꼼히 확인했다.

셋 중 두 명의 포트폴리오가 꽤 눈길이 갔다.

'첫 번째는 교포인가?'

이소영.

이름은 한국식인데, 고등학교까지 LA 소재 학교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포트폴리오도 한국식 홈페이지보다는 외국식 느낌이었고, 퀄리티도 나쁘지 않았다.

'당장 쇼핑몰 수정에 투입하진 못하겠지만, 나랑 함께 새 디자인을 구성한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이제 슬슬 새로운 공기가 투입될 때도 되었다.

내가 아무리 미래의 디자인들을 체험했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다.

또 한 명의 이름은 민성환.

야간대학교 컴퓨터 공학과 학생이었다.

1년 전 제대한 25살짜리 복학생이었다.

전형적인 한국식 쇼핑몰들을 포트폴리오로 제출했고, 웹에이젼시에서 일한 경력도 있었다.

이력서에는 일하면서 학교를 다니길 원한다고 적혀 있었다.

'성실한 친구네. 이 친구는 곧바로 승희씨에게 맡겨서 현장에 투입할 수 있겠는데.'

포트폴리오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일하면서 공부하겠다니 대견하기도 했다.

'아, 이 친구가 나보다 나이가 많구나.'

종종 내 나이를 잊었다.

이소영도 나보다 나이가 많긴 했지만 둘 다 어렸다.

'설마 승희씨가 일부러 어린 사람 위주로 뽑았나? 날 생각해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일단 둘의 포트폴리오가 나쁘지 않으니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먼저 이소영.

우린 카페에서 만났다.

스물네 살이라고 했는데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저희가 아직 사무실이 없어서요."

사무실은 방학 전후로 구할 생각이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맡은 영화사 마당의 일을 잘 마무리해야 했다.

이소영은 환하게 웃었다.

"괜찮습니다. 사무실 없이도 이 정도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니까 더 궁금해지네요."

역시 교포라 그런지 아주 살짝 발음이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

끝부분에 아주 조금.

아마 교포라는 것을 몰랐다면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우린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는데, 상대를 잘 배려하는 성격인지 둘 사이의 대화는 끊이지 않고 잘 이어졌다.

"더 늦기 전에 한국 생활도 체험해보고 싶어서 대학은 한국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한 학교생활과 너무 달라서 휴학하고 일을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미국에서도 해 본 일이라 몇 군데 에이전시에 지원했고, 또 일하기도 했지만 적응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알 것 같기도 했다.

아마 미국과는 일하는 방식도 다르고 원하는 결과물도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포트폴리오는 괜찮았다.

외국 사이트의 느낌이 풍기는 게 내 방식과도 통하는 면이 있었다.

이소영도 동의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원디자인의 포트폴리오가 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지원했습니다."

이소영은 실력도 있고, 느낌도 좋은 사람이었다.

뽑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그녀를 원하는 회사도 많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괜찮겠어요? 소영씨를 원하는 회사 중에 우리가 제일 작지 않나요?"

"오히려 그래서 좋은 걸요. 지금은 작지만 앞으로 성장할 곳 같아서 더 기회가 많은 것 같아요."

나보고 기분 좋게 일한다던 안수정이 생각났다.

이소영이 바로 대표를 기분 좋게 만드는 직원 같았다.

맘 같아서는 당장 뽑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진정해야 했다.

"최대한 빨리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음은 민성환.

민성환의 면접도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사무실도 없는 회사인데 괜찮겠어요?"

"오히려 좋습니다. 출퇴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전 야간대학도 다니고 있어서 시간을 무척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도 마감 일정을 칼같이 엄수합니다. 그래서 시간에 민감합니다."

"물론입니다. 제 시간이 중요한 만큼 회사의 시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성환은 성실했고 인상도 좋았다.

특히 노트북을 가져와 몇 가지 포트폴리오를 추가로 제시했는데, 포트폴리오에서 성실이 뚝뚝 떨어졌다.

"포트폴리오는 만족스럽습니다. 곧바로 실전에 투입해도 될 만큼 우수하네요. 그런데 제가 성환씨보다 훨씬 어린데 그 부분은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오히려 더 좋습니다. 저보다 어리신 분이 회사를 운영하시니 오히려 더 자극이 되고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괜찮은 친구였다.

내가 원하는 대답이었고, 무척 공손한 어투였다.

둘의 면접이 끝나고 승희씨에게 전화를 했다.

"그래서 누구를 선택하실 건가요?"

"승희님은요?"

승희씨는 잠시 고민했다.

"정말 어렵네요. 당장 회사에 필요한 사람은 민성환씨 같아요. 하지만 대표님 디자인 취향은 이소영씨 같은데, 맞나요?"

정확했다.

"둘 다 뽑죠."

"네? 괜찮으시겠어요?"

"괜찮도록 해야죠."

이제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회사의 몸집을 뻥튀기할 좋은 기회였다.

무리를 하더라도 둘 다 뽑아야 했다.

그리고 무리가 아닐지도 몰랐다.

"승희님이 성환씨랑 곧바로 같이 일을 시작해주세요. 소영씨는 제가 데리고 영화사 마당의 홈페이지를 같이 작업하겠습니다. 그리고 마당의 일이 끝나면 같이 회식도 하죠."

"그러시죠. 회식이라,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네요."

승희씨랑 전화로만 통화해서 얼굴을 못 본 지도 꽤 오래 되었다.

그런데도 일이 문제없이 진행된다는 것이 승희씨가 얼마나 성실한지 말해주는 것 같았다.

마당의 일이 끝나면 사무실도 구하고 본격적으로 회사의 모습을 갖춰나갈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당의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 * *

그리고 한철이와 기숙사 방에서 이야기를 했다.

난 영화사 마당의 홈페이지 수주 건을 그대로 들려줬다.

이번에는 미리 전문 프리랜서의 금액도 철저히 조사했고, 또 영화사에서 수주 받은 금액도 한철에게 있는 그대로 들려줬다.

이젠 한철이를 친구로서도, 일하는 동료로서도 믿었기 때문에 무엇이든 감추고 싶지 않았다.

"천만 원을 받기로 했는데, 나하고 디자이너 한 명을 더 투입할 거야. 세 명이 하는 일이고, 회사의 비용도 생각해야 하니까, 그래서 프로그래머에게 쓸 수 있는 예산이 한정되어 있어. 이 일을 맡아준다면 그 최대치를 줄게."

그리고 나는 지난 번 금액의 몇 배나 되는 금액을 제시했다.

"그..그렇게 많이?"

잡다한 기능을 많이 넣긴 하겠지만 영화의 홈페이지인 만큼 구조적으로 복잡한 사이트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 홈페이지에서는 디자이너의 역할이 훨씬 컸다.

그래서 내가 제시한 금액이면 이 정도 웹사이트에서는 최고의 대우라고 할 수 있었다.

"대신 천만원을 받긴 했지만, 난 천오백이나 이천만원짜리 홈페이지를 완성하고 싶어. 나를 믿고 소개해준 사람도 있는데다가, 다른 수주로 이어질 지도 모르거든. 그래서 프로그래머도 그만큼 빡세게 해야 할 거야. 그래도 괜찮아?"

"어차피 나도 방학 때 알바를 찾고 있었어. 그리고 그 금액이면 내가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알바야. 게다가 너한테 도움이 된다면 할게. 열심히 해볼게. 정말 이천짜리 홈페이지를 만들어보자."

형원 선배가 없는 곳에서는 한철은 정말 완벽한 컴공 엘리트였고, 좋은 친구였다.

일에 관해서는 우리는 말이 잘 통했다.

그런데 형원 선배도 한철이 없는 곳에서는 정말 괜찮은 국문과선배였다.

'어쩌면 둘이 서로에게 이상한 영향을 주는 게 아닐까.'

아무튼 이소영과 나, 한철이.

그렇게 셋이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우린 주로 카페에서 만났다.

그렇게 셋이서 의견을 교환하며 서둘러 제안서를 짰다.

강남의 영화사 사무실도 여러 번 찾아가서 김제우 감독과 의견을 나누며 내용적인 부분도 보충했다.

역시 혼자 찾아가는 것보다 셋이서 찾아가니까 정말 회사 같기도 했고, 일하는 맛도 났다.

"좋군요."

하루는 우리 셋 앞에서 문득, 김제우 대표가 입을 열었다.

"세 분 다 나이는 어리지만, 일이 제대로 진행되는 게 눈에 보이는 군요. 일을 맡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소한 내 의견하나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영화에 대해서도 꼼꼼히 묻고. 세 분은 웹 에이전시가 아니라 어떤 일을 했어도 성공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재미있는 게 나도 김제우 대표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는 영화감독인 동시에 유능한 사업가였다.

나도 그가 감독이 아니라 다른 일을 했더라도 성공했을 거라 생각했다.

"믿고 일을 주셨으니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우리 셋은 기분 좋게 영화사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럼, 소영씨 저흰 곧바로 학교 기숙사로 가보겠습니다."

"저, 대표님. 한철씨."

"네?"

이소영이 머뭇거리다 말했다.

"이렇게 신나게 일해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이번 프로젝트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이야 매번 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그래요. 잘해 보죠. 그리고 이번 일 끝나면 직원 회식도 성대히 하죠. 여기 한철이도 포함해서."

"네. 꼭이요. 한국 와서 일하면서 회식이 기다려지는 것도 처음이네요. 그리고 한철씨는 너무 듬직해서 술자리에선 어떨지 정말 궁금해요."

요즘 한철이 인기가 상한가였다.

승희씨와 민성환 쪽도 호흡이 괜찮은 모양이었다.

승희씨가 워낙 똑 부러지게 일을 잘하니까, 사실 호흡이 나쁘기도 힘들 것이다.

그렇게 너무 바쁜 것 말고는 일은 순조로웠다.

* * *

"뭐야, 팀 수진 뒤풀이 하자더니."

기초 서양화 수업 시작 10분 전.

유나가 투덜댔다.

기말이니 모두 바빴다.

거기다 한철과 나는 일까지 하니까, 뒤풀이는 계속 미뤄지고 있었다.

술도 잘 못 마시면서 유나는 은근 기대한 모양이었다.

유나와 나는 수업을 세 개나 같이 들었다.

그러니 5일에 세 번이나 마주하는 셈이었다.

거기다 작업실에서도 자주 보고, 종종 학식도 같이 먹었다.

하지만 내가 워낙 정신이 없으니까 정말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 들었다.

"대체 얼마나 바쁜 거야? 또 잠 안자고 일하는 건 아니지?"

오히려 잠을 안 자고 일하는 쪽은 한철이 쪽이었다.

나야 압축 잠도 있지만, 한철은 기말고사와 일까지 두 개의 폭풍을 정면으로 맞서고 있었다.

한철이도 한 근성 하는 남자였다.

"언제까지 바빠?"

유나가 투정 부리듯 물었다.

그런데 그런 투정이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조금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곧 끝나. 방학하면 곧바로 동대문 놀러가자."

"아니, 누가 동대문 못 가서 그러는 거야?"

"가기 싫어?"

"아니, 가긴 가는데."

이제 나도 슬슬 유나를 다루는 요령이 생겼다.

유나가 막 반격하려는 찰나, 서진석 교수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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