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63화 (6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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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63화>

모처럼 진형기의 험상궂은 얼굴이 떠올랐다.

괜히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첫 번째 재앙 때 녀석을 보지는 못했지만, 녀석이라면 어떻게든 무사히 살아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을 정하고 몸을 일으켰다.

“가자, 수도로.”

* * *

며칠 후, 나는 일행과 함께 제국의 수도 밖에 도착해 있었다.

성문 앞에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휴고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대장, 진짜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수도에 들어가려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냥 근처에서 노숙하는 사람도 엄청납니다.”

휴고의 말대로 성벽 주위로 천막들이 잔뜩 들어서 있었다.

“아마 몬스터가 오염된 것이 소문난 모양이야. 아니면 제국이 무슨 수작을 부렸거나.”

“그나저나 무사히 들어갈 수 있을까요?”

휴고의 물음에 성문 쪽을 살폈다.

그곳에는 엄청난 인파 사이로 경비병들이 서 있었다.

나는 그곳을 가리키며 휴고에게 말했다.

“저 상황에 꼼꼼하게 검문할 수 있어 보이냐?”

“그렇긴 한데, 대장이 워낙 요주의 인물 아닙니까? 왠지 수배 같은 게 내려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은데요.”

딱히 틀린 말도 아니어서 살짝 걱정이 되긴 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안 들어갈 수도 없는 일.

내심 믿는 구석도 있었다.

‘인식 교란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사실 오늘 길에 구한 옷가지들로 대충이나마 변장을 한 상태였다.

일행의 무기는 모조리 내 인벤토리에 넣어 놓았고, 다들 후드를 깊이 눌러쓰고 있었다.

거기에 나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모래를 발라, 머리 색깔을 뿌옇게 만들었다.

‘염색약 같은 게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이 세계에서는 염색약을 구할 수가 없었다.

마법으로 염색이 가능하기는 했지만, 지금 내가 쓸 수는 없는 방법이었다.

어쨌든 한참을 기다려 성문을 통과했다.

아슬아슬한 마음이 들었지만, 검문에 걸리지는 않았다.

“다행입니다, 대장. 경비병이 쳐다보는 것 같아서 엄청 긴장했는데, 잘 통과되었네요.”

“그래, 별문제 없어서 다행이다.”

성문을 지난 후 부지런히 걸어 광장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진형기의 주점, 개암나무 열매.

머지않아 개암나무 열매가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성업 중인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차분히 그곳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 어서 오십시오. VIP시군요. 곧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예의 그 주인이 내 얼굴을 보더니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아마 나를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기다려 예전에 갔던 방으로 다시 안내되었다.

그리고 좀 더 기다리자 문이 열리며 진형기가 들어왔다.

“정 형, 일어서시오. 어서 갑시다.”

진형기는 인사할 틈도 없이 나를 재촉했다.

진형기가 들어선 곳으로 따라 나간 후, 통로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어느 순간 주변이 빈민가로 변했다.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 따라 걸은 후 어딘가의 건물로 들어섰다.

그리고 거기서 또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의 한 방에 들어가 문을 꼭 틀어 잠그고서야 진형기가 입을 열었다.

“후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수도에 나타난 거요?”

“왜? 내가 못 올 데라도 왔나?”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일반인들이야 모르지만, 귀족이나 플레이어들에게는 당신을 잡아 오라는 황명이 내려왔소.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거요?”

“일은 내가 아니라 황제가 벌인 거지. 나야 마왕 잡은 것밖에 없다. 그리고 황제 놈이 음흉한 구석이 있는 것을 알면서 나한테 그러나?”

“음, 그렇긴 하지만……. 뭐 어쨌든 수도로 왔으면 목적이 있을 것 아니오? 뭐 하러 왔소?”

나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후 차분하게 말했다.

“정보가 필요해. 최근 제국이 뭘 하고 있는지, 두 번째 재앙에 어떻게 대처할 생각인지.”

진형기는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말문을 열었다.

“일단 최근에 플레이어에 대한 대접이 안 좋아졌소. 대놓고 홀대하는 것은 아닌데, 별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대하고 있지. 그러다 보니 내부 정보는 알아내기 쉽지 않소. 그걸 감안하고 들으시오.”

진형기는 잠시 쉬었다 말을 이어 갔다.

“오다가 성벽 밖의 상황을 봤을 거요. 제국 외곽 쪽의 사람들을 모두 수도 쪽으로 피난시켰소. 그리고 병력도 수도에 집중시킨 상태요. 군소 국가들을 그냥 버림패로 쓸 생각이 분명하오.”

군소 국가들이 다 멸망한 뒤에야 나설 것이라는 것은 회귀 전과 같았다.

하지만 내 기억과 다른 것이 있었다.

나는 그 부분을 진형기에게 다시 확인했다.

“제국이 외곽 쪽의 제국민들을 수도로 불러들였다고?”

“그렇소. 제국민뿐 아니라 병력도 다 철수시키는 중이오. 대충 수도 인근의 대도시 말고는 대부분 텅 비어 있을 거요. 작은 마을들은 지킬 의지가 없다고 아예 대놓고 말하는 거지.”

‘대처가 변했다. 무슨 생각이지?’

회귀 전에는 최소한 국경 인근에서는 방어를 시작했었다.

지금은 아예 병력을 다 물린 상태.

‘노르트 인근에 황가수호대를 그만큼 파견해 놓았었는데, 그건 무슨 뜻이지?’

의문을 품고 진형기에게 질문했다.

“제국이 병력을 수도로 물린 것이 언제부터였지?”

“아직도 병력 철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건 얼마 안 되었을 거요.”

‘내가 황가수호대와 거인을 싸움 붙이고 나서 이동한 건가? 아예 수도 인근에서 꽁꽁 웅크리겠다는 생각인가…….’

제국의 태도가 저렇다면, 당장 드라코리치와 제국을 맞붙여 제국에 타격을 주는 것은 쉽지 않다.

드라코리치는 제국의 수도로 바로 진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대놓고 수도에서 일을 벌인 암흑 교단 때가 편했는데.’

드라코리치에게 인류 멸망은 유희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

가장 흥미로운 방식을 선택할 뿐.

생각을 정리한 나는 진형기에게 다른 부분을 질문했다.

“신탁은 뭐라고 내려왔나?”

혹시 세계의 정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까 싶어 물어보았다.

“음, 그쪽은 요즘 정보를 알아내기가 어렵소. 아까 말했듯이 요즘 대우가 영 안 좋아서, 겉으로 나돌지 않는 정보는 구하기가 힘든 상황이요. 신탁의 내용은 그냥 몬스터가 오염되어서 쳐들어오니 조심하라는 말밖에 듣지 못했소.”

말을 막 끝낸 진형기의 표정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었다.

의아한 마음에 내가 그에게 물었다.

“왜 그러지?”

그러자 진형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급이 얘기했다.

“정 형, 얼른 가시오. 여기 있다가는 우리 다 죽을 것 같소. 빨리!”

그러더니 방의 구석으로 가 벽을 두들겼다.

쿵쿵- 쿵-

이곳저곳을 몇 번 두들기자 벽에 사람 하나 통과할 정도의 구멍이 생겨났다.

“얼른 가시오. 시간이 없소.”

상황을 보니 진형기의 스킬이 무언가 경고를 한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진형기의 말을 듣기로 했다.

“그래, 가지. 너는 어쩔 생각이지?”

내 말에 진형기가 씩 웃으며 대답해왔다.

“나 진형기요. 딴 건 몰라도 살아남는 것만큼은 자신 있소. 그러니 얼른 가시오. 당신이 얼른 가야 나도 산다니까.”

“그래, 몸조심해라.”

“정 형도 조심하시오. 또 봅시다.”

인사를 마친 후, 나는 일행을 이끌고 얼른 통로로 몸을 던졌다.

진형기에게 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마음을 떨치고 발길을 서둘렀다.

통로는 길고 꼬불꼬불하게 이어졌다.

한참을 걸어 밖으로 나갔을 때, 그곳은 빈민가의 다 쓰러져가는 집 안이었다.

문을 열고 막 나서려는데, 루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빨간 놈들이야. 다가오고 있어. 냄새가 옅어서 어디쯤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다가오고 있는 건 확실해.”

진형기의 경고는 아마도 황가수호대를 가리킨 모양.

아마 내가 수도에 들어선 것이 결국 들킨 것 같았다.

“일단 수도 밖으로 빠진다.”

말을 마치고 조심스럽게 허름한 건물을 나와 밖을 살폈다.

다행히 성벽이 아주 멀지는 않았다.

‘성문에는 이미 잔뜩 깔려 있겠지? 그렇다고 성벽을 어떻게 할 수도 없……지는 않나?’

가만 생각해 보니 성벽을 뚫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었다.

결정을 내리고 방향을 성벽 쪽으로 잡았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뒤에서 기척이 들려왔다.

뒤쪽을 보니 붉은 물결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쯧, 빨리도 왔네. 저게 다 몇 놈이야?’

황가수호대의 수가 너무 많아 당장 싸우는 것은 불가능.

나는 일행을 재촉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타타타닥-

뒤에서는 연신 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황가수호대가 말 한마디 없이 쫓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머지않았다.’

건물 사이를 통과하고, 지붕도 밟아 가며 드디어 성벽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달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여의검을 뽑아 들고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우우웅-

검 끝에 부른 구체가 생겨나더니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가라!’

시간을 마냥 끌 수는 없으니 적당히 기운을 모은 후, 검을 휘둘러 구체를 발사했다.

날아간 구체는 성벽 아래 부분에 명중했다.

콰콰쾅!

성벽에 쩌적 하고 금 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아직 구멍이 뚫리진 않은 상태.

나는 여전히 달리는 기세를 줄이지 않고 성벽으로 다가갔다.

‘커져라!’

검에 마력을 넣으며 외치자 여의검이 커지기 시작했다.

마력을 불어넣을수록 검은 계속 커져 갔다.

크기가 커지는 만큼 무게도 같이 늘어나며, 어느 순간 팔이 떨려 올 정도로 무거워졌다.

‘더 커지면 못 휘두르겠다.’

나는 여의검의 크기를 그 상태로 멈춰 놓고, 온몸을 사용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면서 스킬을 사용했다.

‘멸세폭.’

콰콰콰콰콰쾅-!

멸세폭의 파괴력에 여의검의 질량이 더해지자 압도적인 위력의 충격이 성벽을 직격했다.

‘후우, 반동이 엄청나.’

공격이 강한 만큼 그 반동도 더 커져, 겨우 멸세폭을 한 번 썼을 뿐인데도 몸에 부담이 가는 게 느껴졌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쩌저저저적-

성벽 아래가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검에 직격당한 부분에 구멍이 뚫렸다.

하지만 사람이 통과하기에는 작았다.

‘원혼의 거울.’

구멍을 향해 왼손을 들었다. 쏘아져 나간 광선이 구멍의 가장자리를 녹여내며 드디어 사람이 나갈 만한 구멍이 생겼다.

나는 얼른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일행이 바쁘게 따라 나왔다.

먼발치에서 황가수호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루스에게 말했다.

“루스, 녹여 버려.”

“응!”

루스가 대답하며 얼른 양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화르르르-

루스의 손끝에서 발출된 불길에 성벽의 구멍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구멍의 가장자리가 녹아 흘러내리며 구멍을 다시 메우기 시작했다.

완전히 틀어 막히지는 않았지만, 불길이 곳곳에 옮겨붙어 황가수호대가 당장 저 구멍으로 나오기는 힘들 것 같았다.

“됐다, 이제 그만하고 가자!”

나는 일행을 이끌고 빠르게 움직였다.

당장 성을 나오긴 했지만, 추격을 뿌리쳤다고 보긴 힘들었다.

아마 머지않아 황가수호대가 다시 뒤에 붙을 것이다.

놈들을 한 번 처리하고 가야 뒤가 불안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달리면서 열심히 머리를 굴려, 놈들을 떨쳐 낼 만한 방법이 없는지 생각했다.

‘이 근처에 이용할 만한 게 뭐가 있더라?’

한동안 기억을 쥐어짠 후, 결국 쓸 만한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곳으로 간다.’

* * *

잠시 후 나는 일행과 어느 던전에 들어와 있었다.

마왕을 잡고 탈출할 때 썼던 나무 던전도 떠올랐지만, 그 방법은 지금은 쓸 수 없다.

방향도 맞지 않고, 그 정도로 시간적인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이곳이었다.

이곳은 딱히 특별한 것이 있는 던전은 아니었다.

난이도도 높지 않고, 보상도 보잘것없다.

공간이 격리된다거나 하는 일도 없다.

대신에 이곳은 처음부터 끝까지 쭉 한길로 이어진 모양이었다.

바로 이런 던전의 형태가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이었다.

잡스러운 몬스터들을 적당히 처치하면서 던전으로 어느 정도 진입했다.

‘이쯤이면 되겠다.’

마음을 정한 나는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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