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79화>
드라코리치의 조롱 섞인 목소리.
그러더니 용아병의 몸에서 시커먼 기운이 솟아올랐다.
한눈에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모습.
아무래도 내가 적당히 상대하며 시간을 끄는 것이 걸린 듯했다.
이제 용아병을 죽여야 한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끄는 것은 오히려 당장 드라코리치를 상대함만 못하다.
“젠장!”
나는 빠르게 용아병에게 달려들며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챙-
직전에 쏘아진 화이트의 총알을 베느라 미처 피할 시간이 없던 용아병이, 칼을 들어 내 공격을 막았다.
드라코리치의 수작 때문인지, 맞닿은 검에서 느껴지는 저항이 좀 전보다 훨씬 강했다.
검이 잠깐 얽혀 있다가, 놈이 힘을 줘 나를 밀어붙였다.
주르륵-
내 몸이 다시 뒤로 밀렸다.
그 순간 빠르게 찔러오는 용아병의 칼.
시커먼 기운이 솟아난 칼끝이 정확하게 내 목을 노리고 있었다.
나는 공격을 피하지 않고 검을 마주 찔렀다.
내 검이 노리는 목표는 놈의 구멍 난 옆구리.
막 용아병의 칼이 내 목을 찌르려는 순간, 나는 왼손을 놈의 칼과 목 사이에 밀어 넣으며 스킬을 사용했다.
‘절대불변.’
콰쾅-!
놈의 공격은 절대불변이 걸린 원혼의 거울에 막혔다.
그와 동시에 내 검이 놈의 옆구리에 닿았다.
‘멸세폭.’
콰콰콰콰쾅-!
구멍 난 용아병의 옆구리 안을 파고든 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놈이 뒤로 날아가며 바닥을 뒹굴었다.
동시에 용아병의 몸통이 부서지며 뼛조각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키킥. 거봐, 재밌게 할 수 있잖아. 근데 아직 안 끝났다?]
드라코리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나는 표정을 일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날아갔던 용아병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
“하아- 이제 죽어라, 좀!”
한숨을 푹 내쉬었을 때, 용아병은 이미 일어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놈의 모습이 바뀌고 있었다.
뻥 뚫린 몸통에서 아다만티움이 흘러나오더니, 용아병의 온몸을 갑옷처럼 감쌌다.
놈은 눈에서 붉은빛을 뿜어내며 칼을 내게 겨눴다.
마치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놈과 다시 싸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갑자기 용아병이 서 있던 땅이 솟아오르더니 놈을 감쌌다.
도망가지 못하게 결박하는 것처럼 흙이 용아병을 얽어맨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것이 용아병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우지직-
콰광-!
나타난 것은 골드 드래곤, 노즈도름.
그의 거대한 발에 밟힌 용아병은 단번에 찌그러진 콜라 캔처럼 변해 버렸다.
“허! 거참, 간단하기도 하네. 빨리 좀 오시지 그랬습니까?”
“준비할 것이 있었다. 너무 툴툴대지 말거라.”
근엄한 골드 드래곤의 목소리에 나는 더 이상 불만을 제기할 수 없었다.
그 외에도 신경 쓰이는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킥킥. 너, 재미없는 꼰대 영감을 불러왔구나.]
그때 드라코리치의 목소리가 다시 내 머릿속을 울렸다.
이번 목소리는 노즈도름에게도 들렸는지,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노즈도름이 반응했다.
“버르장머리 없는 블루 드래곤아, 미칠 거면 곱게나 미치지,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냐?”
[키키킥. 영감, 어차피 다 같은 처지에 괜한 말 하지 마. 질리니까. 그냥 맡은 역할이나 열심히 하자고.]
“네놈이 하는 짓이 진정 너의 역할이란 말이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하거라.”
[내게 맡겨진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는 내 맘이지. 안 그래? 키킥.]
“네놈이 그러고도 스스로 드래곤이라 칭할 수 있겠느냐?”
[드래곤? 그딴 건 천 년 전에 이미 포기했거든, 킥킥. 그러니 이제 그만 떠들고 싸우자고! 날 재밌게 해 줘!]
놈의 말 중에 의미심장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오래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말이 끝난 순간, 검은 점으로 보이던 드라코리치의 모습이 급격히 커졌기 때문이다.
놈은 이쪽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그에 맞서 노즈도름도 날아올랐다.
휘이잉-
풍압에 밀려나려는 몸을 추스르며, 나도 얼른 따라붙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루스와 휴고도 뒤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데모릭스와 화이트도 이쪽으로 뛰어오는 중.
재앙의 기운이 강한 드라코리치가 나타나자,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급히 이쪽에 합류하려는 듯했다.
그때 전방에서 강력한 기운이 충돌했다.
콰르르르르-!
다시 시선을 앞쪽으로 돌리자, 드래곤 간의 싸움이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노즈도름의 입에서 황금빛 브레스가 쏘아져 나가, 드라코리치의 입에서 뿜어진 검은 브레스와 충돌하고 있었다.
콰콰콰콰쾅-!
천지를 흔드는 폭음을 뚫고 한참을 달려가자, 드디어 드래곤들이 싸우는 전장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자 드라코리치의 모습이 자세히 보였다.
스스로에게 저주를 걸어 리치가 된 드래곤.
뼈만 남은 머리에는 두 개의 시퍼런 귀화가 일렁이고 있었다.
눈빛을 제외하고도 놈의 몸에서 빛나는 것이 있었으니.
‘오염되어서 저런 건지 저주 때문에 저런 건지 모르겠지만, 섬뜩하군.’
놈의 갈비뼈 안쪽에 보이는 드래곤 하트는 검붉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움직일 때마다 검은 기운이 드라코리치의 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나마 놈의 몸에서 생물이라는 느낌을 주는 곳은 날개뿐.
검은색의 뼈에 질겨 보이는 피막이 남아 있는 것이, 예전에는 생명체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였다.
“대장, 이제 어쩔 생각입니까?”
어느새 다가온 휴고가 물었다.
“드라코리치는 보통 리치와는 달라. 라이프 베슬이 없다. 놈의 드래곤 하트가 라이프 베슬을 대신한다.”
“그럼 저 심장을 부수면 되는 겁니까?”
“그래, 쉽진 않겠지만, 그게 유일한 방법이다.”
콰콰콰콰쾅-!
말을 하는 중에도 두 드래곤 간의 브레스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처럼 팽팽한 상황은 아니었다.
“주인, 우리 편이 밀리고 있어. 내가 불이라도 쏠까?”
루스의 말대로 노즈도름의 브레스가 확연히 밀리고 있었다.
노즈도름의 몸이 멀쩡한 상태였더라도, 스스로에게 저주를 걸고 재앙의 기운까지 받아들인 드라코리치를 이길 수는 없었다.
하물며 지금 노즈도름은 재앙의 기운에서 벗어난 지 열흘 남짓밖에 되지 않은 상황.
밀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기다려 봐.”
나는 허락만 떨어지면 불을 쏘려고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루스를 말렸다.
그리고 내 말이 막 끝났을 무렵, 뒤편에서 초록빛 거대한 기운이 드라코리치를 향해 날아갔다.
콰르르르르-!
그것은 뒤에 남아 있던 옛 친구의 입에서 뻗어 나온 기운이었다.
옛 친구의 기운 또한 브레스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옛 친구의 브레스는 노즈도름의 것과 힘을 합쳐 드라코리치의 브레스를 상대해 나갔다.
그러자 다시 힘의 균형이 맞아 들어갔다.
“오오, 거북이 멋지다!”
루스가 옛 친구의 활약에 감탄했다.
“대장,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하지만 휴고는 여전히 걱정인 듯 내게 질문을 던졌다.
현재까지 거대한 세 존재의 싸움은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나도 준비된 대로 일을 진행한다.
“계획이 있으니 잠시 기다려 봐.”
“믿습니다, 대장.”
내 말이 끝나자 휴고가 씩 하고 미소 지었다.
한 번 죽었다 깨어났음에도 나를 향한 녀석의 신뢰는 여전했다.
‘이번에는 죽게 두지 않는다.’
- 랜덤 영웅 소환 (615900/512000 코인)
┗ 영웅 진화 (615900/10000)
: 진화 가능 영웅 [없음]
┗ 영웅 궁극 진화 (615900/100000)
: 진화 가능 영웅 [데모릭스]
먼저 상태창의 영웅 소환 항목을 확인했다.
화이트를 소환하고 대량으로 소모된 코인은 어느새 소환 전과 비슷하게 차올라 있었다.
데모릭스가 생산한 병기와 화이트의 공격에 대량의 몬스터가 죽어 나갔기 때문이기도 했고, 루스에게 죽은 웜이 워낙 많은 코인을 준 덕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눈여겨보는 것은 코인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웅 궁극 진화 항목.
그곳에는 데모릭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됐다. 계산대로야.’
영웅의 궁극 진화는 10만 코인이 소모된다.
하지만 숨겨진 조건이 더 존재하는데.
그것은 영웅의 기여도.
정확한 수치로 표시되지는 않지만, 회귀 전의 경험에 미루어 보면, 10만 코인에 해당하는 몬스터를 처치하거나 그에 준하는 기여를 하면 된다.
그래서 소환된 지 얼마 안 된 화이트는 아직 궁극 진화가 불가능했지만, 데모릭스는 조건을 충족했다.
‘영웅 궁극 진화.’
나는 망설이지 않고 10만 코인을 소모했다.
그러자 데모릭스의 발밑에서 황금색 마법진이 생겨나더니, 강한 기운이 데모릭스에게 주입되었다.
번쩍-
잠깐 후, 마법진은 눈이 부실 정도로 강하게 빛나더니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궁극 진화한 데모릭스가 서 있었다.
하프 드워프라 땅딸막한 놈의 어깨 위에 기계로 된 팔이 한 쌍 더 생겨나 있었다.
자세히 보면 진짜 자라난 것은 아니고, 어깨에 착용하는 장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상태가 되면, 데모릭스는 이제껏 만들지 못했던 것을 만들 수 있다.
그중에 지금 꼭 필요한 것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마스터. 이제 마음껏 활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전에 준 마력 핵 있지? 지금 사용해라.”
“예, 마스터.”
데모릭스는 늠름하게 대답하고는 두 쌍의 팔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스킬의 힘을 빌린 덕에 번쩍하고 빛이 몇 번 나더니 데모릭스의 작업이 끝났다.
놈의 앞에 놓인 것은 하나의 대포.
이제껏 놈이 만들었던 것과 외견상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성능은 하늘과 땅 차이.
“잘했다, 데모릭스.”
“감사합니다, 마스터.”
나는 데모릭스를 칭찬하며 대포를 살폈다.
[필멸의 대포(S. 화기)]
- 데모릭스가 궁극 진화에 힘입어 만들어 낸 화기. 뛰어난 재료를 이용하여 일생에 단 한 번만 만들어 낼 수 있다. 대포는 한 번 발사한 후 무조건 파괴된다. 적중된 대상을 먼지처럼 분해한다.
‘역시 회귀 전과 똑같다.’
그때도 데모릭스는 드라코리치를 앞에 두고 필멸의 대포를 만들었었다.
이번에도 데모릭스가 소환되는 순간, 나는 지금의 상황을 염두에 뒀었다.
그리고 예상은 한 치도 빗나가지 않고, 수순대로 진행되었다.
‘여기까진 완벽해.’
물론 이 대포에 맞는다고, 설명처럼 드라코리치가 먼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엔 드라코리치는 너무 강력한 존재였다.
하지만 충분한 효과를 거둘 것을 의심치 않았다.
‘이미 써 봤거든.’
흡족한 마음으로 화이트를 바라봤다.
“화이트, 쏴라!”
“예, 마스터.”
내가 필멸의 대포를 가리키며 말하자 화이트가 재빨리 대포 앞으로 나섰다.
놈의 사격 기술이라면, 브레스가 충돌하는 중에도 드라코리치를 충분히 맞출 수 있다.
이 또한 회귀 전 이미 있었던 일.
나는 실패에 대한 우려는 접어 둔 채 상황을 지켜보았다.
때마침 끝없을 것 같던 브레스 싸움도 끝이 났다.
애초에 브레스는 끝없이 뿜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순간, 화이트가 대포를 발사했다.
번개처럼 날아간 포탄은 드라코리치에게 명중했다.
파삭-!
포탄은 마치 과자처럼 부서지며 녹색 가루로 변해 드라코리치의 몸을 타고 퍼져 나갔다.
그러더니 마치 곰팡이처럼 드라코리치의 몸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이미 뼈만 남은 드라코리치의 몸은, 녹색 가루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파스스스-
하지만 놈의 날개 피막은 오래된 종이처럼 삭아 버렸다.
‘떨어져라!’
드라코리치를 보며 속으로 외쳤다.
쿠구궁-
마침내 날개가 망가진 놈이 결국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물론 놈은 마법의 힘으로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평소와 같은 비행은 할 수 없게 되었다.
‘일단 시작은 계획대로 되었군.’
그 순간, 내 머릿속으로 놈의 목소리가 파고 들어왔다.
[키키킥, 좋아. 재밌어. 키킥.]
광기와 함께 조금의 분노가 느껴지는 목소리.
말을 마친 드라코리치의 몸에서 시커먼 기운이 흘러나와 온 전장으로 퍼졌다.
그리고 곧이어 놈은 서릿발같이 차가운 기운 또한 내뿜었다.
놈은 스스로에게 저주를 걸기 전에는 엄연히 북방을 지배하던 블루 드래곤이었다.
냉기를 다루는 것은 놈의 특기.
강력한 냉기가 사방으로 쏘아지자 공기가 얼어붙었다.
물론 냉기 면역이 있는 내게는 그다지 위협적인 기술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두 다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휴고와 영웅들은 스스로 냉기를 견딜 능력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온몸에 불을 두르고 있는 루스 뒤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때 내 귀로 옛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수, 몬스터들이 미쳤어요. 인간들의 피해가 극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