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96화 (96/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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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96화>

화로의 주인은 이곳 드워프들의 왕을 일컫는 표현.

회귀 전 화로의 주인에게 직접 말의 뜻을 들었었는데, 그 덕에 지금 바로 그를 만나러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이 표현을 아는 자는 많지 않다고 했었지. 함부로 남에게 전하지도 않고. 그래서 그 표현을 아는 자라면 왕의 손님으로 인정받는다는 말을 들어 둔 게 다행이군.’

그러니 이곳 드워프의 왕을 바로 만나고 싶다면, 화로의 주인을 찾아왔다 하라며 당시 화로의 주인이 말했었다.

어쨌든 일 단계 계획은 무사히 성공했다.

‘이제 왕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인데…….’

회귀 전과 달라진 부분이 생기면서, 설득하는 데에 꽤 애를 먹을 것 같았다.

‘일단 부딪혀 보자.’

드워프의 안내를 받아 구불구불한 동굴을 나아갔다.

갈수록 열기는 더 심해졌고, 그만큼 길도 복잡해져 갔다.

“이거, 안내 안 받으면 절대로 못 다니겠는데요?”

“그래서 내가 처음에 아무대로나 막 들어온 거야. 어차피 우리끼리 길은 못 찾으니까. 고기 냄새를 깊은 곳까지 피워야 하기도 했고.”

대화를 주고받으며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눈앞에 커다란 공동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낮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들어서 있었는데, 작은 크기임에도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이 대번에 느껴졌다.

“이곳이 우리의 도시야. 왕은 곧 만나게 해 주지.”

드워프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앞장서 걸었다.

한동안 걷던 그는 어느 건물 앞에 이르러 멈추어 섰다.

“여기서 좀 기다리고 있어, 친구.”

드워프는 그 말을 남기고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졸지에 멀뚱히 서 있게 된 상황.

“어, 음……. 이거 그냥 여기 서 있어야 하는 겁니까?”

나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주위엔 어느새 우리를 구경하는 드워프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오오, 큰 인간들이 왔다. 이게 얼마 만이야?”

“킁킁. 왠지 고기 냄새 같은 게 나는데? 인간, 너희 혹시 고기 있냐?”

중구난방으로 떠들어 대는 것은 물론, 손가락으로 몸을 쿡쿡 찔러 보는 자도 있었다.

‘이거 어디 기다릴 곳이라도 안내해 줄 것이지.’

건물 앞에 덩그러니 세워 둔 드워프가 원망스러웠다.

그때 건물의 문이 열리더니, 들어갔던 드워프가 다시 나왔다.

“왕이 부른다. 얼른 들어와.”

그제야 우리는 구경하느라 신난 드워프들을 뒤로하고 안으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커다란 방.

그 가운데 드워프치고 상당히 큰 키에 쩍 벌어진 어깨를 가진 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머리에 단단한 뿔 투구를 쓰고, 양쪽 허리에는 망치와 도끼를 차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그의 입이 열렸다.

“내가 화로의 주인이다.”

나는 그와 마주 앉으며 말했다.

“저는 플레이어 정해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제 동료인 휴고와 루스입니다.”

소개를 마치는 순간, 드워프 왕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안광이 쏘아져 왔다.

“그래, 이름이야 아무렴 어떨까. 내가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화로의 주인이라는 말은 어디서 들었지?”

여차하며 도끼라도 뽑아 들 기세.

하지만 딱히 위축되지는 않았다.

“글쎄요. 어디서 들었느냐가 중요합니까? 제가 그걸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리고 제가 뭐 때문에 왔느냐가 진짜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내 태연한 태도에 적잖이 놀란 듯, 드워프 왕은 나를 관찰하듯 쳐다봤다.

“생각보다 대단한 인간이었군. 내가 경지를 추측할 수 없는 전사라…….”

내 실력이 자신보다 위라는 것까지는 알아본 모양.

드워프 왕은 한결 신중해진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래, 당신 정도 되면 위협은 통하지 않겠지. 그럼 용건을 들어 보지 않을 수 없군. 괜히 피를 볼 필요는 없을 테니.”

말투로 보아 ‘화로의 주인’을 어디서 들었는지 말하지 못하는 바람에 썩 좋은 인상을 주지는 못한 듯했다.

하지만 빠르게 그를 만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니…….

나는 아쉬움은 내려놓고 용건을 말했다.

“우리를 화염의 지옥까지 안내해 주십시오.”

내 말을 들은 드워프 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화로의 주인이라는 표현을 알고 왔으니, 화염의 지옥도 모르고 오진 않았겠군.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인가?”

“그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제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한 일입니다.”

“말 한번 거창하군. 이 세상을 위한 일이란 게 무슨 소리지?”

잠시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던 나는 곧 입을 열었다.

“세상에 재앙이 들이닥친 것은 알고 계시겠지요? 이곳에도 재앙의 기운이 펴졌을 테니.”

“상관없다. 우린 그 정도에 굴하지 않는다.”

드워프 왕이 거친 음성으로 답했다.

그들은 재앙의 기운에 오염된 몬스터에게도 이겨 낼 수 있는 강인함을 가진 종족.

실제로 드워프 왕의 말대로 그들은 재앙에도 굴하지 않고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를 표하며 말을 이었다.

“드워프는 충분히 강하지요. 하지만 세상 자체가 멸망해 버리면, 드워프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막기 위해 화염의 지옥으로 가야 합니다.”

“네 말을 믿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터전에서 한 번 쫓겨나 이곳으로 왔다. 또다시 우리의 터전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일을 벌일 수는 없다.”

역시 설득이 쉽지 않다.

화염의 지옥으로 가는 길은 그들로서도 큰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보니 이해는 갔다.

때문에 회귀 전에는 온갖 희귀 금속을 갖다 바치고, 북쪽과 서쪽의 군소 국가들이 실제로 멸망한 것을 이유로 들어 길을 안내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노르트와 서쪽 군소 국가들을 살려 놓은 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구만.’

아무래도 나로 인해 회귀 전보다 재앙에 의한 피해가 적다.

그러다 보니 그를 설득할 만한 명분이 없었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생각을 굳히고 그에게 말했다.

“그럼 뭐든 원하는 것을 말씀하십시오. 제가 그걸 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화염의 지옥으로 길을 뚫어 주십시오.”

회귀 전, 이곳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게 다행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충분히 해결할 자신이 있었다.

‘아마 헬하운드 무리를 처리하라고 하겠지?’

회귀 전 이들은 재앙에 오염된 헬하운드 때문에 제법 애를 먹고 있었다.

헬하운드는 원래 그다지 강하지 않고 번식력만 뛰어난 몬스터.

드워프들은 심지어 그 수를 조절하며 헬하운드를 식량으로 이용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재앙의 기운이 퍼진 후, 놈들이 달라졌다.

여전히 드워프들이 상대하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강력해졌다.

게다가 원래 뛰어났던 번식력이 너무 높아진 탓에 그 수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었다.

다만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정도는 아니었고,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면 드워프 스스로 처리할 수도 있는 문제.

그러나 번거롭고 귀찮은 사안이기도 했다.

“그럼 가서 드래곤을 죽여라.”

하지만 한참이나 나를 쳐다보다 열린 드워프 왕의 입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왔다.

표정을 보면, 아마도 내가 절대로 해결하지 못할 부탁을 했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당연하게도 내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그냥 팰까? 패면 말을 들을까?’

잠시 과격한 방법을 떠올리는 중에 드워프 왕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 조상은 저 멀리 서쪽에 살던 골드 드래곤의 착취를 피해 도망쳐 왔다. 그놈을 죽여 주면, 무슨 요구를 하든 들어주지.”

그런데 그 말의 내용이 심상치 않다.

왠지 내가 아는 누군가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설마? 노즈도름 얘긴가?’

일단 흥미가 돌았다.

잘하면 쉽게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이야기를 좀 자세히 들려주십시오. 그 골드 드래곤의 이름도 가르쳐 주시고요.”

그 말에 내가 진짜로 드래곤을 잡으러 가려 한다고 생각했는지, 드워프 왕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아마 드래곤이 거론되는 순간 내가 포기하리라 생각했겠지.

머뭇거리던 드워프 왕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조상은 원래 서쪽 산맥에 살았다. 그런데…….”

드워프 왕의 말은 한참을 이어졌다.

요약하자면, 잘살고 있던 그들 앞에 골드 드래곤이 나타났다.

그리고 갖은 수단을 동원해 착취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참다 참다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이곳으로 도망쳤다는 것이 이야기의 끝이었다.

“우리는 삶의 터전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노즈도름을 죽여 우리 일족의 오랜 원한을 갚아 주면,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지.”

울분이 잔뜩 담긴 절절한 목소리.

그러나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노즈도름 이 양반, 어릴 때 사고 장난 아니게 쳤네. 그럴 거면 용혈의 족쇄나 좀 만들어 주고 가지. 쯧. 아니지, 어린 시절의 방황이 있어서 늙어서 올곧은 드래곤이 되었나?’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드워프 왕의 노기 띤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이 우습지?”

순간 아차 했다.

그들에겐 뼈아픈 역사일 테니.

“죄송합니다. 다만 그 부탁은 쉽게 들어 드릴 수 있겠군요.”

나는 살짝 웃어 보인 후 말을 이었다.

“사실…… 노즈도름은 이미 죽었습니다.”

내 말에 드워프 왕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그게 무슨 소리지? 노즈도름이 죽었다니,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그는…….”

나는 노즈도름과 관련하여 드라코리치와의 싸움을 요약해 들려주었다.

“으음, 믿을 수 없다. 그 지독한 놈이 죽다니.”

드워프 왕은 노즈도름의 죽음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지, 중얼거리고만 있었다.

어떻게 해야 그에게 확신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휴고, 망치 좀 줘 봐.”

“망치요? 여기 있습니다.”

나는 휴고로부터 ‘무거운 분노’를 받아 들었다.

[무거운 분노(S. 둔기)]

- 골드 드래곤 노즈도름이 드워프에게 조공받은 망치에 재미 삼아 마법을 걸어 완성되었다. 운석에서 채취한 정체 모를 금속으로 만들어져 사람이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으나, 노즈도름이 경화 마법을 걸어 인간도 사용할 수 있는 무기로 변했다. 압도적인 무게 덕분에 굉장한 파괴력을 자랑한다.

그러자 아이템 창이 떠올랐다.

설명에 나온 드워프가 아마도 지금 눈앞에 있는 드워프 왕의 조상이리라.

나는 드워프 왕의 앞에 무거운 분노를 내려놓았다.

쿠지직-

손에서 놓자 경화 마법이 풀리며 바닥이 부스러졌다.

그 소리에 드워프 왕의 정신이 돌아왔다.

“이게 뭔가?”

“한번 살펴보십시오. 노즈도름의 레어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드워프 왕은 침음을 흘리더니 무거운 분노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가 망치를 살피는 사이 잠시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음, 그러고 보니 전에 루스가 먹은 화정(火精)도 드워프의 화로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는데. 노즈도름 이 양반, 진짜 소싯적에 양…….’

썩 좋지 못한 표현이 떠오르려 해 생각을 멈추었다.

그래도 최후에 자신을 희생하며 큰일을 하고 간 드래곤이 아닌가?

그때 드워프 왕의 입이 열렸다.

“이건 진짜 우리 일족의 솜씨가 맞는군. 이거 참.”

내 말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가 어이없는 표정을 하고 있을 때, 내가 얼른 말을 던졌다.

“노즈도름이 죽었다는 것은 정말 사실입니다. 그리고 제가 하는 일이 세상의 존망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니 길을 열어 주십시오.”

드워프 왕은 한참이나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나 그 끝에 나온 말은 승낙이 아니었다.

“으음, 당신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이 물건만으로 그 드래곤의 죽음을 확신할 수는 없어. 우리가 사람을 파견해 확인해 보겠다.”

나는 살짝 다급해져 표정을 굳혔다.

“그러면 시간이 너무 걸립니다. 그 정도의 여유는 없습니다.”

드워프 왕은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 만에야 입을 연 드워프 왕에게서 새로운 제안이 흘러나왔다.

“그럼 내 다른 부탁을 하나 하지. 그걸 들어주면 화염의 지옥으로 길을 뚫어 주겠다.”

‘회귀 전에도 그렇더니, 진짜 엄청 빡빡하구만.’

내 입장에서는 드워프 왕의 말을 듣는 수밖에 없었다.

동의하는 뜻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자니, 드워프 왕의 입에서 다시 열렸다.

“물을 구해 와라.”

‘또 헬하운드가 아니야?’

이번에도 예상외의 부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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