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24화>
“쯧, 이대로는 안 되겠군.”
혀를 찬 나는 점멸을 사용해 일단 불덩이를 피했다. 그러며 힐끔 옆을 슬쩍 살폈다.
다행히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일행은 엔트의 앞에 나서서 몬스터들을 먼저 막아 주고 있었는데, 일행의 뒤로 흘러 나가는 몬스터는 엔트들만으로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는 정도였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또다시 포탄과 불덩이가 내게 날아들었다.
적당히 쳐 내고 피해 가며 나는 황제를 노려보았다.
‘저놈만 처치하면 단번에 해결될 문젠데.’
하지만 놈이 쉽게 죽어 줄 것 같지가 않았다.
내 예상대로 놈이 모든 영웅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대로 몬스터나 잡고 있어서는 끝이 없을 터.
‘일단 들이받아 보자.’
나는 직접 황제를 공격해 본 후, 상황을 살피기로 결심했다.
‘점멸.’
그리고 정하자마자 공간을 건너 뛰어가며 성벽으로 다가갔다.
내 손에 들린 불의 검이 마력을 한계까지 받아들여 부르르 떨려 왔다.
그리고 막 황제의 바로 옆으로 이동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점멸을 사용했을 때.
파직-!
눈앞이 번쩍하더니 얼얼한 충격이 머리에 느껴졌다. 몸이 무언가에 가로막히며 허공에서 멈춰 선 것이다.
‘제기랄! 이게 뭐야?’
나는 깜짝 놀라며 다시 한번 점멸을 사용했다.
파직-!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황제 옆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무언가를 경계로 점멸이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마치 허공에 보이지 않는 막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젠장!”
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그대로 불의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불의 검이 허공에서 무언가에 막히며 폭발했다.
‘쯧, 점멸을 방해하는 막이라…….’
이는 내가 모르는 스킬이었다.
아마 진화로 인해 새로 생긴 스킬인 모양이었다.
막을 공격하며 공중에 머무는 사이, 내게 대포와 불덩이가 연이어 날아들었다.
나는 점멸을 사용해 뒤로 쭉 물러나면서 황제의 요새를 노려봤다.
점멸이 통하지 않는다면, 힘으로 뚫고 들어가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어쩔 수 없지.’
방법은 정면 돌파뿐이었다.
그리고 정면 돌파라면, 꼭 혼자서 할 필요는 없었다.
- 휴고, 정면으로 공격한다. 너도 합류해.
- 알겠습니다, 대장!
결정을 내린 나는 뒤편에서 몬스터와 싸우던 휴고를 앞으로 불러들였다.
대규모의 적과 싸울 때는 휴고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가자!”
옆으로 다가온 휴고와 함께 앞으로 달려들었다.
“죽어라!”
휴고가 괴성과 함께 양손이 망치를 번갈아 가며 휘둘렀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휴고의 양손에서 멸세폭이 연이어 터졌다.
몬스터들이 천지 사방으로 쓸려 날아갔다.
‘진작 망치를 하나 더 구해 줄 걸 그랬나?’
생각 이상으로 큰 효과에 놀라며 성벽을 향해 달리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하늘에 검은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성벽 앞에 벼락을 내리꽂기 시작한 것이다.
파직- 파지지직-!
연이어 떨어지는 전격에 나는 휴고와 함께 전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성벽 위에서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는데, 휴고가 말을 걸어왔다.
“저놈은 뭐 때문에 저러고 있을까요? 이런 식으로는 우릴 죽일 수 없다는 걸 알 텐데요.”
휴고의 말대로, 지금 황제의 방식으로는 시간을 끌 수는 있을지언정 우릴 죽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이 상황이 나 역시 의문스러웠다.
“글쎄다. 이 몬스터를 소환하는 것도 다 힘이 소모될 텐데,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구나.”
대화 중에도 달려드는 몬스터를 해치우며 고민을 하는데,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되살릴 생각인가?’
예상이 맞는다면 황제는 네크로맨서인 레오비크의 스킬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몬스터를 소모해도, 다시 일으켜 병력으로 쓰면 그뿐이다.
그런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또 다른 가능성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자 등골이 오싹했다.
나는 곧바로 루스에게 소리쳤다.
“루스-! 사체까지 다 태워 버려!”
내 목소리를 들은 루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완전히 알아듣지는 못했는지, 재빠르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힘을 아끼지 마! 다 태워 버려-!”
내가 다시 한번 고함치자, 고개를 끄덕인 루스의 몸에서 새하얀 불길이 치솟았다.
루스의 화염에 닿은 몬스터와 그 사체가 재로 화해 사라져 갔다.
그때 황제가 다시 눈빛을 빛내며 듀랜달을 허공에 휘둘렀다. 그러자 사방에 흩어져 있던 몬스터의 사체가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젠장! 네크로맨서의 스킬이다. 휴고, 물러나!”
나는 휴고에게 소리치며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휴고는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눈치채지 못한 듯, 달려드는 언데드 몬스터에게 망치를 휘두르며 내게 의문 섞인 시선을 보냈다.
저래서는 큰일이다.
“휴고! 싸우지 말고, 물러서! 폭발한다.”
내 강한 외침에 휴고가 움찔하더니 망치를 거두었다.
그리고 막 뒤로 물러서려는 찰나, 황제의 목소리가 울렸다.
“터져라!”
그러자 전장에 있던 언데드 몬스터가 터지기 시작했다.
콰아앙-! 콰콰아앙-!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몬스터의 뼈와 살이 창날처럼 몸으로 날아들었다.
나는 그나마 미리 물러나 있었던지라 상황이 나았지만, 몬스터와 가까이 있던 휴고는 시체 폭발에 직격당했다.
휴고가 몸에서 피를 뿌리며 뒤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계속되는 폭발 때문에 어디로 처박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 휴고, 휴고. 괜찮아?
나는 폭발을 피해 가며 휴고를 불렀지만 답이 없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불렀을 때에야 대답이 들려왔다.
- 괜……찮습니다, 대장. 주위에 피가 많아서 겨우 회복되었습니다.
둘러보니 산봉우리 가장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휴고가 보였다.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지만, 상황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나마 미리 눈치를 챈 덕에 엔트와 샘물 쪽에 피해가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빌어먹을 보호막 때문에……. 쯧.’
결국 성벽을 둘러싼 보호막을 파괴하지 않고는 답이 없다.
보호막을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아론다이트였다.
[아론다이트(S. 장검)]
- 화룡의 목을 벤 명검. 절대 이가 빠지지 않는다. 칼날에 스며든 저주받은 화룡의 피로 인해 모든 종류의 보호막을 무시하고 피해를 입힌다.
하지만 아론다이트의 설명을 다시 한번 살핀 후, 아론다이트로는 상황을 타개할 수 없음을 확신했다.
아론다이트는 보호막을 무시할 뿐, 파괴할 수는 없다.
지금처럼 보호막의 범위가 넓을 때는 아론다이트의 칼날이 황제에게 닿지 않는다.
아론다이트를 집어 던지는 방법 말고는 황제를 공격할 수 없는데, 그래서는 타격을 제대로 입히기 힘들다.
‘어떻게든 압도적인 공격을 가해서 보호막을 부숴야 해.’
그런데 다가가려니 벼락이 내리꽂힌다.
이도 저도 못하고 고민하는데, 다시 성벽 근처에 마법진이 생겼다.
그리고 몬스터가 꾸역꾸역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젠장, 이대로는 안 돼.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방법을…….’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머리를 미친 듯이 굴렸다.
몬스터 무리가 한 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초조함이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바닥에 흐르는 샘물이 눈에 들어왔다.
근원의 샘에서 넘친 물이 여전히 산봉우리 위를 흘러내리고 있었다.
‘가만, 어쩌면 가능할지도…….’
나는 재빨리 인벤토리를 뒤져 구천도사를 잡고 얻은 부적을 꺼내 들었다.
[연기충천부(然氣衝天符)(S. 소모품)]
- 뛰어난 도력을 지닌 도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부적. 사용할 경우 수화지풍(水火地風) 중 원하는 기운 한 가지를 크게 북돋는다.
“그래, 해 보자!”
부적의 옵션을 보자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당장 다른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기에 그 생각을 곧장 실행하기로 결심하고 부적을 사용했다.
그러자 산봉우리를 흘러내리던 물의 양이 한층 더 많아졌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워젤에게 연락했다.
- 워젤 님, 지금 이곳으로 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워젤은 대답이 없었다.
조금 초조한 마음에 다시 말을 걸려는 찰나, 워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 구원자님. 지금 가도록 할게요.
그리고 잠시 후, 산봉우리를 흘러내리는 물줄기에서 불쑥 워젤이 나타났다.
- 갑작스러웠을 텐데, 감사합니다.
- 괜찮아요. 언제든 불러도 좋아요. 다만, 저번에 힘을 사용하고 아직 다 회복하지 못해서……. 아! 괜찮겠네요.
- 네? 무슨 말씀이신지?
워젤이 아직 힘을 다 회복하지 못한 것인가?
갑자기 괜찮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이지?
의아해하는 나를 보고 워젤이 곧바로 대답했다.
- 이곳의 물에는 굉장히 정순한 기운이 대량으로 흐르고 있군요. 이 정도면 몸을 회복하고도 남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말을 마친 워젤의 몸이 순간적으로 빛났다.
그러자 주변에 흐르던 물줄기가 폭포수처럼 불어나 사방을 뒤덮더니, 워젤을 중심으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워젤이 힘을 쓰는 동안 나는 손에 낀 반지를 확인했다.
정령술사를 잡고 획득한 반지는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령의 숨결(S. 반지)]
- 높은 격을 지녔던 정령의 기운이 담긴 반지. 착용하면 정령 친화도를 상승시킨다. 착용자가 원할 경우, 특정 정령에게 기운을 더한다.
‘기왕 할 거면 확실히 하는 게 낫겠지.’
충만한 샘물의 기운 덕에 워젤의 힘은 충분해 보였지만, 나는 반지도 아끼지 않고 사용했다.
그러자 반지에서 푸른빛이 쏘아져 워젤에게 연결되더니, 워젤의 몸이 한층 더 영롱하게 빛을 발했다.
- 아아-! 힘이 차올라요. 고마워요, 구원자님.
말과 함께 워젤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불어났던 물줄기가 거세게 움직여 파도를 이루었고, 단번에 해일이 만들어졌다.
해일은 몬스터 떼를 쓸어버리고, 황제가 만들어 둔 요새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물줄기에는 번개를 떨어트리든 대포를 쏘든…… 의미 없지.’
내 중얼거림대로 해일은 모든 마법을 무시하며 성벽을 향해 밀고 들어갔다.
“이 하찮은 이세계 놈이!”
황제가 노성을 토하는 순간, 해일이 성벽을 강타했다.
콰르르르르응-
너무 커서 오히려 제대로 인식할 수 없을 정도의 소음이 산봉우리를 뒤덮었다.
보호막도, 성벽도, 그 위에 설치되어 있던 대포나 마법진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성벽 위의 모든 것이 단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이 쓸려 나갔다.
그 순간에도 나는 마음을 놓고 있지 않았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황제이지, 요새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지금 죽인다!’
워젤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기술을 무한히 사용할 수는 없다.
지금의 기회를 멍하니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황제를 찾았다.
잠시 후 해일이 가시자, 황제의 모습이 드러났다.
놈은 예상대로 살아 있었다.
황제는 몸에 보호막을 두른 채 서 있었는데, 특별한 상처는 없었지만,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놈을 확인하자마자 왼손을 들어 올렸다.
재사용 대기 시간에 걸린 천벌은 사용하지 못했지만, 거울에는 제법 큰 힘이 모여 있었다.
‘원혼의 거울.’
번쩍-!
검푸른 광선이 황제를 향해 쏘아졌다.
광선을 본 놈이 눈을 부릅뜨더니 몸을 재빨리 비틀었다.
광선은 보호막을 대번에 꿰뚫고 들어가, 놈의 어깨를 관통했다.
놈이 피하지 않았다면 심장을 부숴 버렸겠지만, 아쉬워하고만 있을 생각은 없다.
내가 준비한 노림수는 아직 남아 있으니까.
스팟-
나는 공간을 건너뛰어 재빨리 놈에게 다가갔다.
황제의 눈이 빛남과 동시에 놈의 몸 주변에 보호막이 다시 생겨났다.
그리고 곧이어 놈이 회복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인벤토리에서 아론다이트를 꺼냈다. 그리고 놈의 심장을 향해 내질렀다.
놈은 날아드는 아론다이트를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중얼거리던 주문을 계속해서 외웠다.
아론다이트에는 오러가 가늘게 맺혀 있을 뿐, 전혀 특별한 기술을 걸지 않았다.
아마 황제는 보호막만으로도 내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푸욱-
하지만 아론다이트는 보호막을 무시한 채 놈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노림수가 적중한 즉시 나는 스킬을 사용했다.
‘멸세폭!’
콰콰콰아아앙-!
그러자 황제의 가슴에 박힌 아론다이트에서 강력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