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48화 (48/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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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48화>

나는 인벤토리에서 마왕을 잡고 얻은 조각을 꺼내었다.

조각은 여전히 상서로운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허허,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젊은이, 아니, 구원자라 부르면 되려나?”

노파의 말이 들려왔다. 기꺼운 기분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잠시 조각과 노파를 번갈아 보는 틈에 라라가 소리쳤다.

“해수 씨가 구원자라고요? 어머니! 정말이에요?”

잔뜩 놀란 목소리.

노파가 웃으며 대답해 왔다.

“클클, 이름을 그리 부르는 것을 보니 그사이 많이 친해졌나 보구나. 그래, 저 젊은이가 전설에 전해지는 구원자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이 보이지 않느냐?”

“저게 그 세계의 정수란 말이에요?”

그건 나도 궁금하던 차였다.

‘이게 세계의 정수라고? 이게 세계의 정수면 어째서 이름이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 거지? 그리고 왜 마왕에게서 이게 나온 걸까?’

뿐만이 아니었다.

황제는 이것을 어떻게 알고 손에 넣으려 한 것일까?

회귀 전, 이것을 손에 넣은 황제가 이루려 한 것은 또 무엇인가.

복잡한 생각이 내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때 노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보게 젊은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네. 그냥 눈앞의 일을 처리하다 보면, 순리대로 풀릴 것이야.”

“그것도 예언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까?”

나의 물음에 노파가 자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네. 가장 먼저 나오고, 가장 여러 번 강조되는 내용이라네. 구원은 결국 이뤄질 것이니, 너의 길을 가거라.”

왠지 모르게 그 문구가 마음에 새겨지는 것 같았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노파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옛 친구를 회복시키는 것은 자네에게도 도움이 될 걸세. 옛 친구는 은혜를 결코 잊지 않거든. 그리고 우리 라로프도 마찬가지지. 이번 일이 잘되면, 우린 자네에게 결코 갚을 수 없는 빚은 지는 셈이라네.”

회귀 전 내가 만나 본 라로프인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들이 무슨 재주를 가졌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니 그들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거북이는 굉장해 보였다.’

옛 친구를 내 맘대로 부릴 수 있게 된다면, 큰 힘이 될 것이다.

‘너무 커서 어디 데리고 다닐 수나 있을까 모르겠지만…….’

나는 머릿속으로 주판을 열심히 튕겼다.

어떻게든 따로 바다를 건널 방법을 찾을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말에 응해 주고 대가를 받아 낼 것인가.

고민 끝에 나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노파에게 질문했다.

“그래서 제가 그 구원자라면, 무슨 일을 하면 됩니까?”

“옛 친구의 심장을 구해 오면 되네.”

무슨 소리지? 심장은 거북이 배에 들어 있을 텐데 그걸 구해 오라니?

“혹시…… 옛 친구 배를 째란 소립니까?”

“그럴 리가 있겠나? 옛 친구는 신비한 존재라네. 수천 년 전 라로프의 은혜를 입은 옛 친구는 맹약에 따라…….”

노파의 이야기는 길게 이어졌다.

결론은 이랬다.

옛 친구의 심장 반쪽은 이곳 라로프섬 어딘가 보관되어 있다.

그것이 맹약에 대한 증거이자 우정의 상징이었다.

‘심장을 쪼개서 주는 게 말이 돼? 그러고도 잘 살아 있는 것도 신기하구만.’

어쨌든 그 심장의 반쪽에 세계의 정수의 기운을 불어넣어 옛 친구에게 가져가면 된다.

그러면 옛 친구의 오염이 회복되고, 물길이 다시 열릴 것이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내가 노파에게 물었다.

“그 심장 반쪽은 어디 있습니까?”

“불타는 산에 있네. 안내할 사람을 붙여 줄 테니 길 잃을 걱정은 말게, 클클.”

뭐가 좋은지 노파는 연신 미소 지었다.

“괜한 사람 일 시켜 놓고 뭐가 그리 좋으십니까?”

나는 심통이 나서 노파에게 한마디 해 주었다.

그러자 노파가 신비로운 음성으로 대답해 왔다.

“너무 그러지 말게. 자네에게도 분명히 좋은 일이 될 거야. 이건 내가 라로프의 어머니로서 하는 말이네. 믿어도 된다네.”

그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노르트로 가려면 물길이 열려야 하니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노파의 말대로 거북이가 은혜를 갚기를 바랄 수밖에…….’

가만히 생각해 보면, 거북이 쪽은 걱정할 것이 없을 것도 같았다.

‘라로프에게 천 년 동안 은혜를 갚고 있었다니, 나한테도 잘 갚겠지.’

결국 나는 옛 친구의 심장을 구해다 주기로 했다.

상황이 심각한 만큼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세계를 구할 여행이라니 완전 흥분돼! 어쩜 좋아!”

“라라, 너무 들뜨지 좀 마! 놀러 가는 거 아니잖아.”

‘후우…… 이거 참.’

길 안내를 맡은 것은 라라와 친구인 리첼이었다.

라라는 완전히 들뜬 상태였고, 그나마 말리는 리첼은 차분했다.

그들을 보며 나는 불안함이 살짝 올라왔다.

‘도움이 되긴 되려나?’

노파는 그들이 꼭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내게 허튼소리할 입장은 아니니, 뭔가 도움이 되긴 될 텐데.

도통 감이 안 잡혔다.

‘그나마 라라는 제법 잘 싸우는 편이긴 한데. 저 리첼은 영 모르겠단 말이지.’

모계 사회인 라로프에서 여성의 역할은 다양하다.

때때로 라라처럼 전사가 되기도 하고, 그냥 주부의 역할에 전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리첼은 누가 봐도 전사라고 할 수는 없는 몸매에 가느다란 팔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뭐 어떻게든 심장만 구하면 된다.’

혹시라도 방해가 되면, 버리고라도 갈 수밖에.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마차는 꾸준히 이동했다.

그나마 마차가 다닐 만한 길은 뚫려 있는 게 다행이었다.

* * *

여정은 며칠이나 계속되었다.

그동안 노숙을 하기도 하고, 길을 가다 있는 마을에 묵기도 했다.

거쳐 온 모든 마을에서 라라를 정중하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보면 내가 처음 갔던 라라의 마을이, 라로프의 가장 큰 마을 중 하나인 ‘은혜의 관문’이었다.

그곳은 은혜의 길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마을로, 옛 친구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었다.

‘그 할머니도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이었단 말이지.’

라라의 마을에서 본 노파는 라로프 섬에서 아주 영향력이 큰 사람이었다.

바로 라로프에 단 3명밖에 없는 ‘어머니’였던 것이다.

‘그러면 그 후계자인 라라도 뭔가 대단한 점이 있으려나?’

지금까지 보기에는 수다스러운 소녀 전사 정도로밖에 안 보인다.

어쨌든 그 라로프의 딸이라는 지위만으로도 당장 여행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그 후로도 마차는 계속 나아갔다.

“이제 다 와 가요. 곧 불타는 산에 도착할 거예요.”

그리고 라라가 막 말해 왔을 때, 멀리 마을이 보였다.

“저곳이 그럼 불타는 산에 가기 전 마지막 마을인가?”

“으음, 네. 근데 저곳은 좀…….”

라라가 말꼬리를 흐렸다.

대신 리첼이 말을 이었다.

“저긴 추방자들의 마을이에요. 마을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쫓겨난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죠. 이곳이 가장 척박한 곳이라, 다른 사람들은 이곳을 제외한 다른 곳에 마을을 이루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들이 이곳에 모여 사는 거죠.”

그때 라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쩔 수 없이 저곳을 통과해야 해요. 심장이 보관된 장소로 가는 길이 저 마을 뒤쪽에 있어요. 원래는 아무도 없는 곳이었는데, 하필 이곳에 추방자들이 마을을 세워서는…….”

하지만 나는 딱히 거리낄 게 없었다.

애초에 추방자라고 해도 종족이 완전히 망할 위기.

그걸 굳이 방해할 멍청이가 있을 리가.

* * *

‘……있군’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나타나는 자들이 있었다.

강철 창으로 무장한 남자 10명이 길을 막아선 것이다.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말했다.

“너희는 뭐냐? 이곳은 우리의 땅이다! 이곳에 발을 들인 이상 우리의 말을 들어야 된다.”

그러고는 라라와 리첼을 끈적한 눈길로 훑었다.

그러자 라라가 나서며 소리쳤다.

“나는 은혜의 관문에서 온 라로프의 딸 라라다. 전설에 따라 라로프를 구하러 가는 길이다. 당장 비켜서라!”

서릿발 같은 음성에 남자들이 일순 움찔했다.

‘저런 면모도 있었군.’

살짝 감탄하고 있는데 우두머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그딴 것은 너희들이나 신경 써라! 우린 우리의 법칙이 있다. 은혜의 관문이고 라로프의 딸이고 필요 없다. 당장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라!”

이만하면 충분하다.

악당이라는 표현도 아까운 놈들과 더 실랑이할 필요는 없으니까.

내가 막 앞으로 한 걸음 나섰을 때, 리첼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옛 바람께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앞길을 열어 주세요-.”

그 목소리는 이제껏 들었던 것과는 묘하게 달랐다.

특이한 기운이 목소리에 서려 있는 느낌.

순간 사방에서 돌풍이 불어닥쳤다.

쎄에엑-

그러자 길을 막던 놈들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굳이 만들어 준 기회를 놓칠 필요는 없는 일. 나는 검을 뽑으며 재빨리 달려들었다.

신기하게도 바람은 적들에게만 영향을 미쳤다.

놈들이 한 걸음이라도 뗄라치면 강풍이 불며 균형을 흐트러트렸다.

‘신기하네. 주술 같은 건가?’

생각하는 중에도 나는 칼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전혀 어렵지 않은 상대인데, 리첼의 지원까지 더해지니 당연하게도 상황이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머지않아 목 없는 몸뚱이 10개가 생겼다.

놈들은 딱히 써먹을 데도 없고, 애초에 범죄자 무리라고 봐도 무방했다.

게다가 일행을 보는 눈길도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손을 과감하게 썼다.

“잘하셨어요. 저들은 이미 한 번 기회를 더 받은 자들. 두 번째의 기회를 세상을 구원하는 길을 방해하는 데에 썼으니 대가를 치러야지요.”

의외로 라라가 단호한 목소리로 얘기해 왔다.

라로프의 딸이라는 직책에 걸맞은 태도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맞아요. 갈 길이 바쁘니 얼른 움직여요.”

리첼도 맞장구쳐 왔다.

이들 말대로 저런 멍청이들에 신경 쓸 시간은 없다.

우리는 얼른 마차로 다시 올라 길을 재촉했다.

“정말 실력이 대단하세요. 역시 구원자시라 다른 것 같아요.”

가면서 리첼이 얌전하게 말을 걸어 왔다.

“리첼의 기술도 대단했어. 혹시 주술 같은 건가?”

내 말에 리첼이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조상님들께 힘을 빌리는 것이에요. 음, 굳이 따지면 바깥에서 정령술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겠네요.”

‘진짜 도움이 되긴 되겠군.’

리첼의 능력이 제법이었다.

노파가 꼭 도움이 될 거라더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때 문득 드는 생각에 나는 리첼을 빤히 바라봤다.

‘혹시…… 가능할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매번 소환 영웅이나 플레이어에게만 썼던 팔찌의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그러자 생각 이상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스킬 전이가 시전됩니다. 대상을 정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 : 라라, 리첼]

‘두 명 다 되잖아! 음, 라라.’

깜짝 놀란 나는 생각 끝에 일단 라라부터 골랐다.

[스킬 ‘쾌창술’이 전이됩니다.]

[쾌창술]

: 가진 바 능력치보다 창을 쓸 때의 움직임이 더 빨라집니다.

하지만 결과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으음, 이건 썩 의미가 없군.’

창을 굳이 꺼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장은 검을 주로 쓰다 보니 딱히 큰 도움이 될 스킬은 아니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얼른 스킬을 다시 사용했다.

애초에 라라보다는 리첼에게 기대가 컸다.

[스킬 전이가 시전됩니다. 대상을 정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 : 리첼]

‘리첼.’

[스킬 ‘바람의 걸음’이 전이됩니다.]

[바람의 걸음]

: 옛 조상의 힘을 빌려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빨라지게 합니다. 옛 조상의 힘을 빌리지 못할 경우 마력이 대신 사용됩니다.

‘오호, 이건 쓸 만하겠군.’

체술에 자신이 있긴 했지만, 움직임 자체를 보조해 주는 스킬이 없는 것이 내 단점이었다.

그러니 바람의 걸음은 전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바로 써 보고 싶은데…….’

몸이 근질거렸지만 살짝 리첼의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차피 불의 산에서 전투를 하게 될 터.

때마침 마차도 막 불의 산 아래에 도착했다. 이곳부터는 숨겨진 통로를 통과해 걸어 올라가야 한다.

나는 마차에서 내리며 스킬을 사용했다.

‘바람의 걸음.’

쏴아아-

옷깃으로 바람이 스며들었다.

몸 주변에 얇은 바람의 막이 둘러진 느낌.

순간적으로 몸이 가벼워졌다.

스르륵-

한 걸음 떼는 순간 몸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평소보다 훨씬 빠르고 매끄러운 게, 마치 등 뒤에서 누가 밀어주는 것 같았다.

다만 단점도 있기는 했다.

‘흠, 마력 소모량이 제법이군.’

마력은 내 스탯 중 가장 높은 상태. 그럼에도 어느 정도 부담이 있었다.

‘옛 조상의 힘을 빌리지 못해서 그런가?’

마력 효율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성능은 꽤 훌륭했다.

전투 시 짧게 끊어 사용하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내가 만족감에 미소 짓고 있을 때,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리첼이 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바람의 기운이군요. 옛 조상의 방법과 똑같은데, 옛 조상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요.”

“음, 나한테 특별한 기술이 있거든. 그걸 이용하면 동료의 기술을 한 가지 사용할 수 있어. 미리 말 안 해서 미안해.”

“아니에요, 구원자신데요. 필요하면 뭐든 해 드릴 수 있는걸요.”

리첼이 싱긋 웃었다.

그때 라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내 기술은? 해수 씨, 내 건 왜 안 써요?”

“라라 건 창술이라……. 내가 검을 주로 쓰잖아. 그리고 나한테 창도 없어.”

그 말에 라라가 잠깐 시무룩해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커다란 바위 앞에 선 라라가, 손바닥에 피를 내어 바위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바위 중앙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크기의 구멍이 뚫렸다.

‘신기하네.’

확실히 이들의 기술은 대륙의 것과 달랐다.

‘노르트인들을 이용하려 했더니, 여차하면 이들도 진짜 큰 도움이 되겠어.’

차후 두 번째 재앙을 상대하는 데에는 혼자서는 무리다.

노르트인뿐 아니라 라로프인들도 이용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는 중에 주변이 변하면서 후끈한 열기가 몸을 감싸 왔다.

동굴 안쪽으로 갈수록 열기는 더 심해졌다.

어느 순간, 라라가 내게 말했다.

“다 왔어요. 이제 심장이 있는 곳이 머지않았어요.”

노파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 무언가 있다고 했다.

“그냥 심장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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