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49화>
에필로그 1
상황이 마무리되고, 시간이 흘렀다.
제국은 스탄 백작이 맡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는 제국이 아니라 연합국이 되었고, 그 첫 번째 수장의 자리에 스탄 백작이 앉은 것이다.
노르트와 라로프, 서쪽 연합 국가는 물론, 엘프와 드워프들도 연합국의 일원이 되었다.
온 세상이 하나의 테두리 안에 들어온 것이다.
문화와 환경, 심지어 종족까지 다른 사람들이 모인 연합이지만,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 세상에 내가 있다는 것을 모두들 알 테니까.’
지구에서 온 플레이어들도 희망자에 한해 이곳에 남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으흐흐, 진짜 오늘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요, 정 형?”
진형기는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근데 한국이 맞을지는 장담 못 하겠군. 나도 다른 차원으로 문을 여는 건 처음이라.”
“어, 음. 그 혹시 비무장지대 같은 곳에 열려서 지뢰라도 밟으면 어떻게 되는 거요?”
별 쓸데없는 걸 다 걱정하고 있군.
“그럼 연락해. 발목 다시 만들어 줄 테니까.”
“하하, 그렇군. 내 친구가 신이지, 신이야.”
“친구? 그거 좀 생각해 보기로 하지 않았던가?”
“이제 생각이 끝났소. 친구 하기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픽 웃었다.
“누구 맘대로?”
“사람이 좀스럽게 그러지 마시오. 흐흐. 아, 이제 사람 아니고 신이었던가?”
진형기는 실실 웃으며 멀어져 갔다.
아마 플레이어들을 챙기기 위함일 터.
‘저쪽 세상에서도 힘이 사라지지는 않을 텐데. 문제는 없으려나 몰라.’
뭐, 어차피 내가 고민할 문제도 아니었다.
어쨌든 플레이어들의 우두머리는 진형기니, 그가 알아서 하겠지.
“대장, 어떻게 좀 해 주십시오.”
진형기가 가고 나자 이번엔 휴고가 들이닥쳤다.
“넌 또 왜 그러냐?”
“아니, 넬도르가 하루도 안 빠지고 아침부터 술병을 들고 들이닥칩니다. 미치겠어요. 그냥 넬도르를, 그래, 그 화염의 지옥 같은 데 보내 버리면 안 됩니까? 아니지, 라로프로 보내면, 한 달에 한 번씩밖에 못 나오니까 그게 나으려나?”
“네가 자꾸 받아 주니까 그렇지. 딱 잘라 거절해.”
화제의 주인공이 등장한 것은 그때였다.
“흐흐, 해수. 나랑 한잔하기로 약속한 거, 안 잊었지?”
딱-
손가락을 튕겼다.
넬도르는 라로프로 갔다.
화염의 지옥은 좀 가혹하니까.
‘아니지, 드워프랑 제법 죽이 잘 맞을 것 같았는데, 화염의 지옥으로 보냈어야 하려나?’
다시 데려오기는 귀찮으니 그냥 두자.
“오오, 대장. 최곱니다, 최고!”
휴고는 엄지를 척 치켜 올리며 좋아했다.
그런 휴고에게 넌지시 물었다.
“넌 안 가 봐도 되냐?”
“어디요, 집이요? 하하, 전 대장이랑 같이 있을 건데, 무슨 걱정입니까? 아무 때나 가고 싶을 때 보내 달라고 하면 되지. 그것보다 오늘이 그날 아닙니까?”
마음 편한 자식. 누굴 택시로 아나.
그래도 녀석이 저러는 이유를 알고 있으니, 예쁘게 볼 수밖에 없다.
오늘은 휴고의 말대로 약속이 있는 날이었으니까.
그때 인기척이 들려왔다.
“호호, 그게 그렇게 맛있다며? 리첼, 리첼. 실컷 먹고 나서, 해수 씨한테 그쪽 동네 구경도 시켜 달라고 하자.”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오늘 돈가스를 먹기로 한 것을 라라가 들은 모양이다.
“이 메뚜기야! 나랑 주인이랑 휴고랑 셋이서만 갈 거거든! 내가 다 먹을 거야. 너 줄 거 없어. 저리 가!”
“아유, 너희 둘은 왜 그렇게 만나면 싸우니?”
라라의 목소리와 타박하는 리첼의 목소리.
그리고 그 사이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필로그 2
슬슬 불어오는 찬 바람을 느끼며 불꽃 돈가스집 주인 최 사장은 가게 앞을 비질했다.
“쌀쌀하구먼. 이제 따신 국물 준비해야겠네.”
최 사장이 중얼거리며 날씨 걱정을 할 때, 멀리서 야구 모자를 눌러쓴 남학생이 쫄래쫄래 걸어왔다.
‘학교 갈 시간 아닌가?’
내심 궁금했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걸 물어서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최 사장은 괜한 오지랖을 접고 비질에 전념했다.
그때 야구 모자 소년이 최 사장네 가게 앞에 멈춰 섰다.
“아저씨, 지금 장사하죠? 열 시 반부터 문 연다고 돼 있던데.”
나름 맛집으로 소문나 블로그에도 자주 오르내리는 것이 최 사장네 돈가스 가게였다.
“오,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왔니? 장사하지, 암.”
멀리서 찾아온 손님은 언제나 최 사장을 들뜨게 했다.
비록 거창한 음식이 아닐지라도, 내가 만든 돈가스를 즐겁게 먹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얼른 가게로 들어간 최 사장은 앞치마를 두르고 조리 준비를 했다.
“손님, 뭐로 드릴까? 우리 집 돈가스는 다 맛있어서, 아무거나 먹어도 되긴 한데…….”
그때 막 최 사장의 뒤를 따라 가게로 들어온 소년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앗, 맞다! 아저씨, 저 방송 좀 해도 돼요? 인터넷 개인 방송이요.”
이미 직접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고, 파워 블로거들도 여럿 접해 본 최 사장이다.
당연히 인터넷 개인 방송도 환영이었다.
“암, 물론이지. 다른 손님도 아직 없으니 마음껏 해요. 대신 딴 손님 오면, 그분들 얼굴 안 나가게 조심해야 해.”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저 방송 벌써 2년 차예요, 히히.”
경력을 자랑하며 야구 모자를 벗어 든 손님은 예상대로 앳되었다.
새빨간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나풀거렸는데, 개구진 목소리만 아니면 성별을 헷갈릴 것처럼 예쁘장했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데.’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학교에 대한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지만, 뭐 어쩌랴?
내 새끼도 아닌 것을.
음식이라도 맛있게 해 주자는 생각을 하며 최 사장이 다시 소년에게 질문했다.
“그래 우리 비제이 손님은 무슨 메뉴로 드릴까?”
“음, 불꽃 싸다구, 저게 제일 매운 거 맞죠? 저걸로 2인분 주세요.”
저건 소년이 먹기에는 너무 맵다.
매운 걸 잘 먹는다는 어른들이 와도 1인분을 다 못 먹고 가는 것이 불꽃 싸다구다.
게다가 2인분이라니.
미성년자임이 분명한데, 탈이라도 나면 곤란해지지 않을까?
“학생, 저건 너무 매운데……. 괜찮겠어?”
“아하하, 제가 완전 매운 거 전문이거든요. 걱정하지 마시고 주세요.”
“나중에 먹고 탈 나도 아저씨한테 뭐라 그럼 안 돼요?”
“당연하죠. 여기 방송에 다 나가고 있는걸요.”
이미 인터넷 방송이 시작되었는지, 소년이 슥 내민 핸드폰 화면에는 채팅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었다.
말하는 동안 기름이 알맞은 온도로 데워졌다.
차르르르-
최 사장이 준비된 돈가스를 기름에 담그자, 맛있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가게 안으로 퍼져 나갔다.
“우오, 우오! 무니는 엄청나게 참기가 힘든 것이에요!”
소년은 이미 방송에 심취해 있었다.
피식 웃은 최 사장이 눈물이 쏙 빠지는 매운 소스를 준비하는데, 갑자기 소년이 질문해 왔다.
“아 참! 아저씨, 이거 20분 만에 다 먹으면 한 달 동안 공짜 맞죠?”
흔히 유행하는 음식 빨리 먹기 미션.
이곳 최 사장네 가게에서는 지금 소년이 주문한 불꽃 싸다구 1인분을 20분 안에 먹는 것이 그 목표였다.
“그럼. 근데 학생은 2인분인데, 어떻게 할래? 40분 해 줄까?”
혹시라도 급히 먹다가 탈이 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최 사장이 인심 좋게 물었다.
어린 녀석이 싹싹하고 당찬 것이 썩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아저씨. 저는 20분 안에 2인분 다 먹을 수 있어요.”
츄릅-
고소한 냄새에 이미 침이 잔뜩 고이는지 입술을 훔친 소년은, 대답을 마치자마자 다시 핸드폰 화면에 집중해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쿨피스라도 서비스로 주자.’
“냄새가 진짜 귀가 코가 막 막혀요! 히힛. 앗, 아앗! 감사합니다, 누님. 달 풍선 천 개 완전 감사요.”
최 사장이 돈가스를 테이블에 올릴 때까지, 소년은 연신 큰 목소리와 동작으로 리액션 중이었다.
“맛있게 먹어요. 이건 서비스.”
최 사장이 테이블에 쿨피스를 올렸다.
“앗, 이건 없어도 되는데……. 그래도 주셨으니까 감사하게 먹겠습니다.”
소년은 벌떡 일어나 배꼽 인사를 시전하더니,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들며 자리에 앉았다.
‘탈이라도 나면 안 되는데. 괜찮을까 모르겠네.’
여려 보이는 외모의 소년이 못내 걱정되는 최 사장이었지만,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식사를 시작했다.
“오옷! 완전 맛있어. 맵고 달아, 아하하.”
연신 돈가스를 흡입하는 소년의 붉은 머리가 매운 소스랑 어울려 한결 더 흥겨워 보였다.
‘그나저나 정말 잘 먹네.’
소년은 호언장담한 대로 정말 잘 먹었다.
보는 사람이 흐뭇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 소년이 갑자기 입을 벌리고 소리를 꽥 내질렀다.
“오오, 불꽃 싸다구! 이제 매운맛이 올라온다, 올라온다! 아하하!”
“헉!”
그 순간 최 사장은 놀라 헛숨을 들이켰다.
소년의 입에서 불꽃이 뿜어졌기 때문이다.
일회용 라이터만 한 작은 불꽃이었지만, 최 사장은 분명히 보았다.
‘저, 저게 무슨…….’
메뉴 이름이 불꽃 싸다구지만, 진짜 불꽃이 날 리는 없다.
그냥 매운 소스를 잔뜩 넣었을 뿐.
최 사장이 연신 눈을 비비는 중에도 소년의 식사는 계속되었다.
“앗, 2만 개 감사합니다, 누님. 완전 완전 이뻐요, 멋져요. 빨리 먹기 미션 중이라, 요거 다 먹고 나서 댄스 타임 갈게요!”
소년이 덩실덩실 춤을 추듯 돈가스를 흡입해 갔다.
최 사장은 넋을 놓고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딸랑-
그때 방울 소리와 함께 가게 문이 열리고, 훤칠한 키에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섰다.
남자는 최 사장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더니, 소년에게로 곧장 다가갔다.
여전히 돈가스를 먹느라 정신없던 소년은 남자에게 꿀밤을 맞고 나서야 남자의 존재를 눈치챘다.
“아얏, 주…… 형! 형이 왜 여기 있어?”
소년이 깜짝 놀라 돌아보자, 형이라 불린 남자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얀마, 너 자꾸 이럴래? 오늘 휴고 생일이라고 말했어, 안 했어? 방송에 빠져서는 딴 건 아주 다 잊고 사는구만.”
“앗, 맞다. 오늘 휴고 생일이었지. 어쩌지, 어쩌지. 아직 다 못 먹었는데.”
“어쩌긴 뭘 어째, 가야지. 내일 다시 하든지 해. 가자.”
남자는 최 사장에게 계산을 하고는 소년에게 고갯짓하며 가게를 나섰다.
잠시 안절부절못하던 소년은 이내 단념한 듯, 즐거운 표정으로 남자를 따라갔다.
“휴고 오랜만에 만나겠다. 저번에 보니 낚시 다닌다고 바쁘던데. 사람도 잘 안 만나는 것 같고.”
“넌 그걸 아는 녀석이 휴고 생일을 까먹냐?”
최 사장은 소년과 남자가 대화하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친형제는 아닌 거 같은데…… 엄청 가까워 보이네. 요즘 말로 그 뭣이냐, 캐미?’
남남이라기엔 너무 끈끈한 무언가가 둘 사이에서 느껴졌다.
따뜻한 마음에 그들을 계속 응시하고 있는데, 최 사장의 눈에 의아한 장면이 들어왔다.
“어, 왜 저기로?”
남자와 소년이 가게에서 좀 떨어진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저곳은 체 10미터도 가지 않아 막혀 있는 곳이었다.
최 사장이 의아한 마음에 가게를 나서며 소리쳤다.
“거기 막혔어요. 막다른 골목이야.”
하지만 최 사장의 말을 못 들었는지, 소년과 남자는 이미 골목으로 사라져 버렸다.
곧 있으면 나오겠거니 하고 다시 가게로 들어간 최 사장은 몰랐지만, 그들은 골목에서 돌아 나오지 않았다.
골목에는 남자와 소년은 사라지고, 청량한 가을바람 한 자락만이 놓여 있었다.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