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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18화 (118/149)

 # 118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18화>

“아, 도저히 안 되겠어!”

숨을 고르던 루스가 갑자기 소리치며 어디론가 후다닥 달려갔다.

그 모습에 휴고가 의아해하며 큰 소리로 물었다.

“어디 가냐, 루스?”

하지만 루스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한쪽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루스가 흐뭇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뭐 하냐?”

내가 묻자 루스는 잠시 찔끔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입을 벌렸다.

루스의 입속에는 붉은색의 구슬이 들어 있었다.

“응? 그게 뭐야? 설마…… 화왕이 죽으며 떨어트린 아이템이야?”

“응, 주인. 내가 너무 배가 고파서……. 근데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나잖아……. 그래서 먹어 버렸어.”

루스는 내 허락을 받지 않고 아이템을 먹어 버린 것이 찔리는지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러나 딱히 문제 될 일은 아니었다.

‘척 보기에도 화기를 잔뜩 품은 아이템이구만. 어차피 루스의 입에 들어갈 운명이었을 거야.’

루스가 냉큼 집어삼키는 바람에 아이템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마 확인했어도 달라질 것은 없었을 터였다.

오히려 녀석이 연신 눈치를 보는 모습이 꼭 사고 친 강아지 같아 귀여웠다.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헝클어 버렸다.

“앗, 아앗-!”

녀석이 머리를 휘저으며 피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말했다.

“괜찮아. 고생했으니 먹고 기운 내.”

“응, 고마워. 주인!”

그제야 루스도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잠시 일을 좀 해 볼까.’

루스가 구슬을 주워 먹는 것을 보며, 해야 할 일이 떠올라 나는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바로 영웅들의 주검에 ‘아이템 추출’을 사용하는 일이다.

저번에는 란슬롯에게 아론다이트를 얻었고, 좀 전에 루스가 화기(火氣)를 가득 담은 구슬을 먹었다.

최근 들어 흐름이 좋다.

‘왠지 기대되는데.’

느낌에 불과하지만, 영웅이 4단계로 진화하고 나서 아이템이 더 잘 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부푼 마음으로 일단 휴고가 가까이 끌어다 놓은 블레인부터 시작했는데, 꽝이었다.

그리고 화왕도 좀 전에 구슬을 토해 낸 탓인지 별다를 것이 없었다.

여기까지는 평소에 추출되는 붉은 보석이 끝이었다.

하지만 다음번 순서였던 구천도사는 그럴싸한 물건을 뱉어 내었다.

‘이건 부적이군.’

구천도사가 날려 대던 것과 똑같이 생긴 부적이 추출되어 나왔다.

[연기충천부(然氣衝天符)(S. 소모품)]

- 뛰어난 도력(道力)을 지닌 도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부적. 사용할 경우 수화지풍(水火地風)의 기운 중, 원하는 기운 한 가지를 크게 북돋는다.

‘이건……. 좀 전에 정령에게 사용하던 그건가 본데.’

내심 벼락을 떨어트리는 부적이 아닐까 추측했었는데, 예상과는 달랐다.

그래도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차후 워젤을 다시 부를 일이 생기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차하면 루스에게 사용할 수도 있을 테고.’

나는 흡족해하며 부적을 갈무리하고, 이번엔 정령 술사의 주검으로 향했다.

‘아이템 추출.’

하나 건졌으니 이번엔 큰 기대를 하지 않은 채로 스킬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무언가 색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정령의 숨결(S. 반지)]

- 높은 격을 지녔던 정령의 기운이 담긴 반지. 착용하면 정령 친화도를 상승시킨다. 착용자가 원할 경우, 특정 정령에게 기운을 더한다.

‘오호, 장비가 또 나오다니. 운이 좋군.’

앞으로의 행보를 생각하면, 이 반지도 여러모로 쓸모가 있어 보였다.

나는 반지를 곧바로 오른손에 착용하고서 즐거운 마음으로 오를란도와 황가수호대를 찾아다니며 아이템을 추출했지만, 더는 특별한 소득이 없었다.

‘그래도 이번엔 얻은 것이 많군. 정말 영웅이 진화할수록 아이템을 줄 확률이 높아지는 건가? 스탯도 제법 쏠쏠하게 들어오니, 마냥 싫어할 일도 아니군.’

영웅들이 나타나는 것이 그리 나쁜 일도 아니란 생각이 슬쩍 들다가, 금세 표정을 굳혔다.

갑자기 탑이 연달아 나타나고 영웅들까지 나타난 상황이라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관리자의 행동에 확연한 변화가 생긴 것이다.

‘영웅을 마구 보낼 만큼 여유가 생긴 걸까? 아직 힘을 다 회복하지는 못했을 텐데.’

힘을 다 회복했다면, 지금쯤 내 눈앞에 나타나 있을 테지.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쯤,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보게, 정해수 플레이어. 고생이 많았네.”

돌아보니 앨번을 뒤에 대동하고 백작이 나타나 있었다.

안 그래도 곧 만나러 갈 생각이었는데, 잘됐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백작님, 조금 전 전투를 보셨지요? 악신이 강림하면 방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겁니다.”

내가 만나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백작의 표정이 굳었다.

아닌 게 아니라, 좀 전의 전투로 아베나스탄 성벽 근처는 완전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해일에 불길까지, 상식 밖의 전투가 벌어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전투를 목격한 것이 불과 몇 분 전이었다.

그런데 자칫 그보다 더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백작의 표정이 심각해지는 게 당연했다.

“으음…….”

백작이 말을 잇지 못하는 틈을 타 나는 설득에 박차를 가했다.

“악신이 저 정도의 병력을 파견하는 것을 보니, 강림이 진짜 멀지 않은 모양입니다. 저도 지체할 시간이 더는 없습니다.”

“……”

“오늘 바로 출발할 생각이니, 부디 백작님께서도 빨리 결정을 내려 주십시오.”

내 말이 끝나자 백작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조금 전의 싸움을 보며 이미 어느 정도는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자네 말대로 하겠네. 나머지 귀족들은 내가 책임지고 설득하도록 하지. 그들도 눈이 있으면 끝까지 반대하지는 않을 걸세.”

“감사합니다, 백작님.”

설득이 끝나자,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계약’에 관해 설명하고, 계약을 맺고, 마음으로 의사를 나누는 법까지 설명하는 데는 잠깐이면 충분했다.

“그럼 말씀드린 대로, 제국의 국민들을 최대한 살려서 남쪽 엘프 숲으로 피난하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알겠네, 걱정하지 말게. 그 계약이란 것 덕에 여차하면 자네한테 직접 물어볼 수 있으니 마음이 한결 놓이는군. 자네도 부디 몸조심하게.”

“예,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그럼 가 보겠습니다.”

백작과 짧게 작별을 끝마친 나는 일행을 이끌고 아베나스탄을 떠났다.

* * *

“이제 준비는 끝났다.”

세계의 정수를 다룰 자격을 얻으면, 길었던 싸움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휴고가 말을 걸어왔다.

“후우, 이번이 마지막 싸움이 되겠지요? 그나저나 이번에 동쪽에 가면 동서남북을 다 돌아다니게 되네요, 대장.”

“창조주가 그렇게 설계를 해 두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만, 마차 한번 징그럽게 타는구나.”

“어디 가서 마차 잘 모는 사람 뽑으면 세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자신이 있습니다, 하하.”

신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 마지막이 다가온다고 특별히 긴장하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하긴 이제 녀석도 산전수전 다 겪었으니…….’

나는 휴고의 어깨를 툭 쳐 주고는 마차 벽에 등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마차는 쉼 없이 동쪽을 향해 나아갔다.

며칠을 밤낮없이 달린 결과, 어느새 높다란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대장, 이곳이 왐피르입니까?”

성벽을 가리키며 휴고가 물어 왔다.

“그래, 여기가 동쪽의 두 국가 중 왐피르야.”

이곳 동쪽은 다른 방향과 다르게 단 두 개의 나라가 몬스터 지대의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눈앞에 있는 왐피르 왕국이다.

“근데 어째 영 스산한데요? 멀리서 봐서 그런가…….”

휴고 말대로 도시 근처에서부터 뭔가 착 가라앉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확실히 무언가 이상했다.

‘예전에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사실 이곳 동쪽은 나도 경험이 거의 없다. 회귀 전 던전을 탐색하기 위해 딱 한 번 근처에 들렀던 적이 있을 뿐이었다.

어쩐지 불안해져 마차를 바삐 몰아가는데, 이번에는 루스가 말했다.

“저기 산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아. 피 냄새도 나고.”

대번에 내 미간에 주름이 생겨났다. 루스의 후각은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이야? 그럼 큰일 아닙니까, 대장?”

휴고도 깜짝 놀라 루스와 나를 번갈아 보며 소리쳤다.

‘하아, 결국…… 그렇게 되었나?’

혹시나 하는 생각은 했었다.

다른 방향의 군소 국가들은 나와 인연이 있었다.

그 때문에 탑이 나타났을 때, 그들에게 미리 방비하도록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쪽은 나와 아무런 연결 고리가 없었고, 도와줄 만한 이 또한 없었기에 결국 지금까지 그냥 방치된 상태였던 것.

“하아-.”

루스의 말이니 크게 틀릴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일단 왐피르에 들어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목적지로 가려면 왐피르를 지나쳐야 하기도 했고.

빠르게 마차를 몰아 성벽으로 바짝 다가가자 변고가 확실히 눈에 띄었다.

성벽이 일부 부서져 있고, 성문은 아예 날아가 버린 상태였다.

“으음, 이게 도대체…….”

옆에서 휴고의 안타까운 중얼거림이 들렸다.

나는 완전히 굳어진 얼굴로 부서진 성문을 통과해 그대로 마차를 안으로 몰았다.

성문과 연결된 대로를 따라 한참을 나아갔지만, 인기척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낄 수 없었다.

심지어 짐승이나 곤충의 울음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대장, 탑에 당한 것일까요?”

이미 답을 예상할 텐데도 휴고는 질문했다.

혹시나 다른 가능성에 대해 내게 듣고 싶은 것인지도…….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르니 더 들어가 보자.”

휴고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대답을 한 후 마차를 계속 몰아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주변에 파괴의 흔적이 줄어 가는 게 눈에 확연히 띄었다.

‘전투가 거의 끝났거나, 한쪽이 전투를 포기하고 도망쳤군.’

굳이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 주변 건물이 파괴될 일도 없어진 것이리라.

조금 더 마차를 타고 들어가자 전투의 흔적이 전혀 없어졌다.

마치 누군가 이사 가고 난 집을 보는 것처럼, 황량한 건물들이 사방에 늘어서 있었다.

그 장면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는데, 루스가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주인, 저쪽에서 피 냄새가 나.”

그렇게 말하며 루스는 왐피르 한복판에 위치한 큰 건물을 가리켰다.

그에 휴고가 의문을 표했다.

“대장, 저긴 왕성 아닙니까? 혹시 누가 살아 있을까요?”

“왕성이 맞아. 일단 가 보자.”

누가 살아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뒷말은 생략한 채 휴고에게 대답을 해 주고, 마차를 그쪽으로 몰았다.

잠시 후 왕성에 어느 정도 접근했을 때, 눈에 확 띄는 것이 있었다.

“탑이군.”

“어? 부서졌는데요? 저거 누가 저렇게 만든 걸까요?”

휴고의 말대로 탑은 중동이 뚝 부러져 있었다.

부러진 탑뿐만 아니라 주위에 전투의 흔적이 가득했다.

이곳저곳 부서진 건물하며, 박살 난 도로, 그리고.

“황가수호대의 시체야.”

“헉! 진짜다! 가 보죠, 대장.”

휴고가 훌쩍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나와 루스도 마차를 세운 후 재빨리 휴고의 뒤를 따라나섰다.

“대장, 전투가 끝난 지 얼마 안 되었나 봅니다. 아직 피가 완전히 굳지 않았어요.”

휴고가 손가락 끝에 피를 찍어 보고는 내게 말했다.

녀석의 말대로 아직 피가 채 굳지 않은 상태였다.

혹시나 하고 주위를 좀 더 살폈다.

휴고도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때 루스가 코를 몇 번 킁킁거리더니 내게 이야기했다.

“주인, 저쪽에서 피 냄새가 나.”

루스는 왕궁 뒤편을 가리켰다.

그러나 피 냄새는 비단 루스의 후각에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피 냄새는 여기도 가득한데?”

“아니, 황가수호대 피 냄새랑은 달라. 지금 막 다친 것 같은 냄새야. 이상하네, 이런 피 냄새는 처음인데…….”

루스의 말은 뒤쪽으로 갈수록 중얼거리듯 소리가 줄어들어 갔다.

뭔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특이한 경우를 맞닥뜨린 것인지, 녀석의 목소리엔 의아함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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