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86화 (86/149)

 # 86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86화>

* * *

며칠 후, 우리는 제국 수도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적당한 곳에 마차를 세워 두고 늦은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린 후, 수도로 접근했다.

“대장, 어떻게 들어가실 생각입니까?”

저번처럼 변장하고 성문을 통과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성벽으로 다가가며 인벤토리에서 밧줄을 꺼내 들었다.

“내가 올라가서 끌어 올려 주마.”

일행에게 말한 후, 나는 위를 향해 힘껏 뛰어올랐다.

그리고 몸이 최고점에 도달하는 순간.

‘점멸.’

두어 번 연이어 점멸을 사용하자, 어느새 성벽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얼른 밧줄을 내리자 휴고와 루스가 올라왔다.

“황궁으로 바로 간다. 조용히 따라들 와.”

일행에게 그렇게 말한 후 나는 앞장서 달렸다.

황궁까지의 길은 회귀 전의 기억으로 훤히 알고 있었다.

‘문제는 황궁 안인데. 놈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쯧.’

회귀 전, 어전에서 황제를 만나 본 적은 있지만, 놈의 처소가 어딘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황궁이 크기도 했지만, 황제의 행동이 워낙 은밀했기 때문.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도 황제의 행동에 의문스러운 점이 많았어.’

정 안 되면 경비병이라도 잡아서 위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머지않아 황궁이 눈앞에 나타났다.

중세 유럽의 성을 떠오르게 하는 첨탑이 높게 솟아 있었다.

이 세계 최고 국가의 단 하나뿐인 황성인 만큼 그 규모가 몹시 거대했다.

나는 높게 솟아오른 성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진실을 모조리 토해 내게 만들어 주마.’

전의를 다진 나는 일행을 이끌고 조용히 성으로 잠입했다.

성의 크기가 워낙에 큰 만큼 들어갈 틈은 많았다.

물론 나와 일행 모두 마스터를 한참 뛰어넘는 경지에 이르렀기에 가능한 일.

황궁 안은 마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복도가 이리저리 얽혀 있었다.

‘이러니 내가 걱정을 했지.’

너무 큰 규모에 압도당했는지, 굳은 표정으로 휴고가 물어 왔다.

“대장, 여기서 황제를 찾을 수 있을까요? 밖에서 보기에도 컸는데, 안에 들어오니 복잡해서 그런지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래, 누구 하나 잡아서 물어봐야 되겠다. 그냥은 못 찾겠어.”

나도 녀석에게 속삭여 주고,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복도를 따라 어느 정도 이동했을 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내가 피난민들이 돌아가려고 짐을 꾸리는 걸 봤다니까. 그래서 하는 말이야.”

“뭐? 그럼 재앙이 막혔다는 말이 진짜였단 거야? 우리 제국이 나서지도 않았는데?”

아마 경비병 둘이서 심심함을 달래느라 이야기 중인 듯했다.

조용한 밤 근무가 따분한지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래, 군소 국가들이 모여서 끔찍한 몬스터 떼를 막아 냈다나 봐.”

“진짜로? 그럼 이제 걱정 안 해도 되는 건가? 그나저나 그쯤 되면 신전에서 신탁이라도 내려와야 하는 거 아니야? 신전에서는 무슨 말 없었대?”

“그건 나도 모르지. 나중에 보고 사제라도 만나면 한 번 물어보든가 해야지. 그나저나 이 빌어먹을 경계는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이게 다 그 자식이 상관으로 오고 나서 생긴 일 아니야. 완전 꼰대라니까.”

“야야, 말조심해. 순찰 돌 시간이야. 그 자식 곧 나타날걸.”

경비병들의 대화는 어느새 상관에 대한 험담으로 옮겨 갔다.

“대장, 소문이 벌써 이곳까지 퍼진 모양인데요?”

휴고가 작게 속삭여 왔다.

“음, 확실히 연합 쪽에 제국의 눈이 있나 보다. 우리가 이동하는 동안 소식이 전해진 모양이야.”

“우리가 여기 온 건 아직 모르겠죠?”

“그래. 다른 소문을 흘리라고 했으니, 아직은 괜찮을 거야.”

휴고와 속삭이는 동안, 반대편에서 또 다른 인기척이 느껴졌다.

저벅-

경비병들에 비해 훨씬 절도 있는 기운을 풍기는 발소리.

잡담을 나누던 경비병들은 인기척에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 했다.

“경계 중 이상 없습니다, 경비 대장님.”

“그래, 잡담하지 말고, 근무 똑바로들 서라.”

경비 대장이라는 자는 오는 길에 경비들의 잡담을 들었는지, 짧게 주의를 주고는 순찰을 이어 나갔다.

나는 경비 대장의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응?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슬쩍 고개를 내밀어 살피니, 경비 대장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의 뒷모습만으로도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한쪽 소매가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

경비 대장은 제국의 쌍둥이 마스터 중 한 명인 크리스였다.

암흑 교단의 장로와 싸움에서 동생과 한쪽 팔을 잃은 남자.

그가 첫 번째 재앙 전에 있었던 연회에서 연설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재앙에 맞서 국적과 이해득실을 떠나 힘을 합치자는 그의 연설은 틀린 곳이 없었다.

오히려 맞는 말이었기에, 제국을 불신하던 나에게 기분 나쁜 기억이었다.

‘팔을 잃고 일선에서 물러났나 보군. 그래서 황궁 경비 대장으로 자리를 옮긴 건가?’

루스도 눈치를 챘는지 코를 킁킁거렸다.

“옛날에 맡아 본 냄새야.”

나는 검지를 세워 입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그래, 전에 본 적이 있는 자야. 따라가 보자. 저놈은 마스터니까 좀 더 주의하고.”

크리스는 황성 이곳저곳을 순찰했다.

한참을 따라다녔지만, 황제가 있을 만한 곳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동안 크리스가 우리를 눈치채지는 못했다.

이제 그와 우리 사이에는 아득한 실력의 격차가 생긴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간 많은 일이 있었군. 많이 성장하기도 했고.’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을 때, 드디어 크리스가 순찰을 끝마쳤다.

막 크리스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려는 찰나, 나는 그의 뒤로 ‘점멸’을 사용했다.

스팟-

내가 갑자기 나타나자, 크리스의 손이 검의 손잡이를 향했다.

하지만 내가 훨씬 빨랐다.

퍽-

내 손날이 크리스의 목덜미를 후려쳤다.

단 한 방에 크리스가 정신을 잃었다.

나는 쓰러지는 크리스를 받아들고, 재빨리 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일행이 방으로 들어선 후, 문을 걸어 잠그고 크리스를 침대에 내려놓았다.

‘이제 깨워 볼까?’

짝- 짝-

따귀를 두어 번 때리자, 크리스의 눈이 떠졌다.

“너, 너는!? 크읍!”

그가 깜짝 놀라 소리치려 할 때, 나는 손바닥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칼을 그의 목에 들이대었다.

“이봐 크리스. 나는 당신을 굳이 죽이고 싶지 않다. 그냥 궁금한 것이 있어 이곳에 왔을 뿐이야. 당신한테도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러니 소리를 치든 반항을 하든, 이야기를 마친 후에 해. 이해했나?”

잠시 생각하던 크리스는 이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제야 나는 조심스레 입을 막았던 손바닥을 치웠다.

검은 여전히 그의 목에 걸려 있는 상태.

크리스는 영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검을 치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지? 정해수.”

크리스의 목소리에는 날이 잔뜩 서 있었다.

“쯧, 질문은 내가 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을 테니 대답해 주지.”

나는 크리스의 목에 걸린 검에 슬쩍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발바닥에 땀나게 돌아다니며 재앙을 막고 있다. 설마 마스터씩이나 되어서 그걸 몰라서 물은 건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너는 오히려 본국이 재앙에 맞서는 것을 방해하는 역도가 아닌가?”

나는 역도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이봐, 마왕의 화신을 처치한 것이 누구지? 당신도 그날 수도에 있었으면 알 텐데?”

“으음…… 그러나 너는 마왕의 기운을 훔쳐 달아나지 않았나? 그 바람에 지금도 재앙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마 황제가 그런 식으로 선전을 한 모양.

하지만 크리스 정도 되는 자가 순진하게 그 말을 믿는 것이 우스웠다.

“진짜 몰라서 묻는 건가? 마왕을 처치하고 나온 것은 재앙의 기운이 아니야. 그건 오히려 상서로운 기운을 품은 물건이다. 그리고 마왕이 죽었을 때, 재앙의 기운이 하늘로 치솟는 것을 봤을 텐데?”

그날 그 모습을 직접 본 것인지, 크리스는 말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며칠 전 북쪽에서 내려온 수만 마리의 몬스터 무리를 처치한 것도 나다. 그동안 제국은 뭘 하고 있었지?”

연회에서 다 같이 힘을 합치자고 호소한 것이 크리스다.

제국이 국경 근처의 시민들을 수도로 불러 모으고 병력을 뺀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그도 잘 알 터.

나는 여세를 몰아 그를 몰아붙였다.

“군소 국가 국민은 사람 취급도 안 하는 건가? 당신이 연회에서 한 연설을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건 다 거짓말이었나?”

내가 연설을 언급하자 크리스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그러더니 떨리는 음성으로 내게 물어 왔다.

“으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도대체 황궁엔 왜 들어온 건가?”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낼 차례.

“나는 단지 알고 싶을 뿐이야. 도대체 황제가 왜 나를 핍박하는지. 그리고 재앙을 막기 위해 과연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지.”

나는 여전히 흔들리는 크리스의 눈동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크리스, 그러니 나를 황제와 만나게 해 줘.”

나는 눈을 돌리지 않고 크리스를 계속 압박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크리스는 결국 승낙의 뜻을 비쳤다.

“후우, 알겠네. 황제 폐하의 침소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지.”

말을 마친 크리스는 손을 들어 자신의 옆에 있는 서랍장을 가리켰다.

휴고가 그곳으로 다가가더니 종이를 한 장 발견했다.

“대장, 지도입니다.”

내가 지도를 받아 들어 크리스의 앞에 펴 보였다.

그러자 크리스가 지도의 한 곳을 손으로 짚었다.

“황성 꼭대기 층에 이곳이 폐하의 침소네. 길이 복잡하니 지도를 들고 가도록 하게. 부디 피를 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

퍽-

나는 말이 끝나는 즉시 그를 기절시켰다.

그리고 쓰러진 그에게 중얼거렸다.

“미안하지만, 피는 흐르게 될 거야.”

최우선 목적은 비밀을 밝혀내는 것.

물론 나는 황제를 용서할 생각이 결코 없다.

‘놈은 오늘 죽는다.’

내 표정이 심각했는지, 휴고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저자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일단 근처까지 가 보고 결정하자. 루스도 있으니, 쉽게 속을 일은 없을 거야.”

나는 일행을 이끌고 황제의 침소로 향했다.

크리스의 말대로 황성은 복잡했다.

엘리베이터라도 있으면 한결 편했겠지만, 매 층 계단을 이용해 올라야 했다.

“주인, 앞쪽에 사람들이 있어.”

“음, 좌측으로 꺾어서 우회하자.”

지도와 루스의 뛰어난 감각이 더해지자, 우리는 사람을 마주치지 않고 황성을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지도에 표시된 황제의 침소 앞에 도착했다.

“지도가 크게 도움이 되었어.”

휴고는 여전히 불안한지 굳은 표정으로 질문했다.

“대장, 혹시 함정이면 어떻게 하죠?”

“여차하면 그냥 들이받는다. 이제 놈들을 무서워할 필요 없어. 최악의 상황이라도 몸을 뺄 수는 있다. 실력에 자신을 가져라, 휴고.”

휴고를 다독이고 있는데, 루스가 코를 킁킁거렸다.

“주인, 저 안에 사람이 있어.”

“몇 명인지 알겠어?”

“으음…….”

루스는 뭔가 헷갈리는지 한참이나 코를 킁킁거렸다.

“한 명밖에 없는 것 같아. 근데 황가수호대 냄새도 조금 나. 그놈들이 여기 있었었나 봐.”

‘한 명이라. 황제인가? 시중들 하인도 없이 혼자 지낸다고?’

뭔가 이상해 보이는 상황이지만, 의외로 황제의 침소가 맞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회귀 전에도 노출되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했지.’

지위에 어울리지 않게, 황제는 늘 행동이 은밀했고 주위에 사람을 잘 두지 않았다.

다만 플레이어들, 그중에서도 유독 나와 소환 영웅들에게 관심을 주곤 했었다.

어쨌든 여기까지 온 이상 이미 내친걸음이다.

굳이 꼭 은밀하게만 일을 처리할 필요도 없고.

“들어간다.”

나는 일행에게 선언하고 앞장섰다.

침소의 앞에는 지키는 경비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도 마찬가지.

방은 아주 넓고 고급스러웠다.

그러나 넓은 방에 있는 것은 단 한 명뿐.

침상에 누운 황제 외엔, 시중 드는 자 하나 없었다.

‘놈이다!’

나는 잠들어 있는 놈의 얼굴을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놈은 황제가 확실했다.

“문 앞을 지켜. 루스는 밖에서 누가 오나 잘 살피고.”

“응, 주인.”

“알겠습니다, 대장.”

녀석들에게 조용히 속삭인 후, 나는 황제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러면서 즉시 점멸을 사용했다.

스팟-

황제의 바로 옆으로 단숨에 이동한 후, 놈에게 가차 없이 검을 찔렀다.

목표는 어깨.

침상에 그대로 못 박듯이 박아 버릴 생각이었다.

‘죽이지만 않으면 돼.’

다치는 것은 상관없다.

말할 입만 남겨 두면 된다.

그때, 자고 있던 황제의 눈이 번쩍 뜨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