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45화>
마왕의 화신이 어느새 더욱 커져 있었다.
처음 3미터 남짓했던 몸은 이제 없다.
족히 10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체가 황가수호대를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이미 마왕의 손에 황가수호대 하나가 잡혀 있었다.
마왕에게 잡힌 황가수호대가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
마왕이 주먹을 들어 입가로 가져가더니 손에 힘을 주었다.
주르르-
황가수호대가 핏물이 되어 마왕의 입으로 흘러 들어갔다.
마왕의 노란 눈동자가 사악하게 웃었다.
‘벌써 커졌군. 황가수호대 놈들이 어찌하려나?’
그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데 레오비크가 다가와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마스터, 어서 마왕을 처치하러 가야 합니다.”
‘그래, 네놈들은 그게 목적이겠지.’
하지만 내가 굳이 저곳에 돌진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말이 없자 레오비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서 제국 측 병력과 합류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왕을 처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일단 가는 시늉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 일단 가자. 하지만 너무 앞장서지는 말도록. 일단 시체들을 먼저 밀어 넣어라.”
“알겠습니다, 마스터.”
어쨌든 싸움에 합류하기로 하자 놈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콰쾅-!
전투는 여전히 격렬했다.
하지만 유불리는 누가 보기에도 확연했다.
‘마왕이 훨씬 유리하군. 레오비크 말대로 슬슬 힘을 좀 써야 되겠어.’
당연하게도 나의 목적은 황가수호대와 마왕을 공멸시키는 것. 전황이 한쪽으로 너무 기우는 것은 좋지 않다.
나는 슬금슬금 전장에 다가갔다.
앞장선 레오비크는 이미 만티코어를 마왕에게 돌진시키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놈의 입이 웅얼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가는 길에 있던 마스터와 어보미네이션의 사체가 자리에서 일어나 레오비크의 병사가 되었다.
‘저놈을 뽑은 건, 확실히 운이 좋았군.’
만티코어에 이어 언데드 병사들이 싸움에 합류했다.
하지만 10명 남짓이던 황가수호대는 이미 많이 죽고 5명밖에 남지 않았다.
쾅-
만티코어가 마왕의 주먹에 맞고 밀려나는 순간, 전장에 붉은 기운이 날아들었다.
‘음? 또 보냈군!’
전장에 10명의 황가수호대가 더 합류한 것이다.
순간 황제의 옆이 텅 비어 있을 지금이라면 황제의 목을 비틀어 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퍼뜩 고개를 돌려 황제를 보았다.
하지만 그 주위에는 어느새 또 다른 황가수호대가 둘러싸고 있었다.
‘뭐가 저렇게 많아. 어디서 막 찍어 내기라도 하나?’
당장 황제를 잡는 것이 힘들 거라 판단한 나는 고개를 돌려 눈앞의 전투에 집중했다.
언데드 병력에 황가수호대까지 추가되자 이제 전력의 차이가 많이 줄었다.
‘소모전이군.’
여전히 언데드들이 부서지고, 황가수호대가 죽어 나갔다.
하지만 마왕의 몸에도 큰 상처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제 공격해야 됩니다!”
레오비크의 애탄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이제 제대로 간다. 너도 전위로 합류해라.”
“예! 마스터.”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놈이 얼른 앞으로 달려 나갔다.
레오비크의 양손에서 뼈로 된 창이 만들어져 마왕에게 날아갔다.
쾅-!
마왕이 휘두른 손짓에 뼈창이 단번에 터져 나갔다.
나도 슬슬 몸을 움직여 마왕의 뒤쪽으로 향했다.
물론 굳이 앞장설 필요는 없었다.
레오비크에게 한 말은 오로지 놈을 전투에 합류시키기 위한 것.
‘어차피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든, 놈들은 재앙과 싸우겠지.’
놈의 충성도가 떨어지든 말든, 혹은 놈이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딴 것은 상관없다.
나는 뒤쪽에서 인식 교란을 걸고 지켜보기만 했다.
마왕의 몸에 상처가 계속 생겨났고, 그럴 때마다 황가수호대가 죽어 나갔다.
황제가 또 병력을 보낼지는 모를 일이지만, 일단 현장에 있는 병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콰콰쾅-!
순간 큰 폭발이 일어났다.
마왕의 발치에 죽어 있던 어보미네이션이 폭발한 것이다.
‘시체 폭발! 위력은 참 좋은데…….’
나는 쓸 수가 없다. 레오비크처럼 시체를 다룰 수 없으니.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상황을 살폈다.
이번 공격은 제법 타격이 있었다.
상처 입은 마왕의 하체에서 검은 기운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새어 나오던 검은 기운이 흩어지지 않고 공중에 멈추었다.
그러더니 기다란 채찍이 되어 사방을 휩쓸었다.
쒜에엑-
서걱-
순식간에 주변에 있던 언데드와 함께 두 명의 황가수호대가 썰려 버렸다.
그런데 그 순간.
퍼퍼펑-!
썰린 언데드가 바로 폭발했다.
폭발에 휩쓸린 검은 채찍이 흩어졌다.
‘역시 진화시키길 잘했군.’
양보다 질을 택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진화 전이었다면 레오비크가 저 정도의 기량을 보이진 못했을 것이다.
마왕의 눈동자가 불타올랐다. 놈이 레오비크를 응시했다.
S급 영웅이라도 그 기세에 눌린 모양인지 레오비크의 몸이 움찔했다.
그 순간 마왕이 레오비크에게 달려들었다.
레오비크의 앞에 뼈창이 생겨나 마왕에게 날아갔다.
쾅-!
마왕의 손짓에 단번에 부서지는 뼈창.
접근한 마왕이 레오비크를 후려치려는 순간.
쿵!
만티코어가 날아와 마왕을 들이받았다.
마왕의 거체가 주륵 밀렸다.
하지만 밀리는 와중에도 마왕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휘두른 마왕의 손아귀에 만티코어의 날개가 잡힌 것이다.
찌이익-
만티코어의 한쪽 날개가 뜯겨 나갔다.
하지만 언데드인 만티코어는 고통도 모른 채 입을 벌려 마왕의 다리를 물려 했다.
마왕의 양손이 만티코어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쾅- 쾅-
두 번이 손짓 만에 만티코어의 목이 부서졌다.
그 순간.
꽈콰콰쾅-!
만티코어의 몸이 폭발했다.
레오비크가 또다시 시체 폭발을 사용한 것이다.
만티코어의 뼈와 살이 창칼이 되어 사방을 난자했고, 마왕이 피부가 찢겨져 나갔다.
그곳에서 검은 기운이 줄줄 새어 나왔다.
크아아아-!
마왕의 입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
그리고 알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남아 있던 황가수호대가 마왕에게 달려들었다.
수는 다섯.
황제가 병력을 더 보내지는 않았는지, 숫자가 늘지는 않았다.
쾅-!
다시금 마왕과 황가수호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싸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반대편에서 암흑 교단의 장로들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장로들은 이미 눈빛이 텅 비어 있다. 이지를 잃은 상태.
마왕이 주문을 통해 그들을 불러들인 것처럼 보였다.
마왕이 장로들을 흡수하면 상처가 회복될 뿐만 아니라 힘도 더 강해진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겨우 맞춰 놓은 균형추가 다시 기울게 둘 수는 없다.
나는 재빨리 장로들에게 달려갔다.
그들은 한 덩이로 뭉쳐 마왕에게로 모여들고 있었다.
근처에 도착한 나는 장로의 무리를 향해 뛰어올랐다.
‘멸세폭.’
콰콰콰쾅-!
이지를 상실한 장로들은 피하지도 않았다.
놈들의 한가운데에 멸세폭이 제대로 적중했다.
먼지가 가라앉자 참혹한 광경이 드러났다. 열 명 가까이 되던 장로는 두어 명을 빼면 다 죽은 상태.
살아남은 놈들도 목숨이 간당간당했다.
나는 얼른 다가가 살아 있는 놈들이 목을 베었다.
단번에 엄청난 기운이 내게로 흡수되었다.
멸세폭의 후유증으로부터 몸이 회복되는 잠깐의 시간 동안 막 숨을 좀 돌리려는데, 무언가 내게 날아왔다.
나는 확인할 틈도 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점멸.’
콰쾅-!
마왕의 주먹이 내가 있던 자리를 초토화시켜 놓았다.
‘젠장!’
언뜻 보기에도 놈이 내게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았다.
마왕이 획 하고 고개를 돌리더니 정확히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다.
뒤쪽에서는 황가수호대와 레오비크가 마왕을 쫓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마왕은 그쪽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거 좀 방해했다고, 너무 나만 미워하는 것 아니야?’
점멸은 이미 사용한 상황.
게다가 달리는 속도는 거대한 마왕이 훨씬 빠르다.
“그래, 한번 해보자, 이 연탄 새끼야!”
어차피 결국엔 싸워야 한다.
그러니 나는 레오비크와 황가수호대가 합류할 때까지만 잠깐 어울려 주기로 했다.
그때 마왕이 내게 주먹을 날렸다.
나도 피하지 않고 주먹을 마주 내질렀다.
‘절대불변.’
콰앙-!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굉음이 터졌다.
절대불변의 법칙은 이번에도 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왕의 몸도 부서지지 않았다.
‘역시 이 정도로는 안 되는군.’
마왕의 반대편 주먹이 다시 날아왔다.
나는 이번에도 피하지 않고 검을 마주 휘둘렀다.
‘멸세폭.’
콰콰콰쾅-!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내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렸다.
큰 시간 차이 없이 사용한 두 번의 멸세폭으로 몸이 고통을 호소했다.
내 어깨 위로 하얀 김이 연신 솟아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왕도 피해를 입었다.
놈의 주먹 한쪽에서 검은 기운이 줄줄 새고 있었다.
크와아아-!
마왕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순간 놈의 눈에서 두 줄기 광선이 쏘아졌다.
‘저건 위험하다.’
맞으면 좀 다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옆으로 굴려 공격을 간신히 피해 낸 후, 뒤쪽을 살폈다.
‘빨리 좀 와라!’
황가수호대를 향해 속으로 외치는 순간, 레오비크가 막 주문을 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놈의 몸에 시커먼 영혼들이 들러붙더니 이내 갑옷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니 절로 혀가 차졌다.
‘저건 안 좋은 선택인데.’
원혼들은 물리 공격을 무효화하는 능력을 지녔다.
회귀 전 레오비크는 저렇게 원혼의 갑옷을 입고 육박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원혼의 갑옷은 마왕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마왕의 기운은 원혼 따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쾅-!
순간 강력한 충격이 내 몸을 후려쳤다.
정신이 아찔했다.
“크윽……!”
입에서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고,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젠장, 실수했군.’
잠깐 주위를 살피는 찰나 마왕에게 공격을 허용한 것이다.
놈의 양 손발은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
하지만 사각에서 날아온 꼬리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탓이었다.
나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온몸에서 허연 김이 솟아올랐다.
그나마 평소에 멸세폭의 고통에 익숙해져 있어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젠장’
후회할 틈도 없었다.
마왕의 주먹이 이미 내 눈앞에 날아들고 있었다.
나는 검을 내밀며 스킬을 사용했다.
‘절대불변.’
콰콰쾅!
마왕의 주먹이 막히는 순간.
‘점멸.’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스킬을 시전했다.
목표는 레오비크의 뒤쪽.
스팟-
아슬아슬하게 돌아온 점멸의 대기 시간 덕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휴우. 진짜 죽을 뻔했다.’
이번엔 진짜 위험했다.
나는 얼른 더 뒤쪽으로 물러났다. 그 순간, 5명의 황가수호대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마왕에게 달려들기 위함이었다.
또 한 번 목표를 놓친 마왕이 광분하여 가까이 있던 레오비크를 손으로 내리찍었다.
레오비크는 원혼이 둘러진 팔을 들어 올려 막았다.
하지만 마왕에게 원혼의 갑옷은 의미가 없었다.
콰지직-
레오비크이 팔이 대번에 부서졌다.
그리고 마왕이 레오비크를 집어 들었다.
우두둑-
마왕의 손아귀에서 레오비크의 몸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결국 레오비크의 눈동자가 빛을 잃었다.
그 순간, 마왕이 입을 벌려 레오비크를 삼켰다. 레오비크에게 담긴 죽음의 기운을 흡수하려는 것 같았다.
‘아!’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레오비크의 시체가 마왕의 목으로 막 넘어가는 순간.
나는 스킬을 사용했다.
‘시체 폭발!’
콰콰콰콰쾅-!
레오비크는 훌륭한 폭발물이었다.
마왕이 목 안에서 거대한 기운이 터졌고, 놈의 입에서 검은 기운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더니 놈의 무릎이 휘청했다.
쿵-
기어코 마왕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때 다섯 명의 황가수호대가 마왕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마왕이 손을 횡으로 휘둘렀다. 황가수호대를 한꺼번에 쓸어버리려는 것 같았다.
‘시간을 주면 회복할 수도 있다. 지금 끝낸다!’
나는 왼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만티코어를 잡을 때부터 쌓아 온 기운이 원혼의 거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 뒈져라!’
원혼의 거울을 발동시키자 내 왼손에서 거대한 기운이 터져 나갔다.
한 손으로 제어하지 못할 정도의 위력.
얼른 오른손에 든 검을 놓고 왼 손목을 감싸 쥐었다.
지름이 1미터는 되어 보이는 검푸른색 광선이 직선으로 쏘아졌다.
목표는 황가수호대의 등.
그리고 그 너머 위치한 마왕이었다.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황가수호대의 몸뚱이 따위는 광선의 위력을 전혀 감소시킬 수 없다고.
예상대로 광선에 닿은 황가수호대의 몸이 지워졌다.
그와 동시에, 옆에서 달리던 나머지 황가수호대는 마왕의 손에 쓸려 날아갔다.
그리고 마왕은 황가수호대를 뚫고 들어온 광선을 피하지 못했다.
쯔아아아앙-!
광선이 마왕의 가슴에 부딪히자, 하늘이 깨어지는 것 같은 소음이 발생했다.
마왕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노란 눈빛이 이쪽을 응시한다.
본체를 마주한 것 같은 살기가 내 몸을 찔러 왔다.
‘제발 죽어라!’
내밀어진 왼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제 광선은 멈추었다.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래도 안 죽으면 전력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다.
몇 년 같은 몇 초가 지났다.
드디어 노랗게 빛나던 마왕의 눈빛이 사그라져 가더니, 놈이 머리 꼭대기부터 재가 되어 흩날렸다.
그런데 막 입이 사라지기 직전, 놈에게서 말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도…… 너…….”
미처 말이 끝나기 전에 놈의 몸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시커먼 기운이 하늘로 치솟았다.
끝없이 올라가던 기운은 사방으로 나뉘어 날아갔다.
순간, 압도적인 스탯이 몸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크윽!”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평소라면 쾌감으로 느껴졌겠지만, 지금은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기운이 흡수될 때마다 뼈마디가 저릴 정도로 통증이 일었다.
나는 잠시 제자리에서 정신을 추슬렀다.
그 와중에도 마왕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돌았지만, 억지로 떨쳐 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내게는 지금 꼭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마왕이 있던 자리로 갔다.
그리고.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