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57화 (57/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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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57화>

“대부족장께서 은인을 뵙자고 하십니다. 모시겠습니다.”

하인이 공손한 태도로 이야기했다.

‘슬슬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야겠지.’

급한 소식 때문에 라넬디드와의 대화가 중간에 끊겼었다.

넬도르를 구한 것 이상으로 그 대화의 내용은 중요했다.

쉴 만큼 쉬었으니, 이제 대화를 해야 할 때였다.

하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어젯밤, 나는 조용한 방에 혼자 앉아 있었다.

생각해 두었던 모종의 일을 할 생각이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내 들었다.

[옛 친구의 맹약(S. 소모품)]

- 옛 친구의 결코 저버리지 않는 약속이 담긴 물건. 깨트리면 옛 친구를 부를 수 있다.

‘노르트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옛 친구의 힘을 빌려야 한다.’

원래 나는 한 걸음 떨어져 전투의 양상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랬다면 아마도 노르트는 두 번째 재앙에 휩쓸려 멸망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버리긴 좀 아깝지.’

이제 나는 그들에게 은인으로 불리고 있다.

잘만 하면 그들을 나의 의도대로 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라넬디드와 다시 이야기하기 전에, 옛 친구에게 확인해 볼 것이 있었다.

파삭-

손안에서 옛 친구의 맹약이 깨어졌다.

그러자 그 속에서 한 가닥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내 미간으로 파고들었다.

‘음? 어떻게 되는 거지?’

잠시 의아해하는 중에 눈앞에 무언가 나타났다.

“짠! 저 많이 보고 싶으셨어요?”

옛 친구가 인간형으로 나타나 있었다.

물론 실물은 아니었고, 반투명한 것이 환영인 것 같았다.

나는 옛 친구에게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어볼 게 있어서 불렀습니다.”

“어머, 냉정하셔라. 다정하게 인사 좀 해 주셔도 되잖아요.”

자꾸 헛소리하는 옛 친구를 무시하고 내가 말했다.

“몸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습니까? 이제 이곳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까?”

옛 친구는 어울리지도 않게 입을 삐죽이더니 곧 대답해 왔다.

“많이 회복되긴 했는데, 아직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에요. 그리고 공간 이동은 몸이 멀쩡해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구요.”

“도움이 안 되는군요.”

“무, 무슨 말씀이에요! 도움이 안 되다니! 그 기운이 얼마나 지독한지는 당신도 잘 알잖아요? 그걸 그 정도로 버틴 것 자체가 저니까 가능한 거예요. 회복에 시간이 걸리는 것도 당연한 거구요!”

자꾸 농지거리를 하기에 한 번 핀잔을 주었더니, 옛 친구가 발끈했다.

나는 씩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농담입니다. 그러니 진정하고 대답해 보세요. 몸은 얼마나 더 있어야 완전해지는 겁니까? 그리고 라로프로 물길을 여는 것 정도는 지금도 할 수 있죠?”

옛 친구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동안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한숨을 푹 쉬고 대답해 왔다.

“에휴, 몸은 아직 한 달은 더 걸릴 거예요. 그리고 물길 만드는 거야 문제없죠. 그냥 가서 누워만 있으면 되니까요. 근데 그건 왜 물어요?”

“아직 결정된 건 아니지만, 노르트인들을 라로프로 이주시킬 생각입니다. 계속 거기 둘 건 아니고, 한동안 피난시키는 겁니다.”

그러다 눈을 동그랗게 뜬 옛 친구를 보며 내가 물었다.

“혹시 북쪽 땅끝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어요. 아마 그것도 재앙의 기운에 영향을 받았겠죠. 그래서군요?”

역시 옛 친구는 단번에 눈치를 챘다.

“예, 그놈이 날뛸 동안 일단 피해 있을 생각입니다. 대신 전사들은 라로프 섬에 대기하고 있다가, 당신 몸이 회복되면 이동시키는 겁니다. 라로프인들도 함께.”

생각에 잠기려는 옛 친구를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묻는 겁니다. 많은 병력을 한꺼번에 이동시킬 수 있습니까? 당신 대답에 따라 계획을 바꿔야 할 수도 있어요.”

“그건 어렵지 않아요. 그냥 몸속에 넣어서 데려가면 되니까요. 중요한 건 제가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하는 거죠.”

옛 친구의 대답은 예상한 대로였다.

이제 슬슬 작전의 큰 틀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라넬디드를 설득하는 단계가 남았지만…….’

“알겠습니다. 그럼 조만간에 노르트인들을 보낼 거니까 물길이나 열어 놔요. 괜히 기다리게 만들지 말고.”

“와 진짜, 너무 부려 먹는 거 아니에요?”

“살려 줬으면 그 정도는 해야죠? 내가 당신 살린다고 한 고생을 생각하면 더 부려 먹어도 됩니다.”

“쳇. 알았어요. 그럼 용건은 그게 끝? 용건 끝났으면 이제 이 누나가 너무 보고 싶었다거나, 뭐 그런 말이 나올 차롄데. 얼른 해 봐요.”

나는 그녀의 말에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한마디 해 줬다.

“할머니, 연세를 생각하세요. 자손들이 들으면 욕합니다.”

“이이잇! 닥쳐요!”

스팟-

그러더니 그녀의 환영이 사라졌다.

툭-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옛 친구의 맹약’이 떨어졌다.

막 어제의 회상을 끝낼 즈음, 예전에 라넬디드를 만났던 방에 도착했다.

원탁에는 가운데 라넬디드를 중심으로 넬리언과 넬도르가 좌우에 앉아 있었다.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라넬디드의 입이 열렸다.

“우리 노르트의 은인이 왔군. 어서 앉게.”

자리에 앉으며 내가 말했다.

“그냥 이름으로 불러 주십시오. 그 호칭은 좀 부담스럽군요.”

“노르트인은 의리를 아주 중시한다네. 자네가 보인 모습이라면 내게 대접받을 만하지. 그러니 사양하지 말게.”

그러고 보면 말투도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넬도르를 구한 것도 있지만, 소수 부족의 아이들을 성공적으로 구해 낸 것도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전에 이야기 중에 일이 터지는 바람에 마무리를 하지 못했었지? 하던 이야기를 계속 들어 볼 수 있겠나?”

역시 내 예상대로 일이 흘러갔다.

“죽어도 죽지 않는 용, 노르트에서는 저주받은 존재라고 불렀었지요? 그것에 관한 얘기라면 안 그래도 꼭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나는 탁자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이었다.

“마왕의 화신이 죽으면서 세상에 재앙의 기운이 퍼졌습니다. 그로 인해 온 세상의 몬스터들이 변화했습니다. 저주받은 존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내 말에 라넬디드가 물어 왔다.

“어떻게 변했다는 말인가? 잠에서 깨어났다는 말인가? 아니면 다른 것들처럼 더 강해진 건가?”

“둘 다입니다. 깨어났고, 더 강해졌지요. 그리고 머지않아 주위의 몬스터들을 집결시켜 남하할 겁니다.”

그 말에 라넬디드를 비롯하여 좌중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

“뭐? 몬스터를 집결시킨다고? 해수, 그게 가능한 건가?”

넬도르는 끼어들며 질문을 해 오기까지 했다.

“놈은 강력한 드라코리치입니다. 게다가 재앙에 오염되면서 더 강해졌습니다. 놈의 능력이면 북쪽의 모든 몬스터를 긁어모아 내려오고도 남습니다.”

좌중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드라코리치, 끔찍한 놈이지.’

드라코리치는 드래곤이 타락하여 스스로를 리치로 만들었을 때에야 생겨난다.

드문 만큼이나 끔찍할 정도로 강하고 사악하다.

원래 놈은 북쪽 땅끝에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재앙의 기운에 자극받아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안 그래도 잔악한 성질이, 재앙에 오염되어 더 더러워졌다.

‘놈은 인간을 멸종시키는 것을 유희로 생각한다. 어찌 보면 마왕보다 더 끔찍한 존재지.’

어쨌든 놈은 몹시 강력하다. 그리고 특유의 수법으로 재앙에 오염된 몬스터를 부린다.

회귀 전, 제국도 놈을 곧바로 상대하지는 않았다.

놈이 노르트를 완전히 멸망시키며 힘을 뺄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잠시 과거를 회상하는데 라넬디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을 꺼냈으니, 해결책에 대해서도 생각해 둔 바가 있겠지? 한 번 얘기해 보게.”

“놈을 당장 상대하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노르트에서 피하십시오.”

순간 라넬디드의 얼굴이 굳었다.

그가 무서운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지금 이 땅의 지배자인 나에게 부족원들을 버리고 도망치라고 말하는 건가?”

‘음, 내 말을 오해했군. 그나저나 기세가 굉장한데.’

한 나라의 제왕이라 그런지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었다.

어쨌든 오해를 풀어 줄 필요가 있어, 나는 급히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당장 정면으로 승부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얼마 후 부족 회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노르트로 오다가 지도를 구하기 위해 들린 곳에서 들었던 소식이었다.

라넬디드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며 내가 말을 이었다.

“그때 그들에게 말씀하십시오. 모든 부족원들을 이끌고 피하라고.”

라넬디드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어 왔다.

“도대체 어디로 피하라는 말인가? 재앙의 기운이 온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면서?”

“이곳에서 동쪽에 라로프라는 섬이 있습니다. 굉장히 넓고, 대륙에서 고립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곳도 재앙의 기운이 퍼져 있긴 합니다만, 저주받은 존재 같은 것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우리의 땅이네. 이곳을 버릴 수는 없네.”

“알고 있습니다. 잠시 자리를 피하자는 말이지요. 언제까지 제국의 번견 역할을 하실 작정입니까?”

라넬디드의 눈썹이 씰룩였다.

번견이란 표현에 적잖이 화가 난 것 같았다.

‘적당히 도발했으니, 이제 당근을 내밀어 볼까?’

입을 꾹 다문 라넬디드를 보며 나는 살살 달래듯 말을 이었다.

“라로프에 옛 친구라는 1000년을 살아온 존재가 있습니다. 약간의 인연이 닿아 이번 싸움을 도와주기로 했지요. 일단 라로프에 가 있다가, 옛 친구가 전투를 위해 이곳으로 올 때 같이 오시면 됩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라넬디드는 여전히 고민하는 듯했다.

나는 그를 완전히 설득하기 위해 결국 마지막 말을 꺼냈다.

“일단 그곳에 가면 여자와 어린아이들이라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보내 놓은 후에, 제가 연락을 하면 전사들과 같이 돌아오세요. 그때 저주받은 존재를 처치하고, 땅을 수복하면 됩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라넬디드가 질문해왔다.

“자네말대로 한다고 치고, 거리가 만만치 않을 텐데, 전투 시에 어떻게 맞춰서 돌아오라는 건가?”

“옛 친구에게 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저와 즉시 연락도 가능하고요. 그러니 때맞춰 돌아오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라로프로 가셔서 전투를 위해 칼을 갈아 놓으십시오.”

라넬디드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차를 다 마시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 때야 비로소 라넬디드의 입이 열렸다.

“좋다. 자네의 방법대로 하지. 자세한 것은 넬리언에게 말하고, 일단 지금은 식사를 하지. 자네 일행도 사람을 시켜 부르도록 하게.”

“예,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아, 참. 저희 일행 중 한 명이 좀 많이 먹습니다.”

“그건 걱정 말게. 식량 사정이 썩 좋지 않지만, 은인을 홀대할 정도는 아니네.”

그 말을 하며 라넬디드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일단 큰 그림은 완성되었다.

나머지는 드라코리치가 움직일 때, 상황을 보고 대응할 수밖에 없다.

‘황가수호대가 어떻게 움직일지가 문제군.’

마왕과의 전투 때 느꼈지만, 놈들은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특히 황제의 주위에서 갑자기 생겨나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어디서 막 찍어 내는 것 같다는 말이지.’

놈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것이 큰 변수.

‘그래도 이번에는 고생 좀 할 거야. 위쪽을 막아 주던 방벽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릴 테니까.’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라넬디드와 마주 웃었다.

* * *

라넬디드와의 면담 후 보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와 일행은 바쁘게 움직였다.

처음으로 한 일은 노르트의 선발대를 라로프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선발대가 라로프로 가서 미리 자리를 잡아 놓는 사이, 수도의 노르트인들을 차차 이주시킬 계획이었다.

선발대의 우두머리는 넬도르가 맡았다.

그리고 구출 작전에 함께했던 길잡이도 동행했다.

열흘의 여정을 거쳐 은혜의 길에 도착할 때까지, 일행에게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루스와 라라의 사이가 안 좋았다는 것 정도?’

은혜의 길에 마중 나온 것은 라라였다.

그때 만난 루스와 라라가 이상할 정도로 서로 으르렁거렸다는 것 말고는 특이사항은 없었다.

돌아오는 길은 휴고와 루스, 그리고 길잡이와 함께였다.

다음 이주자들을 이끌기 위해 길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 이번에 길잡이가 맡은 임무였다.

“주인, 느낌이 안 좋아. 멀리서 안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그런데 한동안 조용하던 루스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이제 노르트의 수도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별달리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 루스의 말이니, 마냥 무시하기는 힘든데.’

이제껏 특유의 직감이 얼마나 예리한지 여러 번 증명한 적이 있는 루스였기에 괜히 찜찜한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서두르자.”

일단 수도에 돌아가는 것이 목적이니, 길을 서둘렀다.

막 노르트 수도가 보이는 언덕에 올랐을 때.

“대장, 몬스텁니다!”

휴고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도 이미 보고 있었다.

대규모의 몬스터들이 노르트의 수도를 밖에서 공격 중이었다.

진형을 갖추고 공격하는 것이 마치 인간의 군대를 보는 것 같았다.

‘이거…… 루스의 직감이 맞은 건가? 그나저나, 들어갈 수는 있겠지?’

수도로 들어갈 방법을 생각 중에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때마침 휴고도 같은 것을 보았는지 말을 걸어왔다.

“대장, 저거 성 아닙니까? 저런 걸 그새 어떻게 지었을까요?”

노르트 수도 반대편에 하얀색 성이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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