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42화 (142/149)

 # 142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42화>

영웅이 말을 걸어온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미 충분히 시간을 지체한 상황이라 다급한 마음도 있었지만, 한 마디 나눈다고 더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이미 터질 일은 진작에 다 터진 후였기 때문이다.

나는 레오비크에게 날카로운 말투로 되물었다.

“무슨 소리지?”

“그분께서는 네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자 하신다.”

“하, 개소리!”

내 과격한 말투에도 놈은 관리자에게 따로 지시받은 것이 있는지 차분히 응대했다.

“이미 정령왕이 죽었다. 네가 표식을 얻어 상위 관리 차원으로 갈 길은 막혔다.”

“…….”

내게 다른 방법이 있음을 모르기에 하는 소리다.

하지만 나는 놈에게 그런 티를 내지 않고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놈이 무슨 말을 하려나 더 들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레오비크는 그런 내 태도에서 무언가 숨기고 있음을 알아챈 것인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태도를 보니 뭔가 방법이라도 알고 있는 모양이군. 그래 봤자 더는 의미가 없다. 이제 그분께서 모든 힘을 되찾으셨기 때문이지.”

“……!”

놈의 발언에 순간 깜짝 놀랐지만, 이내 곧 사실을 깨닫고 표정을 굳혔다.

‘거짓말!’

관리자가 진짜 힘을 되찾았다면, 직접 이곳에 나타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저런 제안을 해 오는 거지?

내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레오비크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 허튼짓은 그만두고, 세계의 정수를 관리자님께 바쳐라. 그러면 그분께서 네가 원하는 것을 모두 이뤄 주실 것이다.”

“이미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다. 이곳 바람의 정령계는 아주 씨가 말랐고. 이제 와서 그런 소리가 통할 거로 생각하나?”

“그분이 만드는 세상을 위해 어느 정도는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일에 네 목숨까지 걸 이유가 있나?”

관리자의 인형인 주제에 놈은 말이 많았다.

한편으로는 마음속에서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영웅에게 말을 전달시키면서까지 관리자가 나를 회유하려는 이유가 뭘까?

놈의 말대로 관리자가 힘을 다 회복한다면, 나 따위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을 텐데.

‘놈이 두려워하는 게 뭐지?’

내가 가진 것 중에 관리자가 꺼릴 만한 것이라고 해 봐야 세계의 정수뿐이다.

잠깐, 세계의 정수……?

‘설마, 그거였나?’

놈이 비록 힘을 회복하더라도, 창조주만 한 권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물리적으로야 강하겠지만,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끽해야 스킬이나 메시지에 관여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애초에 창조주가 관리자에게 허락한 권한이 거기까지였으니까.

‘놈이 원하는 것은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를 만한 권능.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의 정수가 필수적이지.’

그런 관리자가 가장 두려워할 만한 것은…….

‘세계의 정수를 잃는 것. 놈은 내가 죽으면서 세계의 정수가 유실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어.’

관리자는 내가 지금 세계의 정수를 어느 정도까지 다룰 수 있는지 모른다.

결국 관리자는 내가 패색이 짙어질 경우 세계의 정수를 놈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보내 버리거나, 혹은 파괴해 버릴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모반에 성공했을 때, 창조주가 세계의 정수를 조각내어 놈이 갖지 못하게 해 버린 전적이 있지. 그러니 이번에 또다시 똑같은 일을 당하고 싶지는 않을 거야.’

물론 그런 생각은 관리자 자신이 패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는 할 수 없다.

그런 경우 나를 저지하거나 죽이는 데 우선해야 할 테니까.

아무래도 놈은 바람의 정령계를 멈춰 버린 것으로 승리를 자신하는 것 같았다.

이제 정수를 손에 넣지 못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막겠다는 것이 놈의 뜻이리라.

‘결국 놈의 회복이 끝자락에 다다른 것은 맞나 보군, 쯧.’

생각하는 중에도 레오비크의 주절거리는 소리는 이어지고 있었다.

“네 소중한 사람들의 목숨까지 희생시키고 싶지 않으면, 그분께 세계의 정수를 바쳐라. 그러면 원래 살던 곳으로 보내 줄 수도 있고, 새로운 세상에서…….”

“닥쳐라!”

나는 놈의 말을 끊으며 곧바로 놈에게 달려들었다.

이제 시간을 지체하면서까지 역겨운 이야기를 더 듣고 있을 필요는 없다.

휴고도 양손에 망치를 휘두르며 돌진했다.

루스의 손에서도 새하얀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 * *

싸움은 길지 않았다.

애초에 영웅 둘이라면 전력상 우리의 확연한 우세다.

게다가 그중 한 놈은 언데드라 완전한 전력을 발휘하지도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시체 폭발’에 의해 터져 버린 화이트를 제외하고 레오비크의 주검에 아이템 추출을 사용한 결과.

나온 것은 붉은 보석이었다.

‘안 그래도 얼마나 필요할지 모를 상황이었는데. 나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닫힌 엘리베이터 문틈에 손가락을 억지로 집어넣었다.

힘을 줘 문을 당기자 강한 저항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압도적인 근력 앞에 문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기기긱.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기어코 문이 열렸다.

그 사이로 보이는 것은 이제껏 우리가 타고 왔던 엘리베이터의 내부가 아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그 속에 있었다.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넓은지 전혀 가늠이 안 되는…….

마치 빛 한 점 없는 우주를 보는 것 같은 공간이 그 속에 펼쳐져 있었다.

“이, 이게 뭡니까?”

“배터리.”

“예에?”

“보면 알아.”

황당해하며 되묻는 휴고에게 어깨를 으쓱이며 인벤토리에서 안 쓰는 아이템들을 꺼냈다.

잡다한 장비들, 그리고 여분의 포션들…….

나는 마력을 품고 있는 것은 모조리 꺼내 검은 공간을 향해 집어 던졌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바라봤다.

하지만 버튼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이 정도로는 안 되나?’

나는 다시 인벤토리를 뒤져, 쓸모가 덜한 것들부터 골랐다. 얼마 전에 획득한 ‘초기화 마법진 스크롤 로브’를 꺼내 집어 던졌다.

그럼에도 버튼은 여전히 반응이 없다.

‘이제 좀 아까운 것뿐인데.’

남은 것들을 훑어보다가, 아론다이트를 꺼내 들었다.

똑같은 것이 두 자루 있어 하나를 버리더라도 보호막을 파괴하는 역할은 여전히 수행할 수 있다.

‘마법 함정 재료로라도 써먹으려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아론다이트를 집어 던지자 엘리베이터 버튼에서 약한 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됐다.”

“뭐 하신 겁니까?”

“방전된 걸 다시 채운 거야.”

정령계는 정령을 따로 모아 두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금처럼 정령이 완전히 사라지면 시스템이 유지될 필요가 없어지고, 그에 따라 시스템이 작동을 멈춘다.

그렇게 꺼진 시스템을 다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마력을 주입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엘리베이터를 강제로 열면 ‘연료 탱크’로 바로 연결되는데, 그곳에 아이템을 던져 넣음으로써 정령계 시스템에 마력을 주입할 수 있다.

“이제 어떻게 되나요?”

“정령이 다시 태어날 거야.”

“여기서요?”

“아니, 다른 정령계를 떠올려 봐.”

잠시 생각하던 휴고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올라왔던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태어나나 보군요.”

“그래, 그곳에서 생산되게 프로그램되어 있지.”

“다시 돌아가야 하겠네요?”

나는 휴고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 시스템은 부팅시켰으니, 정령왕을 만들어 낼 차례다.

우리는 부지런히 달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휘이이잉-

다시 시스템이 가동된 것을 증명하듯, 세찬 바람이 벼랑을 따라 불어왔다.

“앗, 저기 정령이야!”

목적지에 거의 다다라 갈 때쯤 루스가 갓 태어난 정령을 발견했다. 이 층에 와서 처음으로 보는 바람의 정령이었다.

정령은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잠자리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작은 생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막 태어난, 하급 정령이라 불릴 수도 없는 약한 정령들이었다.

내가 다가가자, 손가락에 끼워진 ‘정령의 숨결’ 덕에 정령들이 근처로 모여들었다.

나는 정령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정령왕 뽑는 중이다.”

“예에? 정령왕을 뽑아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휴고를 보며 나는 근처에 모인 정령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 중에 한 놈을 정령왕으로 만들 거야. 괜찮아 보이는 놈 있어?”

사실 모두 다 갓 태어난 것들이라 별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이러고 있는 이유가 있었는데.

‘정령왕이란 것들이 워낙에 제정신이 아니었어야지, 쯧.’

기왕이면 최대한 멀쩡해 보이는 것으로 뽑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루스가 다가왔다.

루스는 코를 킁킁거리며 정령들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이게 제일 기분 좋은 냄새가 나.”

그러더니 작은 새 형상의 정령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좋다.”

루스의 감각이면 믿어 볼 만하다.

나는 작은 새 정령에게 손을 뻗었다.

새 정령은 거리낌 없이 내 손바닥으로 올라왔다.

나는 새 정령을 손에 얹은 채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가는 길에 다른 정령들이 따라붙는 것을 계속해서 쫓아내며 한참을 더 이동했고,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정령들이 들러붙는 일도 사라졌다.

“이 녀석이 이제 새로운 정령왕이 되는 겁니까? 근데 원래 가장 강한 개체가 저절로 정령왕이 되는 것 아니었습니까?”

휴고가 새 정령을 유심히 살피다가 궁금한 얼굴로 물어왔다.

“일정 수준에 오르지 않으면, 이곳에서 가장 강한 기운을 품고 있더라도 정령왕이 될 수는 없어. 그런 상황에서는 정령계의 시스템이 정령왕의 존재를 필요치 않는 것이지. 그러니 이제 이 녀석을 키워서 정령왕을 만들어야 해.”

말과 함께 나는 인벤토리에서 붉은 보석을 꺼내었다.

일단 황가수호대에서 나온, 기운이 비교적 약한 것부터였다.

새 정령은 붉은 보석이 뿜어내는 기운에 곧바로 반응했다.

이전에 물의 정령계에서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는 장면이 그대로 펼쳐졌다.

붉은 보석에 달라붙은 새 정령이 보석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새 정령의 몸이 조금씩 성장했고, 몸에서 흐르던 푸른빛도 더 짙어져 갔다.

그러나 단 하나뿐인 보석임에도 미약한 새 정령이 다 흡수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거 생각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리겠는데…….’

고민하며 방법을 궁리하는 중에 휴고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말을 걸어왔다.

“너무 오래 걸리겠는데요. 아까 그 영웅 놈이 한 말도 있고…… 영 불안합니다.”

아무래도 레오비크가 관리자의 힘이 다 회복되었다는 소리를 한 것이 휴고의 마음에 남은 것 같았다.

“신경 쓰지 마. 그놈이 한 말은 거짓말이야. 관리자가 기운을 다 회복했…… 음.”

기운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아이템이 있었다.

나는 연기충천부(然氣衝天符)를 꺼내 들었다.

이것은 정령계를 다시 부팅시킬 때에도 쓰지 않고 아껴 뒀었다. 혹시나 정령의 도움을 받거나, 루스의 힘을 북돋울 때를 대비해서였다.

‘아껴 두길 잘했군.’

나는 곧장 연기충천부를 사용했다.

부적에서 기운이 흘러나와 새 정령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삐익-

새 정령이 짧은 울음을 토해 내더니, 몸에서 나는 푸른빛이 강해졌다.

‘효과가 있다.’

나는 연기충천부에 더해 정령술사에게서 얻은 반지의 스킬도 사용했다.

뿜어지는 빛이 한층 더 강해지더니, 이윽고 새 정령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참새처럼 작았던 새 정령은 점점 자라나, 이내 독수리 크기가 되었다.

새 정령은 고맙다는 듯 내게 고개를 주억이고는 다시 붉은 보석의 기운을 흡수해 나갔다.

보석의 기운은 얼마 가지 않아 새 정령에게로 모두 빨려 들어갔다.

나는 웃으며 몇 개의 보석을 더 꺼내 들었다.

새 정령은 갈수록 흡수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품고 있는 기운도 순식간에 커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한 움큼씩 보석을 던져 줘도 금세 흡수해 버렸다.

그렇게 붉은 보석을 꾸준히 내어 주던 어느 순간, 새 정령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번쩍-!

그러더니 새 정령의 몸에서 푸른빛이 폭발적으로 퍼져 나갔다.

눈부신 빛이 멎었을 때, 더는 새 형태의 정령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인간처럼 두 발로 서 있는 자그마한 체형의 정령.

사람의 얼굴 대신 새의 머리가 달린 것을 제외하면,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오오! 이제 정령왕이 된 겁니까, 대장?”

“아니, 이제 상위 정령으로 거듭난 거야. 아직 정령왕은 아니지.”

말이 막 끝나는 순간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령이 내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격이 오르며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 어서 더 흡수해라.”

내가 황가수호대에게서 나온 붉은 보석을 내밀자, 새 정령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것으로는 더 이상 성장할 수가 없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