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93화 (9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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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93화>

[대상과 특별한 유대를 형성합니다. 대상을 선택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 : 에임든, 아슬리]

두 명의 엘프가 모두 대상으로 떠올랐다.

‘에임든.’

먼저 에임든을 선택하자, 계약이 진행되었다.

[‘에임든’과 계약을 진행합니다.]

[대상의 확고한 의지에 따라 ‘계약’이 성립합니다.]

[‘에임든’과 특별한 유대가 형성됩니다.]

에임든과 계약이 끝난 후, 나는 즉시 한 번 더 스킬을 발동했다.

‘계약.’

이번에도 똑같은 과정을 거쳐 아슬리와 ‘계약’을 맺었다.

두 번 다 계약이 실패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이 방법이 맞아.’

사실 엘프를 처음 봤을 때부터 ‘계약’을 써 볼까 하는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곧바로 사용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옳은 판단이었다.

‘계약’의 설명에 보면 대상의 감정과 의사가 스킬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나와 있다.

게다가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계약’을 사용할 때 대상에게 사용 사실이 전달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섣불리 스킬을 사용했다가 반감만 사기보다는 이렇게 호감을 쌓은 후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옳았다.

- 계약을 했으니, 이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거리가 떨어져도 가능하니, 무슨 일이 생기면 이 방법을 통해 연락하면 됩니다.

- 아, 그렇군요. 대단합니다.

- 으음, 신기하네요.

내가 마음으로 말을 건네자, 두 엘프 조손도 직감적으로 사용법을 알았는지 곧잘 대답해 왔다.

계약이 끝나자 에임든이 당장이라도 출발하고 싶어 했지만, 내게는 아직 한 가지 할 일이 남았다.

‘스킬을 빌려와야지.’

생각과 동시에 팔찌를 사용했다.

[스킬 전이가 시전됩니다. 대상을 정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 : 에임든, 아슬리]

‘에임든.’

[스킬 ‘숲은 꿰뚫는 눈’이 전이됩니다.]

에임든에게서 무사히 스킬이 전이되었다.

나는 빠르게 스킬의 정보를 확인했다.

[숲을 꿰뚫는 눈]

: 숲에서 나뭇잎과 가지 사이의 작은 틈으로도 먼 곳의 사물을 인지할 수 있게 된다. 원거리 투사 무기의 명중률 및 사거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괜찮군.’

당장 획기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보유해 두면 언제든 도움이 될 스킬이었다.

게다가 한동안은 계속 숲을 헤쳐 가야 했으니…….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다시 팔찌의 스킬을 발동시켰다.

[스킬 전이가 시전됩니다. 대상을 정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 : 아슬리]

‘아슬리.’

슬슬 이동해야 될 참이라 재빨리 아슬리를 선택하자, 스킬이 전이되었다.

그런데.

[스킬 ‘식수 탐색’이 전이됩니다.]

[식수 탐색]

: 어디서든 식수로 사용 가능한 수원을 찾는다. 물에 해로운 것이 섞일 경우 구분해 낼 수 있다.

‘후우, 이거 참. 할 말이 없군.’

이건 라라에게서 얻은 쾌창술보다도 한 열 배쯤은 쓸모없어 보였다.

확실히 영웅이나 플레이어에게 사용하는 것보다, 이 세계의 일반인에게 사용하는 쪽이 제대로 된 스킬을 뽑을 확률이 떨어졌다.

도대체 왜 이런 스킬을 가지고 있는 거지?

‘아슬라…… 어릴 때 물이라도 잘못 마셨나?’

이곳 남쪽 지방은 강도 많이 흐르고 수자원도 풍부하다.

아슬라가 어째서 이런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말없이 스킬을 빌려왔으니, 직접 물어볼 입장도 아니었다.

사실 이제부터는 영웅들에게 스킬을 얻기 힘들어진 상황이었다.

그러니 당장 쓸모없어 보이긴 했지만, 엘프에게서 성공적으로 스킬을 얻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또 기회가 있겠지. 세상에 인간 외의 지성체는 제법 많으니까…….’

아쉬운 마음을 애써 달랠 때, 엘프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아슬리, 너는 마을로 돌아가거라.”

“알았어요. 어쩔 수 없죠. 가볍게 따라나설 길이 아닌 것 같으니까요.”

보아하니 두 엘프는 역할을 이미 나눈 듯했다.

나는 동행하기로 결정된 에임든을 보며 말했다.

“이제 출발하죠.”

“네, 일단 드워프들의 땅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근데…….”

에임든이 말꼬리를 흐렸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세요?”

내가 나이 많은 엘프에게 물었을 때, 그는 한동안 머뭇거린 뒤에야 대답해 왔다.

“목적지까지 일직선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구원자님께서도 길잡이를 구하신 것을 보면, 이곳 숲에서 길 찾기가 어려운 것은 알고 계실 겁니다. 저희 엘프들은 어머니 나무의 기운을 읽어 길을 찾는데, 그러자면 자연스럽게 다른 엘프 마을을 거쳐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점은 알고 있습니다. 정확히 안내만 해 주면 됩니다.”

엘프는 다시 한번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다른 마을에 들르는 김에 그곳의 어머니 나무도 좀 고쳐 주셨으면 해서…….”

잠시 고민했지만, 금방 결정할 수 있었다.

“그러지요.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요. 대신 최대한 가까운 경로를 선택해서 가 주셔야 합니다.”

“예,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가장 빠른 경로로 안내하겠습니다.”

내가 흔쾌히 대답하자 에임든은 굉장히 기뻐 보였다.

‘어차피 어머니 나무 근처를 지나야 할 테니, 이참에 엘프들에게 호감을 쌓아 두면 좋겠지.’

차후에라도 ‘계약’을 맺어 스킬을 얻기 위해서는 미리 은혜를 베풀어 둘 필요가 있었다.

세계의 정수로 어머니 나무를 정화하는 데 드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 것도 한몫했고.

“그럼, 잘 다녀오세요. 할아버지. 구원자님도 힘내세요.”

아슬리의 응원을 받으며 우리는 길을 출발했다.

이곳의 숲은 마치 지구의 아마존처럼 열대 우림을 떠오르게 했다.

빽빽한 나무들 때문에 도통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습도가 아마존만큼 높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으음, 평소에 숲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많이 바뀌네요. 뭔가 답답하고 무서운 느낌입니다.”

“특별한 기운이 흘러서 그럴 거야. 시야가 좁은 것은 나무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그 탓에 주변의 기척을 감지하기도 훨씬 어려워.”

열심히 달리면서 휴고와 대화 중이었는데, 루스도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여기 이상해. 나무 냄새가 전부 뒤섞여서 구분이 잘 안 돼.”

루스의 감각으로도 역시 파악이 쉽지 않은 모양.

그나마 ‘숲을 꿰뚫는 눈’을 얻는 덕인지, 나는 상당히 먼 곳까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달리다 보면 방향 감각이 상실되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길잡이는 꼭 있어야 해.’

일행이 영 답답해하는 것과 달리, 앞장선 에임든은 거침이 없었다.

어머니 나무에서 뿜는 숲의 기운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인 듯했다.

에임든의 뒤를 따라 한 시간쯤 달렸을 때, 갑자기 마음속으로 뜻이 전해져 왔다.

- 구원자님, 큰일 났어요!

그것은 조금 전 해어졌던 아슬리였다.

- 무슨 일입니까?

- 마을에 이상한 자들이 나타났어요. 그러더니 숲을 죽이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잠깐, 정지합시다.”

내 기색이 심상치 않아 보였는지, 일행은 말없이 내 행동을 기다렸다.

- 진정하고 자세히 설명을 해 보세요. 숲을 죽인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흥분한 아슬리를 다독이며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 붉은 옷을 입은 자들과 다른 사람들이 여럿 나타나더니, 숲에 이상한 탑을 세웠어요. 그 탑이 숲을 다 빨아들이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아슬리의 말 중 가장 거슬리는 것은 붉은 옷이라는 단어였다.

- 혹시 온몸을 붉은 옷으로 두르고 있습니까? 얼굴까지?

- 네, 피부가 전혀 보이지 않게 붉은색의 천으로 몸을 감쌌어요. 아아, 숲이 다 죽어 가고 있어요!

일단 황가수호대는 확실한 것 같았다.

그리고 놈들이 나타났으면 소환 영웅들도 함께할 터.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다.

되돌아가 엘프들을 도울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정수를 구하기 위해 달릴 것인가.

나는 결정을 잠시 유보한 채,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아까 탑이 숲을 빨아들인다고 했죠? 어찌 된 일인지 자세히 설명 좀 해 주세요.

- 숲 한쪽의 기운이 이상해서 가 봤더니, 불길한 느낌의 탑이 있었어요. 그 탑이 주변 숲의 기운을 모조리 흡수했어요. 나무와 풀은 물론, 가까이 다가가면 몬스터와 짐승들까지 탑에 흡수되었어요. 그리고 계속 그 범위를 넓혀 가고 있어요. 머지않아 마을을 다 집어삼킬 것 같아요.

거기까지 설명을 들었을 때,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수도에서처럼 기운을 빨아들이는 건가?’

- 탑이 기운을 빨아들이기만 합니까?

- 탑 꼭대기에서 붉은빛이 북쪽으로 쏘아지고 있었어요. 흡수한 기운을 쏘아 내는 것 같은데,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도와주세요, 구원자님. 숲이 다 죽게 생겼어요.

마지막으로 궁금하던 것을 확인하자, 행동 방침이 결정되었다.

나는 에임든에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의 마을이 침공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빨리 돌아갑시다.”

에임든은 깜짝 놀란 표정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내용보다 마을에 빨리 돌아가는 것이 급하다고 여긴 모양.

“감사합니다, 구원자님.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그리고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달리면서 휴고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장, 어떻게 된 일입니까?”

“황가수호대와 영웅이 나타나 이상한 탑을 엘프 마을 근처에 세운 모양이야. 그게 수도에서처럼 근처의 생명을 모조리 흡수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운을 북쪽으로 쏘아 보내고 있어.”

내 설명에 휴고의 표정이 단박에 굳어졌다.

“힘을 흡수해 관리자 놈에게 보내는 걸까요? 그럼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겠군요.”

“그래. 그래서 돌아갈 수밖에 없어.”

상황 설명을 듣자 마음이 급해졌는지 에임든이 걸음을 더 서둘렀다.

우리는 한 시간이 채 안 되어 정화해 놓은 어머니 나무에 당도했다.

‘지금 속도면 조금만 더 달리면 마을 근처에 도착하겠군. 미리 준비를 해야겠어.’

그 탑이 수도에서 관리자가 한 짓처럼 생명체를 모조리 흡수하는 것이라면, 가까이 다가가 싸우기는 쉽지 않다.

정확한 것은 가서 확인을 해 봐야 하겠지만…….

‘역시 멀리서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달리는 동안 고민 끝에 탑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정했다.

‘원혼의 거울을 사용한다.’

그러나 생각한 대로 결과를 이끌어 내려면 시간을 잘 계산할 필요가 있었다.

원혼의 거울이 축적할 수 있는 것은 30분 이내에 받은 충격뿐이기 때문.

그래서 아슬리에게 다시 연락했다.

- 아슬리 님, 혹시 탑이 정확히 어디 있습니까?

- 처음에는 마을 근처 숲에 있었는데, 지금은 마을을 지나서 어머니 나무 쪽으로 더 다가왔어요. 탑을 옮겨서 다시 설치하는 것 같아요. 이러다가 온 숲이 빨려 들어가겠어요.

아슬리의 다급한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 거의 도착해 가니, 우선 사람들을 피신시키고 침착하게 기다리세요. 일단 제가 도착만 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아슬리를 다독인 후, 나는 생각해 놓은 방법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먼저, 달리면서 여의검을 뽑아 들어 옆쪽을 겨누었다.

그리고.

‘멸세폭.’

콰콰콰콰콰쾅-!

다짜고짜 스킬을 사용하자 일행이 깜짝 놀라 멈춰 섰다.

“그냥 계속 달려!”

폭음에 묻히지 않도록 크게 소리 질렀다.

그러자 일행들도 내게 무슨 생각이 있음을 눈치챘다.

잠깐 의아한 표정을 짓던 에임든이 다시 앞장서자 휴고와 루스도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콰콰콰콰콰쾅-!

다시 한번 멸세폭의 폭음이 숲을 울렸다.

‘이런 식으로 일부러 축적시키는 건 거의 처음이군.’

그 생각과 함께 원혼의 거울을 흘끔 쳐다봤다.

전투 중에 의식적으로 축적시킨 적은 있지만, 이렇게 미리 작정하고 힘을 모은 적은 없었다.

‘기대되네. 그나저나 몸이 얼마나 버티려나.’

지금도 어깨 위에서 가느다란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근육이 조금 상한 것 외에 큰 부상은 없었다.

처음 멸세폭을 익혔을 때, 두 번 연속으로 사용하고 기절했던 것과는 천지 차이였다.

틈틈이 포션을 마셔 가며 멸세폭을 다섯 번 정도 사용하자, 몸에서 뻐근한 근육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음, 그래도 후유증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는군. 스탯이 오르는 만큼 반동도 커지니 어쩔 수 없는 건가?’

콰콰콰콰콰쾅-!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멸세폭을 사용했을 때, 숲 저편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에임든도 그것을 느꼈는지 걸음을 멈춘 상태.

일행도 뒤따라 달리는 것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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