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49화>
내 질문에 라라가 대답했다.
“네, 수호자가 있어요.”
역시 공짜로 되는 게 없다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조용히 있던 리첼이 말해 왔다.
“수호자는 강해요. 원래라면 함부로 사람을 공격하지 않겠지만…….”
쎄에에엑-
그때 천장에서 무언가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나는 재빠르게 검을 뽑아 위로 휘둘렀다.
쾅!
검과 부딪힌 것이 터져 나갔다. 살펴보니 불타는 돌덩이였다.
시선을 위로 향하며 나는 생각했다.
‘저게 수호자라고? 수호자라기에 불의 정령 같은 건 줄 알았더니…….’
웬 시뻘건 거미가 천장에 매달려 아래를 내려 보고 있었다.
놈도 재앙의 기운에 오염되었는지, 몸 군데군데가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수호자가 오염되었어요!”
나와 같이 위를 쳐다본 라라가 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래, 내 눈에도 잘 보인다.
어차피 심장을 가져가면 저놈의 역할은 끝이다.
‘수호자고 뭐고, 그냥 잡자.’
근데 놈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보니 끌어내릴 방법이 영 마땅치 않았다.
‘점멸로 접근한 다음에 떨어트려?’
잠시 고민하는 사이에 리첼의 주문이 들렸다.
“옛 바람께 부탁드려요, 적을 떨어트려 주세요-!”
싸아아아-
순간 동굴 천장에 세찬 바람이 불었다.
매달려 있던 수호자가 흔들리더니 이내 아래로 떨어졌다.
그사이 리첼은 재빨리 후위로 이동했고, 라라가 그 앞을 막아섰다.
나는 앞으로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캉-!
검이 수호자의 앞다리와 부딪혀 쇳소리를 내었다.
‘엄청 단단하잖아?’
역시 천 년이나 옛 친구의 심장을 지킨 놈다웠다.
그런데 순간 수호자의 입에서 무언가 뿜어져 나왔다.
“젠장!”
나는 얼른 몸을 옆으로 날렸다.
불타는 거미줄이 채찍처럼 내가 서 있던 자리를 후려쳤다.
치이익-
거미줄에 맞은 땅이 녹아 들어갔다.
‘거미줄은 보통 꽁무니에서 나오는 거 아니냐?’
나는 속으로 불만을 내뱉으며 몸을 바삐 움직였다.
수호자는 다른 일행이 크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내 쪽에만 신경 쓰고 있었다.
치익-
수호자의 입에서 내뻗어진 거미줄이 연신 바닥을 후려쳤다. 거미줄은 마치 촉수처럼 끊어지지도 않고 계속 휘둘러졌다.
놈의 의도대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공격해 오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군.’
수로자의 거미줄이 다시 한번 바닥을 내리치는 순간.
‘점멸.’
놈의 등 위로 이동했다.
그리고 검을 아래로 내리꽂았다.
‘멸세폭.’
콰콰콰쾅-!
그런데 내 검이 놈의 등을 내려치는 찰나, 큰 반동이 손목을 통해 전해졌다.
그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젠장, 안 부서졌다.’
오염되어 검은빛이 도는 수호자의 껍질은 몹시 단단했다.
그것은 멸세폭의 파괴력으로도 단번에 부서지지 않았다.
순간 놈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놈의 등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젠장!”
나는 재빨리 놈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미 내 옷에 불티가 들러붙었다.
그때 리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옛 바람께 부탁드립니다. 저분의 몸에 불을 꺼 주세요-!”
리첼의 주문과 함께 몸에 붙었던 불이 꺼졌다.
‘불을 꺼 준 것은 고맙긴 한데…….’
당장 수호자를 처치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멸세폭으로 안 되면…….’
결국 원혼의 거울에 충격을 축적시켜야 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한 번의 멸세폭에 따른 축적으로는 당연히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놈에게 공격을 계속 당하든가, 멸세폭을 더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멸세폭을 연이어 쓰기에는 상황이 썩 여유롭지만은 않았다.
‘한 번까지는 몰라도, 두 번째부터는 움직임에 영향이 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 랜덤 영웅 소환 (39210/16000 코인)
┗ 영웅 진화 (39210/10000 코인)
: 진화 가능 영웅 [없음]
나는 남은 코인을 보고 생각했다.
‘굳이 아낄 필요 없겠지.’
제국에 있을 때는 행동에 방해가 될까 뽑는 것에 신중을 기했다.
하지만 이곳은 라로프, 어차피 제국과 마찰을 일으킬 일도 당장은 없다.
그러니 일단 뽑아만 놓으면, 영웅은 재앙에 오염된 수호자와 열심히 싸울 것이다.
‘랜덤 영웅 소환.’
스킬을 사용하자 마법진이 빛나고, 곧이어 누군가 나타났다.
[엘파바(S. 얼음 마녀)]
- 충성도 : 50 (충성도가 낮으면 배신할 수 있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마스터. 어머! 전투 중이셨군요.”
놈은 나오자마자 방정맞게 떠들어 대었다.
저 입을 꿰매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상황이 급하니, 나는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그래, 전투 중이니 인사는 뒤로 미루지. 얼른 저놈을 공격해라.”
“맡겨 주세요, 마스터”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내심 안도했다. 다행히 상성이 괜찮은 영웅이 뽑혔기 때문이다.
엘파바는 냉기 계열 마법과 저주를 주로 사용하는 마녀.
지금 상대하는 불거미와는 제법 잘 어울린다.
‘굳이 진화까지 시키지는 않아도 되겠지?’
진화는 일단 전투를 해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는 빠르게 팔찌를 사용했다.
[스킬 전이가 시전됩니다. 대상을 정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 : 엘파바]
‘엘파바.’
[스킬 냉기 면역이 전이됩니다.]
[냉기 면역]
: 냉기에 피해를 입지 않는다. 냉기의 크기와 시전자의 역량에 따라, 완전히 면역이 되지 않고 경감만 되는 경우도 드물게 발생한다.
‘쯧, 당장은 쓸모가 없는 스킬이다. 하긴, 그동안 너무 딱 필요한 것이 나오긴 했지.’
좀 아쉽지만 이미 결정된 것, 무를 수도 없다.
그리고 나중에 노르트에 가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 중에 무언가 포탄처럼 내게 날아왔다.
나는 검에 강기공을 일으켜 그것을 후려쳤다.
쾅-!
살펴보니 수호자가 불타는 돌덩이를 다시 날리고 있었다.
‘돌이 어디서 자꾸 나오는 거야?’
머리통만 한 돌덩이가 투석기에서 발사된 것처럼 쏘아져 왔다.
쾅- 쾅-!
그렇게 몇 번을 막고 있는데, 옆에서 냉기가 느껴졌다.
“서리의 원한.”
옆을 슬쩍 확인하자 엘파바가 마법을 쓰고 있었다.
쩌저적-
앞쪽을 향해 냉기가 뻗어 나가며 동굴이 얼어붙고 있었다.
‘그래, 코인값은 해야지.’
뽑을 때마다 갈수록 코인이 비싸진다.
적이 강해지면서 얻는 코인도 늘었지만, 한 번 뽑을 때마다 확실히 본전을 뽑아야 한다.
엘파바의 냉기는 아군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동굴이 냉기로 가득 차자 수호자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날아오는 돌덩이도 줄고, 속도도 느려졌다.
‘바람의 걸음.’
나는 스킬을 사용하고 앞으로 달렸다.
뒤에서 누가 떠밀어 주듯 몸이 앞으로 미끄러졌다.
때맞춰 리첼이 주술을 사용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옛 바람께 부탁드립니다. 눌러 주세요-!”
순간 수호자의 위에서 강풍이 불어왔다.
그러자 놈의 몸이 아래로 눌리며 버둥거렸다.
“떨어져라, 얼음 창.”
그때 엘파바의 목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갑자기 뾰족한 얼음 기둥이 생겨났다.
그러더니 수호자의 몸통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콰드득-
창은 수호자의 몸을 조금 파고들다 멈췄다.
껍질을 조금 부서트렸지만, 완전히 뚫지는 못한 상태.
‘점멸.’
스팟-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수호자의 등 위로 이동했다.
수호자가 다시 등에서 불길을 내뿜었다.
‘리첼이 다시 꺼 주겠지.’
나는 피해를 각오하고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멸세폭.’
콰콰콰쾅-!
쩌저적-
얼음 창이 파고든 곳을 정확히 노린 공격에 놈의 등껍질이 드디어 부서졌다.
그곳으로부터 오염되어 검게 변색된 피가 뿜어졌다.
끄에에에-
순간 수호자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놈의 꽁무니에서 불로 짜인 그물이 확 하고 터져 나왔다.
불 그물은 빠르게 나를 덮쳐 왔다.
‘젠장!’
이미 멸세폭은 벌써 두 번이나 사용한 상황.
게다가 점멸도 사용 대기 시간에 걸렸다.
그물의 범위가 너무 넓어 뛰어서 피할 수도 없다.
찰나의 고민 끝에, 나는 마력을 한계까지 쥐어짜 강기공으로 온몸을 감쌌다.
그 후 덮쳐 오는 불의 그물을 향해 정면으로 몸을 날렸다.
막 그물이 내 몸을 감싸려는 순간.
‘원혼의 거울.’
나는 왼손을 내밀었다.
왼손바닥에서 발사된 검푸른 광선이 그물에 구멍을 뚫었다.
나는 그 구멍을 향해 전력으로 검을 휘둘렀다.
찌이익-
그러자 구멍이 좀 더 넓어졌다.
나는 그 사이로 몸을 날렸다.
몸이 그물에 쓸리며 불길이 옮겨붙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저기 완전히 둘러싸이는 것보단 낫다.’
“옛 바람님, 불을 꺼 주세요-!”
리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주문이 많이 축약되었다.
‘급하면 저렇게도 되나 보네?’
나는 몸이 타들어 가는 와중에도 마음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불길이 지독하긴 했지만, 강기공과 초재생의 조합으로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바람이 불어와 몸에 붙은 불을 꺼 주었다.
나는 리첼에게 손을 한 번 흔들어 주고 수호자를 보았다.
놈은 몸통이 짓이겨져 땅바닥에 붙어 있었다.
아직 살아 있었지만, 더 이상 기운이 없는지 공격을 하지는 못했다.
“이제 쉬게 해 드리세요.”
리첼이 차분한 목소리로 얘기해 왔다.
‘그래, 천 년이나 심장을 지켰으니 이제 쉬어라.’
나는 다가가 수호자의 목을 검으로 내려쳤다.
퍽- 퍽-!
강기공을 감싼 검으로도 몇 번을 내려쳐서야 목이 떨어졌다.
순간 놈의 머리에서 무언가 굴러떨어졌다.
그것은 붉은색의 구슬.
다가가 주워 들자,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심장 수호자의 내단(S. 재료)]
- 불의 산에서 천 년 동안 맹약을 지켜 온 심장 수호자의 내단. 오랜 기간 축적된 불의 기운이 모여 있다.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불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 주고, 장비 제작 시 강력한 불 기운을 더한다.
‘호오? 이건 쓸 만하겠군.’
나는 예상외의 소득에 미소 지으며 주변을 살폈다.
수호자가 날린 불덩이와 엘파바의 얼음 때문에 주변은 난장판.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도저히 여기서 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통증을 참으며 걸음을 옮겼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제단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 머리통만 한 돌덩이가 얹혀 있었다.
‘저게 진짜 심장인가? 완전 돌 같은데. 꼭 심장을 반으로 잘라 놓은 것같이 생기긴 했네.’
생각은 거기까지 하고, 나는 몸을 회복시킬 겸 자리에 주저앉았다.
심장이고 뭐고 일단은 좀 쉬고 싶었다.
“저기, 해수 씨, 저분은 누구예요? 갑자기 어디서 나타나셨어요?”
그때 라라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물어 왔다.
‘분명 얘가 도움이 될 거라고 했는데.’
해맑은 라라를 보자 어이없기도 하고, 뭔가 노파에게 속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이름을 걸고 한 말이었는데…….’
노파가 어머니의 이름을 걸고 말을 할 때에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주술적인 힘이 담긴 듯,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납득하게 되는 느낌.
그러나 아직까지는 라라가 어디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뭐, 때 되면 도움이 되겠지…….’
도움이 안 되어도 그만이고. 이제 일은 거의 끝났으니까.
이제 세계의 정수를 심장에 가져가면 심장이 깨어날 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정수로부터 기운을 흡수한 심장을 옛 친구에게 가져가면 일은 끝.
그런 생각을 하며 세계의 정수를 인벤토리에서 꺼내 들었다.
손에 쥐어진 조각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아이참, 해수 씨. 질문에 대답 안 해 줘요?”
옆에서 라라가 계속 보채는 중이었다.
피식 웃으며 막 엘파바를 어떻게 설명할까 하고 고민하는데…….
“마스터, 그것을 왜 당신이 가지고 있죠?”
서늘한 기운이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자 엘파바가 눈빛을 날카롭게 빛내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으음. 세계의 정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군, 이건 미처 생각 못 했는데?’
나는 세계의 정수를 손에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첫 번째 재앙을 처치하고 획득했다. 재앙을 처치한 것이 나니, 전리품도 내 것이 되는 게 당연하지.”
말을 하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놈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
여차하면 엘파바를 이 자리에서 제거해야 할지도 몰랐다.
아직 두 라로프인에게는 사정을 말하기도 전.
그들은 전투가 벌어지면 당황하여 도움이 되기 힘들 것이다.
물론 평소라면 그들의 도움은 필요 없었겠지만…….
‘몸 상태가 문제야. 시간을 끌어야겠어.’
나는 두 번의 멸세폭을 사용했고, 수호자의 불에 타기도 했다.
치명상은 아니지만, 당장 싸우기에는 컨디션이 최악이다.
그나마 놈을 진화시키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지만, 지금 즉시 싸우면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생각 중에 엘파바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스터가 가지고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에요. 어서 그것을 온당한 주인에게 넘기세요.”
온당한 주인이라.
“그게 누구지? 마왕이 죽고 뱉어 낸 물건이야. 마왕에게 돌려줄 수도 없고, 도대체 주인이 누구지? 나도 꼭 내가 가져야 된다는 생각은 없어.”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시간을 끌었다. 어쩌면 엘파바에게 세계의 정수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엘파바의 눈빛은 갈수록 서늘해져 갔다.
“제국에 가져다주면 알아서 처리할 거예요. 저에게 주세요! 그동안 제가 보관하도록 하죠.”
역시 제국인가? 결국 비밀의 열쇠는 황제가 가지고 있는 셈.
황가수호대가 몇 명이건 씹어 먹어버릴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어쨌든 엘파바에게 세계의 정수를 넘길 수는 없는 일.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나한테 인벤토리도 있잖아. 그리고 제국에 가져다주려면 여기서 나가야 돼. 여기 섬이야. 물길이 막히는 바람에 나가려고 이 고생을 하는 중이라고.”
내 말을 들은 엘파바가 막 뭐라고 하려는 찰나, 리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라, 지금인 것 같아. 어머니의 말씀 기억하지?”
“지금? 잘 모르겠는데. 에잇, 몰라! 리첼이 책임져.”
순간 라라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