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52화>
라라와 리첼에게 급히 소리쳤다.
“둘 다 뒤로 빠져. 리첼은 주문으로 최대한 몸을 보호하고!”
라라가 뒤로 빠지며 내게 물었다.
“뭐 좋은 방법 있어요? 어인족이 너무 많아요!”
물론 방법이 있다. 그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
‘바람의 걸음!’
나는 오히려 앞쪽으로 나아갔다.
바람의 걸음을 걸고, 강기공을 온몸에 두른 채 어인족 무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쾅- 쾅-
물 덩어리가 나를 노리고 잔뜩 날아왔다.
나는 쳐 낼 만한 것은 쳐 내고, 맞을 것은 맞아 주며 전진했다.
강기공을 믿고 한 행동이었다.
물 덩이에 맞은 몸은 조금 욱신거리기만 할 뿐, 다행히 큰 상처는 없었다.
나는 앞쪽의 놈들을 베어 버리고, 어인족의 파도 속으로 파묻혀 갔다.
내가 무리 속으로 파고들자 놈들은 물총을 쏘는 대신 주먹을 휘둘러 왔다.
적당히 상대해 가며 완전히 놈들의 중앙에 위치했다고 생각되는 순간.
‘멸세폭.’
앞을 향해 멸세폭을 날렸다.
콰콰쾅-!
적중당한 어인족들이 터져 나가며 앞쪽에 빈 공간이 생겼다.
나는 그곳을 향해 얼른 나아갔다. 최대한 어인족 무리 가운데로 파고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인족의 수가 워낙 많아, 공간은 금세 다시 메워지려 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대형 얼음 폭탄(S. 소모품)]
- 얼음 마녀 엘파바가 자신의 기운을 모아 제작한 마법 폭탄. 사용 시 주위에 강력한 냉기의 폭풍을 일으킨다.
엘파바를 잡고 얻은 소모품.
대형 얼음 폭탄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주위의 공간이 막 완전히 메워지려는 찰나, 나는 손에 든 얼음 폭탄을 위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일행이 있는 쪽으로 스킬을 사용했다.
‘점멸.’
내 몸이 일행 주위로 이동되는 순간, 뒤쪽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콰콰콰콰아앙-!
쯔즈즈저적-!
그리고 무언가 얼어붙어 깨어져 나가는 소리가 이어졌다.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수많은 어인족들이 얼어붙었다가 깨어지며 가루가 되어 가고 있었다.
‘역시 위력이 엄청나군.’
워낙 뛰어난 물건이라 좀 아깝긴 했지만, 시간을 길게 끌고 싶지 않았다.
“해수 씨, 그거 저번에 주운 거 맞죠? 완전 끝내주네요!”
라라가 방정맞게 떠들며 다가왔다.
수많은 어인족을 보고 전투를 염려하다가, 놈들이 빠르게 처리되자 적잖이 기쁜 것 같았다.
“한 방에 다 처리되었군. 이 정도로 위력적일 줄은 나도 몰랐어.”
그래도 어느 정도는 남을 줄 알았는데, 어인족은 단숨에 완전히 전멸했다.
‘혹시 물에 사는 놈들이라 얼음 폭탄과 상극이었던가?’
뭐 어쨌든 잘되었으니 좋은 일.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막 인벤토리에서 심장을 꺼내려고 할 때였다.
츠르르-
보통 어인족이 걷는 소리보다 좀 더 크고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머리 양쪽으로 커다란 두 개의 뿔을 가진 어인족이 나타났다.
놈은 일반 어인족보다 키가 두 배는 더 컸다.
그리고 큰 것은 키만이 아니었다.
손에 들린 것도 물총 수준이 아니었다.
어른 머리통만 한 지름을 가진 기둥이 놈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제 대포냐?’
속으로 툴툴대며 나는 칼을 다시 뽑아 들었다.
그런데 라라가 놈을 보고 깜짝 놀란 듯 소리쳤다.
“어인족 족장이에요!”
이어서 리첼의 주문 외는 소리가 들려왔다.
“옛 바람님께 부탁드려요- 저분께 기운을 주세요-!”
덕분에 나는 바람의 기운이 내 몸을 감싸는 것을 느끼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라라도 내 뒤를 따라 달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어인족 족장이 대포를 들어 올렸고, 곧이어 놈의 무기가 물을 뿜었다.
투웅-
굵직한 진동음과 함께 커다란 물 덩어리가 날아왔다.
확실히 일반 어인족이 쏘던 물총과는 달랐다.
어인족 족장의 물 덩어리는 사람 한 명은 통째로 감쌀 수 있을 만큼 컸다.
내가 재빨리 옆으로 몸을 날려 피하자, 물 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콰쾅-
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폭음이 들려왔다.
‘맞으면 안 되겠다.’
물총과는 달리 맞아 가며 싸우다가는 몸이 못 버틸 것 같았다.
순간 어인족 족장의 물대포가 다시 나를 겨누는 모습이 보였다.
‘한 번 정도 더 피하면 라라가 놈에게 도착하겠군.’
슬쩍 보니 라라는 어인족 족장의 측면으로 우회하는 중이었다.
투웅-
다시 한번 물대포가 발사되었다.
‘바람의 걸음.’
순간 나는 바람의 걸음을 쓰고 몸을 옆으로 날렸다.
리첼의 주문과 내 마력으로 사용한 바람의 걸음이 더해지자, 몸이 빛살처럼 움직이며 물대포를 피해 내었다.
콰콰쾅-
물 덩어리가 뒤쪽으로 떨어지며 굉음을 내는 순간.
쾅!
라라의 창이 어인족 족장의 어깨를 찔렀다.
창은 질긴 족장의 피부를 관통하지는 못했지만, 적잖은 충격을 준 것 같았다.
그로 인해 어인족 족장의 주의가 라라에게 쏠렸다.
놈은 대포를 휘둘러 라라를 후려쳐 갔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도 즉시 스킬을 사용했다.
‘점멸.’
놈의 뒤, 시야의 사각으로 내 몸이 순간 이동했다. 그리고 놈의 비늘로 둘러싸인 등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멸세폭.’
콰콰콰쾅-!
멸세폭에 적중당한 족장의 거체가 벽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놈은 등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아직 살아 있었다.
두꺼운 비늘에 재앙의 기운까지 서리자, 방어력이 아주 강해진 것 같았다.
‘으음…….’
길지 않은 간격으로 멸세폭을 두 번 사용한 여파로 내게도 고통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어인족 족장이 아직 죽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때 라라가 창을 들고 어인족 족장에게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쾅-!
라라가 다시 창을 찔렀지만, 간신히 들어 올린 어인족 족장의 팔에 막혔다.
나도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마무리할 수 있을 때 확실히 해야 한다.
나는 빠르게 어인족 족장에게 달려든 후 왼손을 들어 올렸다.
‘원혼의 거울.’
왼 손바닥에서 검푸른 광선이 발사되었다.
스파앗-
뻗어 나간 광선은 정확히 어인족 족장의 심장 어림을 파고들었다.
치이익-
짧게 녹는 소리가 난 후, 어인족 족장의 가슴에 머리통만 한 구멍이 뚫렸다.
쿵-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이 옆으로 쓰러지며 전투가 마무리되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직 두 번 연속으로 사용하는 것은 몸에 부담이 돼. 방법을 찾아봐야 되겠다.’
원혼의 거울이 강하기는 하지만, 기운을 축적시켜야 된다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그 축적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이 멸세폭이기도 했다.
그러니 멸세폭의 후유증을 줄일 방법을 더 찾아볼 필요가 있다.
생각 중에 라라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수 씨, 이제 다 해치웠나 봐요!”
나는 그 소리에 괜히 불길해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다행히 더 나오는 것은 없었다.
“후우, 그래 이제 진짜 끝인 모양이다.”
나는 몸에서 증기를 뿜어내며 라라에게 대답했다.
말 그대로 진짜 끝은 끝인 모양.
살펴보니 주위는 나와 일행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두근-
순간 오염된 옛 친구의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을 보니 시커먼 기운이 새어 나왔다가 공기 중으로 흩어져 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저런 것에 당하고도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게 대단하네.’
그런 생각이 들자 이번 여정의 노고가 헛일이 아니라는 마음이 들었다.
‘정화시켜서 확실히 부려 먹어 주마.’
옛 친구를 부려 먹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또 다른 무언가가 보였다.
어인족 족장이 사용하던 물대포.
저것은 위력이 제법이라 챙겨 두면 쓸 만할 것 같았다.
나는 다가가 그것을 들어 올린 후 살펴보았다.
가만 보니 방아쇠도 없고, 그냥 기다란 원통 모양이었다.
우웅-
이리저리 만져 보다가 마력을 주입하자 물대포가 진동했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마력을 돌려보니 슬슬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감이 잡혔다.
나는 빈 곳을 향해 물대포를 겨냥한 후 발사했다.
토옹-
둥그런 물 덩이가 날아갔다.
팡-
하지만 크기도 작고 파괴력도 형편없었다.
“으음, 왜 이 모양이지?”
의아해하는 내게 라라가 다가오며 말했다.
“어인족 전용이라 그래요. 물대포는 본래 어인족 특유의 마력으로만 작동하는 것인데, 해수 씨의 마력이 워낙 높아서 그 정도라도 되는 거예요.”
고장이라도 난 건가 싶었더니, 그건 아닌 모양.
이 위력이면 쓸모가 없겠다 싶어 버리려다가, 그래도 혹시나 해서 대포를 인벤토리에 넣어놓았다.
그리고 그때쯤 해서 몸 상태가 많이 회복되었다.
이제는 슬슬 일을 해야 할 때.
나는 박동하고 있는 심장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면서 인벤토리에서 정화된 심장을 꺼내 들었다.
라라와 리첼도 옆으로 다가오며 주의 깊게 내 행동을 보고 있었다.
내가 정화된 심장을 들고 다가가자, 오염된 심장의 고동이 급해졌다.
두근- 두근- 두근-
마치 무언가 두려워하는 듯한 느낌.
‘재앙의 기운이 정화될까 무서워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심장을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가져다 대었다.
심장은 반듯한 모양으로 잘려져 있었는데, 가까이 대자 스르르 달라붙었다.
우우웅- 우웅-!
순간 큰 진동이 발밑을 흔들었다.
그러더니 합쳐진 심장에서 상서로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번쩍-!
잠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빛이 지나가고, 심장의 모습이 보였다.
두근-
그것은 건강한 붉은 빛을 내며 박동하고 있었다.
“이제 다 끝났다.”
해방감에 내 입에서 절로 말이 새어 나왔다.
막 라라와 리첼이 뭐라고 하려는 순간, 심장의 옆으로 무언가 생겨났다.
‘응? 저건 또 뭐지?’
그곳에는 무언가 푸르스름한 덩어리가 생기더니, 점차 모양을 갖춰 갔다.
잠시 후 그것은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20대 여자의 모습을 한 그것이 입을 열었다.
“잘했구나, 구원자여. 감사를 표한다.”
여기서 저런 말을 할 존재는 단 하나밖에 없다.
“혹시, 네가 옛 친구냐?”
내가 말을 내뱉자 옆에 있던 라라가 깜짝 놀라 외쳤다.
“해수 씨, 옛 친구님한테 무례해요!”
그쪽을 흘끔 바라본 뒤 나는 말을 이었다.
“채권자는 채무자한테 원래 좀 무례한 법이야. 꼬우면 빚지지를 말든가?”
내가 라라와 티격태격하는 사이에도 의문의 여성은 인자하게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다시 내 눈길이 자신에게 닿은 것을 알자, 그제야 말을 해 왔다.
“네, 제가 옛 친구예요. 인간들을 만나야 할 때는 이런 모습을 하죠. 크기가 너무 크면, 대화가 힘드니까요.”
어느새 한결 친숙한 말투로 대답하는 그녀를 보며 내가 말했다.
“줘!”
순간 라라와 리첼의 표정이 굳고, 옛 친구는 의아해했다.
그러더니 옛 친구의 입이 열렸다.
“뭘 달라는 말이죠?”
“내가 당신 회복시키느라 진짜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그러니까 뭐라도 도움 될 걸 줬으면 좋겠는데.”
그녀가 재밌다는 듯 웃으며 대답해 왔다.
“하하, 구원자님은 재미난 분이시군요. 음, 구원자님 말씀대로 고생을 많이 하셨으니 뭐라도 드려야 되는데…….”
그녀가 고민하는 듯해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옛 친구의 말이 이어졌다.
“제가 당장 가진 거라고는 몸밖에 없는데 어쩌죠?”
순간 일행의 몸이 굳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라라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돼! 옛 친구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라라는 뭔 생각을 했는지 난리가 났다.
리첼도 조용히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보다가 옛 친구에게 말했다.
“장난치지 말고, 진짜 아무것도 없어요? 천 년이나 살았다며.”
옛 친구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미소로 답해왔다.
“어머, 제 몸이 얼마나 쓸모 있는데, 섭섭하네요, 호호.”
내가 가만히 노려보자, 그녀가 살짝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사실 지독한 기운을 몰아내느라 힘을 다 써서 드릴 것이 진짜 없어요. 대신 제가 이걸 드릴게요.”
그러면서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바닥에서 주먹만 한 푸른 구슬이 생겨났다.
내가 그것을 집어 들자 구슬의 정보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