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64화>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지금껏 자기 역할을 다해 준 검, 언브레이커블.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 말고는 딱히 특징이 없지만, 이제껏 유용하게 잘 썼다.
하지만 여의검을 얻었고, 때마침 아이템이 필요한 상황이니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적당한 자리를 잡은 후 언브레이커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바닥을 향해 스킬을 사용했다.
‘마법 함정.’
그러자 바닥에서 빛이 솟아올랐다.
빛은 언브레이커블을 집어삼키더니 그 크기를 키워 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바닥에 하나의 마법진이 생겨났다.
잠시 시간이 더 흐르자, 마법진은 스르륵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 되었다. 놈들의 발길을 묶어 둘 뿐만 아니라, 한 방 먹여 줄 수도 있겠어.’
그때 옆에서 휴고가 다가오며 물었다.
“대장,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막 그 질문에 대답하려는데, 던전의 입구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저벅저벅.
여러 명이 동시에 내는 발자국 소리.
“주인, 놈들이야.”
옆에서 들려오는 루스의 목소리가 아니어도 알 수 있었다.
이제 슬슬 연기를 해야 할 차례다.
“놈들이 시야에 들어오면, 놀라서 도망치는 척한다.”
“응, 재밌겠다.”
루스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해 왔다.
녀석의 머리를 한 번 쓸어 준 후 잠시 기다리자 황가수호대가 나타났다.
수는 스무 명 정도.
“많이도 왔네. 튀자!”
말을 마치고 얼른 뒤돌아 달렸다. 일행도 재빨리 나를 따라 뛰었다.
타다다다닥-
그러자 뒤에서 황가수호대가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달리면서 뒤를 확인했다. 터트릴 순간을 정하기 위함이었다.
마법 함정은 닿으면 터지거나 시간에 맞춰 터지게 할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피해를 더 크게 만들기 위해 직접 터트리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잠시 후, 황가수호대 무리가 마법 함정 위를 정확히 지나는 순간.
나는 마법 함정을 활성화했다.
‘터져라!’
그러자 바닥에서 강력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
콰콰콰쾅-! 콰콰쾅-!
재료로 사용한 언브레이커블이 제법 큰 기운을 포함하고 있어서 그런지, 폭발은 강력하고 화려했다.
나는 뒤돌아서서 그 장면을 음미했다.
일행도 어느새 달리는 것을 멈추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폭발의 충격이 사라지자, 흡족한 결과가 드러났다.
스물쯤 되는 황가수호대 중 살아남은 것은 10명도 채 안 되었다.
그마저도 다들 큰 부상을 입은 상태.
죽은 황가수호대로부터 흡수되는 강력한 기운을 즐기며, 나는 살아남은 황가수호대에게 쇄도했다.
휴고와 루스도 내 뒤를 따라 달려들었다.
멸세폭과 원혼의 거울을 아끼지 않고 사용한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아 남은 황가수호대를 모두 처치할 수 있었다.
[정해수]
근력 : 100(S)
민첩 : 100(S)
체력 : 100(S)
마력 : 100(S)
스킬
- 랜덤 영웅 소환 (99230/64000 코인)
┗ 영웅 진화 (99230/10000 코인)
: 진화 가능 영웅 [없음]
- 호문쿨루스 소환
- 초재생
- 마법 함정
…….
“하아, 좋군.”
황가수호대를 처치하며 얻은 막대한 기운 덕에 드디어 모든 스탯이 S급 100에 이르렀다.
“대장, 스탯이 정말 많이 올랐습니다.”
그때 휴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녀석도 멸세폭을 아끼지 않은 덕에 활약을 했지만,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래, 너도 고생했다. 얼른 몸 추슬러라.”
“예, 대장.”
녀석도 아마 이번에 큰 성장을 했을 것이다.
‘황가수호대가 쫓아와 준 덕분에 수도 방문이 오히려 큰 이득이 되었군.’
사실 제국이 수도에 최대한 웅크리고 있다는 것 말고는 그다지 가치 있는 정보를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황가수호대를 잡고 얻은 스탯 만으로도 수도로 온 보람이 있었다.
‘이제 수도에 더 머무를 수도 없으니, 서쪽으로 가야 되겠어.’
휴고의 몸이 회복되자마자 우리는 서쪽을 향한 여정에 올랐다.
* * *
며칠 후, 우리는 서쪽 군소 국가 연합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바리살에 도착했다.
노르트 혼자서 넓은 범위를 감당하고 있는 북쪽과는 달리, 서쪽은 여러 작은 나라들이 연합해 몬스터의 방벽이 되어 왔다.
이곳 바리살은 군소 국가들이 모여서 대소사를 결정하는 독립 도시였다.
어느 나라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각국의 사절들이 상시로 머무는 서쪽의 최고 요충지였다.
서쪽 국가들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당연히 이곳에서 각국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
“대장,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휴고가 앞으로의 일을 물어 왔다.
“아마 연합 국가의 회의가 열릴 거야. 그러니 바리살의 대표를 만나고, 회의에 참석해서 북쪽에서의 공격을 알려야지. 아마 지금쯤 슬슬 조짐이 보이고 있을 테니 말이 안 통하지는 않겠지.”
나는 노르트에서 라넬디드의 인장이 찍힌 편지를 받아 왔다.
그러니 바리살의 대표를 만나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일행을 이끌고 바삐 움직여 바리살의 공관으로 향했다.
공관은 도시의 대표인 시장이 업무를 처리하는 곳이었다.
공관 앞에 다다르자 경비병들이 서 있었다.
경비병에서 사정을 말하고 라넬디드의 인장이 찍힌 편지를 건네자, 면담 요청을 할 수 있었다.
시장의 집무실로 안내된 후 잠시 기다리자 뚱뚱한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나와 일행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내가 바리살의 시장인 시카토네. 자네들 중에 정해수가 누구지?”
그 말에 내가 대답했다.
“제가 정해수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시장님.”
내가 인사하자 시장의 눈빛이 빛났다.
시장이 내 얼굴을 한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가 정해수였군. 반갑네. 라넬디드 님의 편지에 자네에 대한 칭찬이 많더군. 얼마나 대단한지 나도 한번 보고 싶구만.”
“아닙니다. 그냥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보다……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시장이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드라코리치가 곧 제국 서부를 공격할 것이며, 노르트는 차후 전투에 가담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내 말을 들은 시장은 한참이나 생각에 잠겼다.
차가 다 식을 즈음에야 시장의 입이 열렸다.
“그러니까 그 저주받은 용이 북쪽을 거쳐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말이지? 머지않아 서쪽이 대규모 침공을 받을 것이고?”
시장의 질문에 내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몬스터가 변했다는 것은 시장님도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시장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특이한 움직임을 보이는 몬스터들이 며칠 사이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우두머리가 있고, 조직적으로 인간을 공격하는 놈들 말입니다.”
“그럼 그놈들이 드라코리치의 부하라는 말인가?”
“부하라기보다는 노예이지요. 놈은 인간을 멸종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다만 놈에게 그것은 유희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직접 나서지 않고 부리는 노예들을 조금씩 보내며 즐기고 있는 겁니다.”
“흐음…….”
시장은 믿기지 않는지 침음만 흘렸다.
한참이 지나 시장이 입을 열었다.
“알겠네. 안 그래도 내일 연합 회의가 열릴 예정이네. 거기서 내가 자네 이야기를 대표들에게 전하도록 하지. 일단 오늘은 쉬도록 하게. 숙소를 내어 주겠네.”
시장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파했다.
나갈 때까지 그의 안색은 썩 좋지 않았다.
막 외따로이 떨어진 숙소에 안내받아 나와 일행만 남았을 때, 루스가 뚱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 아까 그놈…… 냄새가 별로야.”
“그놈, 누구? 혹시 시장 말하는 거냐?”
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까 그 뚱보.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
나는 루스의 말을 허투루 흘려들을 수 없었다.
녀석이 뛰어난 감각으로 상대의 의중을 짚어 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딱히 내게 좋지 못한 마음을 품을 이유가 없을 텐데.’
하지만 루스의 직감은 충분히 신뢰할 만하다.
그것을 알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좀 알아보고 올 테니, 너희는 조용히 쉬고 있어라. 혹시 무슨 일 있을 수도 있으니 잠들지는 말고.”
“예, 대장. 조심하십시오.”
휴고의 배웅을 받으며 조심스레 창을 열었다.
‘인식 교란.’
염탐을 하러 갈 생각이니 인식 교란을 사용한 후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조용히 시장의 집무실이 있는 공관 건물로 접근했다.
이미 날이 저물어 정문을 지키는 경비의 눈만 피하면 들킬 염려는 없었다.
나는 조용히 뒤쪽으로 돌아가 벽을 타고 올랐다.
그리고 꼭대기인 3층 중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곳을 택해 창문으로 들어갔다.
잠시 동정을 살핀 후, 시장의 집무실 근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공관 안은 적막했다.
시장 집무실의 바로 옆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곳에 들어가니, 집무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대화하는 소리였다.
공관 내부가 워낙 조용하다 보니, 벽에 귀를 가져다 대자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놈을 잡아야지. 그래야 노르트 놈들을 부릴 수 있어.”
“놈이 그 정도로 영향력이 있겠습니까? 어차피 플레이어일 뿐이지 않습니까? 그 한 명 때문에 노르트 전체가 움직일 거라고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군요.”
시장과 누군가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설마, 내 얘긴가?’
내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대화 소리가 이어졌다.
“라넬디드의 편지에 적혀 있더군. 노르트의 은인이자 친구라고 말일세. 큰 은혜를 입었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어. 그러니 놈을 잡아 두면, 최소한 노르트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해.”
“하긴 노르트가 그냥 빠지는 바람에 우리의 땅이 전장이 되었지요. 놈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야 됩니다.”
“그래, 멍청한 플레이어 놈이 노르트가 도망쳤다고 속 편하게도 말하더군. 그 탓에 우리가 죽을 판인데. 그 말을 듣고 표정을 관리하느라 혼났네.”
시장의 말을 듣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재앙의 기운이 사방에 퍼진 마당에 원군을 보내 준다는 데도 저런 태도라니. 저러니 회귀 전에 그 꼴을 당했지.’
회귀 전, 드라코리치의 군세에 치열하게 맞서다 패배한 노르트와는 달리, 서쪽은 큰 저항도 없이 멸망해 버렸다.
‘저 시장 놈이 문제였던 건가?’
사실 독립 도시의 시장에 불과하지만, 군소 국가 연합에서 가진 권력이 만만치 않았다.
저놈이 계속 시장 자리에 있는 것은, 미래를 봐서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닐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중에 시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는 이따 밤에 병력을 끌고 가 놈들을 처리하게. 저녁 식사에 손을 쓰라고 미리 일러 뒀으니,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장님.”
그 뒤로도 여러 말이 오갔지만, 딱히 귀담아들을 내용은 없었다.
재앙이 코앞인데도 시장은 이번 회의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높일 생각만 가득했다.
나는 조용히 몸을 빼 숙소로 돌아왔다.
“다녀오셨습니까, 대장. 혹시 무슨 일인지 알아내셨습니까?”
휴고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 왔다.
이제 함께 다닌 시간이 짧지 않다 보니, 루스의 직감이 흘려들을 수 없다는 것을 휴고도 알고 있었다.
나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시장을 처리해야 되겠다.”
휴고가 깜짝 놀라 되물어 왔다.
“네? 그게 무슨……. 놈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오늘 밤 시장의 부하가 우릴 공격할 거야. 음식에 손을 쓴다니, 이따 저녁 식사는 손대지 마. 대신 내 인벤토리의 것을 먹도록 하지.”
나는 조용히 듣고 있는 루스와 휴고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면 병력이 들이닥칠 테니, 그때 놈들을 처리하고 바로 시장을 잡는다.”
루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휴고는 여전히 궁금한 것이 있는 모양인지 내게 질문을 해 왔다.
“시장이 무슨 이유로 그런 짓을 하는 겁니까?”
“내가 노르트 쪽에 인질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리고 노르트가 드라코리치의 병력에 맞서지 않고 피난 가는 바람에 이곳이 전장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
내 말을 듣자 휴고가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노르트가 전투에 합류할 거라고 아까 말해 줬는데도 그런다는 말입니까? 게다가 노르트가 대장 때문에 휘둘린다고 생각하다니, 좀 이상한데요?”
“나도 그게 이해가 안 가. 하지만 놈이 우릴 공격하려 드니 어쩔 수 없지. 일단 쳐들어오는 놈들을 처리하고, 시장을 잡아서 자세히 물어보는 수밖에.”
그제야 휴고도 고개를 끄덕였다.
막 대화가 끝났을 때쯤, 식사가 들어왔다.
당연히 식사에는 손대지 않고, 포대에 담아 인벤토리에 넣어 버렸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더 지났을 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