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51화>
조용하다.
옛 친구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옛 친구! 심장 가져왔다니까. 옛! 친! 구!”
크게 소리쳐 보았다.
“…….”
분위기가 싸하다.
돌아보니 라라와 리첼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뭐? 어쩌라고?”
나는 둘에게 뻔뻔하게 말했다.
진짜 어찌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가만있던 리첼이 라라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라라, 어머니께서 가르쳐 주셨잖아. 뭐 하는 거야? 얼른 해.”
그러자 라라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앞으로 나섰다.
“아, 맞다. 내가 해야 되는 구나.”
그러더니 라라의 몸이 예의 그 전투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변신을 마친 라라가 옛 친구 쪽으로 소리쳤다.
“옛 친구님! 당신의 후손이 뵙기를 청합니다.”
뭔가 특별한 수법을 사용한 건지, 목소리가 파도 너머로 멀리 뻗어 갔다.
촤아아아아아-
잠시 후, 파도가 갈라지며 그 사이로 커다란 거북이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음, 생긴 건 그냥 거북이네.’
옛 친구의 머리는 크기만 할 뿐, 별다를 것 없는 거북의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옛 친구의 머리를 관찰하는 중에 옛 친구가 눈을 떴다.
‘저건!?’
옛 친구의 눈동자에 시커먼 빛이 감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재앙의 기운.
‘음……. 재앙에 완전히 오염되는 것을 참아 내고 있는 건가?’
그때 옛 친구의 머리가 바닷가로 다가왔다.
쿠구웅-
크기가 워낙 크다 보니, 눈 깜박할 사이에 옛 친구의 머리가 모래사장 위로 올라왔다.
그러더니 힘없는 눈으로 이쪽을 쳐다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후손도 옆에 있는데 왜 나를 쳐다보는 거지? 심장을 달라는 건가?’
궁금함은 묻어 둔 채 내가 라라에게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하는 거야? 얼른 좀 어떻게 해 봐. 이제 갖다 주면 되나?”
막 라라가 대답하려는 찰나.
우우웅-
뭔가 울리는 소리에 나는 그쪽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옛 친구의 머리 옆쪽으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지름이 몇 미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구멍이었는데, 언뜻 보니 안쪽으로 통로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뭐지? 귓구멍인가? 꼭 동굴 같네.’
그때 라라가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해수 씨, 가요!”
잠시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 그나마 좀 더 정상인 리첼을 돌아보며 질문했다.
“리첼, 지금 라라가 뭐라고 하는 거지?”
리첼이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해왔다.
“그게……. 심장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러 가자는 소리예요. 저기로요.”
리첼은 말을 마치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손끝이 가리키는 곳은 옛 친구의 머리에 생겨난 동굴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저기로 들어가란 건가? 저리로 들어가서 뱃속을 헤매다가 심장이 있을 자리까지 이걸 배달하라는 거지?”
내가 손에 들린 옛 친구의 심장을 마구 흔들며 말했다. 그러자 리첼은 여전히 멋쩍게 미소만 지었다.
대신 라라가 대답해 왔다.
“해수 씨, 얼른 가요. 옛 친구님이 많이 아프시잖아요. 이럴 때 도와 드리면, 다 낫고 나서 뭐라도 있지 않겠어요?”
라라치고는 의외로 현실적인 내용이 담긴 말이었다.
사실 겉으로 툴툴거리고는 있었지만, 나도 딱히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불타는 산으로 출발할 때부터, 결국 내 손으로 마무리까지 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천 년이나 내려오는 전설이 나를 구원자라 칭하고 있다.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나저나 라로프에 와서 별짓을 다하네. 이제 거북이 뱃속 탐험까지 하게 생겼으니. 이거 참.’
신기한 마음이 들어 잠시 옛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디론가 생각이 흘러갔다.
회귀 전에도 분명 이곳에 전설이 전해져 내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
‘그럼 그때는 전설이 빗나간 건가?’
그렇다면 이번엔 전설이 맞아 들어가고 있으니…….
세상이 구원받을 것이라는 내용도 맞아떨어질까?
‘그럼 황제와 영웅 놈들이 원하는 건 도대체 뭐지?’
내가 라로프로 오면서 구원이 이루어진다면, 회귀 전 나를 죽인 그들의 행위는 세상의 구원에 반하는 것 아닐까?
그때는 이미 라로프가 멸망한 시점이 지났으니, 나를 죽여도 상관없었던 건가?
생각이 끝없이 뻗어 나가려는 찰나, 라라의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해수 씨, 어차피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얼른 가요!”
하긴 이제 와서 깊이 생각해 봐야 뭐 하랴.
어차피 이번 생에는 일어나지 않은 일.
전설이 말하는 대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해 나가면 그뿐이다.
나는 마음을 다스린 후, 라라에게 엄포를 놓았다.
결정은 했지만, 실질적인 이득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래, 가자, 가. 대신 나중에 너희 라로프인들은 꼭 은혜를 갚아야 할 거야.”
라로프인들을 써먹을 방법은 이미 다 생각해 놓았다.
아마 본전을 뽑고도 남을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앞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라라와 리첼이 내 뒤를 얼른 따라붙었다.
우리가 옛 친구의 머리에 생긴 통로로 들어서자 뒤쪽이 스르륵 하고 막혔다.
꼭 자동문이 닫히는 것 같았다.
‘신기하네.’
햇빛이 들어오지 않음에도 통로는 어둡지 않았다.
빨리 일을 해치우고 싶은 마음에 나는 발길을 재촉했다.
통로는 다행히도 단 한 방향이라, 길을 잃을 염려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내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르르- 스르르-
뭔가 미끄러지는 듯한 소리.
그때 뒤에서 리첼이 다급하게 말했다.
“어인족이에요. 그들은 미끄러지는 것처럼 걸어서 저런 소리가 난다고 했어요.”
돌아보니 리첼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어인족이 뭔데? 그게 왜 거북이 몸 안에 있어?”
대답은 라라에게서 나왔다.
“어인족은 원래 옛 친구 몸속에 살아요. 여기 살면서 나쁜 게 몸 안으로 들어오면 처리하는 역할을 해요.”
스르르- 스르르-
그때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까보다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설마…… 어인족도 오염된 건 아니겠지?”
라라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해왔다.
“당연히 오염되었겠죠. 옛 친구도 오염되었는데 걔네들이 무슨 수로 버텨요?”
‘에휴, 라로프에 와서 아주 일복이 터졌구만.’
잠시 속으로 한탄을 한 후, 바닥을 발로 툭 치며 다짐했다.
‘잔뜩 부려 먹어 주마! 각오해라, 이 거북이 자식아.’
그리고 라라와 리첼을 흘끔 봤다.
‘너희도 각오해라, 이 어리버리 콤비야. 나중에 울고불고 매달려도 소용없다.’
나는 속으로 각오를 다진 후 검을 뽑아 들었다.
때마침 어인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걷는 소리가 이상하기에 하체가 물고기처럼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놈들은 머리가 물고기처럼 생겼고, 몸 전체에 비늘이 돋아 있었다.
하지만 몸의 형태는 인간과 비슷했다. 다만 발에 커다란 물갈퀴가 달려 있다는 게 다른 점이었다.
‘그냥 오리발 신은 물고기 머리 인간이잖아.’
생각 중에 놈들이 이쪽을 발견하고 빠르게 다가왔다.
물갈퀴 달린 발을 스케이트 타듯이 끌며 미끄러져 왔다.
놈들의 몸에는 역시나 시커먼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때 라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운도 불길하고 몸에 검은 반점이 있네요. 확실히 오염됐나 봐요. 싸워야 되겠어요!”
안 그래도 막 뛰쳐나가려던 참이었다.
강기공을 끌어 올리며 막 달려드는데, 놈들이 나를 향해 무언가를 겨누었다.
어인족은 푸른색의 팔뚝만 한 막대기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그 끝에서 무언가 발사되었다.
팡- 팡-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발사된 물 덩이가 나를 노리고 똑바로 날아왔다.
물 덩이의 속도가 상당했다.
‘바람의 걸음!’
나는 스킬을 사용해 몸을 더 빠르게 만들었다.
그 후 나를 노리고 날아오던 물 덩이를 피해 내었다.
쾅-
뒤로 날아간 물 덩이가 벽에 부딪히자 폭음이 들려왔다.
‘뭔 놈의 어인족이 물총을 쏴? 삼지창이나 들고 다니지!’
어느새 라라도 앞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리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옛 바람님께 부탁드립니다- 빗나가게 해 주세요-!”
그 순간 불어온 바람이 어인족의 물총 끝을 흔들었다.
그러자 물덩이가 사방으로 제멋대로 튀어 나갔다.
나는 그 틈을 노려 빠르게 몸을 날렸다.
가장 가까이 있는 어인의 총구가 하늘로 들려 있었다.
그리고 가슴이 훤히 드러난 상태.
그곳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놈의 상체가 쩍 갈라지며 피를 쏟았다.
피부가 상당히 질겨 보이긴 했지만, 강기공을 머금은 내 칼을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한 놈을 쓰러트리는 순간, 라라도 어인족의 배에 창을 박아 넣고 있었다.
푹-!
이미 옛 친구를 만날 때부터 변신 상태라 그런지, 라라는 상당히 강했다.
창이 매끄럽게 어인족의 배를 뚫고 들어갔다가 빠져나왔다.
‘굳이 시간 길게 끌 거 없지.’
나는 놈들이 모여 있는 곳 뒤쪽을 바라보며 스킬을 사용했다.
‘점멸.’
그리고 내 몸이 놈들의 뒤로 이동되는 순간.
‘멸세폭.’
콰콰콰쾅-!
폭음이 터지며 어인족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잠시 후 소란이 가라앉았을 때, 다시 일어서는 어인족은 하나도 없었다.
푹- 푹-
몇몇 숨이 겨우 붙어 있는 놈들은 라라가 창으로 확인 사살했다.
‘옛 친구 안에 사는 놈들인데, 과감하게 죽이네. 그래도 괜찮은 건가?’
막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리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을 되돌릴 때까지는 어쩔 수 없어요. 빠르게 오염을 회복시키는 것만이 최선이에요. 어인족들도 이해할 거예요.”
마치 내 생각을 읽은 듯한 말.
나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 가만히 회복에 집중했다.
그러자 리첼이 다시 말을 이었다.
“어차피 옛 친구가 회복되면 어인족은 다시 태어날 거예요. 저들은 옛 친구의 몸에서 생산되는 존재니까요.”
‘뭐? 진짜 백혈구라도 되는 건가?’
천 년을 살아온 영물이라 그런지, 별게 다 가능하다 싶었다.
머지않아 몸이 다 회복되자, 나는 일행을 이끌고 다시 통로를 따라 걸었다.
옛 친구가 워낙 커서 그런지 통로는 길었다.
“이거 언제 끝나? 제대로 가고 있는 건 맞아?”
내 물음에 라라가 대답해 왔다.
“해수 씨, 제가 옛 친구의 후손이잖아요. 저는 심장의 기운을 느낄 수 있어요. 제대로 가고 있으니 걱정 말아요.”
‘하긴 불타는 산에 갈 때도 길 안내는 잘했으니…….’
저렇게 자신하기도 해서 일단은 라라의 말을 믿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더 걸었다.
처음 만난 어인족을 제외하고는 다시 놈들을 마주치지는 않았기에 가는 길은 수월했다.
몇 시간을 더 걸은 후, 우리는 새로운 곳에 도착했다.
이제 라로프 여정의 끝이 보였다. 드디어 심장이 있는 곳에 도착한 것이다.
“으음, 이걸 좋다고 해야 하나…… 골치 아프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문제가 있었으니.
“진짜 바글바글 많이도 모였네.”
몸서리치며 내뱉은 말에 리첼이 대답해 왔다.
“오는 동안 왠지 하나도 없다 했더니, 이곳에 다 모여 있었네요. 근데 상태가 좀 이상한 거 같아요.”
듣고 있던 라라도 거들었다.
“응. 이상하네. 뭐 하고 있는 걸까요? 심장에 들러붙어서…….”
라라의 말대로 어인족들은 옛 친구의 심장에 붙어 있었다.
오염된 심장 주위에 모여들어 꼼짝도 않고 있는 모습이 꽤나 괴기스러웠다.
심지어 그들은 뒤에서 일행이 떠들고 있는데도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때 오염된 심장이 움직였다.
두근-
그러자 어인족들이 술렁였다.
두근-
다시 한번 심장이 뛰었을 때, 상황에 변화가 생겼다. 심장에서 시커먼 기운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이건 재앙의 기운……. 설마 저걸 먹겠다고 모여 있는 건가?’
지금 보니 어인족들은 시커먼 재앙의 기운을 흡수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증거로 그들은 검은 기운이 진한 쪽으로 가려고 서로 밀쳐 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생각해 보니, 지금이 기회인 것 같았다.
“라라, 리첼. 놈들의 정신이 딴 데 팔려 있는 틈에 처리하자.”
나는 그렇게 말하고 먼저 앞으로 나섰다.
어인족들은 심장으로 향해 몰려드는 중이라 모두 등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어인족이 모여 있는 쪽으로 달려가며 강기공을 잔뜩 먹인 칼을 휘둘렀다.
콰쾅-!
뒤쪽의 몇 놈이 한꺼번에 터져 나갔다.
그러자 그 앞에 있던 놈들이 나를 돌아보며 입에서 무슨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
몇 놈이 귀가 괴로워지는 소리를 토하자, 재앙의 기운에 미쳐 있던 어인족들이 단체로 내 쪽을 쳐다보았다.
‘쯧, 완전 정신이 나간 건 아니었네.’
죽어도 모를 정도로 정신줄을 놓은 것은 아닌 듯해, 아쉬움이 들었다.
그때, 뒤돌아선 놈들이 내게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아쉽네. 계속 심장이나 쳐다보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진행될 때를 대비해 생각해 놓은 것도 있었다.
“이럴 때 딱 좋은 게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