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44화>
내가 긴장한 마음으로 차원문을 지켜보고 있을 때, 반대쪽에서도 큰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특정한 수법에 의해 증폭된 목소리였다.
“재앙은 막힐 것이다!”
목소리가 전장으로 퍼져 나갔다.
전장 뒤편 먼 곳, 황제가 황가수호대에 둘러싸인 채 서 있었다.
‘황제!’
회귀 후 처음으로 놈의 얼굴을 보았다.
빠드득-
놈을 보는 순간 절로 이가 갈렸다.
끓어오르는 살의를 억누르는 중에 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병사들이여, 플레이어들이여, 힘을 내어라! 신의 뜻이 우리와 함께한다.”
황제의 말이 끝나자 전장이 들끓어 올랐다.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인간이 병사들을 독려하기 위해서 직접 전장에 나왔다.
그러니 전의가 고무될 만도 했다.
우와아아-!
“이기자!”
“마왕을 물리치자!”
전장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황실의 비밀 전력인 황가수호대가 그대들과 함께할 것이다!”
마지막 말을 끝으로 황제는 뒤쪽으로 물러났다.
뒤에는 높은 단상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곳에 놈을 위한 황좌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황제는 그곳에 앉아 싸움을 지켜보려는 듯했다.
‘그래, 실컷 구경해 봐라. 네 마음대로는 안 될 거다.’
나는 빠르게 각오를 다지고, 일행이 있는 쪽으로 달렸다. 그리고 새로운 계획을 그들에게 말했다.
“휴고, 루스와 함께 넬도르에게 가라. 상황이 바뀌었다. 일단 너희 둘은 지금 자리를 피해라.”
“왜 그러십니까? 대장. 싸움은 이제 시작인데……. 설마, 대장 혼자 남으실 생각입니까?”
휴고가 놀라 되물어 왔다.
황가수호대는 개개인이 루스와 휴고보다 강하다. 그리고 마왕의 화신은 그보다도 훨씬 더 끔찍하다.
나는 그 양쪽이 싸우는 곳에 끼어들어 이득을 취하고 몸을 빼야 한다.
‘녀석들을 데려갔다가는, 누구 하나 죽어 나가도 이상할 게 없다.’
그때 루스가 외쳤다.
“주인! 저쪽에서 끔찍한 냄새가 나!”
루스가 가리킨 곳은 차원문.
마왕의 화신이 튀어나오고 있으니, 끔찍한 것이 당연했다.
더 이상 망설이고 있을 시간이 없다. 상황이 바뀌었으면, 그 가운데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다시 한번 마음을 정하고, 나는 휴고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일일이 설명할 틈이 없다. 둘 다 넬도르에게 가라.”
나는 마뜩잖아 하는 표정의 일행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넬도르에게 당장 노르트로 돌아가라고 전해라. 그리고 너희도 그들과 함께 가라!”
“대장!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곳에 대장만 남겨놓고 갈 수는 없습니다.”
“난 주인이랑 같이 있을 거야. 가기 싫어!”
둘이 격렬하게 반대해 왔다. 만난 후 이 정도의 반항은 처음이라, 살짝 놀랐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녀석들을 다 챙겨 가며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휴고, 내게 특별한 스킬이 있다는 것은 알지?”
“……예.”
녀석은 내 말이 예상되는지 대답이 느렸다.
“그 스킬로 봤을 때, 너희 둘을 지금 보내야 돼. 안 그러면 우리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거야. 너희가 가야 우리가 다 살 수 있다.”
“주인……. 난 주인이랑 있고 싶은데…….”
루스의 목소리가 시무룩했다.
나는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던 그리폰의 사체를 꺼내 다리를 하나 자른 후, 루스에게 주었다.
“가면서 먹어라. 나머지는 다시 만나면 주마.”
“……응. 빨리 와야 해!”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휴고에게 말했다.
“넬도르를 설득하는 것은 네게 맡기마. 내 스킬에 대해 이야기해도 좋다. 넬도르에게 전해라. 머지않아 두 번째 재앙이 북쪽을 덮칠 거라고.”
휴고의 눈이 커졌다. 예상치 못한 내용에 당황한 듯했다.
그에 나는 녀석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먼저 가 있어라. 다 괜찮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약속하마.”
그제야 녀석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예, 대장. 빨리 오셔야 됩니다.”
나는 망설이는 녀석들을 쫓아 보내고, 전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차원문에서 뿜어진 사악한 기운이 어느새 형체를 이루었다.
시커먼 덩어리가 된 그것은 잠시 허공에 머물렀다.
그러더니 덩어리에서 노란 눈동자가 생겨났다.
그 눈을 마주친 순간, 무릎이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마왕의 기운!’
저번에 후작 저택에서 본 것과 같은 종류의 기운이었다.
노란 눈동자가 사방을 살폈다.
그것은 차원문 근처에 서 있던 자를 응시하더니, 이내 그곳으로 움직였다.
‘암흑 교주. 역시 예상대로 진행되는군.’
차원문 앞에 서 있던 자는 암흑 교단의 우두머리인 암흑 교주였다.
마왕의 기운은 그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뒤이어 암흑 교주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우두둑-
암흑 교주의 몸이 부서지고 녹아내리더니, 다른 존재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이내 그는 키 3미터 남짓, 근육질 인간 남성의 체형을 가진 시커먼 괴물이 되었다.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솟아 있고, 엉덩이에는 꼬리가 달려 있다.
놈의 온몸에서 시커먼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흘러나왔다.
암흑 장로가 사용하는, 하지만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진한 기운.
‘저게 화신에 불과하니……. 본신이 나오면 진짜 세상이 망하는 거지.’
마왕이 샛노란 눈으로 사방을 훑었다. 오연한 눈빛에 전장이 얼어붙었다.
그때, 마왕을 향해 달려가는 자들이 있었다.
‘황가수호대!’
황제의 주위에 있던 자들 중 10명의 황가수호대가 마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도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계획이 변경된 탓에 변수가 많았다.
하지만 내가 해야 될 일은 정해져 있다.
- 랜덤 영웅 소환 (32010/8000 코인)
┗ 영웅 진화 (32010/10000 코인)
: 진화 가능 영웅 [없음]
제국에 대한 영웅들의 태도 때문에 수도에서는 놈들을 쉽게 뽑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사용해야 할 때가 되었다.
‘랜덤 영웅 소환.’
마법진이 빛나고 잠시 후, 30대의 음침한 인상의 남자가 나타났다.
[에비바 레오비크(S. 네크로맨서)]
- 충성도 : 50(충성도가 낮으면 배신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뵙게 되는군요. 영광입니다, 마스터.”
“그래. 마침 너에게 잘 어울리는 곳에서 소환되었구나.”
이곳은 전장. 수많은 시체가 쌓여 있는 곳.
네그로맨서인 레오비크의 힘이 극대화될 수 있다.
“음……. 저것이 적입니까? 굉장한 기운이군요.”
레오비크가 마왕의 화신을 보고 곧장 달려가려 했다.
“아직 할 일이 남았다. 기다려라.”
나는 레오비크를 멈춰 세운 후 다시 스킬을 사용했다.
‘영웅 진화.’
[소환된 영웅을 다음 단계로 진화시킵니다. 대상을 정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 : 에비바 레오비크]
“에비바 레오비크를 진화시킨다.”
그러자 레오비크의 눈이 커졌다. 소환 즉시 진화하게 될 줄은 몰랐던 모양.
순간 놈의 발치에서 빛이 솟아올랐다.
번쩍!
솟아오른 빛이 소용돌이치며 레오비크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아……!”
레오비크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곧 레오비크가 진화를 마쳤다.
진화를 마친 놈의 모습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영웅이 진화할 때, 외형이 크게 변하거나 새로운 무구를 얻는 경우도 있지만, 놈은 그렇지 않았다.
대신에 레오비크의 경우 사자에 대한 지배력이 압도적으로 강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코인이 애매하게 모여 고민을 했었다.
한 명을 뽑아 진화를 택할지, 두 명의 영웅을 뽑을지를 말이다.
그리고 나는 결과적으로 진화를 선택했다.
‘지금은 상대가 너무 강하니, 양보다 질이 낫다.’
그사이 새로운 상태에 적응을 끝낸 레오비크가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마스터.”
“그래, 힘든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기대가 크니, 잘 해 보자.”
“예,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방금 황제를 봐서 그런지, 의외로 놈의 얼굴을 보고도 나는 평정심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머지않아 죽을 놈. 신경 쓸 필요 없다.’
놈에게 분노를 불태우기보다는 할 일을 해야 한다.
나는 레오비크를 보며 팔찌의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전이가 시전됩니다. 대상을 정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 : 에비바 레오비크]
‘에비바 레오비크.’
[스킬 ‘시체 폭발’이 전이됩니다.]
‘음, 하필이면 시체 폭발이라니.’
[시체 폭발]
: 소환물의 사체를 폭발시켜 주변에 강력한 피해를 입힌다. 사체가 가진 에너지가 클수록 위력이 강해진다.
이것은 많은 시체를 부리는 네크로맨서에게나 유용한 스킬.
실제로 레오비크가 사용하는 시체 폭발은 굉장히 위력적이다.
하지만.
‘쯧, 시체 지배 스킬이 없으니…….’
내 입장에서는 계륵이나 마찬가지.
흡족한 결과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레오비크가 나온 것은 다행이군.’
네크로맨서인 레오비크가 뽑힌 것은 운이 좋았다.
놈을 부려 전장에 쌓인 시체를 활용하면, 전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쾅-!콰쾅-!
멀리서 폭음이 들려왔다.
마왕의 강력한 기운 탓에 싸우던 마스터와 어보미네이션들이 저절로 밀려나며, 차원문 근처가 공백이 되었다.
그곳에 생긴 공간에서 열 명의 황가수호대와 마왕이 맞붙었다.
“저곳에 합류하는 건가요?”
레오비크가 마왕 쪽을 가리키며 내게 물어 왔다.
나는 잠시 전황을 살피다 고개를 저었다.
“저곳에 당장 끼어들 필요는 없다. 우린 저기로 간다.”
그러면서 레오비크에게 다른 쪽을 손짓했다.
그곳에는 황가수호대 두 명과 만티코어가 싸우고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레오비크에게 내가 말했다.
“저들과 힘을 합쳐 만티코어를 처치하고, 그다음에 마왕을 친다. 만티코어를 이용하면 너의 힘이 더 강해질 것이다.”
“아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마스터.”
놈이 납득한 듯 공손하게 대답해 왔다.
나는 레오비크와 함께 빠르게 목표 지점으로 이동했다.
쾅-!
전장에 도착했을 때, 만티코어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놈은 머리에 큰 공격을 허용했는지, 두개골이 조금 함몰되어 있었다.
반면 두 명의 황가수호대는 가벼운 상처만 입은 상태.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결국 황가수호대가 이길 상황이었다.
‘만티코어를 놈들에게 뺏길 수야 없지.’
마지막은 이쪽이 장식해야 한다.
“가자!”
나는 레오비크를 이끌고 만티코어에게 달려들었다.
예상대로 황가수호대는 이를 저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은근히 합공할 진형을 갖추는 모습.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놈들의 행동을 예상할 수 있으니, 이용하기 쉽군.’
만티코어에 다다를 즈음, 레오비크의 손에서 적갈색 기운이 쏘아졌다.
조용히 나아간 기운은 만티코어의 몸에 명중했다.
크와아앙-
한 차례 비명이 들린 후 만티코어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그에 나는 그 기운이 어떤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능력치를 떨어트리는 저주 마법이군.’
그 후에도 레오비크는 주문을 웅얼거렸다. 또 무언가 솜씨를 부리려는 모양.
나는 그 순간 만티코어의 옆구리로 달려들었다.
쎄에엑-
그때 놈의 꼬리 가시가 나를 노리고 날아왔다.
가시 끝에는 녹색의 맹독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왼손을 내밀고 스킬을 발동했다.
‘절대불변.’
콰직-
원혼의 거울에 부딪힌 꼬리 가시가 부러져 나갔다.
순간 나는 놈의 옆구리에 검을 휘둘렀다.
강기에 휩싸인 검이 놈에게 틀어박혔다.
쾅-!
통증을 느낀 만티코어의 고개가 내 쪽으로 휙 돌았다.
그 직후 만티코어의 앞발이 내게 휘둘러져 왔다.
‘점멸.’
나는 재빨리 놈의 머리 위로 이동해, 놈의 머리에 난 상처를 향해 검을 내리꽂았다.
‘멸세폭.’
콰콰콰콰쾅-!
함몰되어 있던 만티코어의 두개골이 쩍하고 쪼개졌다.
그리고 그 속에 들었던 놈의 뇌가 곤죽이 되었다.
쿵-!
잠시 후, 만티코어의 거체가 옆으로 쓰러졌다.
만티코어가 죽자 강력한 기운이 내게 흡수되었다.
기분 좋은 느낌을 즐기는데, 레오비크가 말을 걸어왔다.
“오! 마스터, 대단하세요. 제가 뭘 해 보기도 전에 끝장내 버리셨군요!”
“이미 상처를 많이 입은 놈이었다. 그 덕에 쉬웠어.”
레오비크와 대화 중에 거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잘, 했……다. 계속, 그렇……게 하도……록.”
어느새 나와 레오비크의 옆으로 황가수호대가 다가와 있었다.
놈의 얼굴에 씌워진 천조각 사이로 무감정한 눈동자가 보였다.
말을 마친 놈들이 곧바로 마왕 쪽으로 달려갔다.
‘……꺼림칙한 것들.’
마음이 속에서 저절로 거부감이 일었다.
그때 레오비크가 만티코어의 사체를 가리키며 신난 음성으로 물어 왔다.
“마스터, 이놈은 제가 가져도 될까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놈이 주문을 웅얼거렸다.
그러자 쪼개진 만티코어의 머리가 스르륵 달라붙었다.
잠시 후 만티코어의 몸이 잿빛으로 물들더니 어느새 눈을 떴다.
크르르르-
“오호호, 옳지. 일어났구나, 우리 똘똘이.”
레오비크가 만티코어를 보며 음침한 목소리로 떠들어 대었다.
놈은 시체를 좋아한다.
회귀 전에도 저랬다.
심지어 좀 특이한 개체에는 늘 이름을 붙여 애완동물처럼 다루었다. 그러다가도 전투 때마다 거침없이 시체 폭발로 터트려 버렸다.
‘쯧……. 미친놈.’
꺼림칙하기는 이놈도 만만찮았다.
콰콰쾅-!
내가 레오비크를 찜찜하게 쳐다보는 와중에 폭음이 들려왔다.
우우우웅-
그리고 딛고 선 땅이 부르르 떨려 왔다.
고개를 돌리자 놀라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