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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88화 (88/149)

 # 88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88화>

“캐서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캐서린을 보자 반사적으로 질문을 내뱉었다.

“시간 없다고! 진화부터 빨리 시켜!”

그러나 그녀의 호통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진화를 시켰다.

‘영웅 진화.’

코인을 바닥까지 긁어 사용한 끝에 캐서린이 황금빛에 휩싸이며 진화했다.

진화한 캐서린의 몸에서는 한결 더 강한 기운이 흘렀다.

“남은 시간 15초…….”

하지만 여전히 황제의 카운트다운은 진행 중이었다.

그에 시선이 자연스럽게 캐서린에게로 돌아갔다.

‘어떻게 할 셈이지? 그리고…….’

나는 할 말이 태산이었지만, 캐서린에게 물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표정이 너무 급박했기 때문이었다.

진화가 끝나자, 캐서린은 부리나케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았다.

그리고 온몸에서 신성력을 내뿜으며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자 하늘에서 한 가닥 황금빛이 쏘아져 캐서린의 몸으로 연결되었다.

캐서린은 그 자세로 계속 기도를 이어 갔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갈수록 초조함이 극에 달했지만, 나는 가만히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주인…….”

옆에서 루스가 연신 소맷자락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나는 버티고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남은 시간 9초…….”

그렇게 카운트다운이 계속 진행되어 채 10초도 남지 않았을 때.

캐서린의 몸에서 황금빛이 사방으로 확 하고 퍼져 나갔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정지했다.

카운트다운을 하던 황제의 입도, 내 소매를 잡은 루스의 손길도.

심지어 내 몸조차도.

그 무엇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직 한 명.

기도를 하던 캐서린만이 꿇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나 내 곁으로 다가왔다.

“휴우- 진짜 아슬아슬했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내 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잘했어요, 해수 님. 정말 잘했어요. 고생 많았어요.”

무언가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목소리였지만, 궁금함이 너무 극심해 답답하기만 했다.

‘빌어먹을! 왜 말이 안 나오는 거야!’

몸을 꼼짝도 할 수 없는 만큼,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내 마음을 다 안다는 표정으로 캐서린이 나를 마주 보았다.

“답답할 거란 것은 알아요. 하지만 모든 것을 설명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하네요.”

그러더니 휴고와 루스를 내 바로 옆으로 끌고 왔다.

그리고 마력을 불어넣어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참. 이 몸에 없는 기능이라 그런지, 엄청 귀찮네. 술식을 완전히 새로 짜야 되잖아!”

툴툴거리던 그녀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로 내게 말을 건넸다.

“이제 저놈이 신격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내려왔어요. 그 말은 ‘관리자’의 권능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이제 놈을 죽일 수 있어요.”

그러고는 마법진을 그리는 것이 힘에 부치는지,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닦아 가며 말을 이었다.

“아마 강림하자마자 힘을 회복하기 위해 무슨 수작을 부릴 거예요. 그래서 당신과 일행을 빨리 이동시켜야 해요. 그래서 이동을 위해 마법진을 그리는 거죠.”

‘시간도 멈췄는데, 그냥 저놈을 죽여 버리면 안 되나?’

나는 원래 가지고 있던 궁금증에 새로운 궁금증 하나가 더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사이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캐서린이 말해 왔다.

“저는 지금 ‘희생’의 마법을 사용한 상태예요. 이 몸의 생명을 희생해서 시간을 잠시 멈춰 둔 거죠. ‘희생’ 마법은 당연히 신성력을 기반으로 해요. 굉장히 숭고한 정신력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술법이죠. 그러니 제가 누굴 죽이려 들면, 마법이 깨어진답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천신 강림’은 그리 쉽게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요.”

‘혹시 내 마음을 읽나? 들리나, 캐서린?’

혹시나 해서 속으로 물어봤지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

캐서린은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갔다.

“해수 님, 지금까지는 진짜 잘해 왔어요. 100점 만점에 120점이에요. 노르트까지 구할 줄은 나도 몰랐거든요. 하지만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적이 이제야 링 위로 올라왔으니까요.”

적이란 아마도 ‘강림’했다는 관리자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놈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이고, 결국 내가 놈을 죽여야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말이었다.

“시간이 다 되어 가니 요점만 말할게요. 세계의 정수를 모으세요. 정수가 완성되면,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어요. 그때는 모든 것을 이야기할 만큼 시간이 충분할 거예요.”

그 말과 함께 마법진을 다 그린 캐서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쪽으로 가세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죠? 한 번 해 봤잖아요.”

‘역시 내가 회귀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건가?’

싱긋 웃은 그녀는 내 의문과 상관없이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이제부터 관리자 놈이 갖은 수를 다 써서 당신을 방해할 거예요. 놈이 모든 힘을 회복하기 전에 정수를 완성해야 해요. 아 참! 이제 영웅 소환은 웬만하면 하지 마세요. 놈이 작정하고 수작을 부릴 수도 있으니까요. 놈이 이곳으로 내려온 이상, 놈이 직접 손댄 것은 절대로 믿어서는 안 돼요. 상태창도 신경 쓰지 마세요. 이만큼 성장했으면 상태창이 이상하단 것은 진작에 알았겠지만요.”

빠르게 떠드는 캐서린의 말을 대부분 정확히 알아들은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영웅 소환과 상태창을 놈이 만든 건가? 뭔가 대충대충이다 싶더니……. 근데 그놈이 도대체 누구냐고? 놈의 목적은 뭐고?’

“대신 팔찌를 믿어요. 그건 내가 직접 만든 거니까 언제든 사용해도 좋아요. 아, 시간이 다 됐네. 또 봐요, 해수 님. 당신은 분명 이겨 낼 거예요. 믿어요!”

내가 아무리 마음속으로 궁금한 것을 외쳐도 그녀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 순간 시간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남은 시간 8초, 7초…….”

황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순간.

풀썩-

캐서린의 몸이 쓰러졌다.

‘희생’ 주문이 끝나는 순간, 멈춰 있던 시간에 대한 대가로 그녀의 숨이 끊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발밑에 그려진 마법진이 발동했다.

우우웅-

황금빛이 퍼지더니, 마법진 위에 있던 나와 일행의 몸이 어딘가로 이동되었다.

“어, 어? 이게 뭡니까?”

“주인, 여기 어디야?”

영문을 전혀 모르는 녀석들은 깜짝 놀란 상태.

여기가 어딘지 모르기는 나도 마찬가지라 얼른 주위를 살폈다.

저 멀리, 제국의 수도가 아스라이 보였다.

“수도 밖으로 이동된 것 같다.”

“그 황제가 무슨 짓을 한 건가요? 대장이 소환한 영웅은 어디 갔습니까?”

시간이 멈춘 동안의 일은 나와 캐서린만이 아는 듯, 휴고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어 왔다.

“캐서린, 그러니까 소환 영웅이 시간을 잠시 멈췄다.”

“그, 그게 무슨?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근데 영웅들은 적 아니었습니까?”

막 휴고의 질문에 대답하려는 찰나.

번쩍-!

하늘에서 새빨간 빛이 수도로 내리꽂혔다.

“주, 주인……. 안 좋아, 안 좋아…….”

그 순간 루스가 내 소매를 연신 잡아당겼다.

안 좋다는 말만 반복하는 루스의 시선은 수도 쪽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무엇이 안 좋은지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느끼고 있었다.

무언가 아주 불길한 일이 수도에서 벌어지려 하고 있음을.

“일단 이동하자.”

“어디로 갑니까, 대장?”

“남쪽으로 간다.”

막 일행을 이끌고 수도를 등진 채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였다.

등 뒤에서 불은 빛이 번쩍 하고 일었다.

순간 불길한 느낌이 극으로 치달았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수로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도저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황성 어림에서 시작한 붉은 빛이 서서히 범위를 넓혀 가고 있었는데, 그 빛에 닿은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런 미친!”

내가 놀라 욕설을 내뱉는 와중에도 그 현상은 계속되고 있었다.

건물이 박살 나 무너져 내리는 것은 기본.

살아 있는 것들은 붉은빛에 닿는 순간, 물이 스펀지에 흡수되는 것처럼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너무 멀어 들리지는 않았지만, 단말마가 끝없이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 눈으로 느껴질 정도.

‘설마, 흡수하는 건가?’

“모조리 잡아먹히고 있어. 주인, 얼른 도망가자!”

“대장, 저게…… 저게 도대체 뭡니까?”

나는 루스의 말대로 얼른 남쪽을 향해 달리며 일행에게 얘기했다.

“‘관리자’라는 놈이다. 놈이 바로 우리의 진짜 적이야. 놈이 힘을 회복하기 위해 무슨 수작을 부릴 거라더니, 수도를 통째로 집어삼킬 줄이야…….”

진짜 예상도 못 한 일이었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이기에 힘을 회복하는 데 저만한 짓을 벌이는 걸까?

“대장,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걸 정말 우리가 막아야 하는 겁니까?”

휴고는 걱정이 많은 듯 진처리 치며 물어 왔다.

하긴 수도가 통째로 흡수되는 것을 보았으니 걱정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캐서린이 알려 준 방법이 있었다.

“너무 불안해하지 마라, 휴고. 방법은 있다. 세계의 정수를 모두 모으면, 놈을 처치할 수 있어.”

나도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일행에게 불안감을 내비칠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캐서린이 한 말을 그대로 주워 섬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효과가 없지는 않았는지, 휴고의 표정이 조금 나아졌다.

뭔가 억지로 웃어 보이려 노력하는 표정으로 휴고가 말했다.

“대장만 믿습니다.”

“그래, 어서 가자. 저게 어디까지 퍼질지 모르니, 여길 얼른 벗어나야 해.”

“맞아, 맞아. 주인, 얼른 가자!”

우리는 재촉하는 루스를 따라 얼른 달리기 시작했다.

방향은 남쪽.

목표는 남쪽에 웅크리고 있을 나머지 재앙의 편린이었다.

* * *

수도에서의 일이 있은 후 시간이 꽤 지났다.

그동안 우리는 빠르게 남하하고 있었다.

지금은 며칠 전 들른 도시에서 구한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도시에서는 아직 수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잠시 고민을 했었지만 수도의 소식을 전해 봐야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아, 결국 마차만 구해 빠져나왔다.

“주인, 우리 또 언제 도시에 가?”

루스의 질문.

입맛을 다시는 것이, 녀석은 도시에 들어가 음식다운 음식을 좀 먹고 싶은 것 같았다.

하지만 또다시 도시에 들를 시간은 없었다.

“글쎄다. 이제 중간에 도시에 들를 계획은 없는데? 한 이틀이면 블룸폰테인에 도착할 거야. 조금만 참아.”

일단 목적지로 삼은 곳은 수많은 남부 도시 국가 중 하나인 블룸폰테인이었다.

목적지를 언급하자, 휴고가 궁금한 게 있는지 질문을 해 왔다.

“대장, 남쪽에는 왜 제대로 된 국가가 없습니까? 원래 제국이 방파제로 삼기 위해 국가를 사방에 배치한 것 아니었습니까?”

휴고의 궁금증은 당연했다.

동서남북 사방 중 유일하게 남쪽에만 ‘국가’라고 할 만한 규모의 단체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굳이 따지면 ‘도시 국가’ 정도.

수많은 도시들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굳이 규모를 키우지 않아도 버틸 수 있기 때문이야. 게다가 제국에서 오히려 규모가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지. 필요가 없었거든.”

“남쪽에도 몬스터 지대가 있지 않습니까? 놈들을 막으려면 군대가 필요할 텐데요?”

“남쪽에도 인간이 개척하지 못한 지역이 있긴 하지만, 그곳에는 따로 주인이 있어. 그래서 몬스터들이 제국을 침범하지 못해. 그러다 보니 남쪽에는 따로 방파제를 만들 필요가 없었지.”

“주인이요? 또 무슨 드래곤이라도 사는 겁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드래곤은 아니지만, 이쪽도 소설책의 단골손님이긴 하지. 엘프다. 그리고 깊숙한 곳엔 드워프도 있어.”

“예에?”

휴고가 어이없어하는 찰나, 마차가 급히 멈춰 섰다.

“주인, 앞에 뭐가 있어.”

마차를 몰던 루스가 무언가 낌새를 느끼고 급히 마차를 세운 것이다.

“뭐, 몬스터라도 나왔나?”

휴고와 내가 돌아보며 묻자 루스가 얼른 대답했다.

“으음, 아직 냄새가 옅은데……. 앗! 그놈들이다. 황가수호대! 다가오고 있어!”

처음에는 헷갈려 하던 루스는 잠깐 시간이 지나자 대상의 정체를 파악했다.

놈들이 가까워지며 냄새가 짙어진 모양이었다.

우리는 급히 마차에서 내려 싸울 준비를 했다.

하지만 어딘가 찜찜했다.

“황가수호대만으로 우릴 추격해 봤자 소용없을 텐데?”

“관리자란 놈이 너무 급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래도 확실히 황가수호대로는 이제 우릴 막지 못한다는 것을 알 텐데, 좀 이상하긴 하네요.”

무기를 꺼내 들며 휴고와 상의를 하고 있는 도중,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상을 발견했다.”

“적을 사살하고 조각을 회수한다. 실행하라.”

“음?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인데?”

상대의 목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낯익었기에 의아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순간.

“으음……. 이, 이건!”

휴고가 침음을 흘렸다.

아마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차린 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 놈들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으음, 이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내 입에서도 똑같은 침음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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