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69화>
내가 막 대응하려는 찰나, 한발 앞서 루스에게 다가가는 그림자가 있었다.
재빨리 다가간 휴고가 루스의 뒤편을 막아선 채, 얼음 보호막을 시전한 것이다.
콰콰쾅!
히드라가 뿜은 강력한 냉기는 보호막에 막혀 사라졌다.
비록 하루에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지만, 루스를 지키는 데 사용했으니 손해는 아니었다.
“아앗, 깜짝이야! 휴고, 고마워.”
“그래, 조심해. 주위 잘 살피고.”
휴고는 루스에게 자상하게 웃어 주고는 다시 움직였다.
그 모습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이제 몇 개 안 남았으니, 빨리 처리하자.”
부서진 머리는 최소한 몇 분은 걸려야 재생될 것이다.
하나 정도만 더 없애고 나면, 나머지는 힘을 합쳐 금방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일행을 독려해 전투를 마무리하려는 찰나, 루스의 외침이 들려왔다.
“주인! 주인! 저쪽에 그놈들이야!”
나는 재빨리 루스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지금 상황에서 절대 보고 싶지 않은 놈들이 나타나 있었다.
언제 이곳으로 온 것인지, 붉은 옷으로 온몸을 감싼 황가수호대가 무리 지어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젠장, 저게 다 몇 명이야.’
언뜻 보기에도 수십 명은 넘어 보이는 놈들의 모습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다시 한번 놈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폈다.
‘이쪽으로 오는군. 내가 최우선 목표인가? 히드라는 어쩔 셈이지?’
놈들은 재앙의 기운을 내뿜는 몬스터들이 주위에 널려 있음에도 신경 쓰지 않고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반쯤 무리를 나누더니, 반은 내게로 반은 히드라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나마 다행이군. 젠장.,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이제 뒷일은 뒤에 생각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일단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부터 시작했다.
고개를 슬쩍 돌려 오를란도를 쳐다봤다.
놈은 여전히 보호막을 건 채로 히드라를 상대하는 중.
보아하니 황가수호대 쪽에는 별달리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황가수호대가 등장한 이상 오를란도의 행동을 예측할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내가 황가수호대와 싸울 때 오를란도가 순순히 내 명을 듣지 않으리란 것이었다.
그런 폭탄을 그대로 끌어안고 전투에 돌입할 수는 없었다.
결정을 내린 나는 재빨리 오를란도의 뒤쪽으로 접근했다.
내 의도를 모르는 오를란도는, 내가 뒤로 접근하고 있음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놈의 방어막을 생각하면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한 상황.
하지만 여의검에 마력을 불어넣고 있을 시간은 없다.
나는 오를란도의 등을 향해 검을 냅다 휘둘렀다.
‘멸세폭.’
콰콰콰콰쾅-!
순간 보호막이 터져 나가며, 놈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그 순간, 때마침 히드라의 불길이 놈에게 뿜어졌다.
그러자 놈이 입을 웅얼거리며 다시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아마도 보호막을 다시 사용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히드라의 불길이 놈의 몸에 쏟아지고 있었다.
‘기회다!’
나는 재빨리 왼손을 들어 놈의 가슴을 향해 광선을 발사했다.
번쩍-!
“커억!”
충격이 많이 축적되지 않아 파괴력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광선에 맞자 놈의 주문이 끊어졌다.
“도……대체 왜!?”
그러자 놈이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물어 왔다.
하지만 나는 움직임을 늦추지 않았다.
이 정도로 놈을 완전히 죽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커져라.’
나는 여의검을 크기를 키워 강기공을 두른 후 재빨리 놈에게 휘둘렀다.
콰쾅-!
놈의 몸이 멀리 날아가 처박혔다.
하지만 히드라의 불길에 타고, 등허리에 멸세폭을 맞고, 원혼의 거울에 가슴이 꿰뚫렸음에도 오를란도는 아직 죽지 않았다.
쓰러진 놈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크윽, 지키……는 자의 신념……으…….”
하지만 놈이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나도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바퀴벌레 같은 자식, 제발 좀 죽어라!’
“발동!”
나는 재빨리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나가떨어진 오를란도의 발밑에서 강력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
콰쾅! 콰콰쾅-!
그것은 내가 드라코리치와의 일전을 대비해 미리 설치해 놓은 마법 함정이었다.
이것을 위해 그동안 연합 측에 아이템을 요구해 온 것이기도 했다.
“크어어억-!”
오를랄도의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뒤이어 놈의 몸에서 기운이 흘러나와 내게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마법 함정에 당하고서야 드디어 놈의 숨이 끊어진 것이다.
기운이 흡수되는 것이야말로, 놈이 확실히 죽었다는 증거였다.
“휴우-.”
그제야 한숨 돌린 나는 얼른 오를란도의 시체로 다가갔다.
그리고 죽은 놈의 손에 들린 듀랜달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듀랜달은 내가 집어 들자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마치 죽은 소환 영웅들의 시체가 사라지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쳇, 안 될 거 같더라니.’
내가 아쉬워하고 있을 때, 곧이어 오를란도의 시체도 사라져 갔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 무언가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어 대충 확인하고는 얼른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영웅들이 죽으며 내놓은 물건답게 굉장히 훌륭한 것이었지만, 지금 그것을 감상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사실,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반으로 나뉜 황가수호대가 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 수는 무려 오십 명.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다.’
나는 달려드는 황가수호대의 발밑에 있는 마법 함정을 죄다 발동시켜 버렸다.
콰콰쾅! 콰쾅!
설치에 소모된 재료의 질이 높지 않아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끊임없이 폭발이 일어나자 황가수호대가 하나둘 죽어 나갔다.
즉사하지 않더라도, 상처를 입고 전투가 힘들어 보이는 놈들도 생겼다.
그사이 나는 뒤로 슬금슬금 이동하며 마법 함정으로 놈들을 계속 공격해 나갔다.
콰쾅-!
콰콰쾅-!
놈들은 마법 함정에 당하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나를 향해 똑바로 짓쳐 드는 것이 마치 기계를 보는 것 같아 섬뜩했다.
‘징그러운 것들, 갑자기 나타나지 좀 마라!’
내가 계속 거리를 벌리며 마법 함정으로 놈들을 처리해 나갈 때.
루스의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안 돼애애! 휴고오-!”
평소의 루스와는 완전히 다른 목소리.
처절한 녀석의 목소리에 저절로 내 고개가 돌아갔다.
루스는 이제껏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강력한 불길을 몸에서 뿜어내며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 눈길이 녀석의 시선을 따라갔다.
시선이 가리키는 곳에는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고, 생각지도 못했던 광경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가슴에 구멍이 뚫린 휴고가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런, 씨발!”
욕설은 내뱉은 나는 휴고가 쓰러진 방향을 향해 점멸을 사용했다.
스팟-
‘바람의 걸음.’
그 후 바람의 걸음을 사용하고 전력을 다해 휴고에게로 달렸다.
‘젠장, 빌어먹을!’
마음속으로 계속 욕설을 내뱉으며 그곳으로 다가가려는데, 몇 명의 황가수호대가 내 앞을 막아섰다.
휴고를 저렇게 만든 것도 이놈들의 짓인 듯했다.
히드라를 상대하던 휴고가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황가수호대의 공격이 들이닥친 것 같았다.
찢어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이 솟았지만, 지금은 놈들을 상대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멸세폭.’
콰콰콰쾅-!
달리는 기세를 죽이지 않고 앞쪽을 향해 멸세폭을 날려버린 후, 하체에 힘을 줘 점프했다.
거듭된 멸세폭의 후유증으로 몸이 삐걱거렸지만, 그래도 앞을 막아선 놈들을 뿌리칠 수 있었다.
내가 막 쓰러진 휴고에게 도착했을 때, 뒤에서도 폭음이 들려왔다.
콰르르르르-
후끈한 열기가 이곳까지 느껴지는 것을 보니, 루스가 화나 날뛰고 있는 것 같았다.
흥분한 루스가 염려되었지만, 일단은 휴고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나는 얼른 휴고의 가슴팍을 살폈다.
녀석의 왼쪽 가슴, 심장이 위치한 곳에는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황가수호대의 오러에 관통당한 것 같았다.
얼른 휴고의 코에 귀를 가져다 대어 보았지만,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젠장! 방법, 방법이…….”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휴고를 살려 낼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조금 전 오를란도가 죽으며 흘린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수호자의 신념(S. 비약)]
- 성검 듀랜달의 기운이 검의 주인을 위해 오랜 시간 모여 만들어진 비약. 상처 회복에 탁월한 효과를 가진다.
이것은 등급에 어울리는 뛰어난 치료약일 것이다.
소환 영웅이 죽으며 떨어트린 것이니, 그 효과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치료와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
이것을 먹인다고 휴고가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그래도……. 제발.’
하지만 나는 간절함 바람과 함께 비약을 휴고의 입에 흘려 넣었다.
차마 녀석의 죽음을 이대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온갖 감정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애초에 녀석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아서 살게 뒀어야 해.’
초반에 내 행동으로 미래가 바뀌어 버리면서 휴고는 나의 일행이 되었다.
그 바람에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 결국 지금 이 자리에 누워 있는 것이다.
“씨발!”
쾅!
감정을 주체 못 해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그 충격으로 옆에 누워 있는 휴고의 몸이 들썩였다.
그 장면에 혹시나 했지만, 여전히 녀석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후회만큼이나 내 가슴속을 채우는 다른 감정도 있었다.
그것은 분노였다.
“개새끼들. 다 죽여 버리겠다.”
란슬롯에게 심장을 뚫렸을 때만큼이나 뜨거운 것이 가슴속에 차올랐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때마침 내게 시뻘건 오러가 날아오고 있었다.
‘절대불변.’
여의검에 절대불변을 걸어 공격을 튕겨 낸 후, 나는 황가수호대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놈들에 대한 살의가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커져라.’
내 키의 두 배쯤 길어진 여의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쾅!
내게 달려들던 황가수호대 둘이 내 공격에 휘말려 단번에 옆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나머지 놈들에게 내 분노가 다시금 쏟아졌다.
‘멸세폭.’
콰콰콰콰쾅-!
오늘만 몇 번째 멸세폭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노가 고통을 압도한 것인지, 신기하게도 몸이 계속 움직여졌다.
나는 한 무리의 황가수호대를 쓸어버린 후 다음 목표를 물색하기 위해 주위를 훑어보았다.
그러자 시뻘건 불덩이가 날뛰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분노한 루스였다.
녀석은 난생처음 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시뻘건 불길에 휩싸였음에도 은빛이 은은하게 도는 몸에는 드래곤의 비늘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아다만티움인가?’
얼마 전 먹은 아다만티움 골렘의 영향인지, 몸은 마치 불타는 금속 같았다.
녀석은 방어를 도외시한 채 사방으로 불길을 난사하고 있었다.
히드라를 상대하던 오십 명에 가까운 황가수호대들은, 루스에게 이미 열 명 이상이 죽거나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내 마음속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고맙게도 그 마음을 풀 대상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에 내가 마법 함정으로 상대하던 황가수호대였다.
놈들의 수는 20명 정도.
내가 휴고에게 워낙 빠르게 달려간 바람에, 놈들은 이제야 나를 쫓아온 것이었다.
“흐흐흐흐. 그래, 한 번 해보자.”
내 입에서 한동안 나오지 않았던 광소가 새어 나왔다.
놈들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가면서 여의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우웅-
푸른 구체가 검 끝에 맺혔다.
마력을 불어넣은 시간이 길지 않아 주먹만 한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는 지체 없이 그것을 황가수호대에게 날렸다.
콰쾅-!
구체에 직격당한 황가수호대 한 놈이 튕겨 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스무 명에 가까운 놈들이 내게 달려드는 중이었다.
‘터져라.’
나는 놈들의 발밑에 만들어져 있는 마법 함정을 다시 발동시켰다.
콰콰콰쾅-!
다시 한번 폭음이 터지며 달려들던 놈 중 몇이 쓰러졌다.
하지만 나는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발동, 발동! 터져라! 죄다 터져라!’
사방에 만들어 둔 마법 함정으로 모조리 터트려 버렸다.
혹시나 루스가 휘말릴 수도 있었지만, 녀석이라면 괜찮다.
‘루스의 맷집이면 문제없다.’
승격의 비약을 먹은 루스는 진작부터 체력이 S급이었다.
거기에 드래곤 비늘에 아다만티움까지 먹었으니, 마법 함정에 죽지는 않을 것이다.
콰콰쾅- 콰쾅쾅-!
콰콰쾅! 꽈앙-!
천지가 폭발하며, 온 사방이 불바다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