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05화 (105/149)

 # 105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05화>

차후에 협력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는 내 단호한 말에 드워프 왕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도 한참이 더 지나서야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거절할 수 없지. 듀에르가에게 별문제가 없다고 듣기도 했고.”

먼저 계약을 한 듀에르가가 있었으니, 계약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을 터.

‘그럼에도 저 정도로 고민을 하다니. 노즈도름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당한 건지, 원.’

능력만 있다면 노즈도름을 되살려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 * *

[대상의 확고한 의지에 따라 ‘계약’이 성립합니다.]

[‘다이커스’과 특별한 유대가 형성됩니다.]

* * *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허락을 얻고 나자, 계약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 음, 이렇게 하는 건가?

- 예, 맞습니다. 잘하시는군요.

드워프 왕에게 의사소통 방법을 가르쳐 주고 난 후, 나는 일행을 이끌고 곧바로 드워프 마을을 나섰다.

우리의 너무 빠른 귀환에 드워프 왕과 듀에르가는 아쉬운 눈치였다.

그러나 한시가 바쁜 상황이니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듀에르가, 네가 이 친구를 입구까지 안내해 주도록 해라.”

드워프 왕의 명령으로 동굴의 입구까지는 듀에르가의 안내를 받기로 했다.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며 나는 엘프 에임든에게 연락했다.

- 에임든 님. 일이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 아, 구원자님. 안 그래도 구원자님이 가신 쪽에서 빛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후에 어머니 나무의 병이 깨끗이 낫는 것을 보고 일이 잘되었을 거란 생각을 했는데 제 생각이 맞았군요.

- 아, 보셨군요. 그 빛으로 인해 재앙의 기운이 모두 정화되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제 돌아가는 길이니 다시 길잡이가 필요해 연락을 드렸습니다.

-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지금 즉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에임든을 불러 놓은 후 동굴 출구를 향해 걸음을 서둘렀다.

그러다 문득 허전한 팔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더 이상 팔찌가 존재하지 않았다.

캐서린이 사라지면서 마지막으로 불어넣은 힘에 의해 몇 가지 변화가 생겼는데, 팔찌가 내 몸속으로 흡수된 것도 그중 하나였다.

아쉽지만 그로 인해 드워프 왕에게서 스킬을 가져오지 못했다.

업그레이드된 팔찌는 성능은 좋아졌지만, 큰 제약이 생겨 버렸기 때문이다.

‘휴우, 딱 한 번의 기회라……. 생각대로 잘돼야 할 텐데.’

차후 세계의 정수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팔찌는 관리자를 꺾을 치명적인 무기가 되어 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세계의 정수를 얻었음에도 내 힘이 즉시 늘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발록을 잡아 얻은 스탯과 불의 검 이외에는 당장 전투에 도움 되는 것이 없었다.

‘결국 세계의 정수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게 문제지, 쯧.’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찼다.

고민에 빠져 듀에르가의 등만 보며 걷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 해수, 큰일 났어요! 큰일!

목소리의 주인공은 옛 친구였다.

옛 친구의 놀란 말투를 듣는 순간, 왠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

내가 가만히 듣고 있자 옛 친구가 급히 말을 이었다.

- 이상한 탑이 나타나 생명체를 빨아들이고 있어요. 라로프뿐만 아니라 노르트와 바리살에도 나타났어요!

역시 예상이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일단 놀란 옛 친구를 다독였다.

- 옛 친구님, 너무 당황하지 마십시오. 예상하던 일입니다. 일단 마음을 좀 가라앉히세요.

- 아, 알겠어요. 근데 예상을 했다고요? 대체 어떻게…… 이게 다 무슨 일이죠?

- 제가 며칠 전 재앙의 기운을 정화했습니다. 그러자 급해진 관리자가 일을 벌인 거예요. 아마 앞으로도 계속 난리가 날 겁니다.

- 하아, 그렇군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 혹시 탑 주위에 병력이 얼마나 있던가요?

이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탑 근처에 소환 영웅들이 잔뜩 나타난다면, 지금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곳은 세상에 없다.

- 붉은 옷을 입은 자들 수십 명이 탑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요.

- 다른 자들은 없었습니까?

- 네, 그자들뿐이었어요.

다행이었다.

관리자는 자신의 힘을 회복하기도 바쁜 상황일 테니, 영웅을 무한정 뽑아낼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예상대로야.’

그에 비해 황가수호대를 잔뜩 보낸 것을 보면, 황가수호대를 소환하는 데는 힘의 소모가 크지 않은 듯했다.

‘처음에 엘프 마을에 나타난 탑은 기운을 흡수할 목적도 있었겠지만, 내 행보를 방해하려는 의도가 더 컸겠지.’

그러니 소환 영웅까지 함께 보낸 것이다.

단순히 기운을 흡수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내가 있는 곳 근처에 탑을 만들 필요는 없었으리라.

내가 없는 곳에 만드는 것이 더 오래도록 많은 기운을 흡수할 수 있을 테니.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옛 친구에게 대처 방법을 알려 줬다.

- 옛 친구님, 놈들을 처치하고 탑을 부숴 버리세요. 옛 친구님이라면 하실 수 있습니다.

영웅들이 잔뜩 있다면 모르겠지만, 황가수호대 정도는 옛 친구가 처리할 수 있다.

특히 바다와 가까운 라로프에서라면 거의 피해 없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 그럼 다른 곳은 어떻게 하죠?

옛 친구는 노르트와 서쪽 연합이 못내 걱정스러운 듯 심각한 어조로 물어 왔다.

- 음, 일단 노르트는 다시 라로프로 피난을 가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들에게는 옛 친구님이 잘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서쪽 연합은…….

나는 말끝을 흐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경로상 라로프로는 도저히 갈 수 없다.

그렇다고 제자리에서 버티면 관리자의 양분이 될 뿐이다.

- 일단 서쪽 몬스터 지역으로 깊숙이 피하라고 하세요. 당장은 그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제가 무슨 수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재앙이 정화되면서 몬스터들이 다시 약화되었으니 어떻게든 버틸 수는 있을 것이다.

- 어쨌든 중요한 것은 탑에 빨려 들어가지 않는 겁니다. 빨려들고 나면 손쓸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 무조건 탑에서 멀어지라고 하세요.

그냥 죽는 게 아니라 관리자의 힘이 된다는 점이 더 큰 문제였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차라리 몬스터와 싸우다 죽는 것이 세상을 위해서도 더 나은 일이었다.

한동안 불안해하는 옛 친구를 달래 주고 대화를 끝냈다.

‘빨리 손을 써야 되겠다.’

급한 마음에 서둘렀기 때문인지, 우리는 머지않아 동굴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럼 잘 가게, 친구. 술도 한잔 못 하다니, 섭섭하군. 나중에 일 끝나면 꼭 놀러 오게.”

“그래, 그동안 고마웠어. 듀에르가.”

‘마음 편히 술잔을 나눌 날이 온다면……. 그거야말로 내가 바라는 일이지.’

듀에르가와 짧은 작별을 나누고 얼마간 기다리자 에임든이 나타났다.

“구원자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기다리시게 했군요.”

“아닙니다. 저희도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시간이 넉넉지 않으니 얼른 출발하지요.”

에임든을 재촉해 서둘러 이동하려는데, 루스가 내 소맷자락을 잡아당겼다.

“응? 왜 그러냐, 루스?”

“주인.”

루스는 복화술이라도 하듯이 티 나지 않게 속삭였다.

“저쪽에 뭐가 있어. 저 엘프 뒤를 따라온 것 같아.”

루스가 힐끔 눈동자를 움직여 한쪽을 가리켰다.

나도 정신을 집중하고 루스가 가리킨 곳을 태연한 태도로 살폈다.

에임든에게 빌려온 ‘숲은 꿰뚫는 눈’이 발휘되며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시야를 확보했다.

그러자 그곳에 흐릿한 형체가 보였다.

‘음…… 설마 놈들인가?’

나는 놈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천천히 걸으며 허리춤에서 불의 검을 뽑아 역수로 쥐었다.

마력이 주입되지 않은 불의 검은 그냥 쇳조각에 불과해, 겉으로 보기에는 주먹을 쥔 것처럼 보였다.

태연하게 걸음을 옮기는 척하던 나는 갑작스레 점멸을 사용했다.

스팟-

루스가 가리킨 곳으로 이동하자 그곳에 숨어 있는 놈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놈이 맞았군.’

복면을 쓰고 양손에 단검을 쥔 암살자가 눈에 들어왔다.

놈의 이름은 블레인.

복장에서 느껴지듯이 전형적인 암살자 클래스의 소환 영웅이었다.

이놈은 분명히 관리자가 나의 행보를 방해하기 위해 보냈을 테니, 근처에 다른 놈들이 더 존재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블레인을 놓아 두고 수색부터 할 수는 없다.

‘이놈부터 빠르게 처리한다.’

내가 공간을 이동해 갑자기 나타나자 블레인이 잠시 몸을 움찔했다.

그 순간 나는 놈의 머리를 향해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놈이 재빨리 움직이며 내 주먹을 머리 옆으로 흘리려 했다.

이대로라면 주먹은 놈의 머리를 맞추지 못하고 빗나갈 터.

내 공격을 손쉽게 피했다고 생각하는 듯, 놈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놈이 든 단검이 흉포한 기세로 내 옆구리를 찔러 오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오른손에 쥔 불의 검 손잡이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콰르르-

역수로 쥔 손잡이에서 화염의 칼날이 솟구쳤다.

그리고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블레인의 머리를 절반으로 갈라 버렸다.

치이익-

검에 베인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소리가 나더니, 놈의 머리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새까맣게 타 버린 블레인의 머리에서는 피조차 흐르지 않았다.

마력을 거두자 불의 검에서 칼날이 팟 하고 사라졌다.

‘이거…… 좋은데?’

블레인은 아무런 기술도 쓰지 못하고,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한 채 죽었다.

불의 검이 가진 특성 덕분에 한 놈을 손쉽게 처치한 것이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나는 곧 표정을 굳히고 주위를 살폈다.

새로 얻은 장비의 성능에 흡족해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분명히 몇 놈 더 있을 텐데.’

블레인 한 놈만 달랑 쫓아와 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분명 다른 패거리가 있을 터.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아도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혼자서는 안 되겠다 싶어 나는 루스에게 다가갔다.

“루스, 혹시 주위에 더 느껴지는 것 없어? 다른 놈이 더 있다거나.”

“으음, 다른 냄새는 안 나. 근데 방금 그놈 냄새가 저쪽에서부터 이어지거든. 거기로 가면 뭐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며 루스는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나는 그 방향을 따라 일행을 이끌고 달려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다른 적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그냥 감시의 의미였나? 흐음.’

별 이상이 없어 의아해하는 찰나, 멀리 땅바닥이 빛나기 시작했다.

‘마법진이다!’

아마 공간 이동을 위한 종류로 보였다.

벌써 마법진 위에 흐릿하게 몇 명의 인영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다.

몇 놈이나 나타날지 모르겠지만, 놈들이 이동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결코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

‘점멸.’

빠르게 판단을 내린 후 마법진 근처로 이동했다.

그리고 곧바로 ‘천벌’을 사용했다.

하루에 한 번밖에 쓰지 못하는 스킬이라 조금 아까웠지만, 당장 화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 후 불의 검에 강하게 마력을 불어넣었다.

콰르르르르-

발록을 잡고 한층 더 강해진 내 마력에 불의 검이 용틀임했다.

그 상태로 불의 검을 치켜들고 마법진을 향해 뛰어올랐다.

그리고 막 나타나기 시작하는 적들의 실루엣을 향해 검을 내리꽂았다.

콰콰콰콰콰앙!

막 이동되어 온 영웅들과 황가수호대에게 멸세폭이 내리꽂혔다.

“컥!”

“피, 피해!”

“크아아악!”

적들의 비명과 고함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내 옆으로 달려온 루스도 양손을 뻗어 화염을 쏘아 내었다.

콰르르르르-

발록의 힘을 흡수한 덕인지, 녀석의 화염도 한층 더 강해져 있었다.

“크아악!”

루스의 공격까지 보태어지자 영웅과 황가수호대의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

잠시 후 폭발과 불길이 가라앉았을 때, 살아남은 것은 몇 놈 되지 않았다.

이동이 마무리되기 전에 기습한 것이 크게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았다.

‘방어력 약한 놈들은 다 죽었군. 황가수도대도 거의 다 죽었고……. 하! 오를란도 저 징그러운 자식.’

잿더미로 변한 주검들 사이에서 기어 나오는 오를란도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갑옷을 입은 기사가 먼지를 털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란슬롯.”

나는 놈의 이름을 씹어 내뱉었다.

빌어먹을 배신자 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