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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천재 미대생-2화 (2/203)

■ 2. 노력 코인! □

하긴 회귀까지 한 마당에 놀랄 일은 없었다.

난 차근차근 눈앞에 펼쳐진 화면을 읽었다.

[ 매일 밤 10시 하루의 노력을 정산 하고 노력 코인을 지급합니다.

노력 코인으로 노력 상점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매일 6시간 이상 노력하지 않을 경우, 자동적으로 노력 상점 스킬이 삭제됩니다. ]

그리고 화면 구석에 [노력 상점] 버튼이 깜박거렸다.

나는 '내가 미쳤다.' 생각하고 그 버튼을 눌렀다.

[ 노력 상점 (Lv1) ]

[ 보유 노력 코인 : 12 ]

[ 상품 리스트 ]

[ 압축 잠 : 1시간 수면으로 4시간 수면의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가격 : 5 코인 ]

[ 잡생각 제거 : 3 시간 동안 처음 정한 목표 외의 잡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습니다.

가격 : 5코인 ]

[ 숲 속 산책 : 눈을 감고 1분간 심호흡하면, 맑은 공기의 고요한 숲속을 1시간 산책한 것과 같은 효과를 지닙니다.

가격 : 2코인 ]

상점의 레벨이 올라가면 상품 수도 증가합니다.

상점의 레벨은 코인 거래량에 맞춰 성장합니다. ]

하하하하.

하하하하.

원래 나이 들면 여유가 생기는 법이다.

내가 미쳤다는 사실을 웃으며 받아들였다.

'그래, 회귀까지 했는데, 안 될 게 뭐가 있겠어. 하하하하.'

그럼 쇼핑을 해볼까.

먼저 [숲 속 산책].

네가 제일 싸구나.

난 [숲 속 산책]을 클릭했다.

[ 2노력 코인을 지급해, 숲 속 산책을 구매합니다. ]

[ 잔여 노력 코인 : 10 ]

어라?

그러자 스르륵 눈이 감겼다.

'이게 뭐지?'

눈앞에 녹색이 펼쳐졌다.

숲이다.

숲속이다!

내 발밑엔 푹신한 검은 흙이 펼쳐졌다.

'이럴 수가!'

난 크게 숨을 들이켰다.

신선한 공기가 필터 없이 코로 들어와 뇌를 때리고 가슴을 찔러댔다.

'숨 쉬는 게 이렇게 감동적이라니!'

나는 미친 듯이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푹신한 흙 위를 마음껏 달렸다.

그러다 번쩍 눈을 떴다.

1분이 지난 것이었다.

'이....이.....미친....이게...대체...'

온몸이 날아갈 듯 상쾌했다.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마약보다도, 마약은 해 본 적 없지만.

섹스보다도, 정말 예쁜 여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아무튼 내가 아는 그 어떤 쾌락보다도 훨씬 강렬했다.

스르륵.

내 손이 자동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난 다시 한 번 [숲 속 산책]을 클릭했다.

[ 2 노력 코인을 지급해 숲 속 산책을 구매하시겠습니까? ]

알림창의 확인 메시지를 보고서야 이성이 돌아왔다.

'안 돼. 아껴야 해.'

난 깨달았다.

노력 코인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내 책상 위에 수학의 정석이 펼쳐져 있었다.

'그렇다면?'

난 [잡생각 제거]를 클릭했다.

[ 5노력 코인을 지급해 잡생각 제거를 구매했습니다. 앞으로 3시간 동안 정해진 목표 외에 잡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

[ 목표를 입력하세요. ]

음...

[ 수학의 정석, 수학 1과 정면으로 마주보기 ]

입력을 마치자, 주위가 고요해졌다.

이런...

주위와 동시에 나의 내면도 조용해졌다.

가볍고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진짜 내가 된 기분이었다.

그냥 이대로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수학의 정석.

난 정석을 펼쳤다.

그리고 내가 풀던 페이지를 들여다봤다.

'이런...'

내가 중년의 아재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모든 잡생각이 사라져서 일까?

그동안 내가 해오던 실수들이 환히 보이기 시작했다.

'수학의 정석도 책이었어.'

난 언제나 정석을 펼치고 문제부터 읽었다.

문제를 풀다 막히면 풀이를 읽고, 답을 구했다.

그게 전부였다.

'수학의 정석도 차례가 있군. 그리고 각 단원 마다 제목이 있고, 주제가 있군.'

난 문과였고, 두 권의 정석을 가지고 있었다.

1학년 때 배우는 일반 수학의 정석.

2학년 때 배우는 수학 1의 정석.

공부 잘하는 녀석들은 1학년 때 수학 1까지 모두 3번은 마스터 하지만, 난 어림도 없었다.

2학년 여름방학까지 아직 수학1의 절반도 끝내지 못했다.

'그랬구나. 각 단원들이 다 이유가 있고, 목표가 있었구나. 무작정 문제만 가득한 게 아니었어.'

난 두 권의 정석을 펼치고 목차를 읽었다.

그리고 한 단원씩 학습 목표를 읽었다.

'생각보다 쉬운데?'

수학이 어려워봤자 고등학생용 수학이었다.

그저 막연히 두렵고, 막연히 어려워했던 것뿐이었다.

난 한 페이지씩 차근차근.

이렇게 느려도 되나 싶을 만큼 느리게 읽었다.

그게 나의 속도였다.

내게 어울리는 속도.

수학은 재미있었다.

스도쿠처럼.

테트리스처럼.

옛날이야기처럼.

그림 동화처럼 재미있었다.

회사에서 진상 상사에게 트집 잡힌 보고서 다시 쓰는 것보다 정확히 200배쯤 재미있었다.

그 짜증나는 보고서도 수백 장을 썼는데, 수학의 정석이야 얼마든지 읽을 수 있었다.

자연스레 노트를 꺼내 사각사각 한 문제씩 풀기 시작했다.

조금 막혔다고 답을 보지 않았다.

막힌 이유를 생각하는 게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 3시간이 완료되었습니다. ]

"응?"

난 꿈에서 깨듯 책을 내려놓았다.

'맙소사.'

내가 시작한 곳에서 무려 20페이지가 지나 있었다.

'3시간에 20 페이지면 ..정석 한권을 며칠 만에 끝낼 수 있는 거야?'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분명 느릿느릿 움직였다.

하지만 결과는 빨랐다.

'공부에서는 느린 게 결국 빠른 거구나. 아니 어쩌면 인생 전부가 그럴 지도.'

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노력 상점은 기적이었다.

노력 상점은 노력을 미친 듯 즐겁게 해줬다.

'할 수 있어. 노력 상점만 있다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난 정말 미친 듯이 노력하겠어. 내가 원하던 것, 지난 생 포기했던 것 전부 다 해내고 말겠어. 그리고 내 세상의 끝까지 가보겠어.'

[ 잔여 노력 코인 : 5 ]

노력 코인은 노력하면 쌓인다.

그리고 노력 상점의 상품들은 기적을 불러온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내가 할 일은 오직 노력.

노력뿐이었다.

그리고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간.

어머니가 오셨다.

하루 종일 감자탕집 주방에서 퉁퉁 부은 발로 12시간을 서 계셨던 어머니.

"어머, 집이 달라졌네."

지쳤던 어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행복은 곧 어머니의 행복일 거라고.

지난 생 나의 불행은 곧 어머니의 실패일 거라고.

"엄마, 이리 앉아 봐요. 내가 주물러 줄게."

"어이고, 웬일?"

어머니는 웬일이냐 면서도 딱히 거절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어깨는 비좁고, 균형이 맞지 않았다.

그리고 딱딱했다.

난 어머니의 어깨를 주무르며 다시 한 번 결심했다.

'절대, 두 번이나, 나의 실패를 남에게 넘기지 않겠어.'

그리고 새벽 2시.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지만, 생각만큼 피곤하진 않았다.

[숲 속 산책]과 [잡생각 제거]의 여파가 아직 잔잔하게 몸에 남아있는 덕분이었다.

난 다시 노트를 꺼내 인생 계획을 짰다.

지난 생과 비교해서 내가 꼭 이루고 싶은 목표.

다시 포기해서는 안 될 꿈들을 기록했다.

계획의 마지막엔 이렇게 적었다.

'꼭 내 세상의 끝에 한 번 서 보자.'

어느새 새벽 5시였다.

드디어 노력 상점의 마지막 상품을 테스트해 볼 시간이 되었다.

[ 5노력 코인을 이용해 '압축 잠'을 구매하시겠습니까? 1시간 수면으로 4시간 수면의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

[ YES! ]

나는 모처럼 꿀잠을 잤다.

눈을 뜬 것은 오전 9시.

하지만 실제로는 7시간을 푹 잔 것이었다.

여름 방학이 끝날 때까지는 아직 9일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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