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55화>
‘왕이 손님을 맞는 자리에 저렇게 문을 두드릴 정도면…….’
아마 보통 급한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라넬디드도 그것을 느꼈는지 입을 열었다.
“손님을 앉혀 놓고 미안하군. 급한 일인 모양이니 들라 하여라.”
얼른 뛰어 들어온 자는 병사로 보였는데,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있었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소리쳤다.
“대부족장님, 큰일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병사의 말에 라넬디드의 인상이 굳었다.
“이 왕자님이 얄룽 협곡에 고립되셨습니다.”
“뭐라고? 얼른 자세히 얘기해 보아라!”
라넬디드의 말에 남자가 빠르게 대답해 왔다.
“소수 부족을 포위한 나가의 규모가 예상을 훨씬 초월했습니다. 처음에 발견된 규모의 10배가 넘는 숫자였습니다.”
나가는 하체가 뱀처럼 생긴 인간 형태의 몬스터였다.
그 말을 들은 내 머릿속에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나가라……. 두 번째 재앙이 시작되면, 지성을 가진 것들은 훨씬 더 교활하고 집요해진다. 어쩌면 처음에 소수 부족을 고립시킨 것 자체가 유인책이었을 수도 있겠어.’
“이 왕자님과 외부인분들이 힘을 쓰셔서 어떻게든 포위는 뚫었습니다. 하지만 소수 부족원들을 보호하며 가다 보니 속도가 느려져 결국 협곡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상황을 알리기 위해 따로 떨어져 나왔습니다.”
상황을 들어 보니, 협곡에서 농성 중인 것 같았다.
휴고와 루스도 아마 그곳에 있을 터.
‘쯧, 오자마자 힘 빼게 생겼군. 죽게 둘 수도 없고.’
루스와 휴고를 구하는 것은 내게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넬도르도 죽게 둘 수는 없다.
‘넬도르는 노르트와의 연결고리다. 앞으로 노르트인들을 써먹으려면 살려 둘 필요가 있어.’
나는 구출을 위해 나서기로 결정을 했다.
그때 라넬디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조대를 꾸린다. 내가 직접 가지. 넬리언, 가서 병력을 준비해라!”
“예! 대부족장님.”
넬리언이 후다닥 달려 나갔다.
말을 마친 라넬디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본인도 채비를 하려는 듯 보였다.
그때 내가 그에게 말했다.
“저도 일행이 있어 참가해야 하겠습니다. 아니, 죄송하지만, 길잡이 한 명만 붙여 주십시오. 저부터 가야겠습니다.”
라넬디드가 흘끔 이쪽을 쳐다보더니 대답해왔다.
“상황이 다급해 예의를 잃을 뻔했군. 하던 이야기는 다녀와서 마저 하기로 하지. 근데 지금 혼자서 먼저 가겠다는 말인가?”
“예, 어차피 이곳까지도 혼자 왔습니다. 어디든 길만 알면 못 갈 것도 없지요. 제 일행도 고립되어 있으니, 저 혼자라도 빠르게 움직이겠습니다. 병력을 꾸리려면 어차피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겠습니까?”
상황이 다급하니, 나는 혼자서라도 먼저 출발할 생각이었다.
‘혼자 가는 게 여러모로 좋지. 번거롭지도 않고, 여차하면 남의 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일행과 넬도르만 구출해 나올 생각이었다.
최악의 상황이라면, 넬도르를 버리는 선택지도 있고.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으면 좋겠군.’
라넬디드는 내 생각도 모른 채 흔쾌히 대답해 주었다.
“용감한 전사군. 좋다. 당장 길잡이를 붙여 주겠다. 부디 죽지 말도록 하라.”
라넬디드는 나의 용기를 칭찬하며 사람을 붙여 주었다.
‘딱히 용기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해 주면 나야 좋지.’
어쨌든 나는 빠르게 출발을 했다.
노르트 수도에서 제일간다는 길잡이가 나와 함께했다.
‘확실히 보통은 아니군.’
노르트인 치고 작은 체구인 그는 말을 탄 채로도 멀리 있는 몬스터의 존재를 감지해 내었다.
나는 그 능력 있는 길잡이 덕에 큰 전투 없이 얄룽 협곡에 다다를 수 있었다.
“으음, 너무 많군요.”
이제껏 말없이 달리기만 하던 길잡이의 입이 열렸다.
그도 그럴 것이, 눈에 보이는 나가의 숫자는 너무 많았다.
온 협곡을 바글바글 메우고 있는 모습이 마치 사탕에 붙은 개미 떼 같았다.
‘몇 마린지 세지도 못하겠군.’
길잡이도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길잡이를 돌려보내기로 했다.
“당신은 돌아가서 이곳 소식을 전하세요. 막상 군대가 왔는데 병력이 부족해 패퇴하면 최악의 상황이 될 겁니다.”
예상 이상의 숫자라고 말은 들었지만, 이건 그보다 더했다. 그러니 길잡이를 돌려보내 정보를 전달하도록 한 것이다.
길잡이도 내 말이 옳다고 느꼈는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빠르게 돌아갔다.
‘자, 이제 일을 한번 시작해 보자.’
일단 상황을 좀 더 자세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나가들은 지금도 한 곳으로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었다.
놈들의 목표는 협곡 끝 부분.
자세히 살펴보면 그곳에 사람 두어 명 들어갈 만한 동굴 입구가 보였다.
‘아마 저기에 숨어서 농성 중이겠지.’
당장 혼자 어떻게 하기에는 전력이 너무 부족하다.
저곳을 어떻게 뚫고 들어가더라도, 일행을 구출해 나오기 힘든 상황.
‘전력이 부족하면, 전력을 늘려야지.’
[정해수]
근력 : 83(S)
민첩 : 84(S)
체력 : 91(S)
마력 : 100(S)
스킬
- 랜덤 영웅 소환 (65330/32000 코인)
┗ 영웅 진화 (65330/10000 코인)
: 진화 가능 영웅 <없음>
- 호문쿨루스 소환
- 초재생
- 인벤토리
- 인식 밖에서
- 멸세폭
- 절대불변
……
오랜만에 상태창을 확인했다.
마왕의 화신과 심장 수호자 등 강력한 놈들을 연달아 잡은 결과, 스탯이 수직 상승해 있었다.
마력은 이미 진작에 최고 수치를 기록한 상태.
체감상 100을 넘어서서도 몇 십쯤은 더 올라 있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스탯이 아니다.
‘영웅을 써먹기에 딱 좋은 상황이군.’
그렇다. 나는 지금 영웅을 소환할 생각이다.
지금은 제국과 떨어진 곳에서 몬스터를 상대하는 일이니, 놈들이 내 말을 거역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여차하면 던져 놓고 튄다.’
모두 다 제거하기에는 적이 너무 많다.
어떤 영웅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상황을 봐서 놈을 희생양으로 던져 주고 도망치는 전술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나는 마음을 굳히고 스킬을 사용했다.
‘랜덤 영웅 소환.’
마법진이 빛나길 잠시, 그 자리에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나투스(S. 마도진법사)]
충성도 : 50(충성도가 낮으면 배신할 수 있습니다.)
‘호오, 이놈이 나왔군.’
아나투스는 상당히 특이한 형태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놈은 마법진에 대한 전문가.
순간적인 힘은 약하지만, 재료와 준비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강력한 능력을 발휘한다.
놈의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잠시 궁리하는 사이, 아나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스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반갑다. 나도 잘 부탁하지.”
인사를 하는 순간 놈의 활용법이 머리에 떠올랐다.
‘짧은 시간이 되겠지만, 잘 부탁해.’
속으로 다른 의미의 인사를 한 번 더 해 준 후, 놈에게 말을 했다.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바로 일을 시작해야겠어.”
급한 상황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나가는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동굴로 돌진하고 있었다.
동굴 쪽에서는 한두 명이 입구를 막고 버티고 있었는데, 시간이 가면서 지치는지 사람이 자꾸 바뀌는 중이었다.
“예, 마스터.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예상대로 제국과 관련이 없고, 재앙과 상대하는 일이 되니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나는 잘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아나투스에게 지시했다.
“너는 세 가지 마법진을 만들어라. 하나는 내가 일행을 데리고 나올 길을 여는 것이고, 하나는 탈출 후에 추적을 막기 위한 마법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들 것은 회복 마법진이다.”
쉽지 않은 나의 지시에 놈이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진화까지 시켜야 하나 하고 내가 고민하는 찰나, 아나투스의 입이 열렸다.
“회복 마법진은 쉽게 설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길을 여는 것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추격을 막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일단 몸을 뺀 후에 저 많은 수의 적들을 다 막으려면 강력한 마법진이 필요합니다.”
내가 가만히 지켜보자 놈이 말을 이었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강한 마력이 담긴 매개체가 필요합니다.”
그건 나도 익히 알고 있었다.
회귀 전 놈의 마법진은 훌륭한 재료를 넣을수록 더 강해졌었으니까.
나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혹시 이거로 될까?”
그것은 어인족 족장이 쓰던 물대포였다.
그것을 살피던 아나투스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해 볼 수는 있겠습니다. 좀 더 강한 것이 있으면 더 좋긴 하겠지만…….”
놈이 아쉬워했다. 하지만 놈에게 줄 만한 것은 저 정도가 한계다.
심장 수호자를 잡고 얻은 내단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따로 쓸 데가 있었다.
그때 아나투스가 일을 시작했다.
놈은 협곡 입구와 위쪽을 조심스럽게 돌아다니며 바닥에 무언가를 설치하고 있었다.
그런 놈의 모습을 보며 나도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전이가 시전됩니다. 대상을 정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 : 아나투스]
‘아나투스.’
[스킬 ‘마법 함정’이 전이됩니다.]
“으음…….”
이번에도 애매한 스킬이 나오자 절로 침음이 흘러나왔다.
‘공격 마법이라고 봐야 하지만, 설치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재료도 꼭 필요하니…….’
화력이 강력한 스킬인 것은 회귀 전 보아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용 시 소모되는 시간과 재료 탓에 당장은 쓰임새를 찾기가 힘들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저번에 나온 냉기 면역도 의외의 상황에 도움이 되었으니, 이 또한 언젠가 쓰이기는 할 것이다.
내가 생각을 하는 중에도 아나투스는 마법진을 열심히 설치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전장에 변화가 생겼다.
콰콰쾅-
쾅-
동굴 입구에서 폭음이 연이어 들려온 것이다.
살펴보니 보통의 나가보다 훨씬 큰 놈이 동굴 입구를 두들기고 있었다.
‘시간이 촉박하다.’
멀찍이 보이는 동굴 입구로 휴고와 루스가 나타났다.
좀 전까지 힘을 쓴 넬도르가 들어가고, 대신에 휴고와 루스가 큰 나가를 상대할 모양이었다.
그때 아나투스가 다가왔다.
“마스터, 준비가 끝났습니다.”
“잘했다. 내가 일단 뚫고 들어간다. 그 후에 신호탄을 쏘면 길을 열어라.”
“예, 들어가실 때 제가 간단하게나마 보조를 해 드리겠습니다.”
아마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간이 마법진을 쓸 모양.
“그러면 더 좋지. 준비해라. 시작한다.”
놈에게 말한 후, 나도 돌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먼저 회복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이걸 또 사용해 보는군.’
순간적으로 회복력을 올려 주는 것으로, 회귀 전 대규모 전투 시 유용하게 사용했었다.
전투 지속력을 크게 늘려 주는 훌륭한 스킬이었다.
나는 짧게 회상을 마치고, 빈 공간에 스킬을 사용했다.
‘멸세폭.’
콰콰콰쾅-
아나투스가 의아하게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놈을 신경 쓸 시간은 없다.
지금은 계획대로 원혼의 거울에 충격을 축적하는 것이 먼저였다.
‘역시 효과가 좋군.’
원래부터 멸세폭 한 번은 어렵지 않게 버틸 수 있다.
거기에 회복 마법진이 추가되자 몸은 금세 완전하게 돌아왔다.
‘한 번 더 쓴다. 멸세폭.’
콰콰콰쾅-
다시 굉음이 울리고, 원혼의 거울에 힘이 쌓여 갔다.
‘이제 좀 대미지가 있군.’
아무리 최적의 상황을 만들었어도, 멸세폭은 멸세폭.
두 번을 사용하자 몸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포션을 꺼내 마셨고, 잠시 후 몸이 다시 회복되었다.
‘이제 더는 힘들겠다.’
몸 상태도 상태였지만, 나가들의 움직임도 문제였다.
제법 먼 곳에 설치한 터라 처음엔 그나마 나가의 이목을 끌지는 않았다.
하지만 폭음이 두 번 반복되자 한 무리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제 작전을 시작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작전명은 구출과 뒤통수.
“이제 시작한다.”
“예, 저도 준비되었습니다, 마스터.”
나는 순진하게 대답해 오는 아나투스에게 한 번 웃어 주고 앞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