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85화>
[대상과 특별한 유대를 형성합니다. 대상을 선택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 : 아이 카람바]
‘옛 친구의 이름이 아이 카람바였군.’
이제껏 옛 친구라고만 부르다 보니 따로 이름이 있다는 생각조차 못 했었다.
‘아이 카람바를 지정한다.’
[‘아이 카람바’와 계약을 진행합니다.]
여기까지 진행하자 옛 친구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아마 옛 친구에게도 무언가 신호가 간 것 같았다.
“이게 제 부탁입니다. 계약해 주십시오.”
옛 친구는 내 말에 자애롭게 미소지었다.
그러자.
[대상의 확고한 의지에 따라 ‘계약’이 성립합니다.]
[‘아이 카람바’와 특별한 유대가 형성됩니다.]
옛 친구와의 계약이 성공했다.
- 들립니까?
나는 특별한 유대를 맺음으로써 얻은 능력 중 하나를 사용해 보았다.
마음을 통해 바로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 아, 아.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 당신도 들리나요?
“네, 들립니다. 잘하시니, 이제 말로 하죠.”
바로 앞이니 굳이 기술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옛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바로 말을 이었다.
“이것이 ‘계약’을 맺은 효과 중 하나입니다.”
“그렇군요. 이 방법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가능한 건가요? 제가 머릿속으로 말을 전달하는 방법은, 너무 멀면 사용할 수 없어서 곤란했는데…….”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아직 멀리서 써 본 적이 없어서요.”
“그럼 나중에 실험해 봐요. 근데 이것 말고도 계약의 다른 효과가 있나요?”
그러고 보니 나도 아직 ‘계약’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애초에 스킬 설명에도 ‘특별한 유대’가 생긴다는 말이 전부.
어쩌면 조련사인 지우의 스킬답게, 인간 외의 존재와 의사소통이 유일한 기능일 수도 있다.
‘아니야, 그럴 거면 특별한 유대를 형성한다는 설명이 필요 없지. 그냥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고 하면 될 테니까.’
‘계약’의 기능에 대해 너무 고민한 탓일까.
“……수, 해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눈앞의 옛 친구가 몇 번을 불렀을 때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저도 배운지 얼마 안 되는 스킬이라, 어떤 효과를 내는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 바람에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그나저나 이름이 아이 카람바였군요.”
“아! 계약 과정에서 이름이 표시되나 보죠? 맞아요, 내 이름이 아이 카람바예요. 불린 지 워낙 오래돼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당신이 불러 줘서 좋네요. 몇 백 년 만에 들어 보는 것 같아요.”
“몇 백 년 만이라니, 저도 영광입니다. 근데 아직 한 가지 더 해야 할 일이 남았습니다.”
내 말에 옛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저한테는 계약 대상의 기술을 한 가지 빌려 쓸 수 있는 스킬이 있습니다. 그걸 당신에게 사용하려는데, 괜찮겠습니까?”
나는 팔찌의 스킬을 쓰기 위해 미리 양해를 구했다.
옛 친구는 그 정도의 존중은 받을 자격이 있었고, 또 거절하지 않으리란 확신도 있었다.
“물론이에요. 어서 사용해요.”
옛 친구의 대답은 역시 예상대로였다.
이미 노즈도름에게 사용하여 ‘계약’을 맺으면 스킬이 통한다는 것을 확인했었기에 걱정은 없었다.
물론 노즈도름의 급한 성질 탓에 스킬 전이가 이뤄지진 않았지만.
나는 기대감을 갖고 팔찌의 스킬을 발동시켰다.
[스킬 전이가 시전됩니다. 대상을 정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 : 아이 카람바]
‘아이 카람바.’
[스킬 ‘두 개의 심장’이 전이됩니다.]
예상대로 스킬이 무사히 전이되었다.
그런데…….
‘두 개의 심장이라고? 으음…….’
나는 얼른 스킬 설명을 읽었다.
- 두 개의 심장 : 오랜 세월을 살아온 옛 친구가 맹약의 상징으로 만들어 낸 기술. 마력을 이용해 하나의 심장을 더 만들어 낸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생명력이 두 배로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 하나의 심장이 파괴되어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옛 친구님, 심장이 자른 게 아니었군요?”
옛 친구를 오염에서 회복시킬 때, 심장의 모습은 질리도록 봤다.
반듯하게 나뉘어 있어 옛 친구가 자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스킬로 하나 더 만든 것이었다.
내 말이 조금 뜬금없었는지 옛 친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한동안 가만히 있더니, 무슨 말인지 깨달았는지 웃으며 말했다.
“아, 혹시 ‘두 개의 심장’을 얻었나요? 그래서 제 심장의 비밀을 알게 되었군요.”
“예, 그 덕에 몸에 힘이 넘칩니다.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방금 마력으로 심장이 하나 더 생겨나며, 몸에 생명력이 넘쳐났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에요. ‘물고기 부르기’ 같은 게 생기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호호.”
진짜인지 농담인지 모를 옛 친구의 말에 나도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 * *
옛 친구와의 만남이 끝나고, 이번에는 아델을 찾았다.
그는 바리살의 임시 시장직을 맡고 있었는데, 그런 만큼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고 관사에 머물고 있었다.
경비병의 안내를 받아 그의 집무실을 방문했을 때, 의외의 인물들은 만날 수 있었다.
“우리 구원자님이 오셨군. 라라랑 좀 놀아 주지, 어딜 자꾸 돌아다니시는가?”
들어가자마자 라로프의 ‘어머니’가 웃으며 농담을 건네어 왔다.
“해수 왔는가? 이번에도 수고가 많았네. 자네 덕에 안심하고 돌아갈 수 있겠어. 고맙네.”
뒤이어 라넬디드가 고마움을 표해 왔다.
그러다 보니 방의 주인인 아델은 멋쩍은 웃음만 짓고 있었다.
“두 분은 여기 어쩐 일이십니까?”
그러자 ‘어머니’와 라넬디드 대신 아델이 설명을 했다.
“정해수 님, 우리 세 국가는 동맹을 맺기로 했습니다. 드라코리치를 물리쳤다고는 하나, 재앙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앞으로 힘든 상황이 발생하면 서로 돕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암암, 서로 도우며 살아야지. 클클”
아델의 말을 들은 ‘어머니’가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북쪽과 서쪽에 위험이 닥칠 일은 없겠지만, 제국이 어찌 나올지 모르는 상황.
서로 뭉쳐서 나쁠 게 없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아델이 물었다.
“정해수 님, 근데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혹시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뭐든 말씀하십시오.”
아델은 뭐라도 주고 싶어 안달이었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딱히 뭘 원해서 온 것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세 분께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잘되었습니다.”
어차피 셋에게 할 말은 별 차이가 없었다.
한꺼번에 있어 시간 절약이 된 셈이라 생각하며 나는 말을 이었다.
“저는 내일 새벽 일찍 떠날 생각입니다.”
내 말에 아델이 가장 먼저 반응해 왔다.
“아니, 큰 싸움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어딜 가신다는 말입니까?”
그는 나를 좀 더 붙잡아 놓고 싶은 모양.
하지만 나는 이곳에 더 머무를 생각이 없다.
이제 힘은 충분히 길렀고 눈앞의 문제도 해결했으니, 결판을 내러 갈 차례였다.
“미처 아델 님께 말씀 못 드렸는데, 올리버 라스본이 제국 측에 붙었습니다. 그리고…….”
바리살에 돌아오자마자 드라코리치와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 바람에 노즈도름의 레어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아델에게 지금껏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올리버가 한 짓과 그 결과에 대해 아델에게 설명해 주었다.
“으음, 그랬었군요. 그럼 아직 연합 내에 제국 측 세력이 남아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아델이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예, 그래서 오래 머물지 않고 내일 새벽 조용히 빠져나갈 생각입니다. 세 분께서는 제가 제국에 갔다고 말하지 마시고, 근처에서 다른 일을 처리 중이라고 잘못된 정보를 흘려 주십시오.”
이렇게 해도 완전히 제국의 눈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나마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는 있을 것이다.
어차피 완전히 잠적할 생각도 없고.
‘황제를 만날 때까지만 행적이 드러나지 않으면 돼.’
내 생각에 동의하는지 세 명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델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혹시 더 필요한 것은 없습니까?”
하지만 나는 그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떠날 것을 대비해 이미 인벤토리에 필요한 것들을 잔뜩 넣어 두었다.
게다가 노즈도름의 보물 창고와 로치데일의 왕궁에서 포션류도 잔뜩 확보해 둔 상태였다.
“없습니다. 말씀드린 대로만 조치해 주십시오.”
그렇게 대답하고 자리를 뜨려는데, 라넬디드가 근엄한 표정으로 말해 왔다.
“노르트는 자네가 원하면 언제, 어디든 갈 준비가 되어 있네.”
길지 않은 말이었지만, 진심이 느껴졌다.
그러자 나머지 두 명도 뒤질세라 입을 열었다.
“우리 라로프는 애초에 구원자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아닌가? 언제든 불러만 주게. 옛 친구님의 힘이라면 금방 달려갈 수 있을 테니, 클클.”
“정해수 님, 연합은 언제나 정해수 님의 부름을 기다릴 것입니다. 제국의 끄나풀은 제가 책임지고 색출해 낼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말에 이 세계로 끌려와 한 고생이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힘이 필요한 일 없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들에게 고개 숙여 보였다.
* * *
다음 날 새벽, 나는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휴고를 깨워 길을 나섰다.
루스는 어제 그렇게 먹고도 음식을 잔뜩 챙겨 와 마차 위에서 먹는 중이었다.
목적지는 제국의 수도.
그리고 목표는 황제였다.
“우욱……. 루스, 그것 좀 저쪽에서 먹으면 안 될까?”
휴고가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고기구이를 먹고 있는 루스에게 말했다.
숙취 때문에 기름진 음식을 보자 속이 메스꺼운 듯했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많이 마시래! 이 멍청아. 정도껏 마셔야지, 으이구. 철이 없어, 철이!”
앳된 얼굴로 마치 아줌마 같은 말을 내뱉는 루스.
그 말에 휴고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잔소리를 하면서도 옆으로 비켜 주는 루스를 보면, 둘의 사이가 나쁘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시간이 흐르자 조금 살 만해졌는지 휴고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대장, 황제를 만날 생각이시지요?”
“그래.”
“황제가 모든 일을 꾸몄을까요?”
“글쎄. 놈이 원흉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최소한 모든 일에 깊게 관여한 것은 확실해. 황가수호대가 놈의 명을 듣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고개를 끄덕인 휴고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 왔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우리 셋이서 놈들을 이길 수 있을까요?”
“굳이 제국의 전 병력을 상대할 필요는 없어. 황성에 잠입해서, 황제만 잡으면 돼.”
황제만 만날 수 있으면 된다.
그다음은 고문을 하든 뭔 수를 쓰든 간에 놈에게 진실을 들으면 될 일.
해결은 상황을 명확히 파악한 후에 생각하면 된다.
그때 휴고가 의외의 질문을 던져 왔다.
“대장은 일이 다 해결되면 뭘 하실 생각입니까?”
그러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회귀 전에도 녀석과 똑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는 전장의 밤.
힘든 전투를 끝내고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서로의 바람을 이야기했다.
그때 녀석은 모든 일을 끝내면, 지구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었다.
‘내가 뭐라고 했었더라?’
한데 이상하게 내가 뭐라고 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대장?”
내 태도가 이상한지 휴고가 나를 불렀다.
“아, 잠시 딴생각을 했다. 너무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끝나고 뭘 할지는 생각도 못 했어. 그래, 지금 같아서는…… 너희랑 어디서 조용히 휴가라도 보내고 싶다.”
내 말에 휴고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 저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일이 끝나면, 우리 셋이서 조용하게 농사라도 지으며 살았으면 하고요.”
나는 녀석의 말에 조금 놀랐다.
회귀 전과는 녀석의 바람이 달랐다.
의아한 마음에 바로 물어보았다.
“지구로 돌아갈 마음은 없어?”
“음, 사실 그런 마음도 있는데, 돌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안 듭니다.”
내 의아한 눈빛에 휴고가 말을 이었다.
“튜토리얼에서 재앙을 다 막아 내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시스템 메시지가 떴었지요. 근데 그 말을 이제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대장이 소환한 영웅들이 대장을 죽이려 들지 않습니까? 상태창도 너무 대강 만든 것 같고요.”
녀석도 내 주위에 머물며 느낀 바가 있는지, 시스템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나는 불안해하는 녀석의 어깨를 두르려 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내 예감인데, 우리가 지금 하는 일과 우릴 이 세상으로 불러온 존재는 연관이 있을 거야. 그러니 눈앞의 일을 처리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다.”
“예, 고맙습니다. 대장.”
“고마우면, 이제 네가 마차 좀 몰아라.”
아닌 게 아니라, 휴고는 숙취로, 루스는 식사를 하느라 운전은 이제껏 내 몫이었다.
“하하, 죄송합니다. 이제 제가 몰겠습니다.”
멋쩍어하는 녀석에게 말고삐를 넘기고 나는 동쪽을 바라봤다.
‘이제 곧 간다. 기다려라.’
이제 황제를 만날 순간이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