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22화>
바간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후우-.”
나는 숨을 고르고 주위를 살폈다.
킨조른 쪽은 상황에 큰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휴고와 루스가 추격하고, 킨조른은 도망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놈이 간간이 반격을 가하고 있었지만, 휴고와 루스에게 치명상을 줄 정도는 못 되었다.
나는 틈을 노리기 위해 킨조른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내가 원하던 상황이 왔다.
루스에게 쫓기다가 궁지에 몰린 킨조른이 점멸을 사용한 것이다.
그에 맞춰 나도 놈의 옆으로 점멸을 사용했다.
내가 갑자기 나타나자 놈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놈에게 검을 휘둘렀다.
‘멸세폭.’
콰콰콰콰쾅-!
킨조른이 순간적으로 보호 마법을 사용한 것 같았지만, 멸세폭은 놈의 마법을 찢어발겨 버렸다.
“크으윽-!”
놈이 입에서 피를 주룩 흘리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래도 보호막의 덕을 본 것인지, 한 방에 죽지는 않은 점이 아쉬웠다.
그때 한 줄기 화염이 놈의 몸을 후려쳤다.
근처에 다가온 루스가 재빨리 손에서 불길을 쏘아 낸 것이다.
“크아아악!”
비명과 함께 킨조른이 양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놈의 머리 위에 갑자기 구름이 생겨나더니, 사방으로 낙뢰를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지직-
나는 루스와 함께 뒤로 훌쩍 물러섰다.
그러는 동안에도 킨조른의 주위로 낙뢰가 쉴 새 없이 떨어졌다.
심지어 스킬을 사용한 킨조른에게도 떨어졌는데, 사실 그것은 더 이상 상관이 없었다.
“죽은 것 같습니다. 자폭 기술일까요?”
휴고의 말대로 킨조른은 쓰러진 채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나도 본 적이 없는 걸 보니 새로 생긴 스킬인 것 같은데. 네 말대로 자폭용인가 보다.”
휴고에게 대답해 주고 잠시 기다리자, 낙뢰가 멈췄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확인해 보니, 킨조른은 진작에 숨이 끊어져 있었다.
더 이상 킨조른에게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 나는 그대로 발길을 돌리려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어 멈추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 근처에 온 김에 바로 하는 게 낫겠다 싶어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아이템 추출.’
하지만 안타깝게도 추출된 것은 붉은 보석이었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보고 있던 루스가 중얼거렸다.
“이제 그거 아무도 안 먹어. 꽝이야, 꽝.”
‘애초에 너 말고는 아무도 안 먹었다.’
그러고 보니 엔트가 먹긴 했다.
뭐 가지고 있다 보면 어딘가 쓰일 일이 있겠지.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겨, 이번에는 바간의 주검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이템 추출을 사용했다.
“오오-!”
나타난 아이템을 보고 옆에서 탄성이 터졌다.
이번에 나온 것은 장비 아이템이었다.
나 역시도 만족스러웠다.
‘확실히 진화 후에 아이템이 더 잘 나오는군.’
그렇게 생각하며 아이템을 주워 들었다.
[새벽 별(S. 망치)]
- 뛰어난 장인이 공들여 만든 전투 망치. 높은 경지에 오른 기사가 오랫동안 사용하여 무구에 강한 오러 친화력이 생성되었다. 사용 시 오러 운용 능력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킨다. 추 부분을 분리할 수 있다.
나는 아이템의 설명을 훑어보다가 휙 하고 옆에 있는 휴고에게 집어 던졌다.
휴고가 냉큼 그것을 받아 들더니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쩔래? 너 쓸래? 안 쓸 거면 인벤토리에 집어넣어 놓게 다시 주고.”
지금 휴고가 사용하는 무기는 드워프제 아이템이다.
솔직히 성능만 따지면 이제껏 사용하던 쪽이 더 나아 보였다.
그때 휴고가 새벽 별을 들고 오러를 불어넣더니 이리저리 휘둘렀다.
후우웅-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나더니, 어느 순간 망치의 추가 쑥 뽑혀 앞으로 발사되었다.
발사된 추는 오러 가닥에 매달려 마치 철퇴처럼 휘둘러졌다.
“대장, 이거 좋은데요? 하하.”
휴고는 신나는 표정으로 한동안 새벽 별을 더 휘두르다가, 반대편 손에 원래 사용하던 무거운 분노를 뽑아 들었다.
“어! 이게 이렇게 되네!”
그러더니 혼자서 무언가 감탄한 휴고는 잠시 후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거 계속 사용해야 되겠는데요, 대장? 설명에 적힌 오러 운용 능력이라는 게 다른 무기에도 적용됩니다.”
그 말에 나는 놀란 눈으로 휴고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무거운 분노에도 평소보다 더욱더 선명한 오러가 어려 있었다.
“그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사용하면 되겠네.”
“하하. 그래야겠습니다.”
녀석은 모처럼 얻은 장비가 마음에 드는지 싱글벙글 웃었다.
나도 마주 웃어 주고는 다음 목표로 나아갔다.
처음에 원혼의 거울에 의해, 이동하자마자 죽은 영웅들이 더 있었기 때문이다.
발길을 옮겨 마법진에 도착하니 죽은 영웅들이 보였다.
수는 총 넷.
‘화이트, 쿠틸, 지우에 아나투스까지 있군.’
바간과 킨조른까지 합치면 여섯 명으로, 저번에 습격해 올 때보다 수가 더 많았다.
그나마 방어력이 약한 놈들 위주로 나타난 데다가, 기습이 성공했기에 다행이었다.
‘어쨌든 추출이나 하자.’
괜한 걱정을 접고 아이템 추출을 시전한 결과, 세 개의 붉은 보석과 하나의 아이템이 추출되었다.
“이 정도면 확률이 제법 괜찮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우에게서 추출한 반지를 집어 들었다.
[지배자의 비수(S. 반지)]
- 몬스터에 대한 지배력을 대폭 강화해 주는 반지. 스킬 ‘환수 폭발’이 내장되어 있다.
반지는 어울리지 않게도 비수(匕首)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스킬이 붙어 있군. 환수 폭발이라……. 뭐지?’
회귀 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스킬이라 궁금증이 일었다.
아이템 상태창을 응시하자 스킬에 대한 설명이 떠올랐다.
[환수 폭발]
: 계약한 환수를 상대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로 폭발시키는 기술. 대상이 품은 기운이 강할수록 폭발의 위력이 증가한다.
‘이건, 시체 폭발의 테이머 버전인가? 그런데…….’
시체도 아니고 살아 있는 대상을 상대의 의지와 상관없이 터트려 버리다니.
썩 좋은 느낌의 스킬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 대상이…….
‘계약한 환수라. 그럼 설마?’
내가 계약한 사람들도 이 반지를 끼면 터트릴 수 있게 되는 건가?
딱히 그럴 이유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이건 좀 꺼림칙하다.
괜히 끼고 있다가, 실수로 휴고를 터트리기라도 하면…… 끔찍하다.
내 심각한 표정을 읽었는지 휴고가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대장, 왜 그러십니까? 아이템에 문제라도 있습니까?”
나는 굳은 표정을 펴지 않은 채, 휴고에게 반지를 내밀었다.
반지를 받아 든 휴고도 설명을 읽더니 미간에 깊게 주름이 생겼다.
“이, 이건 좀 너무 비인도적이군요.”
“그래, 굳이 착용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나한테 소환수에 대한 지배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휴고는 내 말에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지, 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계속 생각에 잠겨 있었다.
“휴고?”
내가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녀석의 입이 열렸는데, 그 말이 뜻밖이었다.
“대장, 이거 착용하십시오.”
“……?”
“혹시 말입니다. 대장이 소환하는 영웅들에게도 사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녀석의 말을 듣자 눈이 번쩍 뜨였다.
실제로 시체 폭발도 영웅들에게 사용할 수 있었으니, 어쩌면 환수 폭발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지배한 환수를 폭발시킨다.’라는 설명의 문구가 조금 애매했지만, 왠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번 실험해 봐야 하나?’
‘랜덤 영웅 소환’은 여전히 사용이 가능하다.
비록 관리자가 강림한 이후 거의 쓴 적은 없었지만.
‘발록을 상대할 때 딱 한 번 썼었지.’
그때 소환되었던 란슬롯의 태도를 생각해 보면, 영웅들은 소환하는 즉시 내게 칼을 들이댈 것이 분명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모처럼 상태창의 영웅 소환 항목을 확인했다.
- 랜덤 영웅 소환 (11279080/1000000)
┗ 영웅 진화 (11279080/10000)
: 진화 가능 영웅 [없음]
┗ 영웅 궁극 진화 (11279080/100000)
: 진화 가능 영웅 [없음]
어마어마한 양의 코인이 모여 있었다.
기분이 좋을 법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동안 얼마나 싸워 왔는지 대번에 느껴져, 입맛이 썼다.
그때 낌새를 눈치챘는지 휴고가 말을 걸었다.
“실험해 보시려고요?”
그럴까 한다고 대답하려는 찰나, 나는 다가오는 자들로 인해 대답을 멈추었다.
“구원자여, 이제 싸움은 모두 끝났는가?”
물러나 있던 엔트 무리가 다가왔고, ‘어른’이 대표로 내게 질문했다.
“예, 이제 끝났습니다.”
아까 ‘어른’과 뭔가 이야기를 하는 중에 끊겼었는데, 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때 때마침 ‘어른’의 입에서 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근원의 샘이 메말라 버렸네. 구원자여, 전설이 말하는 대로, 부디 샘물을 되살려 주게.”
그에 나는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런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저 혹시, 일단 그 샘물이란 걸 좀 볼 수 있겠습니까?”
말을 하며 나는 검은 돌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곳은 그냥 산봉우리일 뿐, 샘물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알겠네. 그리로 가세나.”
‘어른’은 대답과 함께 검은 돌을 향해 앞장섰다.
곧 우리 일행과 엔트들까지 검은 돌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그러자 ‘어른’이 팔처럼 생긴 가지를 검은 돌을 향해 뻗었다.
가지는 검은 돌을 두부처럼 쑥 파고들었다.
우우웅-
검은 돌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잠시 후.
쿠르르르릉……!
땅 전체가 진동했고, 이윽고 산봉우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솟아올랐다.
그 모습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이래서 가장 높은 봉우리라는 건가?’
산봉우리는 구름을 뚫고 까마득한 높이까지 치솟았다.
높이 오를수록 검은 돌 주위의 땅바닥이 조금씩 아래로 가라앉았다.
마치 샘이나 작은 호수를 보는 것 같았다.
‘여기가 샘물이었군. 높은 곳으로 올라와야 모습이 드러나는 구조였나?’
쿠구궁-
잠시 후, 거친 진동과 함께 산봉우리의 상승이 멈추었다.
그러자 ‘어른’이 검은 돌에서 손을 떼었다.
“구원자여, 여기가 근원이 샘이라네.”
‘어른’이 가리킨 곳은 예상대로 검은 돌 주위에 움푹 파인 바닥이었다.
그곳에는 어느새 물기가 찰박하게 고여 있었지만, 샘이라기엔 너무 양이 적었다.
그냥 두면 곧 말라 버릴 것처럼.
“부디 샘물을 되살려 주게, 구원자여. 부탁하네.”
내가 샘을 관찰하는 동안 엔트들이 한목소리로 내게 호소했다.
‘이거 참……. 나도 되살려 주고 싶은데, 뭘 어떻게 하란 건지.’
내가 고민에 빠져 있는데, 다시 한번 엔트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제발 우리를 버리지 말게, 구원자여. 제발 우리를 도와주게.”
어찌나 간절한지, 엔트들은 머리 위의 나뭇잎까지 부스스 떨어 가며 부탁했다.
그 모습이 워낙 불쌍해 보여 뭐라도 빨리 해 줘야 할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해 보자는 생각에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검은 돌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혹시라도 세계의 정수가 반응하여 무슨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오오! 구원자가 샘을 되살린다!”
“고맙네, 고마워!”
내가 움직이자 엔트들이 연신 소리쳤다.
그러나.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젠장, 혹시나 했더니, 역시 정화 말고는 쓸데가 없군.’
세계의 정수는 검은 돌에 반응하지 않았다.
검은 돌은 오염된 것이 아니라 기운을 잃은 것.
그러니 지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세계의 정수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주위가 적막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시간이 잠시 흘러간 후, 휴고가 작게 입을 열었다.
“대장, 어떻게 좀 해 보십시오. 도저히 그냥은 못 보고 있겠습니다.”
그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가관이 펼쳐져 있었다.
주위를 에워싼 엔트들이 모조리 푸른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는데.
‘눈물이 뚝뚝 흐르겠다, 아주.’
엔트들의 눈빛이 어찌나 간절한지,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눈빛 공격 탓에 마음이 급해진 나는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렸다.
‘이런 젠장, 어쩌란 거야?’
괜스레 창조주에 대한 원망이 되새겨질 때쯤,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기운이 부족하여 말라 버렸으니, 기운을 채우면 될 일이다.
그리고 나는 불과 얼마 전에 다 죽어 가는 엔트를 되살린 적이 있다.
‘이 샘이 엔트의 근원이라면, 아마 비슷한 방법이 통하지 않을까?’
나는 인벤토리에서 황가수호대에게서 나온 붉은 보석을 하나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