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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천재 미대생-10화 (10/203)

■ 10. 합격! □

감자탕집은 본격적으로 저녁 손님을 받고 있었다.

가게가 조금씩 바빠지는 시점.

난 가게 입구에 서서 어머니를 불러냈다.

주방에서 일하는 어머니는 장화를 신고, 비닐 앞치마를 입고 계셨다.

"어, 무슨 일이야?"

피곤했을 텐데, 어머니는 나를 보자 일부러 웃으셨다.

"엄마, 나 합격했어요."

"붙었다고?"

약 1분간 정지 화면을 보는 것 같았다.

역시 모자지간이라 반응이 비슷한 것 같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우셨다.

"왜 울어요."

"좋아서 그러지. 내가 해준 것 하나도 없는데. 남들은 고3이라고 과외도 시키고, 보약도 먹이는데. 정말 해준 것 하나도 없는데."

해 준 게 없기는.

어머니는 하루 12시간 육체노동을 하고 번 돈 대부분을 저금하신다.

그게 전부 날 위한 일이라는 걸 난 잘 알고 있다.

난 조용히 어머니 어깨를 두드려드렸다.

뭔가 눈치가 이상했는지, 홀을 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밖으로 나오셨다.

"무슨 일이야?"

"아, 그게. 주원이가..."

"뭐?! 한국대!! 주원이가?!"

서빙 아주머니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그리고 감자탕집 안에 들어가더니, 손님이고 뭐고, 갑자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미애 이모 아들이 한국대 붙었대! 미애 이모 아들이 한국대 붙었대! 한국대! 한국대!"

어버버.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당사자인 나와 어머니는 조용히 기뻐하는데, 잘 모르는 사람이 잘 모르는 손님들에게 갑자기 내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뭐? 한국대?"

"아이고, 우리 이모님, 이리 와서 소주 한 잔 받아요!"

"주원이 한국대 붙었다고?"

울고 있던 우리 엄마는 단골손님에게 끌려가 소주를 마셨다.

그리고 주방 이모들과 서빙 이모들이 무슨 기라도 받아가듯 내 몸을 만져댔다.

"주원아! 추운데 왔으면 들어오지, 왜 밖에 서 있어!"

감자탕집 사장님이었다.

이 감자탕집은 사장님 남매가 운영하는데, 두 분다 성격이 시원해서 일하기 편하다고 어머니가 칭찬 했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등뼈찜이라도 먹고 가."

"저녁 먹고 왔습니다."

사실 안 먹었지만, 지금은 음식을 삼킬 자신이 없었다.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그래? 잠깐만 기다려."

그리고 사장님은 안에 들어가더니 카운터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오셨다.

"이거 받아라. 고3이란 말은 들었는데, 딱히 챙겨주지도 못했네. 축하한다."

"괜찮습니다. 진짜 괜찮습니다."

"받아둬. 많이 넣지도 않았다. 그동안 고생했는데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라도 사 먹어."

"정말 괜찮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친구도 없었다.

"그래, 받아둬. 어른이 축하한다고 주시는 건데."

옆의 이모들도 부추겨서 겨우 봉투를 받아들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축하를 받고 계셨다.

아직도 눈물이 나는지 어머니는 계속 눈물을 닦으셨다.

그 모습을 보더니 사장님이 소리치셨다.

"자! 오늘 미애 이모 일찍 퇴근 시킬테니까, 다른 이모들이 대신 빡세게 합시다!"

사실 돈봉투보다 어머니가 몇 시간 일찍 퇴근하는 게 더 좋았다.

나는 사장님께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땐 몰랐다.

이것은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의 시작일 뿐이었다.

"엄마, 먼저 들어가요. 나 학원에 가서 인사하고 갈게."

그리고 사장님이 준 돈으로 과일 바구니를 사서 미술학원으로 향했다.

* * *

원장 선생님이 피식 웃으셨다.

"고등학생이 뭘 이런 걸 사오냐."

"아닙니다. 지금은 일도 하고 있고, 또 선생님이 제게 주신 기회에 비하면 과일은 아무리 사와도 부족합니다."

"이거 받아라."

그리고 원장선생님은 내게 큼지막한 비닐 봉지를 내미셨다.

거기엔 유화 물감 두 상자가 들어 있었다.

대용량 유화 물감은 꽤 비쌌다.

"학원 용품 주문하면서 도매가로 샀다. 너 가져가."

"아닙니다. 받을 수 없습니다. 벌써 많이 해주셨는데."

"그럼 이거 어떡해? 벌써 샀는데. 네 이름값이라고 생각해. 학원 앞에 현수막 걸고 한 3년 써 먹을 거다."

결국 난 유화 물감을 받아 들었다.

울진 않았는데 거의 직전까지 눈이 빨개졌다.

"너도 알잖아. 난 지방대 나왔다. 지방대 미대 나와서는 먹고 살기가 진짜 힘들지. 그래서 억지로 시작한 게 이 미술 학원이고, 운 좋게 여기까지 끌고 왔다. 힘들 때도 많았고,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나 앞이 깜깜할 때도 많았지. 그런데 작년에 제일 잘한 일이 너를 받은 것 같다."

"제가 감사드려야죠. 정말 감사합니다."

"너 진짜 열심히 하더라. 너 하는 거 보고만 있어도 나도 같이 긴장되고, 같이 젊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너 같은 애들 때문에 이 일을 하는구나, 생각도 들고. 오히려 내가 감사한다. 주원아. 1년 동안 잘 해줬다."

더는 버틸 수 없어서 결국 울어버렸다.

"원장 선생님이 없었으면 절대 불가능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나 수업해야지. 이제 가봐라. 과일은 잘 먹을게."

고맙다는 말은 수백 번 해야 후련할 것 같았지만, 계속 눈물이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난 집에 갈 때까지 계속 울었다.

3학년 담임선생님한테도 전화했고, 서울의 미술 학원 원장에게도 전화했다.

"축하한다. 그런데 알지? 넌 우리 학원 학생이다."

"당연합니다. 감사합니다."

그게 이 바닥 룰이었다.

단 하루를 다녀도, 합격자 집계를 할 땐 난 그 학원 출신이 된다.

난 결국 서울 학원에서도 현수막에 이름이 걸리게 될 것이다.

'뭐, 450 만원짜리 수업을 듣게 해주셨으니.'

나야 고마울 뿐이다.

다음 날 새벽.

난 박카스 두 박스를 들고 신문 지국을 찾아갔다.

소장님이 일을 주신 덕에 그 돈으로 서울 고시원비를 냈다.

그리고 재빨리 떠날 수 있도록 배려까지 해주셨다.

잠깐 들러서 인사라도 하는 게 도리 같았다.

"붙었다고! 한국대?! 허허허허허"

돋보기안경을 들며 소장님은 너털 웃음을 지으셨다.

"녀석이 성실하길래, 어디든 대학은 갈 줄 알았지. 그래도 한국대에 붙을 줄은...하하하하."

새벽에 지국에 모인 다른 배달원들도 같이 박카스를 마시며 축하를 건넸다.

"그런데 주원아, 잠깐만 거기 앉아서 기다려봐라."

소장님은 나를 억지로 소파에 앉히고는 어디다 전화를 하셨다.

그리고 잠시 후, 부스스한 차림의 사모님이 나오셨다.

사모님은 배달원이 빠지는 날 종종 대신 배달을 했기 때문에 몇 번 뵌 적이 있었다.

그리고 사모님이 건네는 봉투를 소장님이 내게 내미셨다.

"아니, 괜찮습니다. 진짜 받을 수 없습니다."

"넣어 둬. 어른이 주는 건데."

"맞아요. 받아둬요. 내가 자다가 나왔는데, 안 받으면 어떡해."

"그래. 받아."

"이때는 고맙습니다, 하고 냉큼 받아야지."

주변에서 거드는 바람에 결국 또 돈봉투를 받게 되었다.

"많이는 못 넣었어요. 신발이라도 한 켤레 사서 신어요. 그동안 고생했어."

"내가 신문 지국을 30년 했어. 이 지국 거쳐 간 사람 중에, 회계사도 있고, 양조장 사장도 있고, 현대 자동차 노조 간부도 있어. 그런데 한국대 학생만 없었단 말이지. 이제 다른 지국장 만나도 내가 자랑할 수 있게 됐어. 우리 지국 출신 중에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하하하하. 고생 많았다."

난 전생에도 이 지국에서 신문을 배달했다.

그땐 그냥 이곳의 소장은 잠시 스쳐가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내가 그의 작은 자랑 중 하나가 되었다.

나는 그저 나를 위해 노력했을 뿐인데, 주변 사람들이 함께 기뻐해주고 내게 의미를 부여해주고 있었다.

지난 생의 나는 있으나마나한 공기 같은 존재였다.

기계부품처럼 망가지면, 언제든 다른 부품으로 교체될 수 있는 존재.

이번 생은 그 이상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노력만이 유일한 답일 것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야. 겨우 1년 반만큼 노력했을 뿐이야."

"소장님, 요즘은 혜성 단지 누가 배달하죠?"

"창규가 하고 있지. 내가 하는 날도 있고."

"오늘만 제가 해도 될까요? 나온 김에 몸이나 풀고 가고 싶습니다."

"왜 고생해? 집에 들어가서 잠이나 자."

"1년 반 동안, 배달하면서 공부했는데, 마지막으로 제대로 작별하고 싶습니다. 돈은 벌써 주셨으니 오늘은 제가 배달하겠습니다."

"별난 놈."

그렇게 우겨서 마지막으로 배달을 했다.

계단을 뛰어서 신문을 넣는 일이 조금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상쾌했다.

* * *

그런데 진짜 보너스는 따로 있었다.

난 이틀 후, 담임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학교에 갔다.

"예? 4년 장학금이요?"

"몰랐냐?"

"몰랐습니다."

우리 학교는 어중간한 명문 사립고.

그래서 학교를 키우려고 동문들이 애쓰고 있었다.

"우리 학교 말고 다른 학교도 다 똑같을 걸? 한국대 합격자는 다 4년 장학금이야. 의대나 법대 갔으면 장학금 더 받았어, 이 녀석아."

"그..그렇군요.."

"4년 등록금 말고도 자잘한 장학금 몇 개 더 나올 거다. 그것도 돈 백 될 거야. 그리고 손목시계도 하나 줄 거다."

"시계까지요?"

"그래. 임마. 메이커로, 고등학교 이름까지 각인해서. 아무튼 축하한다. 네 성적에 미대 간다 길래, 똘아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난 그제야 알았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한국대, 한국대 노래를 하는 지.

한국대 입학도 안했는데, 세상이 달라졌다.

한국은 한국대에 관대한 나라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보너스를 건네서 합격했다는 말을 꺼내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학교를 나오다 2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마주쳤다.

"축하한다. 난 그때 어떻게든 널 진학반 넣는 게 널 위한 일이라 생각해서 그런 거였어. 아무튼 고생했다. 잘 했어."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아주 잠깐 귀찮아지긴 했었지만, 합격하고 나자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난 2학년 담임과도 웃으며 인사했다.

상쾌한 기분을 더하기 위해 상철이와 상조에게도 간단히 문자를 보냈다.

[ 오랜만에 학교 오니까 네 생각나네. 잘 지내냐? 원하는 학교는 갔냐. 우리 같이 성장해서 좋은 대학 함께 가자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겨울 잘 보내고. ]

[ 상조야. 나야. 합격 발표 났는데 너라면 다 붙었겠지? 나도 붙었어! 우리 입시 끝나도 연락하고 지내기로 했잖아. 곧 학교서 다시 만나겠구나! ]

둘 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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