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42화>
어느 순간,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후작이 이쪽을 돌아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놈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후작은 모종의 수법으로 암흑 교단 특유의 기운을 감추고 있었다.
루스조차 감지 못할 정도이니 고르곤도 느낄 수 없을 터.
이대로 후작에게 들이받으면, 분노한 고르곤이 할 일은 뻔하다.
후작이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려고 병사들을 불러들이려 했다.
하지만 이쪽이 훨씬 빨랐다.
등 뒤에서 고르곤의 콧김이 느껴질 때쯤, 나는 후작의 바로 앞에 도착해 있었다.
“이 미친!”
후작이 뭐라 말하려는 순간.
‘점멸.’
나는 몸을 이동시켰다.
‘인식 교란.’
그 후 즉시 인식 교란을 걸고 병사들의 틈으로 파고들었다.
쾅-!
굉음이 터졌다.
돌아보니 분노한 고르곤과 후작이 충돌하고 있었다.
내가 의도한 대로 상황이 잘 만들어졌다.
‘자 이제 어떻게 하나 한번 볼까?’
신호를 보내 일행을 내 옆으로 불러들였다.
그러고 나서 후작을 관찰했다.
놈이 과연 힘을 숨긴 채 고르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쾅- 쾅-
연이어 폭음이 터졌다.
후작이 검을 뽑아 들고 고르곤의 뿔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뒤로 밀리고 있는 모양새.
연신 이빨을 가는 것을 보니 화가 많이 나 보였다.
“대장, 놈이 정체를 드러내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휴고가 상황을 지켜보다가 물어 왔다.
그의 말대로 계획을 미리 정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가만 보니, 내가 둘 다 잔뜩 도발해 놓았군.’
이대로 놔두면 왠지 둘 다 내게 달려들 것 같았다.
“너희 둘이 고르곤을 유인해서 끌고 가라. 잡을 수 있으면 잡고, 안 되면 시간만 끌어.”
그리고 잠시 전황을 살피다 말을 이었다.
“둘 다 너무 힘 빼지 말고. 이제 시작이라는 거 명심해.”
“예. 걱정 마십시오, 대장.”
“응, 주인. 걱정 마!”
내가 일행에게 당부하는 순간, 전황이 뒤바뀌었다.
계속 밀리던 후작의 몸에서 결국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후작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누가 보기에도 불길했다.
그 모습을 본 주위의 병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게 뭐지? 왜 후작님의 몸에서 저런 기운이…….”
“마수가 저절로 다른 곳으로 간다! 서, 설마 암흑 교단?”
슬슬 내가 원하던 그림이 완성되었다.
이제 명분은 만들어졌고, 실리만 챙기면 되는 상황.
“이제 됐다. 가자!”
“응, 다녀올게!”
내가 신호를 하자 루스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후작에게서 스스로 멀어지고 있는 고르곤에게로 달려갔다.
휴고도 내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그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후작의 뒤로 접근했다.
후작은 이를 갈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예상외의 상황에 당황했는지 얼굴이 시뻘겠다.
내가 막 놈의 등 뒤로 다가갈 즈음 놈이 휙 뒤를 돌아봤다.
‘쯧, 들켰나?’
기습을 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딱히 위기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이미 들킨 것, 나는 빠르게 달려들었다.
쾅-
검과 검이 맞부딪혔다.
팽팽한 힘 싸움.
후작의 얼굴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놈이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죽여 버리겠다!”
분노의 감정이 검 끝으로 전해져 왔다.
‘화가 많이 났군. 좀 더 흔들어 볼까?’
분노에 사로잡힌 후작은 조금만 더 도발하면 자멸할 것 같았다.
“너흰 실패해. 마왕 따위는 이 세상에 나오지도 못할 거야.”
쾅-!
순간, 놈의 칼에서 검은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졌다.
그 힘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섰다.
후작이 물러나는 내 뒤를 급하게 쫓아왔다.
나는 달려드는 놈의 검을 뒤로 움직여 피했다.
그러면서 말을 계속 이어 갔다.
“너희가 만든 마법진은 내가 벌써 파괴해 버렸어. 수도 내부의 몬스터도 다 처치해 버렸고. 차원문에서 나올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마왕의 화신 정도야.”
“네 이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내 말에는 암흑 교단의 계획이 모조리 담겨 있었다.
후작이 내 말을 듣고 더욱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쾅-쾅-!
후작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주위가 초토화되었다.
놈은 분노와 당황이 뒤섞여 스스로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슬슬 약을 팔기 시작했다.
“화신에는 약점이 있어. 그곳을 공략하면 금방 죽어 버리지. 화신이 금방 죽어 버리면 과연 마왕의 본신이 나올 수 있을까?”
사실 화신에게 약점 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거짓말이 먹혀들었는지, 후작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크아아악! 이놈, 죽여 버리겠다!”
놈이 광분하며 칼을 휘둘렀다.
쾅- 쾅-!
놈이 쓸데없이 힘을 빼는 동안, 나는 피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헉, 허억-.”
어느 순간, 후작의 숨이 거칠어졌다.
놈의 기운이 옅어진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슬슬 시작해 볼까.’
이제 힘은 충분히 뺐으니 목을 딸 차례.
나는 다가가며 검을 휘둘렀다. 강기공이 온몸을 휘감고 칼로 전해졌다.
쾅-!
칼이 부딪치고, 놈이 뒷걸음질 쳤다.
“크윽.”
후작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이제야 스스로 힘이 빠진 것을 느낀 모양.
나는 다가가며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쾅-!
놈이 다시 주르륵 뒤로 밀렸다.
나는 이번엔 지켜만 보지 않고 바로 따라붙었다.
밀리고 있는 것을 느낀 놈은 내게 검을 마주쳐 오지 못했다.
후작이 몸을 뒤로 피하는 순간, 왼손에 강기공을 길게 뽑아 휘둘렀다.
후작은 강기를 피하지 못하고 칼을 들어 막았다.
쾅!
강기와 칼이 충돌한 순간, 다시 한번 놈의 몸이 뒤로 밀렸다.
“빠드득!”
놈이 이를 갈아붙였다.
무언가 결심한 표정.
순간 놈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나더니, 놈의 얼굴이 순식간에 노인으로 변했다.
키도 조금 더 작아졌다.
아무래도 저것이 놈의 본 모습인 것 같았다.
그때, 놈의 입이 열렸다.
“$^%&@$^*#…….”
알 수 없는 주문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주문이 계속될수록 놈의 얼굴에서 주름이 사라져 갔다. 그리고 뼈마디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더니 몸이 커지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빠르게 달려들었다.
‘주문이 끝나게 두어서는 안 된다.’
S급에 이른 스탯이 폭발하듯 몸을 밀어내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모자란다. 놈의 변화가 완성되는 것이 먼저다.
그것을 아는지 놈도 비릿하게 웃었다.
그 순간.
‘점멸.’
나는 놈의 뒤로 이동했다.
깜짝 놀란 놈이 머리를 돌리는 찰나, 놈의 정수리에 검을 내리꽂았다.
‘멸세폭!’
콰콰콰콰쾅-!
먼지가 가라앉은 후, 놈의 모습이 드러났다.
커지던 놈의 몸이 도로 작아져 땅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리고 놈의 머리는 곤죽이 되어 부서져 있었다.
그때 놈에게서 스탯이 흡수되기 시작했다.
강렬한 포만감이 느껴졌다.
‘후우- 좋군. 계획대로 잘돼서 다행이야.’
아마도 놈은 신체를 변형시키는 것이 특기인 것 같았다. 그 능력을 이용해 후작의 행세를 해 온 것이고.
주문이 완성되었다면, 놈이 또 어떤 능력을 발휘할지 알 수 없었다.
변신이 끝나기 전에 놈을 끝장낸 것이 다행이었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계획이 잘 맞아떨어져 싸움이 수월했다.
놈이 당황한 상황을 이용하지 못했다면 싸움이 길어졌을 것이다.
‘가진 걸 다 쏟아부을 수는 없으니…….’
후작은 최종 목표가 아니다.
힘을 아껴 가며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피해 없이 장로를 잡았다. 최선의 결과였다.
나는 잠시 숨을 돌린 후 일행이 있는 곳을 살폈다.
루스가 고르곤의 앞에서 시선을 끌고 있었다.
휴고는 틈틈이 망치를 휘둘러 놈을 공격하는 중.
고르곤의 몸 곳곳에 상처가 나 있었다.
치명상은 없었지만, 피해량이 누적되고 있었다.
일행은 미리 당부한 대로, 전력을 아껴 가며 차분하게 싸우고 있었다.
‘급히 합류할 필요는 없겠군.’
나는 잠시 상황을 지켜보며 몸을 회복시키기로 했다.
포션을 꺼내 막 마시려는 찰나,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 미친놈! 제국의 귀족을 살해하다니!”
돌아보니 웬 남자가 서 있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얼굴이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더라?’
그러다 얼굴이 기억났다. 연회에서 후작의 뒤에 서 있던 놈들 중 하나였다.
“제국의 귀족이라…….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딱히 존대해 줄 가치를 못 느껴 말을 낮췄다.
그러자 놈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내게 모욕당했다고 생각하는 모양.
“네 이놈, 감히 후작님을 살해하고 이제 나까지 모욕하는 것이냐? 이 건방진 놈!”
어이가 없었다. 분명히 눈이 있으면 봤을 텐데.
“그렇게 잘 보고 있었으면, 후작의 얼굴이 변하는 것도 보았을 텐데? 놈이 검은 기운을 사용하는 것도 보았을 거고?”
“무, 무슨 소리냐? 네놈이 마수를 후작님께 유인하는 바람에 그분이 분노하신 것 아니냐!”
세상에는 말도 논리도 통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
이런 놈과 실랑이하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이놈도 처리해야 되겠군.’
놈을 막 베어 버리려는 찰나,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말을 가려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에스호 자작.”
돌아보니 앨번이 다가와 있었다.
내게 시비를 걸던 놈의 이름이 에스호인 모양이었다.
“감히 기사 나부랭이가!”
에스호가 막 호통을 치려던 찰나, 앨번이 죽은 후작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자가 내뿜은 불길한 기운은 여기 있는 병사들이 모두 보았습니다. 이자는 암흑 교단과 관계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더듬거리는 에스호에게 앨번이 따졌다.
“오히려 당신께 묻고 싶군요. 암흑 교단의 끄나풀을 처치한 정해수 님을 핍박한 이유가 뭐지요? 그리고 후작과 당신은 친밀한 관계였지요? 당신이야말로 결백함을 증명해야 할 상황 아닙니까?”
앨번의 목소리에 주변의 이목이 쏠렸다.
주위에 있던 기사와 병사들이 웅성거렸다.
“맞다! 후작이 검은 기운을 뿜는 것을 내 눈으로 봤어.”
“저기 마수가 후작에게서 스스로 떠나갔다. 암흑 교단이 아니면 그럴 수 없어!”
주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에스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놈이 암흑 교단인 것 같지는 않은데…….’
에스호는 암흑 교단의 첩자라기엔 너무 눈치도 없고 멍청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놈은 상황이 불리해지자 슬그머니 지휘부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몇몇 기사들이 놈을 따라가며 소리쳤다.
“잡아라, 암흑 교단의 첩자다!”
‘진짜 첩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괜한 짓을 했으니 벌을 받아야지.’
지켜보는 눈이 많은 상황. 내 손으로 베어 버리는 것보다 차라리 더 나은 결과였다.
내가 할 일은 더 이상 없을 것 같아 일행 쪽으로 합류하려는데, 앨번이 말을 걸어왔다.
“정해수 님, 질이 좋지 못한 플레이어들을 만난 적이 있어 당신을 오해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는 정중한 자세로 고개까지 숙여 왔다.
그 바람에 오히려 멋쩍어졌다.
“음, 괜찮습니다. 플레이어 중에 이상한 자들이 있는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마음에 담아 두지 마세요.”
“마수 상대로 저와 병사들의 목숨을 구해 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진짜 되었습니다. 이제 고개 드세요. 저도 얼른 싸우러 가 봐야 됩니다.”
그제야 앨번의 고개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고개 숙인 앨번이 빠르게 떠나갔다.
병사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으로 보아, 후작 때문에 동요한 병사들을 다잡으려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괜찮은 양반이었구만.’
콰르르르-
그때 굉음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고르곤의 입에서 시퍼런 불길이 뿜어지고 있었다.
그에 맞선 루스의 손에서도 붉은색 불길이 쏘아지고 있었다.
두 기운이 가운데에서 부딪히며 끊임없이 폭발했다.
휴고는 그 기세에 차마 다가가지 못하는 중.
나는 얼른 전장으로 다가갔다. 몸은 이미 다 회복되어 만전의 상태였기에 달리는 기세 그대로 점프했다.
그리고 몸이 최대한 높은 지점에 이르렀을 때 스킬을 사용했다.
‘점멸.’
목표는 고르곤이 내려다보이는 하늘 위.
점멸의 사거리가 닿는 가장 높은 곳.
잠시 후, 이동된 몸이 중력에 의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마력을 모조리 끌어 올려 검에 불어넣었다.
검 끝에 새파란 기운이 응어리지기 시작했다. 점점 가속된 몸이 고르곤의 등 위로 떨어졌다.
그때까지도 놈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놈의 등에 도달하는 순간.
나는 머리 위로 치켜올린 검을 전력으로 내리찍었다.
콰콰쾅-!
고르곤의 등에 검이 명중했다.
칼끝에서 우드득 하는 소리가 전해져 왔다.
크에에에-
고통을 참지 못하고 고르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콰콰쾅-!
순간 달려든 휴고와 루스의 공격이 연이어 고르곤의 몸에 적중했다.
결국 고르곤이 쓰러졌다.
등허리가 부서진 상황에서 연이어 가해진 공격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주인, 완전 멋졌어! 갑자기 하늘에서 뚝!”
고르곤만이 아니라 루스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깜짝 놀랐습니다, 대장. 하하!”
휴고도 씩 웃어 왔다.
“그래, 둘 다 수고했다.”
까득-
소리가 나 돌아보니 루스가 그새 고르곤의 뿔을 물어뜯고 있었다.
“퉷, 맛없어!”
녀석이 시무룩해했다. 고르곤이 입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아, 그게 있었군.’
나는 인벤토리에 담아 두었던 사이클롭스의 다리를 꺼내 주었다.
“루스, 맛없으면 그건 놔두고 이거나 먹어라.”
“오오, 고기! 큰 다리다! 아싸!”
녀석이 호들갑을 떨며 고기에 달려들었다.
‘그리폰은 아껴 뒀다가 다음에 시무룩할 때 줘야 되겠군.’
나는 신나서 먹는 녀석을 두고 전황을 살폈다.
우우웅- 우웅-
막 주위를 둘러보려는데 차원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시커먼 안개 같은 것이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