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44화>
좌우 양쪽에 셋씩, 도합 여섯의 영웅이 폭탄이 되어 터졌다.
콰콰콰콰콰아아앙- 콰콰과아아아앙-!
해일에 이어 폭발까지 일어나자, 온 천지에 지옥도가 펼쳐졌다.
눈 가는 곳마다 짓이겨진 팔다리가 굴러다니지 않는 곳이 없었다.
“크아아악!”
“끄윽, 치료를, 어서…….”
곳곳에서 신음과 비명과 노성이 토해져 나왔다. 참혹한 광경이었다.
내 얼굴도 일그러졌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지옥도 때문은 아니었다.
‘이거론 모자라. 너무 많이 살아남았어.’
대충 훑어봐도 살아남은 영웅은 열이 훨씬 넘었다.
황가수호대는 백 명도 넘게 목숨이 붙어 있었다.
어쨌든 놈들이 혼란한 틈을 이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나는 살아남은 놈들의 면면을 살피며 먼저 노려야 할 목표를 정했다.
‘저놈부터. 그리고 저놈도 꼭 처리해야 한다.’
마음을 먹은 즉시 칼을 뽑아 들었다.
- 휴고, 최대한 엘리베이터에서 버텨. 수가 너무 많다. 둘러싸이면 힘들어질 거야.
- 알겠습니다, 대장. 저희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뛰쳐나가려는 것을 안 휴고가 자신 있다는 듯 대답해 왔지만, 애써 꽉 다문 턱이 도드라져 눈에 들어왔다.
나도 이를 악물며 몸을 날렸다.
‘점멸.’
그리고 환수 폭발에 휩쓸렸다가 막 일어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던 오를란도의 뒤로 이동했다.
어느새 인벤토리에서 꺼내진 아론다이트가 오를란도의 보호막을 꿰뚫고 놈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푸슉-
그리고 그와 동시에 멸세폭이 사용되었다.
후두두둑.
오를란도가 육편(肉片)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일단 귀찮은 놈은 처치했고.’
살아남은 놈 중 치료가 가능한 것은 오를란도뿐이었다. 놈이 회복할 경우 적들의 전투 지속력이 크게 증가할 터였기에 처음 목표를 오를란도로 삼았던 것이다.
나는 다음 목표를 눈에 담았다.
놈은 몸에 영혼 갑옷을 두른 채 넘어졌던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레오비크.’
저놈은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놈을 내버려 두었다가는 이미 죽은 영웅들이 언데드로 되살아날 수도 있고, 언제든 시체 폭발에 활용될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시체 폭발은 너무 위험했다.
주변에 널린 게 시체였으니…….
스팟-
공간을 거듭 건너뛰어 레오비크에게 다가갔다.
놈은 오를란도와는 달리 내 접근을 눈치채고 이미 주문을 외고 있었다.
차르르르.
사방에 널린 뼛조각들이 조립되며 놈의 주위로 둥근 바리케이드를 형성했다.
다시금 이어진 놈의 주문에 놈 근처에서 시체 골렘 두 기가 허공을 찢으며 나타났다.
오를란도 때처럼 기습은 무리였다.
놈에게 가는 길이 뼈로 된 벽과 언데드들로 막혔다. 우선은 길을 뚫어야 했다.
‘이거나 먹어라.’
나는 인벤토리에서 필멸의 대포를 꺼내고는 곧바로 발사했다.
콰앙-!
발사된 포탄은 시체 골렘에 맞고 폭발했다.
단순한 폭발이라면, 신체가 웬만큼 부서져도 문제없이 움직이는 언데드에게는 큰 효과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포탄이 터지며 퍼져 나간 녹색 기운은 그것에 닿은 언데드와 뼈의 벽을 순식간에 녹여 갔다.
나는 그 틈을 노려 곧바로 레오비크를 향해 달렸다.
놈은 뜻밖의 공격에 당황한 듯 주춤하고 있다가, 내가 눈앞에 다다랐을 때야 다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늦었다, 이 자식아!’
마력을 듬뿍 받아 늘어난 불의 검이 레오비크의 목을 휘감았다. 그와 동시에 멸세폭의 기운이 검날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콰콰쾅-!
“후욱-.”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급격히 움직이느라 달아오른 몸을 다스리는 사이, 레오비크의 잘린 머리통이 내 발치로 데구루루 굴러왔다.
퓨슈슈슈슛-
그때 하늘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쏟아져 내렸다. 공중에 떠 있던 웅기베가 나를 노리고 공격을 날린 것이다.
‘빌어먹을 자식.’
웅기베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다. 하늘에 있으니 해일도 환수 폭발도 놈에게는 큰 피해를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웅기베의 깃털 칼날이 쉼 없이 쏘아졌다.
거듭 점멸을 사용해 놈의 공격을 피하면서 머리를 굴렸지만, 웅기베를 잡을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세 번 남은 영웅 소환 중 하나를 더 쓰기로 결심하고 즉시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연신 깃털을 날려 대는 웅기베의 머리 뒤편에 마법진이 생겨났다.
그리고.
콰콰콰콰아앙-!
나타난 영웅은 폭탄이 되어 웅기베를 덮쳤다.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웅기베는 전혀 반응하지 못하고 즉사했다.
‘이제 남은 환수 폭발은 두 번. 영웅은…… 쯧, 열 명도 넘게 남았군.’
상황을 살피는데 뒤에서 커다란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그쪽을 돌아보았다.
워젤이 다시 한번 해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정령의 숨결이 보조하지 않아 그런지 아까 전보다는 확연히 작은 규모였지만, 여전히 강력한 위력이었다.
콰르르르릉-
거센 물결이 또다시 옥상 정원을 초토화시키고 지나갔다.
이제 살아남은 황가수호대는 오십 남짓.
영웅도 열 명 정도가 다였다.
그러나 전력은 여전히 우리의 열세였다.
대놓고 맞붙어서는 이기기 힘들뿐더러, 설사 이기더라도 피해가 뒤따를 터.
아군의 희생을 감당할 마음이 내게는 조금도 없었다.
‘쯧, 아직 멀었나.’
슬쩍 옥상 구석을 쳐다봤지만, 기다리는 소식은 없었다.
다시 시선을 전장으로 돌렸을 때, 엘리베이터로부터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새하얗게 작렬하는 불기둥이 엘리베이터에서 쏘아져 길게 뻗어 나갔다.
막 엘리베이터를 습격하려던 황가수호대 무리가 불에 휩쓸려 단번에 죽어 나갔다.
곧이어 불길이 그치자 힘을 쓴 루스의 앞을 휴고가 막아섰다. 전장에 넘쳐흐르는 핏물을 보면, 당장 저쪽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나를 노린 공격이 날아들었다. 얼음 화살, 불덩어리, 벼락까지 다양한 공격이 뒤섞여 있었다.
‘점멸.’
장소를 거듭 옮겨 공격을 피해 내며, 멀리 차원문을 힐끔 쳐다봤다.
혹시 놈들을 처리하지 않고 곧바로 들어갈 수 없을까 하는 마음에서였지만, 이내 그 방법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나투스, 빌어먹을 자식.’
차원문으로 오르는 계단 아래에 아나투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놈은 해일에 훼손된 마법진을 보수함과 동시에 새로운 마법진을 거듭 설치하고 있었다.
점멸을 방해하는 보호막은 물론, 각종 마법 함정이 저곳을 틀어막고 있을 것이다.
결국 영웅들을 다 처리하고 계단으로 접근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었다.
그때 휴고의 다급한 목소리가 머리를 파고들었다.
- 대장, 워젤 님이 위험합니다!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점멸이 있기에 이렇게 종횡무진 누비고 다닐 수 있었다.
하나 병력이 열세인 상황에 지형의 도움 없이 혼자 고립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휴고와 루스에게도 엘리베이터에서 버티라고 한 것이었고.
워젤은 점멸 같은 이동 기술이 없는 데다가, 해일을 두 번이나 사용했으니 힘이 많이 빠졌을 것이다.
게다가 이곳 정령계에서는 본체(本體)인 상태. 죽으면 그대로 소멸된다.
급하게 돌아보니 영웅 몇 놈이 워젤을 공격하고 있었다.
워젤이 힘겹게 물의 창을 날리고 있었는데, 쏘는 족족 앞에 나선 바간의 방패에 막히고 있었다.
쾅! 저벅, 쾅! 저벅.
물의 창을 막고 한 걸음씩 전진하는 바간의 모습은 징그러울 정도로 정교했다.
이윽고 워젤과 어느 정도까지 다가간 바간이 망치를 휘둘렀다.
망치의 대가리가 쑥 빠지더니 오러의 끈에 연결되어 철퇴처럼 워젤에게 날아갔다.
스팟-
내가 끼어든 것은 그 순간이었다.
아직 거리가 좀 남았지만, 나는 길게 늘인 불의 검을 내뻗었다.
화염의 검날이 쭉 뻗어 나가 바간의 망치 대가리를 휘감는 순간, 나는 검을 재빨리 잡아당겼다.
파캉-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나며 망치 대가리로 이어지던 바간의 오러 줄기가 터져 나갔다.
“읍!”
충격이 전달되었는지 바간이 입을 악다물고 신음을 삼켰다.
그 순간 나는 다시 불의 검을 휘둘렀다.
콰앙-
한 번의 폭음이 울리고.
불의 검이 바간의 방패에 부딪혔다가 휘어지며 방패를 타고 미끄러져 들어갔다.
콰직-
곧이어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불의 칼날이 바간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나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멸세폭!’
폭음과 함께 바간의 상반신이 산산이 조각나며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털썩. 상체를 잃은 놈의 시신이 힘없이 쓰러졌다.
바간의 죽음을 확인한 후 나는 재빨리 워젤을 살폈다.
워젤은 바간이 죽었음에도 계속 물의 창을 만들어 전방을 향해 날리고 있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맞은편에서 마위니의 화살이 쉴 새 없이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
물의 창을 날려 화살 비를 상쇄시키지 않으면, 워젤은 물론 내게도 피해가 올 상황이었다.
나는 워젤의 앞을 막아서며 불의 검을 빛살처럼 휘둘렀다. 화염의 막이 생겨나 화살 비를 튕겨 내었다.
- 아, 미안해요. 구원자님.
희미한 워젤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깜짝 놀랐지만, 화살 때문에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뒤에서 느껴지던 워젤의 기척이 사라졌다.
‘이런…….’
워젤이 전장에서 이탈한 것이다.
상황을 보았을 때, 죽은 것은 아닐 터였다. 지치기는 했지만, 치명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으니.
완전히 방전되어 물의 정령계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 것 같았는데, 차라리 다행이었다.
‘워젤은 할 만큼 했다.’
이제껏 여러 번 나를 도와 자신을 희생한 워젤이다. 이곳에서 소멸하는 모습까지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이제 어쩐다?’
기다리던 원군은 아직 소식이 없었고, 적들은 여전히 넘칠 만큼 많았다.
휴고와 루스는 엘리베이터에서 성공적으로 농성 중이지만, 막상 밖으로 불러내기는 망설여졌다.
콰르르르-
망설이는 사이, 마위니의 화살에 이어 어디선가 날아온 화염이 나를 노렸다. 화왕이 양손에 불덩어리를 만들어 던지고 있었다.
‘해일에 맞고 좀 죽어 버릴 것이지.’
놈은 상대하기 제법 까다롭다.
화기를 극한까지 끌어 올리면 접근 차제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제껏 루스가 맞상대해 왔던 것인데, 지금은 루스를 불러내기 꺼려지는 상황이었다.
일단 점멸을 거듭하며 불덩이를 피해 다녔다.
그사이 정신없이 흩어져 있던 영웅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재정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상황이 안 좋다. 놈들이 제대로 진형을 갖추면, 더 힘들어진다.’
여러 놈을 처치했지만, 그것은 기습의 묘를 살린 덕이지 우리의 전력이 놈들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콰아앙-!
다시 한번 날아온 불덩이를 피해 냈을 때였다. 갑자기 뒤편에서 인기척과 함께 강력한 물의 기운이 느껴졌다.
“짜잔-! 라블라 등장!”
영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대사와 함께 물의 정령왕 라블라가 나타났다.
해맑은 말투와 표정이 좀 어이없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아군의 등장에 고무되기도 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빠르게 던진 질문에 라블라의 대답이 돌아왔다.
“워젤 언니가 다 죽어 가는 얼굴로 가서 좀 도우라고 하더라고요.”
아, 그렇군.
물의 정령계로 돌아간 워젤이 우리의 사정을 생각해 라블라를 보내 준 모양이다.
사실 정령왕들은 내 전력(戰力)이라고 할 수 없다. 애초에 계약을 맺을 때부터 싸움을 도와 달라는 말은 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자발적으로 나타나 주었으니 고마운 일이다.
워젤은 물론 라블라도 말이다.
어쨌든 느긋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상황은 아니었다.
콰쾅! 콰아앙-!
지금도 나를 향해 연신 불덩이와 화살이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흥, 내 앞에서 불장난이라니!”
그 장면을 본 라블라가 코웃음을 치더니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해일로 인해 사방은 물바다였다. 라블라에게서 뻗어 나간 기운이 스며들자, 바닥에서 물의 거인이 불쑥 솟아났다.
“가라!”
라블라의 당당한 목소리에 물 거인이 화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라블라도 흥 하며 코웃음을 한 번 더 날리고는 물 거인의 뒤를 바짝 따랐다.
‘화왕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기본적인 전력은 물론, 상성도 라블라의 우세였다.
그럼 나는 마위니를 처리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