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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04화 (104/149)

 # 104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104화>

세계의 정수를 사용할 자격.

그것은 신격을 뜻한다.

창조주처럼 최고위의 신격까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인간의 격을 넘어서, 세상의 진리에 간섭할 정도의 초월적인 존재가 될 필요가 있을 뿐.

다행인 점은, 신격을 얻는 방법 또한 내 머릿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앉은 자리에 그대로 머물며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세세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곳은 시간이 멈춰 있으니, 조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일단 창조주의 말대로 온 세상 사람들의 힘을 모아야 해.’

관리자가 비록 신격을 포기했다고 할지라도, 그 힘만큼은 신에 버금간다.

세계의 정수를 온전히 다룰 수 없다면, 결국 나 혼자의 힘만으로 이길 수는 없을 터.

‘하지만 내게는 세상의 힘을 모을 방법이 있다.’

창조주가 오래도록 시간을 돌려 가며 안배해 온 것들이 이번 생에 이르러 내게 전달되었다.

‘계약과 팔찌를 이용하면, 분명히 놈을 꺾을 수 있다.’

캐서린의 마지막 힘을 받아 달라진 팔찌.

그리고 이제껏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내가 맺어 온 인연들.

그것들이 내 비장의 무기가 되어 줄 것이다.

나는 차분히 생각을 거듭하며 관리자를 이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구상해 나갔다.

세상이 멈춘 채, 내게만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나는 드디어 만족할 만한 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다.

“이제 가 볼까?”

일어서며 손가락을 딱 튕기자, 내 몸속에서 세계의 정수가 반응했다.

그 기운에 의해 내 정신이 다시 육체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 * *

* * *

몸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처음 느낀 감각은 눈부심이었다.

‘내 몸이 빛나고 있군.’

환한 빛이 내 몸에서 솟아 나와 온 세상으로 뻗어 가고 있었다.

“어, 어? 대장?”

“주인, 뭐야? 눈부셔!”

옆에서 휴고와 루스가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들은 내가 창조주와 만나고 왔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 내 몸이 빛나고 있다는 것에만 놀라고 있었다.

‘역시, 시간은 전혀 흐르지 않았군.’

창조주를 만났을 때 내려다봤던 것처럼 내 몸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고, 휴고와 루스의 반응 또한 막 빛이 뿜어지기 시작할 때의 반응이었다.

때문에 나는 그동안 시간이 흐르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괜찮으니 호들갑 떨지 말고, 눈 감고 쉬고들 있어. 아무 문제 없으니까.”

그렇게 일행에게 이야기한 후, 그대로 서서 한참을 기다렸다.

시간이 흐르고,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 빛도 어느 순간 잦아들었다.

“드디어 정화가 끝났군.”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휴고가 물어 왔다.

“정화요? 방금 그 빛 말씀입니까?”

“그래, 세계의 정수가 완성되었어. 정수에 의해 재앙의 기운이 정화되느라 빛이 난 거야. 이제 온 세상에 재앙의 기운은 더 이상 없어.”

“헉! 정말입니까, 대장? 잘됐네요. 근데 조각이 하나 모자랐던 거 아니었습니까?”

휴고의 물음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생각 없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방금 있었던 모든 일을 이야기하자면, 당연히 캐서린과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창조주를 만난 사실 역시도 말해야만 했다.

‘그러려면 내가 회귀한 사실을 밝혀야 이해가 갈 텐데.’

이제껏 회귀한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일행을 믿지 못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괜한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더 컸다.

그러나 언젠가 해야 하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이야기한다면, 지금이 맞겠지. 그런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막상 말을 하려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회귀 전 녀석의 삶을 구구절절 말해 줄 필요는 없겠지만, 최소한 나와의 관계 정도는 말해야 하지 않을까?

“하아…….”

한숨을 내쉬자 휴고와 루스가 의아하게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주인, 왜 그래? 반짝반짝하느라 배고파?”

해맑은 루스의 목소리를 듣자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

‘그래, 어차피 녀석들과는 끝까지 간다. 재고 따질 필요가 없는 거였어.’

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처음부터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기로 결정했다.

고민을 끝마친 후, 나는 휴고와 루스를 불렀다.

“둘 다 잠시 이쪽으로 와서 앉아 봐.”

나는 먼저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러자 휴고가 옆으로 와 털썩 주저앉으며 물었다.

“뭔데 그렇게 뜸을 들이십니까? 대장답지 않게.”

“나는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

“나는 미래에서 회귀했다.”

“예에?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회귀라니요?”

놀라는 휴고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나는 이미 이 세계에서 한 번의 인생을 살았고, 배신당해서 죽었다. 그리고 모종의 힘에 의해 튜토리얼이 시작하는 시점으로 되돌아온 거야.”

“그러니까 대장이 타임머신이라도 탔다는 소립니까?”

“비슷하지. 내 경우에는 이 세상을 만든 창조주의 안배로 되돌아온 거지만.”

“어, 으음. 설마 진담으로 하는 말은 아니죠, 대장?”

녀석은 도통 믿지 못했다.

오히려 농담이라기엔 너무 진지한 내 태도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연한 반응이지. 당장 미친놈 소리가 안 나오는 것만 해도 나를 신뢰하고 있어서일 테니.’

충분히 이해 가는 모습이었기에,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던전의 위치를 손바닥 보듯이 알던 것도, 적들의 정체나 기술을 꿰고 있는 것도 이미 한 번 겪어 봤었기 때문이야.”

“마, 말도 안 돼…….”

내 말이 빈틈없이 맞아떨어져 가자 휴고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휴고가 그러거나 말거나 루스는 별 관심이 없는지, 옆에서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다.

‘굳이 더 떠들어 봐야 귀에 안 들어오겠지.’

당황한 상태에서 설명해 봤자 소용이 없을 터.

나는 녀석이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놀랐다가 찡그렸다가 다양한 표정을 짓는 휴고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한참을 기다리자 녀석의 표정이 차츰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갔다.

“……때때로 대장이 진짜 앞일을 내다보기라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미래를 겪었었던 거군요.”

“그래, 미리 이야기하지 않아 미안하다.”

휴고는 내게 씩 웃어 보였다.

“아닙니다. 저 같아도 쉽게 말 못 했을 겁니다. 지금이라도 말씀해 주셨으니 되었습니다.”

그때 루스가 끼어들었다.

“난 뭔 말인지 잘 모르겠어. 어쨌든 주인은 주인이야. 근데…….”

웬일로 녀석이 말을 늘였다.

“왜 그러냐?”

“주인. 나 저거 먹어도 돼?”

잔뜩 주저하던 것치고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행동이었다.

모처럼 심각한 분위기에 식탐을 내세우기 껄끄러웠던 모양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루스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발록의 사체였다.

당연히 사체에 오염되어 있던 재앙의 기운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저 정도면 루스가 먹어도 탈이 나진 않으리라.

“그래, 실컷 먹어라.”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루스는 재빨리 발록의 주검으로 달려갔다.

발록이라면 아마 루스에게는 최고의 식사가 되지 않을까.

루스가 발록에게 달려간 후, 나는 휴고에게 조금 전 창조주와 만났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세상의 비밀을 접한 휴고는 다시 한참 동안 생각에 빠져들었다.

발록의 사체가 루스의 뱃속으로 거의 다 사라져 갈 무렵, 휴고의 입이 열렸다.

“대장, 이제 어쩌실 생각입니까?”

“재앙이 정화되었으니 관리자도 세계의 정수가 모인 걸 알게 되겠지. 아마 머지않아 놈이 큰일을 벌일 거야.”

“큰일이라면, 어떤?”

“내 예상으로는 아마 수많은 탑이 생겨날 거야. 그리고…….”

루스가 사체의 나머지를 먹어 치우는 동안, 휴고와 나도 간단한 식사를 하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을 나눴다.

“관리자가 언젠가 힘을 되찾을 거란 것은 기정사실이야. 그렇게 되면 우리의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어. 그러니…….”

“그렇군요. 그럼 우리는…….”

나 혼자 계획해 둔 것을 휴고와 나누며 세세한 부분들을 보완해 나갔다.

“……그러니 이제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해.”

“어서 다 끝내고, 대장이랑 술이라도 한잔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휴고가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대로 돌아온 녀석의 미소가 썩 마음에 들었다.

* * *

* * *

- 듀에르가. 일이 잘 끝났고, 지금 돌아가는 길이야. 며칠이면 도착할 테니, 통로를 다시 열 준비를 해 줘.

- 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준비는 다 되어 있어. 얼른 돌아오라고, 친구.

나는 듀에르가에게 미리 연락을 한 후 걸음을 서둘렀다.

가는 길 역시 올 때처럼 최대한 싸움을 피했지만, 모든 몬스터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콰콰쾅!

꾸에에엑!

온몸에 시뻘건 가시가 돋아난 멧돼지 한 마리가 휴고의 망치에 맞아 비명을 내질렀다.

서걱-

재빨리 달려든 루스가 클로로 멧돼지의 목을 베었다.

“고기다, 고기!”

신난 녀석의 말대로, 재앙이 사라진 몬스터는 루스에게 훌륭한 식량이었다.

‘그나마 몬스터가 약해진 덕에 길이 수월해서 좋군.’

이곳을 벗어나면 다시 정신없이 서둘러야 할 상황이다 보니, 오히려 지금의 여정이 평화롭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 듀에르가, 바로 근처까지 도착했어. 작업 시작해 줘.

- 오오, 건너편이 소란스럽더니, 자네가 몬스터를 잡는 소리였군. 금방 뚫어 주겠네. 조금만 기다리게, 친구.

가가가각.

곧이어 드릴 돌아가는 소리와 봉인이 갈려 나가는 소리가 맹렬하게 들려왔다.

머지않아 구멍이 뚫렸고, 또다시 며칠간의 여정을 거쳐 우리는 드워프 마을에 다시 돌아왔다.

“잘 돌아왔네. 얼마 전에 재앙의 기운이 싹 걷혔더군. 아마 자네가 한 일이겠지?”

드워프 왕은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따뜻한 태도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예, 재앙은 끝났습니다. 이제 세상에 퍼진 모든 재앙의 기운이 정화되었습니다.”

“장한 일을 했군. 그럼 이제 휴식을 취할 차롄가? 껄껄.”

드워프 왕은 당장 잔치라도 열어 줄 듯한 태도로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나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죄송하지만, 급한 일이 있습니다. 머지않아 더 큰 위기가 닥칠 겁니다. 그에 대비하려면 쉬고 있을 틈이 없군요.”

내 말에 드워프 왕의 얼굴이 굳었다.

“더 큰 위기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재앙의 기운이 정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재앙의 기운을 뿌린 존재는 여전히 살아 있지요. 놈은 세상을 멸망시키려 들고 있습니다. 아마도 곧…….”

관리자가 생명을 흡수해 힘을 키울 거라는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 주었다.

이곳 역시 안전하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자 드워프 왕은 심각해졌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한층 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드워프의 왕이 질문을 던져 왔다.

“일단은 살아남는 데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그리고 차후에 상황이 허락하면 힘을 보태 주십시오. 그래야 세상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 알겠네. 혹시 그 계약이란 것도 앞으로를 위해 필요한 건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 일족이 워낙 험한 일을 당한 탓에 어디에 얽매이고 묶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네. 그래서 말인데…….”

드워프 왕이 말꼬리를 흐렸다.

“예, 드래곤과의 일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즈도름은 진짜 죽었으니, 더 걱정하실 일은 없습니다.”

“아니, 아니. 그 말이 아닐세. 그 자네의 계약이란 것도 혹시…… 음.”

혹시나 그들을 겁박할 수단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전혀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좀 전에 말씀드린 대로 머지않아 큰일이 터질 겁니다. 그때 협력하기 위해서라도 계약은 꼭 필요합니다.”

원래라면 이렇게까지 계약을 강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드워프만이 아니라 내가 인연이 닿은 모든 곳과 계약을 할 필요가 생겼다.

그것이 관리자를 이길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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