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35화>
‘잘돼야 할 텐데…….’
물론 백 퍼센트 장담할 수는 없는 문제라 우려도 되었지만, 창조주의 말과 내가 겪은 바를 믿고 시험을 수락했다.
그 후 우리는 라블라, 워젤과 함께 하급 정령들이 사는 구간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영웅들과 싸운 전장과 탑을 부순 곳을 지나치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급해서 미처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었다.
‘이걸 빼먹었었군. 그대로 남아 있어서 다행이야.’
나는 황가수호대의 주검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아이템을 추출했다.
당연히 붉은 보석이 잔뜩 추출되어 나왔다.
안 그래도 보석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지금이라도 기억인 난 것이 다행이었다.
그런데 루스가 근처로 다가오더니 투덜거렸다.
“그건 아무도 안 먹는데……. 뭐 하러 자꾸 주워?”
“줍는 게 아니야. 추출하는 거지.”
그리고 애초부터 너 말고는 아무도 안 먹었다, 이 녀석아.
루스야 이제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홀대하는 물건이지만, 사실 붉은 보석에는 굉장히 훌륭한 기운이 담겨 있다.
내가 붉은 보석을 추출하자 워젤과 정령왕이 된 라블라가 신기하게 쳐다봤다.
“구원자님, 그건 뭔가요? 대단히 훌륭한 기운을 품고 있네요.”
“근데 어째서 저 나쁜 놈들에게서 그런 성스러운 기운을 품은 물건이 나오는 거죠?”
워젤과 라블라가 연이어 질문을 던져왔다.
하지만 관리자와 창조주에 얽힌 이야기를 전부 할 수는 없어 나는 대강 간추려 설명했다.
황가수호대를 보내는 악신이 원래는 창조주의 권속이었는데, 배신했다고.
그래서 황가수호대를 비롯해 적들에게서 성스러운 기운을 품은 보석을 추출할 수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그랬었군요. 얼른 가요.”
워젤이야 적의 강함을 익히 알고 있었겠지만, 라블라는 이제야 상황의 위급함을 깨닫고는 서두르기 시작했다.
나도 붉은 보석을 인벤토리에 넣으며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곧 우리는 불의 정령계에서 타고 온 엘리베이터 근처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주로 하급 정령들이 살고 있었는데, 라블라가 나타나자 그들이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중에는 탑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것으로 보이는 하급 정령들도 있었고, 심지어 그보다 훨씬 더 약해 보이는 것들도 존재했다.
‘들은 대로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새로 태어나는군.’
나는 창조주에게 들은 내용을 되새기며 해결 방안을 다시 점검했다.
그때 라블라가 주위를 안타까운 눈으로 돌아보더니 내게 이야기했다.
“이제 여기 정령들에게 기운을 줄 방법을 찾아주세요.”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내게는 이들을 성장시킬 만한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지금 내가 쓰려는 방법은 정령왕의 시험을 도저히 통과하지 못할 때 사용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
원래는 상당히 과격한 방법이었는데, 그 과정 중 일부를 지금 시행하기로 했다.
‘일단 붉은 보석을 꺼내서…….’
나는 우선 주위에 몰려든 하급 정령들에게 붉은 보석을 확 뿌렸다.
그 모습에 놀라 흩어졌던 정령들이 보석이 내뿜는 신성한 기운에 이끌려 다가왔다.
그러더니 앞다투어 보석에 달라붙었다.
사실 엔트를 만나기 전까지는 붉은 보석을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엔트가 붉은 보석으로 힘을 되찾는 것을 보고는 정령계에서도 같은 방법이 통용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역시, 되는군!’
“앗, 아이들이 기운을 흡수하고 있어요.”
라블라가 놀라 소리쳤다.
“예, 이건 아까 말씀드렸듯이 신이 사용하는 기운입니다. 정령에게도 매우 좋은 영향을 미치지요. 정령에게 이것을 흡수시키면 빠르게 성장할 겁니다.”
물론 정령왕이나 워젤 같은 강대한 존재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다.
그들에게까지 도움될 정도로 기운이 강하지는 않았으니까.
“아아……! 그렇군요. 잘되었어요, 정말.”
라블라와 워젤이 감탄사를 토해 낼 때, 나는 인벤토리에서 연기충천부를 꺼내 들었다.
구양극을 잡고 얻은 아이템으로, 수화지풍(水火地風) 중 하나의 기운을 북돋는 효과를 가진 부적이었다.
그런 다음 나는 정령들의 상태를 면밀히 살폈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부적까지 쓸 필요는 없겠군. 붉은 보석이 생각보다 더 훌륭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어.’
실제로도 갓 태어난 정령들은 어느새 하급 정령에 가까워져 있었고, 상처 입었던 하급 정령들도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흡족하게 지켜보는 라블라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표식은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껏 본 정령왕 중에 라블라가 가장 정상이군. 정령왕이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가?’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나는 정령들이 성장하기를 기다렸고, 잠시 후.
“이 정도면 충분해요. 이제 시험은 끝났어요.”
라블라가 기쁜 표정으로 선언했다.
당연하게도 나는 곧 정령왕의 표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구원자님, 굳이 라블라까지 계약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랑 벌써 하셨잖아요.”
“언니, 그래도 내가 이제 정령왕인데 당연히 나랑도 계약해야지. 어서 계약해요, 구원자님.”
“넌 언제 봤다고 벌써 구원자님이라고 부르는 거니, 라블라?”
“언니는 좀 빠져 봐요. 구원자님이랑 제가 대화 중이잖아요.”
워젤의 사소한 방해가 있었지만, 라블라와도 계약을 무사히 맺었다.
나중을 생각하면 정령왕과의 계약은 해 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수월히 맺게 되어 다행이었다.
시간이 좀 더 흘렀다.
라블라는 하급 정령들을 돌보기 위해 그 자리에 남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물로 만들어진 배 위에 있었다.
워젤이 다음 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까지 물의 배로 이동시켜 주기로 한 것이다.
“아하하, 신나-!”
“이걸 또 타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대장. 하하.”
루스와 휴고가 모처럼 즐거워했다.
“괜히 들뜨지 말고, 좀 쉬어 둬. 한동안 제대로 잠도 못 잤잖아.”
엔트와 만난 후 연이어 몰아친 사건들로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황제를 물리치고도 마음이 급해 곧바로 정령계로 넘어왔기에 더더욱 시간이 나질 않았다.
지금은 워젤이 이동을 도맡아 주고 있으니, 휴식을 취할 적기였다.
앞으로 또 언제 이렇게 휴식할 틈이 날지 알 수 없으니.
“안 그래도 슬슬 졸리네요. 대장도 좀 쉬세요.”
휴고의 말을 들으며 나도 모처럼 눈을 붙였다.
* * *
“구원자님, 조심하시고 무슨 일 있으면 저를 부르세요. 꼭이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잘 지내십시오, 워젤님.”
끝까지 배웅해 준 워젤과의 인사를 마치고 나는 엘리베이터로 올라섰다.
잠깐 눈을 붙인 덕인지 몸이 개운했고, 머리도 맑아졌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모처럼 꿀잠을 잔 덕분인지 긍정적인 마음이 샘솟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되새기며,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할 수 있다. 아니, 해내야 한다. 녀석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루스와 돈가스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옆에 있는 휴고와 루스를 의식하며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다음 층에 도착해 멈춰 섰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을 때.
나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이건…… 텅 비었다.’
내가 주위를 살피고 있을 때, 휴고도 똑같이 이변을 느낀 모양.
“대장, 정령이 전혀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예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요! 이건 아무래도…….”
우리는 이런 현상을 이미 본 적이 있다.
알기에 더 상황이 심각하게 다가왔다.
“그래. 당했다.”
이곳은 이미 탑에 의해 황폐화되어 있었다.
탑에 이곳의 기운이 모조리 빨려 버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텅 빈 느낌만을 받은 것이다.
“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휴고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녀석도 산전수전 다 겪은 터라 웬만해서는 여유를 잃지 않았었는데, 끝이 다 와 가는 마당에 이변에 부닥치자 마음이 흔들린 것 같았다.
“상황이 안 좋은 것은 맞지만, 아직 계획이 실패한 것은 아니야. 너무 당황하지 말고, 일단 주위를 좀 살피자.”
실제로 최악의 상황에 쓸 수단이 내게는 남아 있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휴고보다는 좀 더 담담하게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일단 땅의 정령계인 것 같은데.’
기운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아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필 남은 것이 바람과 땅 두 군데다 보니 지형으로 유추하기도 쉽지 않았다.
눈앞에는 풀 한 포기 없는 야트막한 돌산이 여럿 솟아있고, 그 사이로 협곡이 이어져 있었다.
“그나마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기는 쉽다는 게 다행인가?”
“하아-. 협곡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겠네요. 근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뭐 딱히 다른 경우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게 탑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면 탑을 찾아서 부숴야지. 그리고.”
“…….”
“당연히 탑만 나타나진 않았을 테니, 영웅들도 처치해야 사태가 해결되겠지. 중요한 건, 놈들이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나타났느냐 하는 점이야.”
“저번에 본 영웅들 수를 생각하면, 우리와 맞상대하라고 보낸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정령왕을 노리는 것 아닐까요?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야. 어쨌든 서두르자.”
정령왕이 당하게 둘 수는 없는 일.
나는 걱정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휴고의 어깨를 툭 치고 앞장서 나갔다.
한동안은 외길 협곡을 따라 쭉 이동을 계속했다.
가는 동안 주위에서는 한 줌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전투의 흔적으로 보이는 파괴된 지형지물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탑이 확실하군요.”
말과 함께 휴고가 가리킨 곳에는 황가수호대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땅의 정령에게 당한 것인지 주검의 상반신이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나는 사체에 다가가 손을 대 보았다.
“차갑다. 시간이 제법 지난 모양이야.”
“서둘러야겠는데요.”
휴고도 이제 평정심을 되찾았는지 빠릿빠릿하게 행동했다.
우리는 다시 빠르게 협곡을 달려 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원치 않게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는데.
“음, 선택지가 너무 많네요.”
눈앞에 마치 금 간 유리처럼 협곡이 갈라져 있었다.
수많은 갈림길이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짧게 고민한 후, 나는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일단 흩어져서 길을 찾는다. 놈들이 지나간 곳은 기운이 싹 빨려 있을 거야. 그러니 조금씩만 가 보면 알 수 있어.”
“아, 그렇군요. 가서 찾아보겠습니다, 대장.”
우리는 그렇게 서로 흩어져 갈림길을 돌아다녔다.
몇 군데 길을 돌아보고 원래의 지점으로 돌아왔을 때, 루스가 제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쪽이야, 주인.”
놈들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휴고가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우리는 다시 빠르게 이동했다.
“시간을 너무 지체한 것 같아 걱정입니다.”
달리는 와중에도 걱정이 많은 휴고에게 뭐라 대답해 주려 할 때였다.
“주인, 탑이야.”
멀리 탑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탑을 단단히 둘러싸고 있는 황가수호대도.
* * *
상황이 급했던 만큼 우리는 서둘렀고, 덕분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쿠구구궁-
밑동이 박살 난 탑이 모로 쓰러졌다.
그 옆으로 수십 구의 황가수호대가 주검이 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아이템 추출할 동안 잠시 쉬고들 있어.”
붉은 보석의 쓰임새가 확실하니 이제 허투루 빠트리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붉은 보석이 모조리 추출되어 내 인벤토리로 들어간 후, 우리를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몇 번의 갈림길이 다시 나타났지만, 이전에 사용한 방법으로 어렵지 않게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루스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달리는 속도를 늦추었다.
“주인, 다 온 것 같아.”
코를 찡긋거리는 모습이 영웅의 냄새를 맡은 것이 분명했다.
“다녀올게.”
이번에도 나 혼자 정찰을 하기로 하고, 조용히 앞장섰다.
인식 교란을 걸고 한동안 나아가자 협곡은 커다란 분지로 변했다.
여러 협곡이 한곳으로 모여 엄청난 크기의 공터를 이루고 있었다.
콰르릉-
콰아아앙-!
그리고 그곳에서 연신 폭음이 울리며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정령왕이다.’
여러 영웅들과 하나의 정령이 싸우고 있었는데, 나는 보는 즉시 정령의 정체를 확신했다.
‘굉장히 강하다. 정령왕이 아니고서는 저 정도로 강하기 힘들어.’
워젤이 물의 정령계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워젤에 비해서도 절대 떨어져 보이지 않았다.
정령왕은 진흙 골렘을 여러 기 만들어 내어 앞에 세우고는 영웅들과 전투 중이었다.
그 앞에는 키가 3미터는 되어 보이는 털북숭이가 진흙 골렘과 맞서고 있었는데.
‘크뤼거. 저놈도 나타났군.’
크뤼거는 수인족(獸人族)이다.
그중 호랑이와 인간의 외형을 섞은 듯한 모습을 한 호인족(虎人族)이었다.
타고난 신체 능령이 굉장히 강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전위에서 활약한다.
클래스는 버서커.
초재생 못지않은 회복력을 바탕으로 방어를 도외시하고 날뛰는 것이 놈의 전투 스타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