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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11화 (111/149)

 # 111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11화>

얼마 후, 우리는 어느 엘프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긴 우리 마을 바로 옆 마을이에요. 가끔 왕래했었기 때문에 말이 잘 통할 거예요.”

아슬라가 앞장서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줬으면 좋겠는데…….’

아슬라와 달리 나는 걱정이 가득했다.

과연 아직 탑을 겪어 보지 않은 마을에서 피난을 쉽게 받아들일지는 회의적이었다.

실제로 토호얀두에서도 결국 완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고서도 탑을 직접 보고서야 시장의 태도가 고분고분해졌었다.

특히 어머니 나무를 중심으로 영역을 정해 놓고 살아가는 엘프들이라 걱정이 더했다.

어쩌면 탑에 대한 소문이 많이 퍼지고, 마을이 몇 개쯤 멸망하고 나면 일이 좀 더 수월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둘 수는 없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지금도 시간이 많이 지체되고 있다.

이 시간에도 어디에선가 생명이 탑에 흡수되어 관리자의 힘이 되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설득한다.’

각오를 다지며 걸음을 옮기는데, 멀리 한 무리의 엘프가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슬라가 미리 기별해 둔 것인지, 마을의 어른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아슬라, 그래 무슨 중요한 일이 있다고? 구원자라는 소릴 했다던데, 도대체 무슨 말이냐?”

그중 한 남자가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엘프답게 노화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태도를 보아하니 그가 이 마을의 우두머리인 듯했다.

“촌장님, 말씀드렸잖아요. 이분이 구원자님이세요.”

예상대로 남자 엘프는 이 마을의 촌장이었다.

하지만 아슬라의 소개에도 촌장은 떨떠름한 태도였다.

촌장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내 쪽을 훑어볼 뿐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곧이어 고개를 아슬라에게 돌린 촌장이 설교를 늘어놓았다.

“아슬라, 네가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 그 구원자라는 것은 그냥 상징적인 표현일 뿐이야. 어려움이 닥쳤을 때 좌절하지 말고 노력하라는 의미로 내려오는 이야기란다.”

창조주의 안배도 완벽하지는 못했는지, 촌장은 자기 멋대로 구원자에 대한 전설을 곡해하고 있었다.

아슬라 때에는 어머니 나무를 정화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 준 덕에 일이 쉽게 진행되었었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들이 먼저 내게 구원자냐는 질문을 해 왔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거 곤란하군. 이제 정수를 꺼내 보여 줄 수도 없고.’

세계의 정수는 정화의 기능을 제외하고는 당장 사용할 수 없다.

게다가 예전처럼 인벤토리에 넣어 다니는 것도 아니니, 꺼내서 보여 줄 수도 없었다.

난감함을 느끼고 있는데 아슬라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여기 구원자님께서 어머니 나무를 치료하시는 모습을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단 말이에요.”

“글쎄다, 아슬라. 네가 아직 어려서 경험이 부족하니, 인간들에게 쉽게 속아 넘어갈 수 있단다. 인간들은 아주 간교하니 조심해야 해.”

촌장은 이제 나를 사기꾼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화가 나는지, 아슬라가 버럭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촌장님. 저희 할아버지도 그 자리에 같이 계셨다고요. 설마 저희 할아버지가 어려서 경험이 부족하다고 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커흠, 그, 그건 아니지, 암. 그래도 말이다…….”

아슬라의 추궁에 촌장이 당황하는 것을 보면, 에임든이 촌장보다 더 연장자인 모양이었다.

주춤하던 촌장은 잠시 후 신색을 회복하더니, 여전히 완고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럼 저자가 치료하지 않은 우리 마을의 어머니 나무는 어째서 저절로 회복되었느냐? 그게 바로 저자가 구원자가 아니라는 증거지. 암.”

“그건 구원자님이 화염의 지옥까지 들어가셔서 힘들게 이룩한 일이라고요. 정화의 기운을 온 세상에 퍼트려서, 세상에서 모든 재앙의 기운을 몰아내셨단 말이에요.”

그 말에 촌장을 비롯한 엘프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오히려 화염의 지옥이란 말이 더욱 불신을 키웠는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설마 너는 저 인간이 화염의 지옥에 다녀왔다는 말을 진짜 믿는다는 말이냐? 거긴 엘프나 드워프도 들어갔다가 살아나올 수 없는 곳이야. 하물며 인간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

이제 완전히 나를 사기꾼이라 단정 지은 상태인지,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다.

아슬라가 답답한지 가슴을 팡팡 두들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심정은 나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주인.”

그때 루스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녀석이 씩 웃으며 짓궂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웃음의 의미를 궁금해하고 있는데, 이내 루스의 입이 열렸다.

“곧 있으면 방법이 생길 거야, 히히.”

의뭉스럽게 웃음을 흘리는 루스를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녀석이 이런 일로 헛소리를 하는 성격은 아니니 곧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할 텐데.

궁금한 마음에 주위를 살폈지만 별 이상은 없었다.

‘루스의 감각이 워낙 뛰어나니, 내가 못 느낀 것을 느꼈을 수도 있겠지. 그나저나 저 엘프 촌장, 너무 완고하군. 어떻게 해야 하나.’

완력으로 해결하기도 어려운 문제다 보니, 골치가 아팠다.

잠깐 고민에 빠진 사이에도 아슬라의 설득과 촌장의 벽창호 같은 대응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멀리서 엘프 하나가 바람처럼 달려왔다.

“촌장님, 촌장님! 큰일입니다.”

루스가 내 소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가 놓는 것을 보니, 녀석이 말하던 일이 바로 저것인 모양이었다.

“뭔데 그렇게 호들갑이냐? 천천히 말해 보아라.”

촌장의 말에도 달려온 엘프의 흥분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지, 지금 그렇게 차분하게 계실 상황이 아닙니다. 어머니 나무가, 어머니 나무가 말라 죽어 가고 있습니다!”

“뭐, 뭐야? 그게 무슨 헛소리냐?”

촌장이 놀라 외치자 달려온 엘프의 설명이 이어졌다.

탑이 나타났고, 그 주위를 붉은 옷을 입은 자들이 지키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탑이 주위의 생명체를 모조리 빨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엘프의 이야기였다.

내 입장에서는 익히 예상이 가능했던 일이었다.

‘하필 이 마을은 위치가 안 좋았군.’

아슬라의 마을과는 달리, 이 마을은 어머니 나무가 마을보다 더 북쪽에 위치해 있었다.

그 탓에 이곳은 마을보다 어머니 나무가 먼저 탑에 노출되어 버렸을 터였다.

‘놈들이 주로 북쪽에서 내려오곤 하니까. 이런 구조면 어쩔 수 없지.’

황가수호대가 걸어서 이동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제국의 수도가 있는 쪽에서부터 이동해 오는 것은 확실했다.

마법을 통해 목표 근처로 옮긴 이후에 도보로 정확한 지점까지 이동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내 추측이었다.

어쨌든 촌장과 엘프들이 난리가 났다.

그들은 부랴부랴 무기를 챙기더니 서둘러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그들의 뒤를 따라 어머니 나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한동안 달리자 멀리 삐죽 솟은 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주위를 황폐화시켜 놓은 탓에 멀리서도 탑이 한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말라 죽어 버린 어머니 나무의 모습도 보였다.

“마, 말도 안 돼!”

“이럴 수가…….”

촌장과 엘프들이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주위에 더 이상 흡수할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황가수호대가 앞으로 나섰다.

놈들은 당장 탑을 옮기기보다는, 우리를 잡아 탑의 먹이로 주려는 것 같았다.

그러자 어머니 나무를 잃어 분노한 엘프들이 황가수호대를 보며 소리쳤다.

“저 천벌을 받을 놈들을 죽입시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이놈들!”

곧이어 황가수호대와 엘프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뻔했다.

‘안 그래도 이길 수 없는 전력인데, 탑의 범위 안에 들어가서 싸우니…….’

엘프들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구원자님, 도와주세요!”

그때 아슬라가 간절한 목소리로 내게 부탁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아직이야. 목숨이 경각에 달할 때까지 기다려야 고마움이 극대화되겠지. 그래야 내 말을 잘 들을 테고.’

털썩.

내가 가만히 지켜만 보자, 아슬라가 갑자기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구원자님, 제발 용서해 주세요. 저들을 제발 용서해 주세요.”

‘허, 이거 참.’

촌장의 태도에 화가 나, 내가 그들을 돕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슬라는 내 발치에 엎드려 빌고 또 빌었다.

‘쯧, 꼭 나쁜 사람이 된 것 같구만.’

그 모습에 입맛이 썼다.

전투 양상을 보니 이제 슬슬 되었다 싶은 마음도 들었다.

“일어나세요, 아슬라 님.”

말과 함께 불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아슬라의 표정이 확 하고 밝아졌다.

“가자, 루스!”

“응, 주인!”

나와 루스가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기왕이면 구원자다운, 압도적인 모습이 좋겠지.’

나는 불의 검에 마력을 잔뜩 불어넣어 채찍처럼 길게 늘였다. 그리고 엘프를 몰아붙이고 있는 황가수호대를 향해 내뻗었다.

늘어난 불의 검이 놈의 허리를 휘감았다.

곧이어 강력한 강기공의 위력에 놈의 허리가 폭발하며 뚝 끊어졌다.

“헉! 가, 감사합니다.”

다 죽어 가던 엘프의 감사를 뒤로하고, 나는 다시 달려 나갔다.

이번에는 뭉쳐서 오러를 날려 대고 있는 황가수호대 무리가 목표였다.

길게 늘어난 불의 채찍이 횡으로 휘둘러졌다.

‘더, 더 길게.’

마력을 계속 불어넣어 길이를 더 늘였다.

불의 검이 둥근 원을 크게 그리며 황가수호대 무리를 칼날 안에 가두었다.

그 순간.

‘멸세폭.’

콰콰콰아앙-!

불의 검으로 이루어진 동그라미 안쪽에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원 안에 둘러싸였던 황가수호대가 모조리 조각나 흩날렸다.

콰르르르르-

루스도 내 의도를 읽었는지, 사방으로 새하얀 화염을 뿜으며 실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루스 쪽을 보느라 잠시 한눈을 판 사이, 황가수호대가 날린 오러가 내게 날아들었다.

나는 여유 있는 태도로 왼손을 들어 올려 ‘절대불변’을 사용했다.

쾅-

황가수호대의 공격은 너무도 가볍게 막혔다.

“오오!”

“지, 진짜 구원자님이다.”

어느새 뒤로 물러난 엘프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만하면 되었겠지.’

이제 쇼는 끝났다.

“루스, 빨리 처리하자.”

“응, 주인.”

달려드는 황가수호대를 루스에게 맡기고, 나는 점멸을 사용해 탑의 근처로 이동했다.

그리고 탑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길게 늘어난 검이 탑의 아랫부분을 휘감았을 때, 다시 한번 멸세폭을 사용했다.

콰지지직-

멸세폭의 힘을 버티지 못한 탑의 밑동이 완전히 박살 나며, 탑이 옆으로 쓰러졌다.

그러자 몸을 감싸던 불쾌한 기운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때마침 루스가 나머지 황가수호대를 다 처리하고 터덜터덜 걸어왔다.

“끝냈어, 주인.”

“수고했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물러나 있던 엘프들에게 다가갔다.

내가 지켜만 보고 있던 짧은 순간에 부상자가 생겼는지, 몇몇은 상처를 치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촌장을 비롯한 마을의 원로들은 내가 다가가자 안절부절못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 아슬라가 나섰다.

“촌장님, 저분은 진짜 구원자님이라고요. 방금 보셨잖아요. 우리 엘프를 지켜주러 오신 분이 확실하니까, 제발 고집부리지 말고, 구원자님의 말씀을 따르세요.”

그러자 우물쭈물하던 촌장도 나설 타이밍이 생겼다.

“감사합니다, 구, 구원자님.”

구원자라는 말을 내뱉는 것을 보니 이제 어느 정도 믿음이 생긴 걸까.

내가 화났다고 생각했는지, 촌장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조, 좀 전의 무례는 사죄드리겠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엘프들을 평화로 이끌어 주십시오.”

말과 함께 털썩 무릎을 꿇는 촌장.

그와 동시에 뒤에 서 있던 엘프 원로들도 무릎을 꿇었다.

‘이거 참. 무슨 사극 찍는 것도 아니고.’

순순히 피난이나 가길 원했지, 결코 이런 장면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일어나세요.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사과가 아닙니다.”

딱히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일이 잘 안 풀릴까 걱정했을 뿐이지.

그런데도 엘프들은 쉽게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쯧, 괜히 시간만 잡아먹는데…….’

굳이 계속 이러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나는 다음 할 일을 했다.

‘계약.’

그러자 수많은 엘프의 이름이 목록에 떠올랐다.

‘촌장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그중에 아슬라가 말한 촌장의 이름을 겨우 기억해 내어 계약을 진행했다.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던 촌장이 이내 계약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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