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16화>
나는 재빨리 휴고에게 목소리를 전달했다.
- 휴고, 영웅 놈들이다.
- 예, 대장. 저도 방금 봤습니다. 여기서 황가수호대 놈들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합류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지, 휴고는 전투를 치르는 와중에도 목소리를 잘 전해 왔다.
그렇게 휴고와 루스가 황가수호대를 정리하는 동안, 나는 나타난 영웅들의 면면을 파악해 나갔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이제 보기만 해도 징그러울 정도로 익숙한 오를란도였다.
그리고 그 옆으로 암살자 블레인이 서 있다가, 스르륵 몸을 감추는 모습이 보였다.
그 외에도 세 명의 영웅이 더 나타나 있었는데, 그들은 이번 생에는 처음 보는 놈들이었다.
[힐다스(SS. 화왕)]
[쿠틸(SS. 정령 술사)]
[구양극(SS. 구천도사)]
아마 내가 놈들을 소환했다면, 이런 식의 상태창이 보이지 않았을까.
‘화왕(火王)에 정령술사에 도사라…… 쯧, 까다롭군.’
화왕 힐다스는 클래스 그대로 온몸에서 불을 내뿜으며 싸운다.
그리고 쿠틸은 정령을 소환하고, 구양극은 주로 부적을 통해 각종 술법을 사용한다.
특히 정령술사와 구천도사는 궁합이 상당히 좋다.
회귀 전에도 전투를 치를 때마다 둘은 늘 붙어 다니곤 했었는데, 그 시너지가 상당했다.
한 명씩 나타나 주는 게 가장 좋은 일이었을 테지만, 이미 벌어진 일.
‘어쨌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놈부터 노린다.’
목표는 오를란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꼭 빠르게 처리해야만 하는 놈이기도 했다.
‘점멸.’
결정을 내린 순간 나는 재빨리 오를란도의 옆으로 이동했다.
놈은 이미 내가 덤벼들 것을 예상했는지, 썩 놀라는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분명 보호막을 믿고 있겠지.’
오를란도의 몸에는 특유의 보호막이 진즉부터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믿는 것이 있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불의 검을 강하게 휘둘러 오를란도를 후려쳤다.
쾅-
불의 검이 보호막에 막히자, 오를란도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 순간, 나는 놈의 뒤로 점멸을 사용했고, 놈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인벤토리에서 아론다이트를 꺼내 들었다.
푸욱-
보호막을 믿고 방심하던 오를란도의 심장이 아론다이트에 의해 꿰뚫렸다.
“커억- 지키는 자의…….”
놈은 심장이 뚫리고도 죽지 않고 무언가 주문을 외려고 했지만, 말을 끝맺지는 못했다.
‘멸세폭.’
놈의 몸에 박힌 검 끝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푸드드득-
오를란도의 몸이 갈가리 찢어져 육편이 되어 흩날렸다.
하늘에서 피의 비가 쏟아질 때쯤, 내게로 종잇조각 한 장이 빠르게 쏘아졌다.
스팟-
파지직!
뒤로 훌쩍 이동하자, 내가 서 있던 곳에 벼락이 내리꽂히는 것이 보였다.
오를란도가 당하는 모습을 본 구양극이 부적을 날려 공격한 것이다.
‘일단 첫 단계는 성공인데…….’
놈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기습하여 오를란도를 끝장낸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나는 연이어 날아드는 부적을 피해 뒤쪽으로 점멸을 거듭했다.
휴고와 루스가 황가수호대와의 싸움을 끝내고, 내 쪽으로 합류하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화르르르-
그때 영웅들 쪽에서 후끈한 열기가 밀려왔다.
화왕 힐다스가 온몸에서 불길을 일으켜 이쪽을 향해 손을 내뻗은 탓이었다.
놈의 손끝에서 강력한 불길이 우리를 향해 쏘아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저놈은 내가 맡을게.”
놈의 모습을 본 루스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루스의 몸이 빛난다 싶더니, 어느새 하얀 불길에 휩싸인 채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꽈르르릉!
불과 불이 부딪치며 번개라도 치는 듯한 고성이 울렸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열기가 충돌 지점으로부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열기를 피해 뒤로 슬쩍 물러나는데, 휴고의 옆으로 흐릿한 그림자가 보였다.
“휴고, 조심해!”
내 경고와 동시에 휴고의 뒤에서 하나의 인영이 모습을 확연히 드러냈다.
그림자의 정체는 암살자 블레인.
놈은 나타나자마자 단검을 휘둘러 휴고의 심장을 찔러 갔다.
푸욱-
미처 돕기도 전에 블레인의 단검이 휴고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다행히 휴고가 마지막에 몸을 비틀어 심장을 찔리는 일은 피할 수 있었지만, 가벼운 상처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곳은 좀 전까지 두 번이나 탑이 나타난 전장.
때문에 황가수호대의 핏물이 사방에 가득했다.
예상대로, 발밑에 고인 혈액이 휴고에게 흡수되었다.
그리고 휴고의 망치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던 블레인을 향해 휘둘러졌다.
블레인이 깜짝 놀라 반대편 손에 든 단검을 들어 망치를 막았다.
콰앙!
하지만 휴고의 망치는 ‘무거운 분노’라는 이름만큼이나 묵직했다.
망치에 맞은 블레인은 뒤로 날아가 처박혔다.
푸슛-
그 와중에도 놈은 휴고의 배에 찔러 넣었던 검을 비틀어 버렸다.
그 바람에 휴고의 배에서 핏물이 흘렀지만, 상처는 휴고의 스킬 ‘피의 군주’에 의해 금방 말끔하게 치료되었다.
“와라-!”
휴고는 망치를 다잡은 채, 블레인을 향해 소리치며 뚜벅뚜벅 걸어갔다.
블레인도 오른손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지만, 치명상은 아닌지 곧장 휴고에게 달려들었다.
‘일단 화왕과 블레인은 녀석들에게 맡긴다.’
그럼 남은 것은 쿠틸과 구양극뿐.
둘의 조합은 몹시 까다롭다.
그러나 놈들의 전투 방식을 잘 알고 있다는 것아 내 무기였다.
쿠르르…….
그때, 땅이 들썩이며 울렸다.
그러더니 바닥에서 돌로 이루어진 거인이 몸을 일으켰다.
‘땅의 정령.’
그것은 쿠틸이 부리는 정령 중 한 가지였다.
회귀 전보다 등급이 올라 그런지, 땅의 정령도 더욱 강한 기운을 품은 것 같았다.
‘그래도 상관없다.’
단순 화력이라면 절대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몸을 일으킨 거인이 나를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나도 굳이 피하지 않고 불의 검을 휘둘러 갔다.
콰아아앙!
검과 주먹이 맞부딪치며 굉음이 울렸다.
불의 검은 여전히 화염의 칼날을 피워 올리고 있다. 하지만 정령의 주먹은 부스러져 돌가루가 되었다.
그 틈을 노리고 내게 부적 한 장이 쏘아져 왔다.
‘차라리 잘되었다.’
흩날리는 돌가루 때문에 사방이 자욱하게 변한 상태였다.
‘점멸!’
그 틈을 노려 재빨리 자리를 옮겼다.
파지직.
내가 떠난 자리에 벼락이 내려 꽂히는 순간, 나는 정령 술사 쿠틸의 앞에 도착했다.
‘멸세폭.’
그리고 불의 검으로 쿠틸을 후려쳤다.
강력한 폭발이 놈의 몸을 휘감았지만, 놈은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저 웃음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에 나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쯧, 벌써.’
그리고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
파지직…….
“크윽!”
저릿한 충격이 몸을 때렸다.
구양극의 부적이 기어코 내게 적중한 것이다.
‘점멸!’
전기에 맞은 몸이 순간적으로 잘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스킬은 사용 가능했다.
재빨리 순간 이동을 통해 자리를 옮기자 내가 있던 자리로 연이어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파지직- 파직-
연달아 점멸을 사용해 계속 자리를 바꾸는 동안 몸 상태가 회복되었다.
‘빌어먹을 쿠틸 놈, 재빠르기도 하군.’
나는 정령술사의 이름을 되뇌며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놈에게는 소환해 놓은 정령이 충격을 대신 받아 주는 스킬이 있다.
시전 시간이 제법 걸리는 스킬이라 아직 사용하지 않았다 생각하고 기습을 가한 것이었는데, 놈이 미리 사용해 놓는 바람에 실패했다.
그 증거로 소환되었던 땅의 정령은 충격을 대신 받아 돌 부스러기로 돌아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속전속결은 불가능하다.’
벌써 쿠틸이 다시 정령을 소환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번에는 화염으로 이루어진 늑대가 쿠틸의 앞에 나타났다.
그러자 늑대에게로 한 장의 부적이 날아갔고, 늑대의 몸이 두 배는 될 정도로 커졌다.
‘쯧, 시작했군.’
구양극은 부적술을 통해 정령을 강화할 수 있었다.
둘의 조합이 까다로운 진짜 이유였다.
크르르르-
불타는 소리인지 짐승의 으르렁거림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은 불의 정령이 내게 달려들었다.
가까이 오기 전부터 후끈한 열기가 몸을 감쌌다.
쿠틸과 싸우면서 죽어도 다시 소환할 수 있는 정령을 노리는 것은 현명한 방식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쿠틸을 직접 노리는 것은 이미 한 번 실패한 방법이었다.
콰아앙-
나는 불의 정령이 휘두른 앞발을 검으로 막으며 머리를 굴렸다.
‘일단은 도사 놈부터. 그래도 안 되면…….’
그렇게 생각하는 중에 부적 한 장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스팟-
나는 재빨리 점멸을 상용해 도사의 옆으로 이동, 검을 내질렀다.
‘멸세폭!’
그러자 도사가 어느새 뽑아 들었는지, 손에 든 부채를 휙 펼치며 앞으로 내밀었다.
순간, 시야에서 도사는 사라지고 부채만 남았다.
‘이건 또 뭐야!’
회귀 전에 본 적이 없는 기술.
아마도 이번에 더 높은 단계로 진화하며 생긴 기술 같았다.
콰콰콰콰-!
멸세폭은 결국 도사 대신에 부채에 작렬했다.
폭음과 충격이 발생했지만, 부채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채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하아-.’
한숨과 함께 점멸로 자리를 이동했다.
불로 이루어진 늑대의 앞발이 나를 노리고 휘둘러졌기 때문이었다.
콰앙!
불의 정령의 공격이 빗나가고,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부채에서 도사가 스르륵 빠져나왔다.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뭐야, 그림에 들어간 거였어?’
놈은 부채에 그려진 그림 속에 들어가 있다가, 공격이 지나고 나자 밖으로 빠져나온 것이었다.
얼마나 자주 사용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뛰어난 방어술임이 틀림없었다.
이렇게 되면 단번에 놈들을 무력화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결국 나도 미리 생각해 두었던 한 수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음의 목소리를 통해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짧은 의사소통 이후.
- 네, 걱정하지 말아요.
긍정의 대답이 들려왔다.
파지직-
그사이에도 부적은 쉴 새 없이 날아들었다.
불의 정령 또한 끊임없이 덤벼들었다.
‘계획의 실행을 위해서, 저놈부터 처리해야 한다.’
나는 앞발을 휘둘러 오는 불의 정령을 보며 이를 꽉 물었다.
불의 정령이 나를 공격하는 타이밍, 그리고 부적이 날아드는 타이밍을 잘 노려 점멸을 사용했다.
스팟-
이번에 나타난 곳은 쿠틸의 앞이었다.
나는 놈에게 곧바로 검을 찔러가며 멸세폭을 사용했다.
순간 쿠틸의 앞에서 불로 된 장막이 확 펼쳐졌다.
저것은 일종의 보호막이었다.
‘역시 대비를 해 뒀군.’
그때 멸세폭과 불의 장막이 부딪쳤다.
콰콰콰쾅-!
불의 장막이 단번에 휩쓸려 나가며, 멸세폭의 여력이 쿠틸을 휩쓸었다.
나는 순간 눈을 돌려 불의 정령을 살폈다.
타격을 입었는지, 화염으로 이루어진 몸이 순간적으로 흐릿해졌지만, 곧 회복되었다.
‘모자라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부적이 연이어 날아들며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몸을 피하지 않았다.
지금 피하면 좀 전에 한 일이 무의미해진다.
결국 벼락이 내 몸에 적중했다.
“크윽…….”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렀지만, 꾹 눌러 참았다.
그리고 왼손을 들어 쿠틸을 가리켰다.
‘천벌은 아낀다.’
원혼의 거울에는 거듭 탑을 상대하느라 충격이 상당히 축적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충격이 광선으로 치환되어 지금 발사되었다.
번쩍-!
쏘아진 광선을 곧장 나아가 쿠틸에게 적중했다.
놈이 뜻밖의 공격에 눈을 크게 치뜨며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번에도 놈에게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대신 뒤에서 달려들고 있던 불의 정령이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됐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자리를 피했다.
연이어 쏟아지는 벼락을 계속 맞고 있을 수 없어서였다.
나는 몸 상태가 회복될 때까지 몇 번이고 점멸을 사용하며 구양극의 공격을 피했다.
놈은 시종일관 여유 있는 태도로 부적을 날려 대고 있었다.
하지만 내 시선은 도사에게 향해 있지 않았다.
나는 점멸을 사용하는 와중에도 쿠틸을 응시하며, 놈이 다음에 소환할 정령이 무엇인지 지켜보았다.
차르르-
바닥에 물방울이 고이더니, 그곳에서 물로 만들어진 개구리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래, 그거지! 이제 됐다.’
이번에도 부적 한 장이 날아들어 개구리에게 들러붙었다.
그러자 개구리의 몸집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어서 사용해라, 어서!’
저 물의 정령은 회귀 전부터 익히 보아 오던 놈이었다.
당연히 놈이 주로 사용하는 기술 또한 잘 알고 있었고, 나는 그중에 한 가지 기술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