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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84화 (8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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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84화>

놈의 무감정한 눈동자에 일순 빛이 돌았다.

그 눈빛을 본 즉시 나는 놈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곧 만나게 될 거야.”

알아들었는지 입을 달싹거리던 놈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죽어 버렸다.

그 모습을 싸늘하게 쳐다보다가, 나는 놈의 시체를 향해 ‘아이템 추출’을 사용했다.

황가수호대의 사체에서 나올 아이템에 대한 욕심은 크지 않았다.

진짜 목적은 놈들의 정체를 밝힐 단서.

혹시라도 도움이 될 만한 아이템이 나왔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었다.

이윽고 황가수호대의 사체에서 아이템이 추출되었다.

놈들의 옷처럼 붉은빛을 발하는 손톱만 한 보석이었다.

그런데 다가가 그것을 주워 들었을 때.

“으음, 뭐지?”

나는 의아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이템임이 분명한데도 아이템 설명 창이 뜨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의 정수나 드라코리치에게서 나온 부스러기도, 비록 설명을 읽을 수 없었지만 아이템 창은 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아무 반응이 없다.

그렇다고 붉은 보석이 아무 기운을 품지 않고 있는가 하면, 그건 절대로 아니었다.

‘제법 강한 기운이 스며 있다. 근데 어째서?’

게다가 붉은 보석이 내뿜는 기운은 예상과 달리 나쁜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좋은 쪽이었다.

다만 보석에서 나오는 기운은 세계의 정수처럼 상서로웠지만, 어딘지 방향성이 조금 달랐다.

향기롭지만 서로 다른 두 가지 꽃 냄새를 맡았을 때처럼, 둘 다 좋은 기운이지만 서로 풍기는 느낌이 달랐다.

‘이상해. 왜 좋은 기운을 내뿜는 거지? 상태창이 아예 안 뜨는 건 또 무슨 경우고?’

내 표정이 심상치 않자 휴고가 옆으로 다가왔다.

“왜 그러십니까?”

“이거 한번 봐 봐.”

나는 말과 함께 붉은 보석을 휴고에게 던졌다.

보석을 받아 든 휴고는 눈에 가져다 대고는 그것을 자세히 살폈다.

“그냥 붉은 보석인데요? 빛깔이 곱네요. 어…… 근데 뭔가 신비한 기운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대장.”

휴고는 아직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혹시 그거, 상태창 보여?”

“어? 이게 왜 이러지? 안 보이는데요. 대장도 이렇습니까?”

그제야 휴고가 놀라 되물어 왔다.

나는 휴고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 다른 황가수호대의 사체에 다가갔다.

‘아이템 추출.’

이번에도 똑같은 붉은 보석이 추출되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상태 창은 뜨지 않았다.

나는 황가수호대의 주검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모조리 ‘아이템 추출’을 사용했다.

몸뚱이가 완전히 박살이 나 사라져 버린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번 똑같은 보석이 추출되었다.

그리고 보석은 모두 상태창이 뜨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도 그 원인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음,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머지않아 결판 날 일.’

일단은 보석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그때 내게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해수 씨!”

바람처럼 달려온 라라가 나를 껴안아 왔다.

그리고.

쾅-!

충돌음이 터졌다.

라라의 몸에는 여전히 갑각으로 된 갑옷이 둘러진 상태.

그리고 나 또한 옛 친구의 갑각이 몸에 둘러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무슨 쇳덩이끼리 부딪치는 느낌이었다.

“해수 씨, 괜찮아요?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

내가 막 대답하려는데 옆에서 리첼이 끼어들었다.

“너 때문에 다치시겠어, 라라. 갑옷 입고 막 달려들면 어떻게 해? 해수 님, 정말 다행이에요.”

라라에게 한마디 해 준 리첼은 내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난 괜찮아. 둘 다 고맙다.”

“앗, 미안해요, 해수 씨.”

라라는 리첼의 타박에 내게 금세 사과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떨어지지는 않은 채 그녀가 말을 이었다.

“갑자기 사라졌을 때는 정말 걱정했다고요. 아무 일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때 라라의 옆으로 다가가는 그림자가 있었다.

“이 메뚜기야, 떨어져! 주인, 주인! 쟤 떨어지라고 해!”

루스는 라라가 내게 달라붙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지, 대뜸 라라에게 소리쳤다.

그러고 보면 변신 상태인 라라의 머리가 꼭 곤충 비슷하긴 했다.

“하하, 메뚜기래. 라라, 괜히 해수 님 귀찮게 그만하고 떨어져.”

리첼까지 합세해서 타박하자 그제야 라라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려 나를 덮치는 커다란 그림자가 있었으니.

퍽- 퍽-

“정말 멋졌네, 친구! 무사해서 다행이야.”

넬도르가 나타나 한쪽 팔로 나를 껴안은 채, 나머지 손으로 연신 내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넬도르, 이거 좀 놓고 말하면 안 될까?”

내 말에 멋쩍다는 듯 웃은 넬도르가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나는 그제야 넬도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털조끼는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대부분 몬스터의 피였지만, 넬도르의 피도 적잖이 묻어 있었다.

그 증거로 여전히 그의 가슴팍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나는 얼른 포션을 꺼내 그에게 던졌다.

“이거 빨리 먹어. 나보다 네 상태가 더 안 좋아 보이는군.”

“아까 치료했는데, 그새 벌어졌나 보구만. 이따 한잔하면 다 나을 거야, 껄껄.”

넬도르는 자신의 가슴팍을 흘끔 보더니, 포션을 들이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반대편 손으로는 술잔 꺾는 시늉을 해 보였다.

나는 뜨끔해서 시선을 돌렸다.

‘이 알코올 중독자 자식. 저 모양을 하고도 술 생각뿐이라니.’

괜히 엮여서 술독에 빠질까 싶어 다른 곳을 보는데, 시선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라로프의 ‘어머니’는 라로프 인들을 이끌고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라넬디드는 넬리언과 함께 전장을 정리하는 중이었고, 연합의 대표들도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어느새 내 앞에 이른 아델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한참이나 그 자세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를 처음 만난 날, 아다만티움 골렘을 처치하자 그가 나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던 것이 떠올랐다.

묘한 인연이라 생각하며 나는 얼른 그에게 말했다.

“고개 드세요. 그만하면 되었습니다.”

“이 정도로 갚을 수 없는 은혜인 것은 알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너무 불편하군요.”

마지못해 고개를 들며 하는 그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옛 친구에 이어 아델의 진심까지 접하자, 이제까지의 고생이 어느 정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이곳 바리살은 물론 우리 군소 국가 연합은 앞으로 정해수 님의 일이라면 온 힘을 다해 돕겠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은혜를 갚고 싶은 듯했다.

사실 지금 모인 병력이라면 제국으로 진격도 해 볼 만했다.

비록 노즈도름이 죽었지만 옛 친구는 건재했고, 그 외에도 다양한 기술을 가진 종족들이 모여 있으니 전력은 충분하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킬 마음은 없었다.

일반인들의 피는 이미 충분히 흘렀다.

이제 황제에게 죄를 물을 차례였다.

“말씀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살아남은 사람들을 추스르는 데 힘을 쓰십시오.”

“예, 저 개인적으로는 정해수 님께 목숨이라도 드릴 수 있습니다. 잊지 말고, 필요할 때 꼭 찾아주십시오.”

그는 끝내 한마디를 더 남기고 떠났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후우,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상하지 않아서 다행이군.”

그러나 여전히 제국의 끄나풀이 연합에 남아 있을 것이었다.

지금도 내 움직임이 보고되고 있을 지도 모를 일.

그러니 이곳의 정리를 끝내는 대로, 빠르게 움직일 생각이었다.

* * *

전투가 끝난 후 이틀이 지났다.

하루는 전장을 정리하고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오늘은 새벽이 되도록 술자리가 이어졌다.

“으하하, 휴고. 자네랑은 오랜만에 마시는군. 역시 자네가 술을 좀 안다는 말이야.”

“하하, 어디 넬도르 님만 하겠습니까. 여기 한 잔 받으십시오.”

넬도르와 휴고는 은근히 죽이 잘 맞아, 초저녁부터 지금까지 술을 들이붓고 있었다.

“냠냠, 계속 여기 살았으면 좋겠어. 맛있는 게 어쩜 이렇게 많지.”

그리고 루스도 초저녁부터 식사를 이어 가고 있었다.

“루스, 너 정말 엄청나구나. 리첼, 얘 좀 봐. 아까 저녁부터 먹고 있어.”

“왜 그래, 라라. 귀엽기만 한데. 루스, 많이 먹으렴.”

티격태격하던 루스와 라로프 콤비는 어느새 한자리에 앉아 있었다.

회귀 전부터 큰 전투가 있고 수많은 사람이 죽은 후에는 꼭 이런 자리가 마련되었었다.

술과 음식으로 웃고 떠들며 떠난 자를 마음에서 보내는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본의 아니게 구원자라는 역할을 맡은 탓인지, 괜한 책임감이 들었다.

‘착잡하네, 후우.’

그때 누군가 나를 불렀다.

[해수, 잠시 내게 오겠어요?]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옛 친구의 목소리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발걸음을 성 밖으로 옮겼다.

안 그래도 옛 친구와 할 일이 있는 참이었다.

잠시 후 거대한 옛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들어오세요.]

옛 친구의 옆구리에 통로가 생겨났다.

내가 그곳으로 들어서자 번쩍하고 빛이 일었다.

그러더니 내 몸이 옛 친구의 심장이 있는 곳으로 이동되어 있었다.

“앉으세요, 해수.”

어느새 인간형의 모습으로 나타난 옛 친구는 내게 자리를 권했다.

가만 보니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막 자리에 앉는데, 어디선가 어인족 한 명이 나타나 차를 가져왔다.

내가 그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자 시선을 느꼈는지 옛 친구가 미소 지었다.

“이 아이들은 제 몸이 회복되면서 되살아났답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딱히 걱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신기해서 봤어요. 어인족과 치고받은 게 불과 얼마 전인데 이제 차를 대접받고 있다니. 느낌이 이상하네요.”

“후후, 심해에서만 자라는 해초로 만든 차예요. 몸에도 좋고 향도 깊죠. 들어 보세요.”

옛 친구의 말대로 차는 향기로웠다.

차를 몇 모금 즐기고 있을 때, 옛 친구가 입을 열었다.

“그 드래곤은 결국 죽었군요.”

“노즈도름 님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드라코리치를 처치할 방법을 마련했습니다. 노즈도름 님이 없었으면, 드라코리치에게 이길 수 없었을 겁니다.”

“……그게 그의 역할이었군요.”

“도대체 그 역할이란 건 뭡니까?”

답답한 마음에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그러자 옛 친구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요. 그건 나도 몰라요. 아마 알아도 말할 수 없을 거예요.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머지않아 당신이 모든 진실에 다가갈 것이란 거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음, 아마 지금 이 말을 당신에게 전하는 것도 내 역할인 것 같아요. 아무런 제한 없이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을 보면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은 옛 친구가 또렷한 발음으로 내게 말했다.

“다시 말할게요. 머지않아 당신은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갈 거예요.”

그녀의 말에는 강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노즈도름이 세계의 법칙이나 팔찌에 대해 말하기를 거부할 때와 같은 단호함이 엿보였다.

“휴우, 알겠습니다.”

나는 한숨을 내뱉으며 생각을 멈추었다.

어차피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말대로 머지않아 내게 무언가 단서가 주어질 것이다.

대신 인벤토리에서 황가수호대에게서 추출한 붉은 보석을 꺼내 들었다.

“혹시 이게 뭔지 아십니까?”

“으음, 신성한 기운이 담겨 있네요. 뭔지는 모르겠지만요.”

“신성한 기운이요? 혹시 세계의 정수와 같은 기운입니까?”

“그건 아니에요. 똑같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성스러운 기운인 것은 분명해요.”

붉은 보석에 대해 옛 친구가 느낀 것 역시 내 느낌과 다르지 않았다.

이 이상 정보를 얻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보석을 인벤토리로 돌려놓고, 나는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한 가지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미리 말씀드리지만, 썩 달갑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들어주셨으면 좋겠군요.”

“당신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줄 수 있는걸요. 호호, 언제 이야기하나 했네요. 그럼 이제 자손을 만들어 볼까요?”

옛 친구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어이없는 말에 내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후우, 진지한 분위기에서 왜 갑자기 장난을 치십니까?”

“딱히 장난은 아닌걸요?”

“됐고, 자꾸 그러시면 손주들 불러 놓고 말하는 수가 있습니다.”

내 말에 옛 친구가 입을 삐죽였다.

“알았어요. 얼른 부탁이나 해요. 그래도 뭐든 들어줄 거란 말은 진짜니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녀에게 스킬을 사용했다.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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