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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07화 (107/149)

 # 107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07화>

* * *

아슬라의 말대로 탑 주위에 소환 영웅은 없었다.

오로지 황가수호대만이 탑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원혼의 거울에 충격을 축적시켜 놓을 필요도 없었다.

콰르르르-

마력을 불어넣은 불의 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달리면서 계속 마력을 주입하자, 탑 근처에 이를 때쯤 불의 검이 채찍처럼 길게 늘어졌다.

‘부서져라!’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나는 불의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대기를 불사르며 검날이 날아갔다.

그러자 황가수호대가 공격을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

탑이 공격당하는 것을 몸으로라도 막아서겠다는 태도였다.

그때, 옆에서 달리던 루스가 손을 뻗었다.

콰르르르르-

새하얀 불길이 황가수호대를 향해 발사되었다.

달려들던 황가수호대가 그 모습을 보고 오러를 끌어 올려 막아 내려 했지만.

치이이익-

결국 온몸에 불이 붙어 녹아 갔다.

루스의 불길은 더 이상 황가수호대가 쉽사리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고.

콰아앙-!

내 검이 루스의 화염에 당하고 있던 황가수호대 무리를 후려쳤다.

길게 늘어난 불의 검에 맞은 황가수호대가 우수수 한쪽 구석으로 처박혔다.

이 모든 게 한순간에 일어났다.

그사이 휴고는 적들을 우회해 탑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그러자 나머지 황가수호대가 황급하게 휴고에게 달라붙었다.

‘저러면 오히려 휴고를 도와주는 꼴이지.’

내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휴고의 입에서 기합이 터졌다.

“죽어라!”

이어 황가수호대에게 휴고의 망치가 휘둘러졌다.

콰콰콰콰쾅-!

망치 끝에서 멸세폭이 터지며, 달려들던 황가수호대가 떼거리로 박살 나 날아갔다.

그들에게서 뿜어진 피가 휴고의 발밑으로 모여드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점멸을 사용했다.

스팟-

탑 앞으로 이동한 후, 나는 불의 검을 옆으로 길게 늘여 쥐었다.

그리고 횡으로 강하게 휘둘러 갔다.

불의 검이 채찍처럼 탑을 휘감았을 때.

‘멸세폭.’

콰콰콰콰콰쾅-!

폭발과 불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쿠구우웅

불의 검에 휘감겼던 탑 아랫부분이 산산이 부서지며 탑이 옆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불길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계속 이 정도로만 나타나 주면, 참 할 만할 텐데요.”

휴고가 씩 웃으며 다가왔다.

녀석은 당연하게도 멸세폭의 반동으로 입은 상처가 씻은 듯이 나아 있었다.

“이건 싸우라고 보낸 병력이 아닐 거야. 그냥 경비 같은 거지. 은행 청원 경찰이 전투를 하라고 있는 건 아니잖아.”

“그렇긴 하죠, 하하.”

머리를 긁적이는 휴고를 보며 나는 아슬라에게 연락을 했다.

- 아슬라 님, 마을 근처에 나타난 탑을 처리했습니다.

- 아! 감사합니다, 구원자님. 정말 감사해요.

- 아닙니다. 그나저나 저희는 일단 블룸폰테인에 들려서 할 일이 있습니다. 길어지지는 않을 테니, 미리 준비하고 기다려 주십시오.

- 예, 걱정 마세요. 돌아오시는 대로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을게요.

- 아, 그리고 전에 말씀드렸던 물건은 어떻게 되었는지……. 지금 좀 받을 수 있을까요?

- 네, 준비해 놓았어요. 당장 가져다 드릴게요.

그렇게 연락이 끊겼고, 잠시 후.

“구원자님, 말씀하신 거 가지고 왔어요.”

아슬라가 커다란 보따리를 어깨에 짊어지고 나타났다.

태생적으로 근력이 강한 엘프라 그렇지, 평범한 인간은 들고 다닐 수 없을 만한 크기의 짐이었다.

“고맙습니다, 아슬라 님. 귀한 것을 이렇게 내어 주시고.”

“아니에요. 구원자님이 해 주신 것에 비하면, 이런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닌걸요.”

아슬라가 미소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 모습에 진심이 느껴져 나도 마주 웃으며 대답했다.

“꼭 필요한 곳에 요긴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보따리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며 아슬라에게 감사를 표하고 난 후, 우리는 곧장 떠날 채비를 했다.

진형기에게 맡길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면, 아슬라와 함께 근처 엘프 영역을 돌며 탑을 부술 생각이었다.

‘어머니 나무가 없으면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게 문제야. 그것만 아니면 그냥 드워프 동굴에 보내 놓으면 될 텐데.’

엘프들은 어머니 나무를 떠나면, 젊음을 잃는다.

백 살이 넘은 에임든은 아마 제대로 뛰어다니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어머니 나무를 옮겨 심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지.’

하지만 엘프들의 능력으로도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피난을 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 근처에 있는 탑은 되도록 부수고 떠날 수밖에 없다.

그나마도 내 행보에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해당하는 이야기겠지만.

‘후우-. 시간이 넉넉지 않은데, 그렇다고 죽으라고 내버려 둘 수도 없고.’

단순히 측은지심 때문이 아니었다.

엘프만이 아니라 모든 지성 생명체는 관리자와의 싸움에서 내게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그러니 대규모로 죽게 둘 수는 없다.

하지만 당장 어찌할 방법은 없는 만큼, 엘프에 관해서는 진형기에게 다녀오는 동안에 좀 더 고민을 해 볼 생각이었다.

“블룸폰테인으로 가자.”

“혹시 플레이어들을 진형기에게 맡기실 생각입니까?”

내 계획을 대강 알고 있는 휴고가 물어 왔다.

“그래. 수완도 좋은 데다가 성격도 능글맞으니 잘해 줄 거야.”

“하긴 진형기가 적임이군요.”

대화하는 중에도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 결과,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블룸폰테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장 향한 곳은 전에 진형기 일행이 사용하던 아지트였다.

하지만.

“주인, 아무도 없어. 나간 지 한참 됐나 봐.”

아지트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에 봤을 때 시장과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것이, 당장 블룸폰테인을 떠날 것 같지는 않았었는데 의아했다.

“쓸데없이 자주 만난다 싶더니, 필요할 때는 없구만. 쯧.”

진형기를 찾아다닐 생각을 하자 절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찾아볼 생각에 터덜터덜 아지트 밖으로 나섰을 때, 맞은편 빵 가게에서 꼬마가 쪼르르 달려 나왔다.

“아저씨가 정해수 아저씨 맞죠?”

“응? 넌 누구지?”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되묻자, 꼬마가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괜히 겁을 준 건가 싶어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내가 정해수 맞아. 혹시 왜 묻는 건지 말해 주겠니?”

“아, 저기 진형기란 아저씨가 말을 전해 드리라고 했어요. 혹시 만날 일이 있으면 시장 관저로 찾아오시라고.”

내가 찾아올 때를 대비해 진형기가 미리 안배를 해 놓은 모양이었다.

나는 맡은 일을 착실히 수행한 꼬마에게 고맙다는 의미로 동전을 하나 쥐여 주고, 시장 관저로 향했다.

“거긴 또 뭐 한다고 가 있는지…….”

내가 중얼거리자 휴고가 대답해 왔다.

“혹시 시장한테 잡힌 건 아니겠죠?”

“아니야. 그 자식 스킬을 생각하면, 웬만하면 그럴 일은 없을 거야.”

휴고와 함께 진형기가 처해 있을 상황을 예상하며 대화를 하다 보니 곧 시장 관저 앞에 도착했다.

도시 국가 체제에서 시장 관저는 왕궁이나 다름없는 역할이었지만, 시의 규모가 작다 보니 건물도 위엄 넘치지는 않았다.

관저의 입구에는 두 명의 경비가 편한 자세로 서 있었다.

왠지 일반적인 병사와는 좀 태도가 다르다 싶었는데, 그중 한 명이 내게 말을 걸었다.

“어? 정해수 님 아니십니까? 안 그래도 오실지 모른다고, 우리 형님이 정해수 님 오시면 바로 모시고 오라고 그랬습니다.”

가만 보니 경비는 둘 다 진형기의 아지트에서 보았던 플레이어들이었다.

“아, 플레이어들이었군. 진형기한테 좀 안내해 주겠습니까?”

“예, 따라오십시오.”

플레이어 한 명이 나서 우리를 정중하게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시장의 집무실에서 진형기와 마주할 수 있었다.

“도대체 뭔 짓을 벌인 거냐?”

“이게 다 정 형 덕이지, 흐흐.”

내 물음에 씩 웃으며 대답한 진형기는 차로 입술을 축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날 시장의 병력이 잔뜩 죽어 버리지 않았소? 게다가 수도가 사라졌다며? 그럼 시장은 끈 떨어진 연 신세 아니오?”

“…….”

“게다가 우리 아지트에 쳐들어왔다가 잡히기까지 했으니. 내 손안에 들어온 물고기를 그냥 놓아줘서야 되겠소? 흐흐흐.”

왠지 시장을 데리고 뭔가 꾸미는 느낌이더라니.

녀석은 시장을 어르고 달래어 이곳 블룸폰테인을 손에 넣은 모양이었다.

시장 자리를 그대로 보전해 주는 대신, 실권은 진형기의 손에 들어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진형기의 말대로, 우리 일행의 손에 시장의 병력이 소모되어 버린 것이 일의 발단이었다.

‘플레이어가 10명 남짓 있었으니, 병력이 텅 비어 버린 도시 정도는 장악 못 할 것도 없지.’

한 명 있던 마스터도 당시 휴고와 루스에게 죽어 버렸고.

“그래. 잘했다, 진형기. 차라리 잘됐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번 일은 내가 녀석에게 시킬 일에 오히려 좋게 작용할 것 같았다.

“어, 음, 무슨 말이오? 혹시 나한테 뭐 할 말 있소?”

“없으면 찾아왔겠냐? 지금부터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으니, 잘 들어 봐. 미리 말하는데 이건 네 목숨과도 관련 있는 거야.”

진형기가 대번에 사색이 되었다.

“왜, 왜 이러시오, 정 형? 우리 좋은 사이 아니었소?”

무슨 오해를 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 오는 진형기.

“이상한 상상하지 말고. 일단 들어 봐.”

그제야 조금 진정된 진형기가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수도를 그 모양으로 만든 놈이 이제 온 세상을 잡아먹으려 하고 있어.”

“그, 그게 정말이오?”

“그래, 근데 내가 그걸 막을 생각이거든. 그러니까 네가 좀 도와줘야 하겠어.”

진형기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 뭐. 세상이 망한다는데 가만히 지켜보는 건 내 성미에도 맞지는 않긴 한데……. 근데 당신 같은 괴물들이 싸우는데 나 같은 사람이 낄 자리가 있긴 하겠소?”

사람을 괴물 취급하다니.

어쨌든 그걸 따지고 있을 틈은 없으니, 한 번 노려봐 주는 것으로 대신하고 나는 말을 이어 갔다.

“일선에서 싸우는 건 나와 내 일행이 할 일이야. 너한텐 다른 일을 맡길 거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 그리고 어차피 여기서 버티다가는…….”

“…….”

내가 말꼬리를 늘이자 진형기가 궁금함을 담아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너 오래 못 살 거야. 아마 조금만 있으면 네 스킬이 여기서 떠나라고 너한테 신호를 보낼지도 모르지.”

그 말에 진형기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거 참. 또 무슨 일이 생기는 거요?”

“좀 전에 말했잖아. 놈이 온 세상을 잡아먹으려 들 거라고.”

나는 진형기에게 관리자가 세상에 탑을 흩뿌리고 있고, 그 탑이 어떤 효과를 발하는지, 또 그 주위를 어떤 병력이 지키는지 자세히 말해 주었다.

“허, 알겠소. 이건 뭐 제대로 코가 꿰였군. 세상이 그 모양이라면, 나 혼자 살자고 용 써 봐야 소용도 없을 테고.”

“그래, 잘 생각했어. 너한테 딱 어울리는 일이니까,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근처 도시 국가를 싹 뒤져서 플레이어를 모아. 제국 쪽에도 사람을 보내고. 그러고 나서…….”

사실 진형기에게는 원래 플레이어를 모으게 한 후, 최대한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곳으로 오는 동안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제국 서쪽으로 가. 그쪽에는 군소 국가 연합 사람들이 탑을 피해 서쪽 몬스터 지대로 피신 중이야. 연락해 놓을 테니, 그쪽에 합류해.”

상대해야 할 것이 황가수호대가 아니라 몬스터라면, 플레이어들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터.

진형기가 플레이어들을 모아 합류하면, 서쪽의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흩어져 있다가 죽어 나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그러자 진형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어 왔다.

“어, 음. 플레이어를 모으는 거야 그렇다 치고. 서쪽으로 가는 것도 내 스킬을 이용하면 자신 있소. 근데…… 플레이어들이 내가 시킨다고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듣겠소?”

나는 씩 웃으며 인벤토리에서 준비한 물건을 꺼내었다.

엘프의 열매가 우르르 쏟아지며 집무실 바닥을 가득 채웠다.

“헉! 이걸 어디서 이만큼이나 구했소?”

높은 경지에 오른 우리 일행에겐 전혀 쓸모없지만, 진형기 패거리에겐 천금을 주고라도 구하고 싶은 물건일 것이다.

“엘프들 도와주고 좀 받아 왔다.”

아닌 게 아니라, 아슬라의 마을에 있던 것을 죄다 털어 왔다.

일을 제대로 시키려면 합당한 보수가 필요하다.

그리고 플레이어를 규합시키려면 힘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일단 이걸로 힘을 키워. 그다음은 굳이 내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할 수 있겠지?”

힘으로 찍어 누르든, 아니면 열매를 좀 나눠 준다는 말로 꼬이든, 수완 좋은 진형기라면 알아서 플레이어들을 잘 이끌 것이다.

“흐흐, 역시 정 형밖에 없소. 내 최선을 다하리다. 안 그래도 요번에 이걸 기가 막히게 가공하는 녀석이 일행으로 들어왔지 않겠소? 효과를 두 배는 뻥튀기한다니까.”

엘프의 열매를 가공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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