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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92화 (9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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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92화>

하지만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놈이 궁극 진화를 했을 때 사용하는 스킬임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몸은 이제 예전보다 훨씬 강한 내구도를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놈이 되돌린 폭발과 멸세폭의 반동에도 무거운 상처는 없었다.

‘점멸.’

나는 폭발을 뚫고 다시 한번 놈의 뒤로 이동했다.

그리고.

‘원혼의 거울.’

번쩍-!

검푸른 광선이 아나투스의 가슴으로 향했다.

“커억-!”

이번에는 놈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공격을 되돌려 받았던 내가 이렇게 멀쩡하게 움직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 같았다.

광선에 적중된 놈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놈의 죽음을 확인하고 고개를 돌렸을 때, 전투는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루스는 이미 포이즈너를 처치한 뒤였다.

다만 불에 탄 놈의 사체 옆에 목이 잘린 무언가가 더 있었는데.

‘저건…… 호문쿨루스인가? 루스와는 좀 다르게 생겼군.’

연신 밀리던 포이즈너가 ‘호문쿨루스 소환’을 사용한 듯했다.

하지만 방금 소환된 호문쿨루스가 엄청나게 성장한 루스를 이길 리 만무했다.

인간의 모습을 한 호문쿨루스는 루스의 클로에 당했는지 목이 댕강 잘려져 있었다.

그사이 포이즈너와 호문쿨루스를 처치한 루스는 이미 휴고에게 가담해 있었다.

그쪽도 거의 끝나 가긴 마찬가지였다.

20명이 넘던 황가수호대는 모조리 죽어 있었고.

콰콰콰콰쾅-!

그 피를 바탕으로 휴고의 멸세폭이 연이어 작렬하고 있었다.

크아아악-

결국 피하지 못하고 멸세폭에 적중당한 마위니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 순간.

콰직-

뒤에서 나타난 루스가 놈의 머리를 박살 내 버렸다.

전투는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아군의 피해는 전무.

시간도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소환 영웅과 황가수호대의 주검을 하나씩 확인하며 아이템을 추출했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붉은 보석만 연이어 나왔다.

그러는 동안 의문이 증폭되었다.

‘아무래도 이상한데. 왜 저런 조합으로 보낸 거지? 관리자 놈에게 무슨 제약이 있는 건가? 아니면 아직 힘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해서인가?’

영 미심쩍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한시라도 빨리 정수를 완성하는 것.

자칫 산만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부스럭-

전투가 끝나 조용하던 장내에 무슨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린 아지트의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비루한 태도로 뒷걸음질 치는 남자가 보였다.

“넌 뭐냐?”

남자는 내 말에 대답도 못 한 채, 몸이 얼어붙은 듯 걸음을 멈췄다.

그 모습이 더욱 의심스러웠다.

“너 뭐 하는 놈이냐고?”

남자를 향해 한 걸음 내딛던 순간, 아지트 안쪽에서 진형기가 나타났다.

더 이상 폭음이 들리지 않자 전투가 끝났음을 알아채고 나온 듯 보였다.

“이제 끝났소? 어? 저놈 저거 시장인데, 저놈이 왜 여기 있소?”

남자를 발견한 진형기가 의아한 듯 물어 왔다.

‘음, 저놈이 시장이었군. 혹시 놈들이 시장을 닦달해서 내 행적을 파악한 건가?’

전후 파악이 확실히 되지 않았지만, 어차피 시장의 행보야 내게는 하등의 상관도 없는 일.

나는 진형기를 돌아보며 말했다.

“글쎄. 적들 뒤에 숨어 있었던 모양인데. 전투가 끝나고 도망치려는 걸 잡았다.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아, 그렇소? 그것 참 잘되었군.”

진형기는 느물거리는 표정을 짓더니 시장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그리고 시장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데.

“흐흐, 우리 할 이야기가 참 많아. 그지?”

진형기는 시장을 구석에 있는 방으로 끌고 사라졌다.

제국 수도가 붕괴하였으니, 시장의 줄도 끊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시장 정도는 진형기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을 터.

그때 휴고가 피를 닦으며 내게 다가왔다.

“대장, 여기 계속 있습니까?”

당장 오늘 또 적이 나타날 것 같지는 않았지만, 피바다에서 지내기는 불편했다.

수십 명이 죽어 나간 상태라, 청소를 끝내면 길을 나서야 할 시간이 될 것 같았다.

“나가도록 하자. 여기서는 제대로 잘 수도 없을 것 같다.”

“응, 주인 얼른 나가자. 여기선 밥맛 떨어지겠어.”

네 밥맛이 떨어질 리가…….

잠시 후 진형기와 인사를 나눈 나는 일행을 이끌고 밖으로 나섰다.

* * *

별다른 일 없이 하루가 지났다.

다음 날, 약속 장소에는 엘프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 못 보던 인물이 하나 더 서 있었다.

“한 명 더 왔네요, 대장.”

그를 보며 휴고가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역시나 엘프답게 단단한 근육질 체형의 남자 엘프였다.

다가가자 남자 엘프가 말을 걸어왔다.

“당신이 어머니 나무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한 사람인가? 귀한 치료 약을 가지고 있다지?”

그는 소개도 없이 대뜸 용건부터 말했다.

엘프라는 종족이 원래 인간에게 건조한 태도를 보이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만큼 다급한 상황인 것 같았다.

굳이 시간 끌 것 없다는 생각에 엘릭서를 꺼내 들며 말했다.

“그래, 이게 당신들에게 필요할지도 모르지. 그런데 내 생각에는 이것보다 내가 가서 직접 보는 게 더 효과가 있을 거야.”

“다른 방법도 있다는 소리는 들었다. 그게 뭐지? 내가 볼 수 없나?”

다급한 엘프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세계의 정수를 보여 줘?’

이전과는 달리 이곳에는 엘프를 제외하면 우리 일행뿐.

딱히 못 보여 줄 것도 없었다.

하지만 딱히 내가 급한 것도 아닌 바에야 굳이 모험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방법은 어머니 나무 앞에 가서 보여 주지.”

내 대답에 엘프의 입매가 꿈틀거렸다.

불만이 있는 듯했지만, 딱히 화를 내지는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누가 급한 상황인지 정도는 알겠지.’

나도 길잡이가 필요하지만, 엘프에게 어머니 나무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

그들의 입장에서 내게 함부로 대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결국 남자 엘프의 입이 열렸다.

“알겠다. 어머니 나무로 가지. 당신이 어머니 나무를 고칠 수 있다면, 내가 직접 길을 안내해 주겠다.”

“좋아, 그럼 어서 출발하지.”

그들의 마을까지는 거의 하루를 꼬박 달려야 하는 거리였다.

그동안 많지는 않지만 그들과 대화가 오갔고, 덕분에 나는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남자 엘프는 마을에서 제일 나이 많은 어른이었다.

이름은 에임든.

나이는 무려 백 살이 넘었다.

“헉! 완전 동안이네요. 신기하네.”

그걸 알고 휴고가 깜짝 놀랐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다.

엘프들의 수명은 백 년이 좀 넘는다.

이야기책에 나오는 엘프처럼 장수하지는 못하지만, 대신 젊음이 몹시 길다.

죽기 직전까지 신체 노화가 거의 없는 것이다.

‘그것도 아마 어머니 나무의 영향이지.’

그리고 엘프 여자는 아슬리.

에임든의 손녀였다.

사안이 워낙 무거워 마을 최고의 어른인 에임든이 직접 나선 것.

“치료 약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마을에서 길을 가장 잘 아는 것도 나야.”

하루를 같이 지내며 식사도 같이하는 등 조금 친해지자 에임든이 한 말이었다.

‘나이 많은 엘프라면 길잡이로 최고지. 어차피 나이 많다고 늙는 것도 아니고.’

노화는 없는데 경험은 쌓이니, 에임든을 길잡이로 삼을 수 있다면 내게는 좋은 일이다.

우리는 숲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밤잠까지 줄여 가며 움직인 끝에 엘프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나무와 흙을 이용해 만든 아담한 집들이 옹기종기 늘어서 있었다.

“오, 이곳이 말로만 듣던 엘프 마을! 뭔가 신비한 분위기가 있네요.”

휴고가 신비한 정취에 감탄한 모양이지만, 에임든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아직 더 가야 하니 멈추지 말도록.”

그러고는 마을을 지나 계속 달려 나갔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계속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나무가 마을에 있는 게 아니었나 보군.’

회귀 전에도 엘프 마을에 직접 들른 적은 없어 몰랐던 일.

“에임든, 어째서 어머니 나무 근처에 살지 않는 거지? 너희 엘프들은 어머니 나무의 기운을 받아 살아가는 것 아니었나?”

“어머니 나무의 기운을 받아야 살 수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어머니 나무가 내뿜는 숲의 기운은 너무 강해. 그 기운에 직접 노출되면 오히려 좋지 않다.”

하긴 인간도 산소가 없으면 죽지만, 산소가 너무 과하면 또 탈이 난다.

‘과호흡 증후군이던가, 뭐 그런 병도 있었지.’

마을을 지나서도 한 시간을 넘게 달린 후에야 드디어 에임든이 멈춰 섰다.

어른 두 명이 팔을 벌려야 껴안을 수 있을 만한 나무가 에임든의 앞에 나타났다.

원래 푸르렀어야 할 잎에는 군데군데 검은 물이 들어 있었다.

‘역시 재앙의 기운이 맞다.’

어머니 나무는 오염된 채로도 영험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으음, 신기한 느낌이야.”

“그래, 뭔가 오묘하네.”

루스의 중얼거림에 휴고가 대답하는 것이 들렸다.

그때 에임든이 내게 다가왔다.

“잠시 쉬게 해 주고 싶지만, 상황이 급해. 바로 시작해 주었으면 좋겠군.”

그나마 친분이 생긴 덕인지, 에임든은 조금 미안한 말투로 얘기했다.

“괜찮아. 바로 시작하지. 일단 엘릭서를 쓰기 전에, 다른 방법부터 사용해 볼 거야. 그쪽이 더 효과가 있을 확률이 높아. 괜찮겠지?”

“뭐가 되었든 상관없다. 어머니 나무만 치료할 수 있다면.”

간절하기까지 한 말에 나는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세계의 정수를 꺼내 들었다.

“헉! 그, 그것은 무엇인가?”

세계의 정수에서 뿜어진 상서로운 기운에 에임든이 놀라 물어 왔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세계의 정수를 든 채 어머니 나무로 다가갔다.

‘정화해라.’

속으로 주문을 외우듯 빌며 손에 닿을 듯 다가갔을 때.

우우웅-

세계의 정수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세계의 정수에서 푸른빛이 한 가닥 뻗어 나가 어머니 나무에 이어졌다.

우웅- 우웅- 우웅-

세계의 정수는 마치 수액을 주입하듯 어머니 나무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니 나무에 물들었던 검은 기운이 씻겨 내려갔다.

그리고 한참 후.

세계의 정수에서 푸른빛이 거두어졌다.

그때 어머니 나무는 신비로운 기운을 뽐내고 있었다.

‘완전히 회복되었다. 근데…….’

내 예상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

어머니 나무의 뿌리로부터 다시 조금씩 재앙의 기운이 흡수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화해서는 답이 없겠는데.’

그때 에임든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구원자님이십니까?”

에임든은 태도도 말투도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엘프에게도 구원자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걸까?

혹시 물었다가는 구구절절 전설을 떠들 것 같아 나는 질문을 아꼈다.

“그렇게 불리고 있긴 한데, 엘프에게도 그 호칭으로 불리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군요.”

에임든이 공손한 태도를 보이니 나도 말투를 달리했다.

어쨌든 굉장히 연장자이기도 했고.

“아! 역시 구원자님이 맞았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이제 걱정할 것이 없군요.”

“헉! 정말 당신이 구원자님이라고요? 진짜예요?”

에임든과 아슬리가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원하는 말을 해 줄 수 없었다.

“어머니 나무는 당장 다 치료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자 에임든이 깜짝 놀라 되물어 왔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가 보기엔 깨끗이 나은 것 같습니다만.”

“뿌리 쪽을 잘 살펴보세요. 땅에 있는 재앙의 기운이 뿌리로 다시 흡수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나마 어머니 나무가 있어서 이곳이 이 정도라도 유지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북쪽이나 서쪽보다 이곳의 몬스터들은 비교적 오염이 덜했다.

아마 어머니 나무가 재앙의 기운을 대량으로 빨아들인 것이 그 원인인 것 같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구원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자, 그는 내게 모든 걸 맡겨 버린 듯 간절하게 물어 왔다.

‘답은 딱 하난데.’

내가 세계의 정수를 모두 모으는 것.

그리고 캐서린을 만나 일의 전말에 대해 듣는 것이다.

재앙을 완전히 해결할 방법도, 관리자를 처치할 방법도 그때에서야 확실히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제가 하려는 일이 그것입니다. 화염의 지옥으로 가려는 이유도 재앙을 확실히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일단 길을 안내해 주세요, 에임든.”

어머니 나무가 다시 오염될 거라는 말에 망연자실하던 에임든은 내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럼 화염의 지옥에 다녀오면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까?”

“확답할 수는 없지만, 제가 아는 길은 그것뿐입니다.”

“으음, 알겠습니다. 그럼 즉시 길을 나서지요.”

에임든은 당장이라도 출발할 듯한 자세였다.

하지만 나는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아직 할 것이 남았지. 잘 되어야 될 텐데.’

나는 에임든과 아슬리에게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에임든 님, 아슬리 님. 제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어머니 나무를 살릴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하겠습니다.”

에임든이 냉큼 대답해 왔고, 아슬리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한 가지 기술이 있습니다. 그것을 당신들에게 사용하려고 합니다. 해가 되는 것은 없을 테니, 수락해 주십시오.”

그들이 조금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짓는 동안 나는 스킬을 발동했다.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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