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13화>
“젠장!”
휴고는 욕설을 내뱉으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황가수호대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 나갔다.
‘저놈들을 처리하는 건 문제가 아니야. 빌어먹을, 왜 하필……!’
중요한 것은 피난민들의 생명이었다.
피난민 중에서도 어린아이들은 도저히 탑에서 자력으로 벗어날 수가 없다.
이미 탑에 가까이 있던 아이 한 명이 기운을 빼앗겨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안 돼!’
휴고는 재빨리 쓰러진 아이에게 다가가 들어 올린 후 탑에서 먼 곳으로 아이를 옮겼다.
그러고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해서든 이 많은 이들을 피난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역부족이었다.
이미 장내로 들이닥친 황가수호대가 피난민들을 탑 쪽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 개새끼들아!”
휴고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곧이어 분노한 그의 망치가 황가수호대를 덮쳐 갔다.
콰콰콰콰쾅-!
휴고의 멸세폭은 단번에 두 명의 황가수호대를 처치했다.
하지만 황가수호대는 많고, 지켜야 할 아이들은 그보다 더 많았다.
휴고는 죽을힘을 다해 움직였다.
연이어 멸세폭을 날려 피난민 쪽으로 다가가는 황가수호대를 물리쳤다.
그리고 그 틈에 아이들을 탑의 영향권 밖으로 들어 날랐다.
하지만 그사이에도 아이들은 하나둘 죽어 가고 있었다.
휴고 혼자서 지키기에는 피난민들이 너무 많았다.
‘대장, 제발……!’
휴고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어딘가 있을 일행에게 외쳤다.
* * *
‘계약’을 통한 의사소통은 매우 유용하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대화가 가능할뿐더러, 입으로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목소리를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하고,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뜻을 전할 수 없지.’
계약을 새로 맺을 때마다 상대방에게 의사소통하는 법을 연습시킨 이유가 그것이었다.
그런데 휴고의 대답이 뚝 끊겼다.
그 말은, 휴고가 대답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그게 아니라면…….
‘도저히 정신을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말이겠지.’
뭔가 느낌이 좋지 않다.
휴고의 성격이라면, 웬만큼 급한 일이 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대답이 없을 리가 없다.
나는 옆에서 마차의 고삐를 쥔 루스를 돌아봤다.
“루스, 휴고가 갑자기 대답이 없다.”
그러자 루스가 고삐를 당겨 마차를 세우고, 냉큼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가 보자, 주인.”
대답하는 루스의 미간이 찌푸려져 있다.
감이 좋은 루스가 저렇게 행동한다면, 가서 손해 볼 일은 없을 터.
우리는 마차보다 몇 배는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휴고가 있는 곳은 마차로 한 시간 거리였다.
전력으로 달리면 머지않아 당도할 수 있을 것이다.
‘길이 엇갈리지 말아야 할 텐데.’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쉴 새 없이 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주인, 탑이야!”
감각이 뛰어난 루스가 먼저 나쁜 기운을 감지했다.
머지않아 내게도 탑의 불쾌한 기운이 느껴졌다.
“가자!”
꺼림칙한 느낌을 따라 방향을 잡고 전력으로 달렸다.
콰콰콰쾅-
그때, 멀리서 폭음이 들려왔다.
‘멸세폭이다. 녀석이야.’
휴고가 싸우고 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탑만이라면 녀석이 대답도 못 할 리가 없을 텐데.’
분명 모종의 이유가 더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바람의 걸음.’
‘점멸.’
연이어 스킬을 사용하며 전장에 당도하자, 상황이 한눈에 파악되었다.
“쯧, 하필.”
탑에 기운을 빨려 죽은 아이들의 시체가 눈에 띄었다.
아이들을 지키려다 같이 쓰러진 엄마들도 보였다.
그리고 어떻게든 아이들을 살리려는 휴고도.
또 그런 휴고를 적당히 상대하며 아이들을 탑 쪽으로 몰아대는 황가수호대 역시 보였다.
상황 파악은 순식간에 끝났다.
휴고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싸우고 있을지 충분히 느껴졌다.
스팟-!
점멸을 사용해 막 아이들을 탑 쪽으로 몰아가는 황가수호대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강기공을 두른 왼손으로 놈의 목을 잡아챘다.
우둑-
놈이 반항하려는 듯 움찔했지만, 내가 더 빨랐다.
목이 꺾이고 놈의 몸이 축 처졌다.
마음 같아서는 멸세폭을 날려 버리고 싶었지만, 사방에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있어 쓸 수 없었다.
죽은 황가수호대를 옆으로 집어 던지고 다음 목표를 향하려는데 휴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자앙-!”
돌아보니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의 휴고가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탑을 부순다. 너희는 놈들을 맡아!”
휴고와 루스가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소리친 후, 탑을 향해 몸을 날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에게서 빨아들인 기운이 탑을 통해 수도 쪽으로 쏘아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하필 길가에, 그것도 주로 아이와 여자뿐인 피난 행렬 앞에 나타나다니.
나는 분노를 곱씹으며 탑을 향해 달렸다.
한계까지 마력을 불어넣은 불의 검이 화염을 내뿜는다.
화르르르-
탑을 지키던 황가수호대 몇 놈이 내 앞을 막아서 왔다.
나는 길게 늘어난 불의 검을 양손으로 잡고 횡으로 휘둘렀다.
콰아앙……!
대기를 불태우며 날아간 검이 황가수호대를 후려쳤다.
그러자 불의 검에 맞은 놈들이 대번에 타오르며 옆으로 처박혔다.
나는 탑을 향해 멈추지 않고 돌진하며 검을 휘둘렀다.
불의 검이 탑을 휘감는 순간, 지체 없이 멸세폭을 날렸다.
콰콰콰콰쾅-!
폭발에 휘말린 탑의 밑동이 단박에 박살 났다.
쿠구구궁…….
곧이어 탑이 옆으로 쓰러졌다.
그 모습에 휴고와 루스를 상대하느라 몇 남지 않았던 황가수호대가 모조리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불의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후, 마치 채찍처럼 몸 주위로 휘돌렸다.
쐐애액-
사방에서 달려들던 황가수호대의 허리가 화염에 녹아 잘려 나갔다.
털썩, 털썩.
동시다발적으로 쓰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전장에 더 이상 살아 있는 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후우-.”
그제야 길게 한숨을 토했다.
짧은 싸움이었지만, 정신적인 피로가 만만치 않았다.
죽어 버린 아이들, 그리고 그에 슬퍼하는 휴고로 인해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슬쩍 휴고를 돌아보았다.
녀석은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다친 사람들을 돌보고 있었다.
“휴우…….”
다시 한번 긴 한숨을 토해 내며 머리를 털어 버린 후, 나는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휴고에게 다가가 내밀었다.
“대장……. 고맙습니다.”
녀석은 포션을 받아 들고 다친 아이들의 상처를 돌보기 시작했다.
탑에 기운을 흡수당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상처는 다행히 도망치다 생긴 찰과상에 불과했다.
나와 루스까지 나서자, 치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났다.
하지만 휴고의 표정은 여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반입니다.”
“……?”
“아이들이 절반이나 죽었습니다. 제가 지켜 주지 못했어요, 대장.”
휴고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네 탓이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이게 다 빌어먹을 관리자 놈 때문이지요. 저는 놈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까득-
기어코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딱히 더 위로를 해 줄 방법이 없었기에 나는 녀석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 준 후 주위를 살폈다.
‘아베타스탄이 지척인데. 하필 이곳에서, 쯧. 그나저나 왜 아이들과 여자들밖에 없는 거지?’
피난 행렬의 구성이 심히 이상했다.
그러나 당장 대답해 줄 만큼 정신이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질문은 포기했다.
‘후우, 어째야 하나.’
시간 여유가 없는 상황이지만, 이들을 이대로 놓아두고 갈 수도 없었다.
어찌해야 할까 고민하는데 휴고가 먼저 제안을 해 왔다.
“대장, 제가 이 사람들을 데리고 아베나스탄으로 가겠습니다. 대장은 먼저 가서 일을 보고 계십시오.”
“음…….”
녀석의 말이 옳기는 했는데, 왠지 떨어트려 놓았다가 또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저어하는 마음이 생긴다.
“괜찮습니다. 이제 아베나스탄이 지척이지 않습니까? 오늘 안으로 도착할 겁니다. 대장은 그동안 백작을 만나고 계십시오.”
“그래, 알았다.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하고.”
“예, 곧 따라가겠습니다. 대장.”
“그래, 이따 보자.”
나는 짧은 인사를 끝으로 루스와 함께 다시 길을 나섰다.
좀 전의 상황을 떠올리자 마음이 더욱더 급해졌다.
‘빨리 제국의 일을 백작에게 맡기고, 자격을 얻으러 가야 해.’
지체할 시간이 없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아베나스탄 외곽에 도착했다.
그리고 기억을 되짚어 한 장소를 찾아내었다.
“주인, 여기야. 여기.”
“그래. 잘했다, 루스.”
이곳은 예전 암흑교단으로부터 백작의 저택을 되찾을 때 사용했던 비밀 통로의 입구였다.
루스의 뛰어난 감각 덕에 숨겨진 입구를 쉽게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 이후로도 막아 놓지 않았는지, 비밀통로는 여전히 길게 이어졌다.
달리듯 걸어 나가 이내 백작의 집무실로 통하는 문 앞에 도착했다.
스르륵.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서자, 책상에 앉아 고민에 빠진 스탄 백작을 볼 수 있었다.
뚜벅, 뚜벅.
나는 일부러 발소리를 숨기지 않고 집무실로 걸어 들어갔다.
“누구냐? 헉! 자, 자네는?”
인기척을 느낀 백작이 뒤를 돌아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오랜만입니다, 스탄 백작님.”
“자네가 어떻게 여기에……?”
그래도 함께한 정이 있어 그런지, 백작은 당장 칼을 뽑아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표정은 바위처럼 굳어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압니다. 하지만 소문과는 다릅니다. 제가 재앙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백작님은 아시지 않습니까?”
아마 제국의 수도가 멸망한 것이 나 때문이라는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 말에도 백작의 굳은 표정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나?”
“백작님, 수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시지요?”
내 질문에 백작의 표정이 더욱 딱딱해졌다.
나는 그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건 황제가 사특한 신을 받아들여 저지른 짓입니다. 황가수호대도 그 신의 힘으로 소환한 것이고요.”
백작에게 일의 전말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었다.
‘창조주니 관리자니 하는 이야기를 해 봐야 믿기지 않겠지. 이해도 못 할 테고.’
적당히 양념을 친 정보를 흘리는 것이 백작의 믿음을 얻기 더 좋을 터.
나는 황제를 사이비 종교에 빠진 미치광이로 만들 참이었다.
내 말을 듣고 미간을 꿈틀거리던 백작이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가 수도를 폐허로 만들 이유가 없다. 폐하의 신민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 수도인데…….”
“악신에게 홀려 정신을 잃은 겁니다. 수도의 시민들을 악신에게 제물로 바친 것이지요. 그리고 머지않아 황제의 몸을 빌려 악신이 강림할 것입니다.”
거짓을 적당히 섞다 보니, 왠지 그럴싸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사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내용도 아니었고.
“으음…….”
백작은 쉽게 수긍하기 힘든지 침음만 흘리고 있었다.
“백작님, 북쪽에서 내려오든 재앙도 제가 군소 국가들과 힘을 합쳐 막았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백작님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정보입니다.”
“……!”
내 말에 백작은 깜짝 놀란 듯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여세를 몰아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세상에서 재앙의 기운이 걷혔지요?”
“그, 그렇네.”
“그것도 제가 남쪽으로 내려가 고생 끝에 발록이라는 괴물을 잡고 이뤄 낸 일입니다.”
나는 말과 함께 허리춤에서 불의 검의 손잡이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마력을 주입했다.
콰르르르-
불의 칼날이 솟아올랐다.
흠칫하며 몸을 떨던 백작이 놀란 눈으로 불의 검을 쳐다보았다.
“대단한 물건이긴 한데, 무슨 뜻으로 칼을 뽑은 건가?”
“이건 그 발록이라는 괴물이 사용하던 물건입니다. 놈을 처치하고 전리품으로 얻은 것이지요.”
“으음…….”
내 말의 아귀가 착착 맞아떨어지자 백작의 고민이 깊어져 갔다.
백작은 미간을 찌푸린 채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이윽고 백작의 입이 열렸다.
“자네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다 믿을 수는 없네. 자네는 제국의 수배범이기도 하고, 수도를 그렇게 만든 범인으로 지목되고 있으니까.”
“…….”
왠지 말이 더 남은 것 같아 차분히 기다렸다.
그러자 백작이 미간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자네 말대로 황가수호대를 비롯해 황실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네. 그러니 자네에게 묻겠네. 자네는 무얼 하려는 건가? 그리고 날 찾아온 이유는 또 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