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65화>
우리는 약에 취한 척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누군가 방으로 들어왔다.
발소리를 들으니 10명은 되어 보였다.
그들 속에서 시장과 대화를 나누던 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발이 잘 듣는군. 플레이어라더니 별거 없구만. 어서들 묶어, 무기는 챙기고.”
발소리가 테이블 주위를 감싸며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휴고가 벌떡 일어나며 망치를 휘둘렀다.
퍽-
순식간에 한 놈을 날려 버린 휴고는, 재빨리 문 앞으로 가 퇴로를 막았다.
그사이 나와 루스도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서걱-
큰 소리 내어서 좋을 것이 없는 상황.
나는 최소한의 힘만을 끌어내어 놈들을 처리해 나갔다.
수준 차가 워낙 많이 나다 보니, 특별한 기술을 쓰지 않고도 충분히 압도할 수 있었다.
잠시 후, 놈들은 모두 싸늘한 시체가 되어 쓰러졌다.
“가자. 시장을 잡아서 무슨 생각이었는지 한번 물어보자고.”
나는 일행과 함께 조용히 밖으로 나와 공관으로 다가갔다.
경비를 서던 놈들이 다 우리를 공격하는 데 동원되었는지, 가는 동안 방해는 없었다.
집무실의 문을 열자 안에서 시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끝났나? 놈들은 어떻게 했나?”
시장은 우리를 자기 부하라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말없이 살짝 열린 문을 열어젖히며 들어가자 놈의 경악성이 들려왔다.
“헉! 네, 네놈이 어떻게?”
“네 부하들은 다 죽었다. 그러니 쓸데없는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마, 말도 안 되는…….”
“네가 약을 탄 음식은 먹지도 않았어. 그러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그런 거 말고, 해야 할 이야기가 좀 있지 않나?”
시장의 눈이 떨렸다.
어떻게든 도망칠 궁리를 하는 것 같았지만, 방법이 없다는 것을 놈도 알 것이다.
나는 놈의 얼굴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왜 우리를 공격하려 한 거지?”
놈은 대답 없이 눈알만 굴리고 있는 중.
이대로는 대답을 듣기 힘들 것 같았다.
나는 다가서며 놈의 허벅지를 칼로 찔러 버렸다.
푹-
“끄아아악!”
놈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옷가지를 대충 꺼내어 놈의 입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놈의 허벅지에 꽂아 놓은 상태로 칼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커져라.’
그러자 여의검이 조금씩 커져 갔다.
“끄윽, 끅…….”
생살이 찢어지는 고통에 놈의 입에서 또 비명이 새어 나오려 했지만, 옷가지에 막혀 답답한 소리만 흘러나왔다.
잠시 후, 허벅지에 칼을 그대로 꽂아 놓은 채로 놈의 입에서 옷가지를 빼냈다.
“왜 나를 공격했지?”
그러자 시장은 더 이상 고통을 견딜 자신이 없는지, 질문에 순순히 대답했다.
“너, 너를 인질로 잡으면 노르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날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던데, 그때부터 그럴 생각이었나 보군. 근데 날 인질로 잡는다고 노르트가 당신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했나? 좀 이해가 안 되는데?”
“어차피 노르트는 도망쳐 버린 상황인데, 성공하든 실패하든 무슨 상관인가? 게다가 네놈은 이미 제국에 수배당하고 있지 않나? 공격해도 아무 뒤탈도 없으니 시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제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관심이 갔다.
“제국에 수배되었다니, 무슨 소리지?”
“네놈이 나타나면 제국에 바로 알리라고 며칠 전에 수배령이 내려왔다. 이제 곧 있으면 네놈을 잡으러 제국에서 올 거다. 나는 곧 제국의 귀족이 될 몸이야. 빨리 나를 풀어주고 도망이나 치는 게 나을걸?”
시장이 허세를 부렸지만, 제국의 반응을 생각하느라 그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도 북쪽에서 황가수호대를 처치한 것 때문인지, 황제가 나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것 같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시장의 눈빛이 심상치 않더라니, 애초에 제국의 수배 때문인 것 같았다.
‘나를 잡는 대가로 귀족 자리라도 약속받았나 보군.’
대충 상황은 파악되었다.
하지만 이미 시장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다.
내 쪽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더라도, 이미 제국에 붙기로 작정한 시장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시장의 허벅지에 꽂힌 검을 뽑아 단숨에 놈의 목을 베어 버렸다.
시장을 처리한 후,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풀어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타타타탁-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노크도 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
시장의 집무실인 것을 감안하면, 몹시 급한 일이 발생한 것 같았다.
문이 열린 후 사람이 미처 들어오기도 전에 목소리부터 들려왔다.
“시장님, 큰일 났습니다!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
외침과 함께 경비병이 들어왔다.
차림을 보니 성벽을 지키는 자들 중 하나인 것 같았다.
막 소리치며 들어온 놈이 미처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마침 문 앞에 있던 휴고가 움직였다.
퍽-
휴고의 손날이 뒷목을 치자, 경비병이 짚단처럼 쓰러졌다.
기절한 경비병을 구석에 던져 놓고 빠르게 밖으로 나섰다.
‘몬스터라……. 일반 몬스터 가지고 저렇게 호들갑을 떨 리는 없으니, 아마 드라코리치의 노예가 나타난 모양이군.’
그런 생각을 하며 밖으로 나오니, 성문 밖에서 굉음이 울리고 있었다.
쾅! 콰쾅-!
무언가가 성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같았다.
경비병들은 모조리 성벽 위에 몰려들어 밖을 향해 화살을 쏘고 있었다.
그런데도 굉음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을 보니, 화살 공격이 전혀 효과가 없는 모양이었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일행을 이끌고 성벽으로 올랐다.
지키는 자들이 없으니, 성벽에 오르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성벽 위에 올라서자 드디어 몬스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3미터 정도 되는 키를 가진 금속 거인이 주먹으로 성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나는 금속 거인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다만티움 골렘.’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골렘이었다.
위명에 걸맞게 위에서 쏘는 화살과 각종 병기의 공격은 골렘에게 생채기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대장, 저게 뭡니까?”
옆에서 휴고가 물어 왔다.
“아다만티움 골렘이다. 드라코리치의 장난감이지. 드래곤이 아니고서는 만들지 못하는 물건이야.”
애초에 저만큼이나 되는 아다만티움을 보유하는 것 자체가 드래곤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다만티움에 고도의 마법진을 새겨 골렘이 작동하게 하는 것 또한 드래곤이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이었다.
내 설명을 들은 휴고가 되물어 왔다.
“그럼 저놈은 어떻게 처치합니까?”
“보통 골렘이랑 다를 것 없다. 핵을 파괴해야 해. 다만…… 핵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뿐더러 알아도 부수기 어렵다는 게 문제지.”
아다만티움 골렘의 방어력을 넘어서는 강력한 공격을 가하지 않고는 놈을 쓰러트릴 수 없다.
콰지직-
골렘의 공격에 결국 성문이 부서져 나갔다.
골렘은 성큼성큼 성안으로 걸어 들어가더니, 사방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쾅! 쾅!
그 공격에 건물과 사람들이 휩쓸려 나갔다.
성벽 위에서 경비병들이 화살을 날리고 있지만, 여전히 효과는 전무했다.
그 모습을 보며, 휴고가 걱정스럽게 물어 왔다.
“대장, 어쩌실 겁니까?”
저놈을 잡을 방법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조금 전에 시장을 처치하고 온 참이다.
이곳에서 저놈을 상대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또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판단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대답 없이 생각에 잠겼다.
휴고도 내 의중을 읽었는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겼다.
누군가 아다만티움 골렘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꽝-!
황금색 판금 갑옷을 입은 남자가 방패로 골렘의 공격을 막아 내었다.
남자는 양손으로 큰 방패를 들고 방어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가 방어하는 동안, 뒤에서 기다란 창을 든 자들이 나타났다.
수는 서른 남짓.
그들은 창으로 골렘을 찌르기 시작했다.
콰쾅-쾅-
오러에 감싼 창날이 골렘을 찔러 대었지만, 여전히 골렘은 피해를 입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번갈아 가며 내지르는 창에 골렘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제법이군. 당장 시민들의 피해는 막을 수 있겠어.”
“주인, 근데 저러다가 지치면 어떻게 돼? 잡지는 못할 것 같은데?”
옆에서 같이 지켜보던 루스가 내 중얼거림을 듣더니 물어 왔다.
“…….”
예상되는 결과가 뻔해, 딱히 대답이 필요 없었다.
실제로 시간이 흐르자 상황은 루스의 말처럼 진행되었다.
앞에서 막아서던 기사도, 창을 찌르던 병사들도 지쳐 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아다만티움 골렘은 처음과 다를 것 없이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콰쾅-!
결국 방패를 든 기사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뒤에 있던 창잡이들도 덩달아 밀려나며 진형이 흐트러졌다.
“대장,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모습을 본 휴고가 다시 물어 왔다.
슬슬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래, 일단 잡고 보자. 저자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말을 해 보고 안 통하면, 어쩔 수 없지.”
대신 시선을 끌어 주는 자들이 있을 때 잡는 것이 내게도 편했다.
그리고 저 정도 스탯 덩어리를 남에게 양보할 생각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 개입하느냐의 문제.
저들이 위기를 맞은 상태니, 지금쯤이면 끼어들기 나쁠 것은 없어 보였다.
결정을 내리고 성벽 아래로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루스, 휴고. 저쪽에 합류해서 시간을 끌어라.”
골렘을 막고 있는 자들을 가리키며 한 말이었다.
일행이 그쪽으로 달려드는 것을 보며 나는 골렘의 뒤쪽 건물 위에 몸을 멈췄다.
그리고 여의검을 뽑아 들어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우우웅-
마력이 주입되자 검 끝에 푸른 구체가 생겨났다.
그것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고, 더 선명한 빛을 내뿜었다.
화르르르-
검에 마력을 불어넣는 중에 루스가 골렘에게 불길을 쏘아 내는 모습이 보였다.
그 공격에 드디어 골렘에게 처음으로 상처가 생겼다.
놈의 표면이 미세하게 녹아내린 것이다.
하지만 저 정도로 골렘을 죽일 수는 없다.
핵을 파괴하지 못하는 한, 놈은 계속 재생할 테니까.
우우웅- 우웅-
잠시 상황을 지켜보는 사이, 검 끝에 맺힌 구체가 압도적인 기운을 발하기 시작했다.
검을 쥔 손이 덜덜 떨려 올 지경.
마력을 더 쥐어짜면 발사 후에 다른 스킬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더 이상 구체에 기운이 모이면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이제 발사할 시간이 온 것이다.
나는 여전히 루스의 불길에 맞서고 있는 골렘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순간 검 끝에 맺혀 있던 푸른 구체가 놈의 등을 향해 날아갔다.
막 구체가 놈이 몸에 닿기 직전, 놈이 공격을 눈치챘는지 몸을 휙 돌렸다.
그리고 양팔을 들어 가슴을 방어했다.
그 순간, 구체가 놈에게 명중했다.
콰콰콰콰쾅-!
성벽이 들썩거릴 정도의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잠시 후, 상황이 드러났다.
나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쯧, 질긴 자식.”
놈은 구체를 맞고도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
구체에 직격당한 놈의 양팔은 완전히 사라졌고, 가슴에도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그 사이로 핵이 삐죽이 나와 있기까지 했다.
하지만 핵은 아직 파괴되지 않았다.
가만히 두면 놈은 재생할 것이다.
생각하기 무섭게 놈의 부서진 가슴이 재생되어 갔다.
그러더니 드러난 핵이 조금씩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그때, 휴고가 놈의 뒤로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죽어라!”
콰콰콰쾅-!
휴고의 멸세폭이 골렘의 등을 후려쳤다.
핵이 노출된 부위가 아니라 직접 피해를 주지는 못했지만, 핵에도 충격이 미쳤는지 재생이 덜컥 멈추었다.
나는 그 순간 몸을 날렸다.
‘점멸.’
그리고 여의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커져라.’
내 의지를 받은 여의검은 금세 내 키의 몇 배로 늘어났다.
나는 그것을 전력을 다해 골렘의 가슴으로 휘둘렀다.
‘멸세폭.’
콰콰콰콰콰쾅-!
더 이상 가슴을 가릴 팔도 없는 골렘은,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공격이 성공하는 순간, 나는 왼손을 들어 올렸다.
‘확실히 끝낸다. 원혼의 거울.’
왼 손바닥에서 검푸른 광선이 핵이 있는 위치로 발사되었다.
치이익-
금속이 녹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위가 적막에 휩싸였다. 그러더니 잠시 후, 골렘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후들거리는 몸을 추슬렀다.
멸세폭을 한 번밖에 사용하지 않아 부상은 크지 않았지만, 마력을 바닥까지 쥐어짠 탓에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잠시 가만히 서서 쉬고 있는데, 루스가 휴고를 질질 끌고 다가왔다.
“주인, 완전 멋졌어! 하하.”
“그래, 너도 잘했다.”
녀석은 멸세폭의 후유증으로 굳어 버린 휴고를 자리에 던져 놓고서 반짝이는 눈빛으로 내게 물어 왔다.
“주인, 나 저거 먹어도 돼?”
녀석이 가리킨 것은 다름 아닌 아다만티움 골렘의 잔해.
눈빛을 빛내는 것을 보니, 모처럼 녀석의 입맛에 맞는 것을 발견한 것 같았다.
나도 기분이 좋아져 흔쾌히 허락했다.
“그래, 실컷 먹어라. 남는 건 인벤토리에 보관하면 되니 가져오고.”
“응, 주인, 고마워! 하하.”
녀석이 신나서 달려가는 것을 보며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휴고에게 먹여 주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 나도 휴식을 취했다.
S급 100을 한참 넘어선 내 마력은 빠른 속도로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마력을 회복하며 쉬고 있을 때, 누군가 내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