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98화>
[‘워젤’과 계약을 진행합니다.]
[대상의 확고한 의지에 따라 ‘계약’이 성립합니다.]
[‘워젤’과 특별한 유대가 형성됩니다.]
- 음, 신기하네요.
내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워젤은 마음속으로 말을 걸어왔다.
확실히 격이 높은 정령이라 그런지 감이 뛰어났다.
‘제대로 끝까지 싸웠으면 골치 아팠을 텐데…….’
싸우는 중에 워젤이 정신을 차려 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 잘하시는군요. 이 방법을 사용하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나는 워젤에게 말을 하며 팔찌의 스킬을 발동했다.
[스킬 전이가 시전됩니다. 대상을 정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 : 워젤]
[스킬 ‘물’이 전이됩니다.]
‘어…… 음. 그냥 물이라니.’
이름이 너무 단순해서 살짝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설명을 살펴보았다.
[물]
: 마력을 소모해 깨끗한 물을 생성한다. 만들어진 물은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제어할 수 있다.
‘물을 제어한다고?’
생성이야 크게 특별할 것이 없다. 마력만큼 물을 만들어 낸다는 뜻일 테니까.
하지만 제어라는 단어는 신경 쓰였다.
‘연습을 한번 해 보고 싶은데…….’
괜히 워젤의 눈치가 보였다.
말없이 스킬을 빌려 온 상태인데, 눈앞에서 물을 만드는 것을 보여 줘도 될까 하는 마음이 든 것이다.
그때 워젤의 뜻이 전해져 왔다.
- 신비한 팔찌군요. 특이한 기능이 있네요. 성스러운 기운을 품고 있기도 하고.
- 알아보셨습니까? 이 팔찌는 저와 계약한 대상의 스킬을 하나 빌려 쓸 수 있게 해 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노즈도름이 그랬듯이 워젤도 팔찌의 사용을 눈치챈 듯했다.
살짝 멋쩍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워젤에게 말하고 연습해 볼 생각으로, 나는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 워젤 님의 스킬을 하나 빌려 왔는데, 이름이 ‘물’이군요. 어떤 스킬인지 모르겠습니다.
- 으음, 그건 물을 다루는 기본적인 기술이에요. 한번 써 보는 게 제일 빠르겠죠.
워젤은 별달리 기분 나쁜 기색은 없었다.
그 말에 나는 얼른 스킬 ‘물’을 사용했다.
마력을 어느 정도 소모할지 마음으로 정하자 눈앞에 머리통만 한 물방울이 생겨났다.
소모한 마력에 대비해 생겨나는 물의 양이 적지 않았다.
‘호오, 효율이 썩 나쁘진 않은데?’
다만 싸움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
그렇다면 다음은 제어에 관해 알아볼 순서였다.
나는 허공에 떠 있는 물에 의지를 전했다.
‘옆으로!’
강하게 마음을 전하자 물 덩이가 옆으로 스르르 움직였다.
‘이런 식이었군.’
여의검에 의지를 불어넣는 것과 크게 차이 없는 방식.
평소에 연습이 되어 있어 그런지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얇게! 넓게!’
나는 물의 양과 형태를 바꿔 가며 한동안 연습을 계속했다.
하지만 역시 쉽게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음, 전투에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싸움에 도움이 될 정도로 완전히 숙달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도 이제부터 가야 할 곳이 화염의 지옥인 이상, 어떻게든 쓸 일이 있을 터.
“큼, 이봐, 친구. 일이 끝났으면 돌아가는 게 어떤가?”
그때 내가 스킬 연습에 너무 정신을 팔았는지 듀에르가가 재촉해 왔다.
“아, 미안해. 어서 가서 물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전해야지.”
사실 급한 것은 듀에르가보다 내 쪽이 더했다.
나는 연습을 멈추고, 떠나기 전에 워젤에게 물었다.
- 워젤 님, 혹시 저와 같이 가시겠습니까?
강력한 물의 정령을 데리고 다니면, 전력의 큰 상승을 꾀할 수 있다.
- 난 여기서 나갈 수 없는걸요.
- 혹시 이 호수 밖에서는 살 수 없는 겁니까?
- 그건 아니고요. 물이 없는 곳으로는 이동할 수가 없어요.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한 번 더 질문했다.
- 그럼 멀리 떨어진 곳에 물이 많이 있으면, 그곳으로 이동하실 수는 있습니까?
- 몸이 다 회복되면 가능하죠. 음…… 이걸 줄게요.
워젤의 말과 함께 무언가가 내 눈앞에 떠올랐다.
그것은 푸르게 빛나는 물방울이었다.
내가 손을 가져가자 물방울이 손바닥으로 스르르 스며들었다.
- 이게 뭡니까?
- 그건 저의 표식이에요. 제 기운의 일부를 떼어서 당신의 몸에 심어 둔 거죠. 나중에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 주위로 이동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주위에 물이 있어야 해요.
뜻밖의 희소식이었다.
나중에라도 상황이 따라 주면 워젤을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재앙의 기운을 오래도록 버텨 낸 정령이니, 기대해도 좋으리라.
- 아, 감사합니다. 워젤 님.
- 당신에 내게 해 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 * *
워젤과의 대화를 마치고 우리는 드워프 마을로 귀환길에 올랐다.
돌아가는 길은 올 때보다 훨씬 쾌적하고 빨랐다.
바로 워젤의 배웅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하하, 이거 엄청 신나!”
“대장 옆에 있으면 진짜 별의별 경험을 다 해 봅니다, 하하.”
신나서 소리치는 루스의 옆에서 휴고가 즐거운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껏 거슬러 올라왔던 지하수 위를 물로 만든 배를 타고 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워젤의 능력 덕분이었다.
배가 쾌속 항행을 거듭한 덕에 우리는 채 한 시간도 안 되어 드워프 마을 근처에 다다를 수 있었다.
- 감사합니다, 워젤 님.
- 아니에요. 그럼 또 봐요, 구원자님.
우리는 워젤과 짧은 작별을 끝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그리고 얼마 후, 다시 드워프의 왕과 마주할 수 있었다.
“벌써 문제를 해결했다는 말인가?”
“예, 이제 머지않아 지하수가 다시 깨끗해질 겁니다. 상류에 살던 물의 정령이 오염되어 생긴 일이었는데, 정령을 정화했으니 며칠이면 해결될 겁니다.”
드워프의 왕은 사뭇 놀랍다는 표정.
그러더니 옆에 앉은 듀에르가를 힐끔 쳐다봤다.
아마 내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듯했다.
“사실입니다. 제가 계속 옆에 같이 있었습니다. 정령도 같이 만났고요.”
듀에르가의 말이 끝나자, 드워프 왕이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당신이 내 요구를 완벽하게 수행해 줬으니 나도 약속을 지키겠다. 화염의 지옥으로 가고자 하니,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알겠지? 왜 거길 막아 놓았는지도?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는 게 좋을 거야.”
“어차피 가야 할 길입니다. 화로의 주인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스스로라도 뚫고 갈 생각이니, 저희 걱정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런 각오라면 좋다. 나도 최선을 다하도록 하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었다.
처음 부탁받았을 때보다 일이 빠르고 쉽게 풀린 감이 있어 기분이 좋았다.
나는 여세를 몰아 한 가지 시도를 해 보았다.
“실례지만 한 가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뭔가? 일단 말이라도 해 봐. 가능하면 들어주지.”
드워프 왕은 물 문제가 쉽게 해결되자 마음이 흡족한 듯 쉽게 수락했다.
“서로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 주는 기술입니다.”
말과 함께 나는 얼른 ‘계약’을 사용했다.
[대상과 특별한 유대를 형성합니다. 대상을 선택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 : 다이커스]
드워프 왕의 이름이 다이커스인 모양.
나는 얼른 다이커스를 선택했다.
[‘다이커스’과 계약을 진행합니다.]
그러자 드워프 왕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에 잠기더니.
[대상의 의사에 따라 ‘계약’이 실패했습니다.]
떠오르는 결과에 나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드워프 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일족은 옛날에 겪은 일 때문에 이런 일에 굉장히 신중할 수밖에 없어. 미안하군. 그러나 화염의 지옥을 뚫는 것에는 최선을 다하도록 하지.”
시종일관 딱딱한 말투.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진심인 듯 표정이 조금 어두웠다.
“아닙니다. 나중에 좀 더 신뢰가 쌓이면 해도 될 일입니다. 길을 열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쉬운 것은 사실이었다.
애초에 미리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진행했어야 할 일일지도 몰랐다.
‘음, 좀 성급했나? 스킬은 둘째 치고, 연락이라도 가능하면 좋은데. 착취당한 전력이 있어서 그런지 굉장히 민감하군.’
차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드워프와도 협력 관계를 갖춰 놓으면 좋다.
그러나 연락이 원활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
그때 듀에르가가 끼어들었다.
“뭔지 몰라도, 그거 나랑 하지? 왕은 몰라도 나는 괜찮겠지.”
그러자 드워프 왕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족을 책임지는 왕과 달리 개인인 듀에르가는 ‘계약’을 맺어도 괜찮다는 판단을 한 듯했다.
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듀에르가와 계약을 맺고 의사소통에 대한 연습까지 끝낸 후 왕의 거처를 빠져나왔다.
길을 뚫기 위해 준비가 필요하니 출발은 내일로 정해졌다.
나는 묵을 곳을 안내해 주는 듀에르가에게 팔찌를 사용해 스킬을 빌려왔다.
[스킬 ‘무기 연마’가 전이됩니다.]
[무기 연마]
: 각종 무기를 연마해 최상의 상태로 되돌린다. 마력만 있으면 별다른 수리 도구 없이도 사용이 가능하다.
‘으음, 그다지 의미는 없군. 드워프들과 상시로 연락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나와 일행이 사용하는 무기는 모두 최고 등급에 이른 것들이다.
대부분 따로 수리할 필요가 없으니, ‘무기 연마’가 당장 쓰일 일은 없어 보였다.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한 후, 드디어 화염의 지옥으로 출발했다.
드워프 왕은 일족의 드워프 백여 명을 뽑아 직접 길을 나섰다.
우리 옆에는 듀에르가가 나란히 걸으며 이것저것 설명해 주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백 년 전에 틀어막은 후에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듀에르가 님?”
휴고는 어느새 듀에르가에게 궁금증을 풀고 있었다.
“그래, 그렇다니까. 이제 그 뒤에 뭐가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 나야 그때 없었으니 모르지만, 당시에는 보통 난리가 아니었다더라고.”
지금 화염의 지옥이라고 부르는 곳은 예전에는 막혀 있지 않았다.
그러다 백 년 전, 그곳에서 화기를 품은 몬스터 무리가 튀어나와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이곳에 살던 드워프들은 모조리 굴 밖으로 쫓겨났다.
몬스터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굴 밖의 엘프 숲까지 침범했다.
결국 드워프와 엘프의 연합이 결성되었고, 큰 피해를 본 뒤에야 몬스터를 퇴치할 수 있었다.
그 후 드워프가 가진 최고의 기술로 통로를 틀어막아 놓은 것이다.
“혹시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때 다 죽어 버렸을 수도 있잖아요?”
“아니야. 그때 죽인 것은 먼저 튀어나온 것들뿐이야. 그 안에는 여전히 많은 몬스터가 있었다고 해. 선봉대를 처치하고 재빨리 밀봉해 버린 거지, 하하.”
듀에르가는 재밌다는 듯 웃었지만, 휴고는 떨떠름한 표정.
이내 내게 고개를 돌려 말을 걸어왔다.
“대장, 우리끼리 괜찮을까요?”
“그래, 넌 그만큼 강해졌으면서 어찌 그렇게 걱정이 많냐? 막상 싸울 때는 겁 없이 잘 싸우면서.”
내 말에 휴고는 씩 웃으며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이야기하는 중에 행렬이 멈추었다.
통로의 앞쪽이 거무튀튀한 광채가 도는 금속으로 틀어 막혀 있었다.
“저게 첫 번째 봉인인가 보죠?”
“응, 맞아. 저걸 뚫고도 아직 두 번 더 뚫어야 해. 혹시 뭐가 나올지 모르니까 조심하고 있어.”
휴고의 질문에 대답한 듀에르가는 길을 뚫는 것을 도울 모양인지 냉큼 앞쪽으로 갔다.
그러더니 등짐에서 드릴을 꺼내 들었다.
“조별로 반복해서 작업한다. 정해진 시간을 잘 지켜라. 괜히 무리하다 장비 부숴 먹지 말고.”
드워프 왕의 외침에 따라 일렬로 선 드워프들이 각자의 장비로 작업을 시작했다.
가가가각-
끼이이이익-
다양한 마찰음이 통로를 가득 메웠다.
귀가 영 편치 못한지 일행의 표정이 구겨졌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물의 정령을 만나러 갈 때 듀에르가의 드릴이 바위를 두부처럼 뚫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통로를 막은 것이 얼마나 단단한지 짐작이 갔다.
‘도대체 뭐로 막아 놓은 거야?’
“한참 걸릴 것 같은데요, 대장.”
휴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한 며칠 걸릴 거야. 편하게 쉬어 둬.”
귀가 아파 편히 쉬기 힘들겠지만, 회귀 전의 기억에 비추어 볼 때 이삼 일은 걸릴 터.
나는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작업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 * *
첫 번째 봉인에서 꼬박 이틀의 시간을 소모했다.
그리고 나서야 반대편으로 지나갈 구멍을 뚫을 수 있었는데.
콰르르르-
콰쾅-!
“부상자는 뒤로 빠져! 일단 구멍을 중심으로 지켜라!”
구멍이 뚫리고 막 드워프들이 넘어가려는 순간, 난리가 났다.
구멍에서 불길이 확 치솟더니, 반대편에서 몬스터들이 습격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