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25화>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준비한 노림수대로 상황이 전개되었지만, 결과는 내가 예상한 것과 많이 달랐다.
‘젠장! 놈의 반응이 너무 빨라.’
황제의 방심을 이용해 가슴을 찌르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멸세폭이 터지기 직전에 놈이 점멸을 사용해 도망쳐 버렸다.
예전 수도에서 만났던 황제와는 천양지차의 실력이었다.
‘전문적으로 몸을 쓰는 클래스의 영웅보다도 한 수 위가 됐군, 쯧.’
나는 혀를 차며 황제의 위치를 찾았다.
놈은 한참 떨어진 곳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게다가 벌써 회복 주문을 완성했는지, 이미 가슴에 생겼던 상처는 아물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이가 갈렸다.
한데 놈도 내게 분노하긴 마찬가지인 듯, 화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감히 하찮은 플레이어 주제에……! 관리자님이 내리신 새로운 몸에 상처를 내다니. 죽여 버리겠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황제의 눈빛이 빛났다.
그런데 이제까지와는 달리, 황제의 눈은 빛이 꺼지지 않고 연속해서 번쩍였다. 그 모습에 나는 의문을 느꼈다.
‘저걸로 클래스를 바꾸는 게 아니었던가?’
지금까지를 생각하면 황제가 눈빛을 빛낼 때마다, 놈이 사용하는 스킬의 종류가 달라졌다.
그래서 나는 황제의 눈이 빛날 때, 영웅이 가진 클래스 중 하나로 놈이 변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황제의 눈빛은 쉴 새 없이 계속 반짝이고 있다.
‘뭐지?’
지금이라도 즉시 공격을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는데, 갑자기 놈의 몸에서 변화가 생겼다.
우두둑-
변화는 갑자기 일어난 만큼, 미처 손써 볼 틈도 없이 빠르게 끝났다.
황제는 키가 5미터쯤 되는 근육질의 거인으로 변신해 있었다.
그리고 작은 태양이 가슴에 박혀 있는 것처럼 놈의 가슴 한가운데가 빛났다.
그 외에도 눈에 확 뜨이는 차이가 있었는데.
‘저건 데모릭스가 사용하던 기계 팔인가?’
어디로 가 버렸는지 들고 있던 검이 사라진 대신, 황제의 어깨 위에 두 개의 팔이 더 자라나 있었다.
“크아아아앙-”
그때 황제가 눈을 붉게 빛내며 괴성을 내질렀다.
‘설마 이지를 상실한 건가?’
이제까지 오만한 눈동자를 빛내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을 보는 것 같아 살짝 기가 질렸다.
어쨌든 놈은 처치해야 할 적임이 분명했기에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황제도 같은 생각인지 내게 살기를 피워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놈에게 달려가며 불의 검을 휘둘렀다.
노리는 곳은 놈의 머리였다.
칼날로 황제의 머리통을 휘감은 후, 멸세폭을 터트려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놈은 이전보다 훨씬 빨랐고, 그 탓에 공격은 빗나갔다.
대신 황제가 슬쩍 몸을 물리며 내민 손에 불의 검이 휘감겼다. 그리고 놈이 불의 검날을 맨손으로 움켜쥐었다.
‘저게 무슨?’
화염으로 이루어진 불의 검이 황제의 손에 붙잡혀 버렸다.
심지어 놈의 손은 타들어 가지도 않았다.
놀라운 심정으로 놈의 손을 자세히 살피자 그 비밀을 알 수 있었다.
‘보호막이다!’
놈의 몸에는 얇은 막이 한 겹 덧대어져 있었다.
‘어디 이것도 버티나 보자.’
나는 놈이 불의 검을 잡아당기는 순간, 멸세폭을 사용했다.
콰콰콰아앙-!
황제의 팔을 감싼 불의 검이 화려하게 폭발했다.
“크아아아앙-!”
그리고 황제의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폭발을 뚫고 들려왔다.
그러나 잠시 후 폭발이 가라앉았을 때 드러난 장면은 내 기대에 못 미쳤다.
놈의 팔에서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눈 깜박할 사이에 멎더니 이내 상처가 아물어 버렸다.
‘빌어먹을! 오를란도의 회복 마법을 상시로 사용하고 있는 수준이군.’
황제의 회복력은 초재생과 용인화를 갖춘 나보다도 한 수 위였다.
놈을 어떻게 죽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에 날카롭게 벼린 창 수십 개가 황제에게 날아갔다.
워젤이 물의 창을 만들어 날린 것이다.
“크와아아앙-!”
그를 확인한 황제가 다시 한번 괴성을 내질렀다.
그러자 놈의 몸 주위에 둥그런 형태의 보호막이 한 겹 더 나타났다.
콰콰앙-
수십 발의 창이 보호막에 적중했다.
몇몇은 보호막에 막히고, 몇몇은 보호막을 뚫고 들어갔다.
그러나 황제의 몸 주위를 얇게 감싼 막까지 뚫어 낸 창은 없었다.
아군의 공격이 번번이 막히고 있다.
상황이 썩 좋지 못하다.
그러나 나는 그 틈에서 한 가지 기회를 엿볼 수 있었다.
‘가슴은 철저히 지키고 있다.’
보호막이 있음에도 놈은 기계 팔을 움직여 가슴의 빛나는 구슬 앞을 가로막았다.
그것은 물의 창이 모두 사라진 지금도 마찬가지로, 기계 팔은 여전히 황제의 가슴 앞을 지키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저기가 약점이야. 그나저나 변신하면서 진짜 이지를 상실한 건가?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는군.’
저렇게 대놓고 가슴을 막는 것은 약점을 상대에게 가르쳐 주는 것과 진배없었다.
어쨌든 내게는 손해가 아니었기에, 나는 생각할 시간에 몸을 더 움직이기로 했다.
나는 곧바로 점멸을 통해 놈의 앞으로 이동한 후, 불의 검으로 놈의 가슴을 찔러 갔다.
창처럼 꼿꼿하게 늘어난 검날이 황제의 기계 팔과 맞부딪쳤다.
콰앙-!
폭음이 울렸지만, 황제의 기계 팔은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내 검에 담긴 힘을 생각했을 때, 저렇게 미동조차 없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쯧, 절대불변인가?’
이성은 잃어버렸어도 전투 감각이 사라진 것은 아닌 모양이라,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그때 연이어 당한 공격에 화난 황제가 반격을 시작했다.
“크와아아앙-!”
괴성을 내지른 황제가 한쪽 발을 들어 올리더니 땅을 쿵 하고 내리찍었다.
바닥에서 오러가 창처럼 솟구쳐 올라 사방으로 쏘아지며 폭발했다.
콰쾅- 콰아앙-!
나는 얼른 검을 들어 폭발을 막았고, 그 충격에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렸다.
그 순간, 황제가 눈을 시뻘겋게 빛내더니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음…… 방향이?’
황제의 진로가 내가 있는 곳과는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설마! 샘으로 가는 건가?’
가만 보니 놈은 내 뒤편 멀리 있는 샘의 중앙, 근원의 돌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근원의 돌은 상위 차원으로 가는 통로의 문을 여는 장치. 저것이 파괴되면 내가 신격을 얻을 길이 요원해진다.
‘막아야 해!’
나는 재빨리 놈의 앞으로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멸세폭.’
황제와 나 사이에서 폭발이 일었다.
요령 없이 급하게 힘으로 맞부딪친 탓에 더 큰 반발력이 밀려 들어왔다.
그 탓에 내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렸지만, 다행히 황제의 진격도 멈추었다. 놈도 멸세폭의 충격 때문에 달리던 기세를 잃은 것이다.
“크아아아-!”
분노한 괴성이 한 차례 더 울리더니, 황제가 양손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놈의 몸 주위에 벼락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음으로 만들어진 창이 나타나더니, 황제의 주위를 호위하듯 허공에서 둥둥 떠 있었다.
‘젠장, 가지가지 하는군.’
마법을 시전한 놈이 다시 진격해 왔다.
놈을 해치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전에 놈이 근원의 돌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나는 또 한 번 놈에게 맞서 달려갔다.
그러자 얼음 창이 나를 노리고 쏘아져 왔다.
쎄에엑-
세찬 파공음이 내게 닿는 순간, 나는 얼음 창을 피해 점멸했다. 위치는 황제의 정면, 검이 닿을 거리였다.
파직-
도착 즉시 내 머리 위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크윽!”
몸에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예상했던 일.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아 내며 다시 한번 멸세폭을 날렸다.
콰콰콰콰쾅-!
폭발이 일며 놈의 돌진이 다시 멈춘다 싶은 순간, 갑자기 폭발 사이를 뚫고 주먹이 날아들었다.
콰앙-!
순간적으로 겨우 절대불변을 사용해 막았다. 하지만 주먹은 한 방이 아니었다.
콰앙- 쾅-!
나는 두어 번 더 절대불변으로 막아 내다가, 뒤쪽으로 점멸을 사용해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젠장, 빌어먹을 보호막 때문에…….’
멸세폭이 폭발하는 순간, 황제의 몸 앞에 수십 겹의 보호막이 연이어 생겨나며 충격을 상쇄해 버렸다.
그 바람에 놈의 진격을 제대로 멈추지도 못했고, 오히려 반격을 당했다.
놈은 처음 변신했을 때에 비해 갈수록 힘의 사용이 능숙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쿵쿵쿵-
황제의 거구가 샘을 향해 달렸다.
워젤이 물의 창을 날려 보았지만, 연이어 생겨나는 황제의 보호막을 더 이상 뚫어 내지 못했다.
해일이라도 불러일으키면 놈을 뒤로 밀어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워젤에게도 그 정도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뿐이었다.
‘피해를 보더라도 일단 전진을 막는다.’
놈을 샘으로 보낼 수는 없으니, 나는 멸세폭을 난사해서라도 놈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때, 황제의 뒤를 덮쳐 가는 그림자가 있었다.
시체 폭발에 당해 튕겨 났던 휴고가 몸을 추슬러 전장에 합류한 것이다.
“죽어라-!”
휴고는 황제의 등을 향해 멸세폭을 내질렀다.
콰콰콰쾅-!
망치에 맞은 황제의 몸이 휘청거렸고, 놈의 등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휴고가 반대편 손에 들린 망치를 다시 휘둘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황제의 기계 팔 하나가 뒤로 돌아가 등 중앙을 막았다.
그리고 놈의 몸 주변에 보호막이 연이어 생겨나 충격을 막아 내었다.
그와 동시에 벼락이 휴고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파직-
벼락에 맞은 휴고가 멈칫거리는 사이, 곧바로 황제의 주먹이 휴고를 후려쳤다.
콰아앙-
휴고가 뒤로 주르륵 밀렸다.
다행히 망치를 들어서 막은 덕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휴고는 오히려 눈을 빛내며 곧바로 다시 달려들 태세였다.
그 순간, 휴고와 내 눈빛이 황제를 가운데 두고 허공에서 마주쳤다. 굳이 말을 전하지 않았지만,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나는 황제를 향해 달렸다.
휴고도 황제에게 다시 접근했다.
그 순간 위기를 감지한 황제의 몸에서 수십 겹의 보호막이 생겨났다. 그리고 벼락이 황제의 몸 주위로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나도 휴고도 벼락이 두려워 멈춰 서지는 않았다.
전격의 고통을 감내하며 황제에게 다가선 우리는 동시에 황제에게 무기를 휘둘렀다.
‘멸세폭.’
“죽어라!”
황제를 가운데 두고, 거대한 충격이 앞뒤에서 동시에 터졌다.
수십 겹의 보호막이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황제의 피부가 터지며 핏물이 튀었다.
곧이어 놈의 근육이 분해되어 고깃덩이처럼 사방으로 날렸다.
양쪽에서 터진 멸세폭은 놈의 몸을 거의 뼈만 남기고 분쇄해 놓았다.
‘해치웠나?’
“끄아아아악-!”
거의 백골처럼 변한 황제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그러더니 놈이 몸을 둥글게 웅크렸다.
기계 팔은 이 와중에도 파괴되지 않고 놈의 가슴을 가리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놈의 주위에서 수십 개의 마법진이 생겨나더니, 순식간에 몬스터와 정령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슨 짓이지?’
놀라움과 함께 섬뜩한 불길함이 느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황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멸세폭!’
다시 한번 폭음이 산봉우리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제기랄!”
나는 욕설을 내뱉었다.
멸세폭이 웅크린 황제에게 적중한 순간, 황제 대신 주변에 소환되었던 정령이 우수수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정령술사의 피해 전이 스킬이다.’
이를 악문 나는 곧바로 다음 공격을 가하려 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찰나의 순간, 황제 주위에 소환되었던 몬스터와 정령이 모두 사라졌다.
그 대신 황제의 육체가 원상 복구되어 있었다.
‘제기랄! 소환수들을 희생시켜서 몸을 회복시켰어.’
처음 보는 스킬이었지만, 그 효과는 대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하아…….”
허무한 마음에 한숨이 절로 흘렀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털어 버리고, 나는 휴고와 다시 한번 눈빛을 교환했다.
일단 공격이 한 번 통했으니, 같은 방법을 다시 시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내 예상처럼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콰르르르르-
황제의 몸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다.
그것은 화왕(火王) 힐다스의 것과 꼭 닮아 있었는데, 그 기운은 화왕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