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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73화 (7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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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73화>

“아! 옛 친구.”

나는 그 장면을 금방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재앙에 오염되어, 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저항 중이던 옛 친구의 눈동자가 꼭 저랬었다.

“버티고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드래곤은 눈을 떴지만 몸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얼른 고개를 돌려 드래곤의 몸을 살폈다.

몸이 워낙에 커서, 이제껏 시야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예상대로 드래곤의 몸 곳곳에 시커멓게 변색된 비늘이 보였다.

‘오염되었다. 그리고 옛 친구처럼 버티고 있어.’

그 모습을 확인하자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퍼뜩 떠올랐다.

‘이런 뜻이었나?’

정령이 마지막에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이 드래곤을 정화해 달라고 한 거였군.”

생각보다 태연한 내 목소리를 듣자, 놀라 굳어 있던 휴고도 정신이 든 것 같았다.

“대장,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까 그 정령이 죽으면서 뭘 도와 달라고 했잖아. 그게 아마 저 드래곤을 정화해 달라는 것 같아. 그리고 너무 겁먹을 필요 없어. 드래곤 못 움직이니까.”

“저, 정말입니까?”

“그래, 너희랑 잠깐 헤어졌을 때, 비슷한 경우를 겪어 봤어. 움직이기는커녕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들 거야. 저기 봐. 지금 눈은 뜨고 있는데, 말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잖아.”

“그러고 보니, 대장 말대로 아무 반응이 없군요.”

내 말에 안심이 되는지, 휴고와 루스의 긴장이 차츰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녀석들을 진정시켜 놓고, 나는 드래곤에게 다가갔다.

뒤에서 휴고가 영 꺼림칙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내게는 확신이 있었다.

‘이 세계에 높은 격을 가진 존재들 중에 나를 아는 것들이 제법 많이 있단 말이야. 마왕부터 시작해서 옛 친구, 심지어 드라코리치도 부하인 다크 엘프의 태도를 보면 날 아는 것 같았지.’

그리고 좀 전의 정령도 왠지 나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나에게 부탁을 한 것이고.

나는 확신을 가진 채로 드래곤에게 다가갔다.

그러면서 드래곤의 몸을 자세히 살폈다.

‘드래곤이면…… 드래곤 하트를 정화하면 되려나? 근데 그게 어디 있지?’

다행히 드래곤 하트는 생각보다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드래곤의 가슴 한쪽이 몇 분에 한 번씩 환하게 빛났던 것이다.

그곳으로 다가가니, 황금빛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드래곤의 거대한 흉곽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시커먼 재앙의 기운과 드래곤 하트에서 뿜어지는 황금빛 기운이 드래곤의 몸속에서 싸우고 있었다.

가슴이 빛나는 것도, 재앙의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드래곤 하트에서 강대한 마력이 뿜어지면서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여기 있네. 이렇게 하면 되려나?”

중얼거린 나는 인벤토리에서 세계의 정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드래곤 하트가 있는 곳으로 가져다 대었다.

우우우웅-

그러자 세계의 정수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이윽고 상서로운 푸른빛이 정수에서 뿜어져 나와 드래곤 하트로 쏘아졌다.

세계의 정수와 드래곤 하트가 빛줄기에 의해 연결되자, 드래곤의 큰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더니 드래곤의 몸이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앗, 눈부셔!”

루스가 놀라 손으로 눈을 가리는 모습을 보며, 나도 얼른 눈을 감았다.

빛이 너무 밝아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눈꺼풀 밖에서 빛이 사그라진 것이 느껴졌을 때 나는 눈을 떴다.

그곳에는 늠름한 크기를 자랑하는 드래곤이 황금빛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일순 말문이 막혀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때 웅장한 목소리가 레어를 울렸다.

“고맙구나, 구원자여.”

역시 예상대로 드래곤도 나를 알고 있었다.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일단 상대가 드래곤이니 나는 겸양을 떨었다.

게다가 궁금한 것도 있고, 부탁할 것도 있다 보니 강하게 나가긴 힘들었다.

“너의 뜻대로 너의 할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왠지 옛 친구가 내게 했던 것과 비슷한 말이 드래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때를 잠시 떠올리는 사이, 드래곤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맹약을 지키는 자, 골드 드래곤 노즈도름이다. 구원자여, 너의 이름은 무엇인가?”

“저는 정해수입니다.”

“정해수, 나는 너에게 생명보다 더한 빚을 졌구나. 내게 원하는 것이 있느냐?”

바라던 말이 드래곤의 입에서 나왔다.

나는 속으로 미소 지으며 드래곤에게 질문했다.

“일단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저는 당신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이곳에 찾아왔습니다. 혹시 일부러 죽었다고 소문내신 적이 있습니까?”

올리버의 미심쩍은 태도가 생각났다.

놈이 고의로 내게 해코지한 것인지 확인해야 했다.

“나는 맹약을 지키는 자. 결코 죽음을 가장하지 않는다.”

‘아니라는 말이지? 그럼 올리버 이 자식이 날 엿 먹이려 들었다는 말인데…….’

놈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니 이가 갈렸다.

그때 노즈도름이 조금 높아진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내가 죽었다는 거짓을 말한 자가 누구냐?”

“로치데일의 왕자인 올리버 라스본이라는 자입니다.”

내 대답을 들은 노즈도름의 거대한 미간이 찌푸려졌다.

“라스본? 라스본이라는 성을 사용하는 자가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내 확답에 노즈도름이 콧김을 뿜으며 분노했다.

“크르르, 감히 내게 받은 이름으로 나를 기만하다니!”

로치데일의 왕가와 노즈도름 사이에 모종의 인연이 있다던 올리버의 말은 거짓이 아닌 모양이었다.

“혹시 라스본과 무슨 관계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노예였던 라스본은 내 도움으로 가문을 세울 수 있었다. 그들의 가문에 대대로 나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질 것이다. 한데 그 후예가 감히 나를 기만하려 했으니, 가만둘 수 없구나.”

노즈도름은 진심으로 분노한 듯 보였다.

특별히 기운을 내뿜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몸이 저릿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노즈도름이 말을 이었다.

“하나, 당장은 몸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구나. 너는 나에게 더 원하는 것이 없느냐?”

당연히 있다.

올리버 따위보다 이쪽이야말로 내게 정말 중요한 일이다.

“드라코리치가 북쪽에서 내려오며 인간을 멸종시키려 들고 있습니다. 제가 이곳으로 온 것도 드라코리치와의 싸움을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노즈도름 님, 힘을 빌려주십시오.”

“좋다. 북쪽의 블루 드래곤 놈이 정신이 나간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일이었다. 놈이 미치기 전에 진작 처리했어야 할 일. 이제라도 힘을 보태도록 하마. 하나…….”

노즈도름은 흔쾌히 대답하더니, 큰 눈을 껌벅이며 말을 이었다.

“재앙의 기운이 너무 지독하여 몸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구나. 그러니 전투가 있을 때까지 나는 이곳에서 회복에 전념하고 있겠다. 대신…….”

말과 함께 노즈도름의 눈이 잠시 황금빛으로 빛나더니, 내 발 앞에 스크롤이 하나 떨어졌다.

“이게 무엇입니까?”

“전투가 시작되면 그것을 찢어라. 그러면 내가 그곳으로 가도록 하마. 그 외에 또 원하는 것은 없느냐?”

나는 얼른 다른 용건을 말했다.

“혹시 아이템을 좀 주실 수 없겠습니까? 종류는 상관없고, 마력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양이 많으면 더 좋구요.”

노즈도름의 눈빛이 다시 한번 황금빛으로 빛났다.

그러자 한쪽 벽에 거대한 철문이 생겨나더니 활짝 열렸다.

“저곳에 내가 모은 물건들이 있다. 필요한 만큼 가져가거라.”

드래곤의 보물 창고가 활짝 열리는 순간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노즈도름은 휴식을 취할 생각인지 그대로 눈을 감았다.

나는 입이 귀에 걸리려는 것을 애써 티 내지 않으며, 얼른 창고로 다가갔다.

휴고와 루스도 어느새 내 뒤를 졸래졸래 따라왔다.

둘 다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주인, 주인! 아무거나 먹어도 돼?”

루스는 뷔페에 처음 온 어린이처럼 신나 있었다.

“나한테 먼저 물어보고 나서 먹어라.”

혹시라도 너무 중요한 것을 녀석이 먹어 버리면 안 되니, 나는 루스에게 미리 주의를 주었다.

그 후 우리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드래곤의 보물 창고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 * *

“올리버한테는 오히려 고마워해야 되겠어.”

상황을 보면 올리버가 좋지 못한 의도를 가진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드레곤 레어로 온 것은 결과적으로 내게 큰 이득이 되었다.

“아하하, 주인 이것 봐!”

눈앞에 루스가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녀석은 화기를 품은 아이템을 몇 개 주워 먹더니, 새파란 불꽃을 피워 올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화력이 올라가면서, 불꽃은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녀석의 손이 못 보던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

‘저게 드래곤 발톱이란 말이지?’

최근 들어 상대하는 적이 강해지면서, 튜토리얼에서 얻은 루스의 클로가 잘 통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전투가 벌어지면 루스는 멀리서 불을 쏘는 데 집중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좋은 무기를 새로 얻었다.

그것은 드래곤의 발톱으로 만든 클로.

한 손에 단 두 개의 칼날만이 자라나 있어 언뜻 보면 산양의 뿔 같기도 했지만, 엄연히 드래곤의 발톱으로 만든 무기였다.

루스는 새로 얻은 무기가 마냥 좋은 듯, 방방 뛰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 옆에 흐뭇하게 미소 짓는 휴고의 모습도 보였다.

녀석도 이번에 무기를 교체하게 되었다.

[무거운 분노(S. 둔기)]

- 골드 드래곤 노즈도름이 드워프에게 조공 받은 망치에 재미 삼아 마법을 걸어 완성되었다. 운석에서 채취한 정체 모를 금속으로 만들어져 사람이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으나, 노즈도름이 경화 마법을 걸어 인간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압도적인 무게 덕분에 굉장한 파괴력을 자랑한다.

휴고가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들고 있는 것은 검은색의 망치.

쥐고 있는 사람에게는 경화 마법 덕에 가볍게 느껴지지만, 내려놓으면 바닥에 금이 갈 정도로 무겁다.

‘저걸로 멸세폭을 날리면 볼 만하겠군.’

녀석들 못지않게 나도 좋은 것을 얻었다.

[최상급 용인화 비약(S. 비약)]

- 용의 힘이 담긴 비약. 골드 드래곤 노즈도름이 자신의 피를 이용해 직접 만들었다. 복용 시 용처럼 강력한 육체를 가지게 된다.

손에 든 물건을 보니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예전 하급 용인화 비약을 먹었을 때, 더 높은 등급의 것을 구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구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걸 먹으면 멸세폭의 부담이 확연히 줄겠지. 기본 전투력도 더 높아질 테고.’

전화위복이란 말이 이보다 잘 어울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좋은 물건을 굳이 묵혀 놓을 필요가 없으니, 나는 최상급 용인화의 비약을 바로 복용하기로 했다.

하급을 먹었을 때, 몸이 변하느라 한동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최상급이면 변화는 더 심할 터.

이곳에서 먹고 나가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았다.

‘여기서 먹으면 드래곤이 호위를 서 주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위험할 일은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정자세로 자리를 잡고 앉아 최상급 용인화의 비약을 입으로 가져갔다.

비약이 목으로 넘어가자, 목구멍에서 화끈한 느낌이 들더니, 뱃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우드드득.

찌이익-

그리고 온몸의 뼈와 근육이 뒤틀리고 찢어지기 시작했다.

너무 심한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평소 멸세폭을 사용하는 탓에, 신체가 부서지는 고통에 상당히 익숙한데도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끄윽, 젠……장.”

결국 신음과 함께 나는 정신을 잃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루스와 휴고가 옆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젠장, 요즘 자꾸 기절하는 것 같은데.”

내가 혼자 툴툴거리자 휴고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래도 이번엔 좋은 일 아닙니까. 몸은 좀 어떠십니까, 대장?”

휴고의 말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여 보았다.

‘가볍다!’

몸이 날아갈 듯 가볍게 느껴졌다.

그리고 세포 하나하나에 강한 힘이 깃든 것처럼, 움직임에 힘이 실렸다.

파앙-

가볍게 내 뻗은 주먹에 공기가 찢어지며 파공음이 났다.

“후우, 기절할 만한 가치가 있군.”

내가 막 몸을 풀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금발에 금안을 가진 30대 미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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