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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천재 미대생-3화 (3/203)

■ 3. 2학기 시작! □

"신문 배달을 하고 싶다고?"

다음 날 정오.

난 신문 지국을 찾아갔다.

신문 지국의 소장은 나이가 많아서 돋보기안경을 끼고 있었다.

하지만 믿어지지 않는 빠른 손놀림으로 신문지 사이마다 광고를 끼우고 있었다.

그는 볼록한 렌즈 너머로 내 얼굴을 관찰했다.

"나이는?"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학교는?"

"중도고입니다."

"안 돼. 애들은 원래 안 시켜. 기껏 코스 가르치면 한 달하고 관두거든. 그리고 매일 늦잠 잔다고 빠지고."

짧은 면접 끝에 나는 거절당했다.

후후.

하지만 방법이 있었다.

지난 생에 나는 공익이었다.

그래서 전생에 공익을 받는 동안 신문 배달을 했다.

그래서 이 신문 지국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신문 지국의 벽에 걸린 지도를 가리켰다.

"소장님, 이 구역!"

"그...그곳은?"

난 자신 있게 외쳤다.

"제가 이곳을 맡겠습니다!"

"윽....그렇다면..."

그곳은 바로 혜성 아파트 단지.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짜리 아파트가 12동까지 있는 단지였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 단지가 제일 급료가 적었다.

그 다음이 주택 단지.

그리고 제일 비싼 곳이 바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단지였다.

하지만 가장 많은 급료를 주는데도 불구하고, 신문 지국의 배달원들은 혜성 아파트 단지를 꺼려했다.

이유는 당연히 힘드니까.

어두운 새벽에 5층짜리 아파트 12동을 계단으로 뛰어 배달하는 것은 중노동이었다.

하지만 나는 생생한 고2.

그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20대 공익 때도 문제없이 혜성 아파트 단지에서 배달했었다.

최소한의 시간으로 최대한의 급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바로 혜성 아파트 단지였다.

"어떻습니까? 내일 아침부터 곧바로 배달할 수 있습니다."

"그..그렇게 해주게."

난 합격을 따냈다.

다행히 소장은 양심적인 남자라, 어리다고 급료를 후려치진 않았다.

나의 달리기 실력이면 혜성 단지는 1시간이면 충분했다.

월급은 13만원.

하루 한 시간 알바로 13만원이면 괜찮았다.

한 달에 10만원만 모아도, 내가 대학에 갈 때는 꽤 목돈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매일 1시간의 달리기.

돈보다도 그게 더 중요할지 몰랐다.

나이 들고 나서 가장 후회했던 것은 바로 어렸을 때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은 것이었다.

돈도 벌고, 운동도 하고.

그리고 한 시간 노력이면 2노력 코인을 받을 수 있었다.

그야 말로 1석 3조!

노력 코인으로 잠을 줄일 수 있으니, 새벽 출근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첫 번째 목표인 알바 구하기는 완벽히 성공했다.

그리고 드디어 2학기가 시작했다.

* * *

내가 다니던 중도 고등학교는 어중간한 명문 고등학교였다.

명문이라 부르기엔 애매하고,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아무튼 반에서 1~2등 하는 녀석들은 전부 좋은 대학에 갔다.

그리고 절반 이상은 이른바 지거국, 지방 국립대는 다 들어갔다.

나는 그 중에서도 애매한 성적.

그렇다보니, 경쟁자들도 애매했다.

원래 공부를 아주 잘하는 녀석들은 착하고 관대했다.

하지만 애매한 녀석들은 어딘가 삐뚫어지고, 치사한 것이었다.

"야, 오랜만이다."

상철이란 녀석이 아는 체를 했다.

오랜만이라고는 하는데 전혀 반가워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나 역시.

나도 놈이 반갑지 않았다.

거의 이삼십년 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조금도 반갑지 않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녀석은 반에서 6~7등은 꾸준히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를 경쟁자로 찍은 듯했다.

'임마, 자기보다 잘하는 녀석을 찍어야지,'

상철은 약간 변태처럼, 자기보다 성적이 낮은 나를 경쟁자로 찍고 매번 이기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난 놈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그럭저럭 대학을 졸업하고 상철은 지방 은행에 취업해 그럭저럭 잘 살았다.

그런데 시골 출신이었던 녀석은 부모님께 물려받은 땅값이 크게 올라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동창회에서 만난 내게 이렇게 자랑했다.

"어어, 우리 주원이. 학교 다닐 때도 항상 나한테 지더니. 인생 참. 어쩌면 세상일은 학교 다닐 때 다 결정되는 지도 몰라."

그런데 그 말이 맞을 지도 몰랐다.

아무튼 난 지난 생에서 녀석을 거의 이겨본 적이 없었다.

학생 때 나는 반에서 10등.

그리고 나이 들수록 내 등수는 점점 내려갔다.

내 삶은 계속 나빠지기만 했다.

후후.

하지만 이젠 내 삶이 나빠지도록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내 삶은 내가 직접 챙기겠다.

"야, 그런데 너 뭐 보약 먹냐?"

"어?"

"얼굴색이 너무 좋다야. 좋은 보약이면 나도 지어 달라 그래야지. 나도 좀 같이 먹자."

아마도 매일 운동하고, 압축 잠으로 푹 자서 그런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상철은 얼굴이 좀 삭아 있었다.

아마 방학 동안 학원에서 몰아치기 특강이라도 받은 것 같았다.

"보약은 아니고, 밥 많이 먹고, 푹 자고 그랬지."

"야, 팔자 좋다. 네 성적에 잠이 오냐."

하하. 귀여운 녀석.

나는 회귀자, 꼬마들과 신경전 따위 벌일 생각은 조금도 없었는데 하지만 슬쩍 짜증이 나긴 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절대 영혼까지 성숙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나는.

아마 상철이도.

"헤헤. 그러게. 난 그냥 푹 자기로 결정했어."

"빠른 포기 좋다야. 하긴.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고등학생이 노력한 만큼 성적이 오른다면 전부 다 한국대 가겠지."

반에서 1~2등 하는 녀석들이 우리의 신경전을 봤다면 비웃었을 것이다.

아무튼 상철이는 평생 정이 가지 않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9월 5일.

대망의 수능 모의고사를 치렀다.

언어영역 120점.

외국어영역 80점.

수리영역 80점.

탐구영역 120점.

모두 400점 만점의 시험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날을 위해 노력 코인을 비축하고 있었다.

하루 15시간 이상 꾸준히 노력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면 코인을 최대한 많이 모을 수 있었다.

난 이번 모의 고사에 코인을 이용해 최대한의 능력을 끌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컨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음...

아리송했다.

하지만 뭐.

컨닝이라고 해도 걸리지만 않으면 쓸 생각이다.

이번 생을 열심히 살겠다고 했지, 착하게 살겠다고 맹세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시험이 시작되었다.

[ 노력 상점(Lv1) : 잔여 코인 84 ]

그동안 아끼고, 아끼고, 노력하고 노력해서 모은 코인이었다.

그리고 모든 코인을 오늘 모의고사에 아낌없이 퍼부을 것이다.

먼저 1교시 언어영역.

[ 잡생각 제거(5코인)을 구매하시겠습니까? ]

[ YES ]

잡생각 제거의 지속시간은 3시간.

언어 영역이 끝나고도 한동안 유지될 것이다.

그리고 컨디션 관리를 위해 [숲 속 산책(2코인)]까지 추가 구매했다.

시험을 앞두고 내 앞에 푸른 숲이 펼쳐졌다.

긴장 따위는 전부 날아갔다.

그리고 시험이 시작되었다.

'아니....뭐야?'

언어 영역 시험지가 한국어로 되어 있었다.

전부 쏙쏙 머리에 들어왔다.

단지 잡생각이 사라진 것만으로.

그리고 숲 속을 거닐다 온 것만으로 시험지가 아예 다르게 보였다.

외계언어 같던 언어 영역 지문이 우리가 늘 사용하던 한국어가 되어 있었다.

조금 양심에 찔리긴 했지만, 이게 원래의 나였다.

내 본 모습.

잡생각을 걷어낸 순수하고 티 없는 나의 언어능력이었다.

그렇게 무사히 1교시 시험을 끝냈다.

'컨디션이 너무 좋은데?'

원래 모의고사에서는 한 과목 시험이 끝나면 녹초가 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내 마음은 평온했다.

쉬는 시간 아이들은 공부 잘하는 녀석 옆에 우르르 모여 오답을 확인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지나간 시험은 돌아오지 않는 법.

나는 창가에 앉아 여유를 즐겼다.

그리고 또 한 번 [숲 속 산책]과 [잡생각 제거]를 구매했다.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2교시 수리 영역.

노력 상점의 능력을 얻고, 남은 여름 방학은 9일이었다.

나는 하루 9시간씩 [잡생각 제거]를 사용하고 수학의 정석을 팠다.

그래서 방학동안 시험 범위까지 정석을 1회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도전했다.

2회 차에는 1회 차에 체크한 부분만 다시 공부했다.

그랬더니 금방 끝났다.

나는 정석을 2번이나 주파한 것이다.

거기에 또 한 번.

3회차는 더욱 빨라졌다.

결국 나는 9월 5일까지 약 2주 동안 정석을 3번이나 판 것이다.

물론 2, 3회차는 완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큰 성과였다.

'방학동안 죽어라 수학만 했지.'

그 결과 자신감이 크게 붙었다.

덕분에 2교시 수리 영역도 어렵지 않게 끝냈다.

3교시 외국어 영역.

점심시간이 1시간 가까이 주어졌다.

난 우유로 대강 허기를 때우고 한 잠 때려주기로 했다.

당연히 [압축 잠]을 구매했다.

압축 잠은 1시간 수면으로 4시간 수면의 효과를 준다.

결국 나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3교시 외국어 영역을 맞을 수 있었다.

'이...이럴 수가. 영어 듣기가 똑똑히 들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원래 애매한 모범생들은 공부하기 싫으면 영단어를 외운다.

하지만 아무리 부지런히 외워도, 막상 시험 시간이 되면 생각나지 않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라.'

[잡생각 제거] + [ 압축 잠] + [숲 속 산책]

노력 3 콤보로 나는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얼핏얼핏 봤던 영단어들이 모두 똑똑히 기억났다.

'지문이 읽힌다. 막힘없이 술술...'

단어를 아는 것만으로도 문장이 읽히고 문제가 풀렸다.

시험을 치를수록 녹초가 되어야 정상인데, 오늘은 달랐다.

3교시가 끝나자 나는 오히려 몸이 개운해졌고, 마음은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4교시 탐구영역.

암기에 충분한 시간을 쏟지 못했기에 자신이 없었다.

그만큼 나는 맘 편히 시험을 치렀다.

그랬더니 오히려 쉽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웃는 얼굴로 모의고사를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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