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77화>
“전투력에 도움이 되는 거야. 상황이 급하니, 얼른 먹어 둬라.”
“아…… 감사합니다, 마스터.”
내가 화이트에게 준 것은 붉은색을 띤 구슬이었다.
놈은 아무 의심 없이 그것을 입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잠시 후, 놈의 몸에서 한층 더 강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아! 마스터, 정말 감사합니다. 귀한 것을 주셨군요. 열심히 마스터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화이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도 놈을 마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였다.
이제 놈의 목숨은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끊을 수 있게 되었다.
혹시나 제국과 관련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영웅 둘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용혈의 족쇄(S. 비약)]
- 골드 드래곤 노즈도름이 철없던 헤츨링 시절 노예를 부리기 위해 만든 비약. 드래곤의 피가 섞인 덕에 복용자의 마력이 크게 상승한다. 시전자가 원하는 순간, 복용자의 피에 섞인 드래곤의 피가 폭발하며 복용자를 절명에 이르게 한다.
‘하나밖에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야.’
저것은 노즈도름의 보물 창고 구석에서 발견한 물건이었다.
보는 순간 영웅에게 사용하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노즈도름에게 더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단호하게 거절당했지.’
저런 물건을 만든 것은 기품 있는 골드 드래곤으로서 수치라나.
오히려 내가 찾아낸 것을 당장 파괴하라고 요구해 올 정도로 드래곤은 불쾌해했었다.
노즈도름의 완고한 태도에 나는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당장 더 만들어 달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 가진 것만 쓰는 것으로 서로 타협을 했다.
하지만 용혈의 족쇄는 내게 너무나 요긴한 물건이었다.
그러니 드라코리치와의 일전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어떻게든 노즈도름을 구슬려 볼 생각이었다.
잠깐 생각하는 동안에도 전장에서는 웜이 계속 난리를 치고 있었다.
“화이트, 저놈을 잡는다. 너는 원거리에서 지원하도록.”
“예, 맡겨만 주십시오. 마스터.”
그렇게 말한 뒤에 놈은 저격을 위해 자리를 잡았다.
그를 보며 나는 팔찌를 사용했다.
[스킬 전이가 시전됩니다. 대상을 정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 : 시모 화이트]
[스킬 ‘투사체 확산’이 전이됩니다.]
[투사체 확산]
: 원거리 공격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공격력 자체에 대한 보정 효과는 없습니다.
‘음, 이건…….’
처음에 든 생각은 ‘꽝’이었다.
원거리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내게는 전혀 쓸모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후, 그 생각이 바뀌었다.
‘여의검의 구체에 적용되겠지? 혹시 원혼의 거울에도 가능할지도…….’
일단 구체를 발사하는 여의검에는 분명 적용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원혼의 거울에서 발사되는 광선에는 실험이 필요해 보였다.
‘광선을 투사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한데. 뭐, 해 보면 알겠지.’
어쨌든 쓸모가 아주 없지는 않을 것 같았다.
흡족한 마음으로 루스와 함께 성벽을 뛰어내렸다.
재빠르게 웜에게 다가갔을 때, 이미 휴고는 이미 웜과 몇 번 부딪친 후였다.
“대장, 이거 영 상성이 안 좋습니다.”
이미 휴고의 멸세폭에 맞은 듯, 웜의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초록색 체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웜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놈은 덩치가 너무 커, 저 정도의 상처로는 치명상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 놈은 딱히 급소라 할 만한 곳도 없었다.
“그래, 멸세폭으로는 쉽지 않겠다. 이쪽은 내가 맡을 테니, 너는 물러나 다른 놈들을 처리해라.”
“예, 대장. 조심하십시오.”
휴고가 물러나는 모습을 보며 웜을 처리할 방법을 궁리했다.
멸세폭보다 더 강력하고 넓은 범위를 가진 한 방이 필요한 상황.
방금 얻은 ‘투사체 확산’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루스, 적당히 놈의 시선을 끌어. 입에 빨려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고.”
“응, 걱정 마. 주인.”
“불은 적당히 써.”
“응, 알고 있어.”
해맑게 대답한 루스는 몸에 불을 휘감은 채 웜에게 달려들었다.
루스의 불 능력은 한 번 힘을 크게 쓰고 나면, 다시 사용하기 위해 회복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녀석에게는 본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는 불 능력을 아끼라고 미리 얘기해 두었었다.
그래서인지 루스는 불을 내쏘지 않고 몸에 두르기만 한 채, 웜과 근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서걱-
루스의 클로가 날카로운 빛을 뿌리며 웜의 피부를 잘라내었다.
드래곤 발톱으로 만든 클로는 한결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서걱-
루스의 공격에 연신 웜의 가죽이 베였다.
웜을 죽일 수는 없겠지만, 시선을 잡아 두기에는 충분했다.
쾅- 쾅-
그리고 성벽 위에서 화이트의 지원 사격이 웜의 몸에 연이어 명중했다.
웜의 몸에 손바닥만 한 구멍이 숭숭 뚫리며 초록색 체액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웜의 덩치 때문에 그 또한 치명상이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모습에 절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쯧, 화이트도 상성이 안 좋군. 역시, 아주 강한 한 방이 필요해.’
나는 여의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검 끝에 푸른 구체가 생겨나며 서서히 크기를 키워 갔다.
우우웅-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르도록 검을 움켜쥔 채 마력을 주입했다.
이제껏 제어가 안 될 것 같아 중간에 발사하곤 했지만, 최상급 용인화로 인해 강력해진 육체는 더 강한 힘을 모은 상태에서도 검을 제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우우웅- 우웅-
사방이 푸르스름한 빛에 휩싸일 정도로 검 끝의 구체가 커졌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여의검이 더 이상 마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보군.’
급격히 증가한 스탯 덕인지, 검의 한계까지 마력을 불어넣었음에도 마력의 여유가 있었다.
나는 웜을 몸통 가운데를 향해 구체를 발사했다.
웜은 여전히 루스에게 신경이 팔린 상태였다.
몸통의 반은 아직 땅속에 묻혀 있었는데, 지상에 나와 있는 입으로 루스를 집어삼키기 위해 꿈틀대고 있었다.
“루스, 뒤로!”
나는 루스를 크게 부르며, 빠지라는 시늉을 했다.
내 쪽을 힐끔 쳐다본 루스가 재빨리 몸을 뒤로 뺐다.
잠시 후, 구체가 웜의 몸통에 명중했다.
콰콰콰콰쾅-!
한계까지 마력을 응축시킨 구체는 강한 위력을 보였다.
구체에 적중된 부분이 완전히 터져 나가며, 웜의 몸통이 두 동강 나 버렸다.
끄에에에에엑-
웜이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지르며 꿈틀거렸다.
그런데 몸이 이등분이 되었음에도 놈의 목숨은 아직 붙어 있었다.
“후우, 이만하면 좀 죽을 만도 한데. 엄청 질기네.”
아까운 마음에 한탄이 흘러나왔다.
스킬 ‘투사체 확산’은 기대대로 큰 효과를 보여 주었다.
구체가 원래 가진 폭발 범위보다 훨씬 넓은 곳까지 충격이 미쳤고, 그 때문에 웜의 몸이 끊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웜이 죽지 않았다.
이전처럼 제대로 움직이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큰 몸을 꿈틀거리는 것만으로도 놈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주인, 그냥 내가 처리할게!”
루스가 의욕을 보였다.
“그래, 태워 버려라.”
나는 녀석에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웜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불의 사용을 허가받은 루스는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양손 끝에서 새파란 불길이 쏟아져 웜의 상처를 향해 발사되었다.
치이이익-
드래곤 레어에서 좋은 것을 많이 먹은 루스는 한층 더 강한 화력을 뿜어내었다.
불길이 웜의 체액을 증발시키는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웜의 몸속까지 불이 번져 파고 들어갔다.
끄에에에엑-
다시 한번 웜에게서 고통에 찬 소리가 터져 나왔다.
불길이 몸속에서 완전히 번졌는지, 놈의 입을 통해서 연기가 새어 나왔다.
잠시 후.
쿠구궁-
결국 웜의 거대한 몸뚱이가 움직임을 멈추더니 바닥으로 쓰러졌다.
“주인, 끝냈어. 히히.”
루스가 해맑게 웃으며 다가왔다.
녀석은 아직 여유가 있는지 힘든 기색은 없었다.
“잘했다. 루스. 진작에 너한테 맡길 걸 그랬구나.”
녀석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전장을 살피는데, 또다시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땅 거죽이 불쑥 솟아오르더니, 또 다른 웜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낭패였다.
“젠장. 또 있었군.”
흘끔 루스를 돌아보자, 녀석도 조금 질린 기색.
그때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해수, 내가 처리할까요?]
옛 친구의 목소리.
돌아보니 옛 친구가 커다란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옛 친구의 능력이라면 웜을 어렵지 않게 처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옛 친구를 향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직은 옛 친구의 힘을 소모할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다른 방법이 있기도 했고.
“루스, 태워 버려라. 전력을 다해도 좋다.”
“응, 주인! 내가 처리할게.”
녀석은 내 지시에 환하게 웃으며 웜에게 달려갔다.
잠시 후, 루스의 온몸이 다시 한번 새파란 불꽃에 휩싸이고, 양손에서 강력한 불길이 발사되었다.
콰르르르르-
이번에는 상처 입지 않은 웜이라 그런지 이전의 놈보다 훨씬 오래 버텼다.
몸에 불이 붙은 웜은 땅으로 파고들어 불을 끄려 들었다.
그러나 땅속에서도 루스의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웜은 생각대로 되지 않자, 땅에서 튀어나오며 루스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루스!”
내가 깜짝 놀라 외쳤을 때, 루스는 이미 웜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 상황.
‘바람의 걸음.’
‘점멸.’
나는 속도에 도움될 스킬을 모조리 사용하며 빠르게 웜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놈의 움직임에 이상이 느껴졌다.
루스를 삼키고 다물었던 놈의 입에서 뿌연 연기가 새어 나왔다.
그러더니 놈이 몸을 꿈틀거리며 날뛰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웜은 몸 겉에 불이 붙었을 때보다도 훨씬 더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달려들던 속도를 조금 늦추었다.
콰쾅-!
잠시 후, 웜의 몸통 위쪽이 터져 나가더니, 그곳에서 새파란 불꽃에 휩싸인 루스가 튀어나왔다.
하늘로 솟구친 루스는 중력에 의해 떨어져 내리며 양손을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손바닥에서 발사되는 한 줄기 불꽃.
콰아아아아아-
푸른색을 넘어 하얗게 보일 정도로 강력한 불길이 웜의 몸을 향해 쏘아졌다.
손바닥에서 내뿜어지는 화염의 기운 때문인지 루스는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불의 화신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끼에에에엑-
웜의 거대한 몸이 괴성을 지르며 녹아내렸다.
화염은 웜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기어코 웜의 생명이 끊어진 후에야 루스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헥, 헤엑- 주인, 나 이제 힘들어. 꼼짝도 못 하겠어.”
두 마리의 웜을 거의 혼자 처리하다시피 한 루스는 기진맥진한 상태.
특히 좀 전에 보여 준 모습은 나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그래, 정말 잘했다, 루스.”
나는 루스를 칭찬하며, 인벤토리를 뒤졌다.
드래곤의 레어에서 가져온 물건 중에 녀석에게 도움 될 만한 것이 있기 때문.
애초에 옛 친구의 도움을 거절한 것도, 루스의 불의 기운을 충전시킬 방법이 있어서였다.
[화정(火精)(S. 재료)]
- 불의 산맥에 사는 드워프가 수백 년을 꺼트리지 않고 지켜온 화로에서 생성된 불의 정화. 맑고 순수한 불의 기운을 가득 담고 있다.
‘노즈도름도 별걸 다 가지고 있어. 이건 아무리 봐도 드워프한테 갈취한 것 같은데. 그럴 거면 용혈의 족쇄 좀 만들어 줘도 되지 않나?’
아이템의 설명을 보자 괜히 노즈도름에게 심술이 났지만, 일단은 루스의 기력을 보충하는 것이 먼저.
화정을 꺼낼 때부터 이미 눈이 초롱초롱해진 루스에게 화정을 내밀었다.
“이거 먹고 기운 차려라, 루스.”
“앗싸! 주인, 고마워!”
녹초가 되어 있던 주제에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났는지, 루스는 번개처럼 내 손에서 화정을 낚아채 갔다.
그리고 날름 입에 집어넣더니.
“우오오! 시워-언하다.”
목욕탕에 들어간 아저씨 같은 소리를 내뱉는다.
나는 피식 웃으며 루스의 옆에 식량이 담긴 자루도 몇 개 내어 줬다.
“이것도 먹으면서 조금 더 쉬어. 완전히 회복되면 합류하고.”
“응응.”
루스는 이미 식량 자루의 주둥이를 풀어헤친 상태.
정신을 반쯤 놓고 음식을 흡입하는 루스를 두고 나는 걸음을 옮겼다.
목표는 좀 전에 루스가 잡은 웜의 사체.
웜의 몸에는 아직도 루스의 불길이 남아, 놈의 몸을 태우고 있었다.
‘다 타겠다. 얼른 하자.’
나는 재빠르게 데모릭스에게 뺏은 스킬을 사용했다.
‘아이템 추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