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38화 (38/149)

 # 38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38화>

그리고 조용히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했다.

건물로 들어온 발소리가 지하로 향했다.

‘역시 지하부터 확인해야겠지.’

가장 중요한 것이 지하에 있으니 당연한 일.

그사이 나는 얼른 2층 집무실로 가 창문을 열었다.

별채는 후작 저택에서도 뒤쪽 가장 구석진 곳인 만큼 창밖으로 담장이 보였다.

‘닿을지 모르겠군.’

찰나의 고민 끝에 다른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스킬을 사용했다.

‘점멸.’

순간 몸이 휙 하고 담장 밖으로 이동되었다.

저택 뒤쪽은 나지막한 언덕.

나는 조용히 언덕을 올라 수풀에 몸을 숨겼다.

잠시 후, 2층 창가로 내가 익히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티보다인.’

놈이 창밖으로 소리치며 저주를 내뱉었다.

“마신의 저주를 받아라! 결코 제명에 죽지 못할 것이다!”

몇 번이고 주위를 살피던 놈은 흔적을 찾지 못하자 창가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입구에서 다시 모습을 나타낸 티보다인은, 서둘러 본채로 달려갔다.

콰쾅-

티보다인이 들어간 후 본채 쪽의 폭음이 한결 강해졌다.

분노가 킨조른에게 향한 것 같았다.

얼마 후 소란이 그치고 본채에서 두 명이 걸어 나왔다.

후작과 티보다인.

둘의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양손은 피로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예상대로…… 죽었군.’

결국 킨조른은 직접 죽이지 못했다.

예상은 했지만, 분한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더 큰 것을 생각하며 겨우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얻은 게 아주 많다.”

킨조른에게 빼앗은 점멸은 벌써부터 제값을 하기 시작했다.

성물을 두 개나 파괴하고 철판도 부수었다.

사제들을 죽인 것은 보너스.

그 덕에 스탯을 많이 흡수했다.

A급이던 근력, 체력, 민첩이 S급 직전이 되었고, 원래 S급이었던 마력은 S급에 오르고도 크게 증가했다.

재앙이 끝나면 최고 수치를 달성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지…….’

상태창에 표시되는 최고 수치는 S급 100까지가 끝이다.

하지만 표시되는 수치를 넘어서도 능력이 증가한다.

모든 스탯이 S급 100이 되더라도, 적을 처치하면 스탯이 흡수되고 능력이 오른다.

다만 표시가 되지 않을 뿐.

‘정확히 어디까지 오르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더 오른다.’

이것은 회귀 전 직접 겪어 본 것이다.

S급 끝까지 스탯을 올린 자가 많지 않다. 때문에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하지만 몇몇 최상위 플레이어들은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도대체 왜 이따위로 만든 거지?”

의아함 때문인지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애초에 더 오를 거라면, 굳이 S급이 최고일 이유가 없다.

SS급을 만들어도 되고, 1000이나 10000을 한계로 해도 된다.

그럼에도 더 이상 표시되지 않게 해 놓았다.

‘대충 만들다 치운 것 같단 말이지. 상태창만이 아니야…….’

던전에 진입할 때 들리는 메시지도 마찬가지.

던전에 들어왔다. 위험하다.

이 정도가 끝이다.

아이템의 등급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지금도 손목에 차고 있는 해적왕의 우정.

‘이게 고작 S급이라고?’

지금의 힘을 갖출 수 있게 해 준 일등공신이자 사기 아이템이다.

S를 몇 개 더 붙여 줘도 이것의 가치를 제대로 표시할 수 없을 것 같다.

플레이어들을 이 세계로 끌어들인 존재.

그자가 신전에서 모시는 신인지, 혹은 다른 누구인지 모르지만, 분명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분명 세계를 구해 주길 바라고 불렀을 텐데…….’

어째서 그 대상이 사용하는 시스템을 이렇게 대충 만든 것일까.

상념이 끊이질 않는다.

‘영웅들과는 무슨 관계일까?’

랜덤 영웅 소환은 분명 시스템과 관계있다. 시스템이 제공한 스킬이니까.

그러나 정상적이지 않은 스킬이라는 것 또한 분명하다.

S급만 나오는 것도 이상하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다 있는 두 번째 스킬이 나만 없다는 것도 이상하다.

‘후우- 그만 두자.’

뻗어 나가려는 생각을 억지로 붙들었다.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 몸을 회복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움직여 백작의 저택으로 이동했다.

걷는 중에 마왕의 의념과 마주친 것이 떠올라 몸이 부르르 떨렸다.

‘끔찍한 놈. 갑자기 왜 튀어나왔을까?’

회귀 전에는 그런 식으로 나타난 적이 없었다.

재앙의 시기에 먼저 나타나는 것은 화신체.

나는 그때 수도 인근에 뚫린 차원문으로 튀어나온 놈과 상대했었다.

강하고 끔찍했지만, 좀 전에 만났던 놈처럼 보는 것만으로 몸이 굳지는 않았다.

‘그게 직접 튀어나오지 못하는 것이 다행이다.’

암흑 교단이 열 수 있는 차원문의 규모는 한정적이다. 그래서 격이 높은 것들은 나오기 힘들다.

회귀 전에도 차원문이 열린 초반에는 잡다한 마수들만 튀어나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차원문이 커지고, 갈수록 강한 것들이 나왔다.

마지막에 나온 것이 마왕의 화신.

‘가만, 아까 그 철판이 차원문을 여는 열쇠라면, 왜 처음부터 크게 열지 않은 거지?’

후작과 티보다인의 대화를 보면, 철판이 마지막 준비물이었다.

무언가 다른 것이 더 필요한가?

‘이를테면…… 제물이라던가?’

머릿속에서 퍼즐이 조금씩 맞춰져 갔다.

암흑 교단은 차원문을 열기 전 수도 인근에 집결한다.

그 후 보란 듯이 제국을 도발하고, 제국의 병력과 전면전을 벌인다.

회귀 전 나와 영웅들이 활약했던 것도 그곳이었다.

그리고 놈들은 전면전에 맞추어 수도에 테러를 감행한다.

수도 곳곳에 몬스터들이 나타나 무작위로 학살을 자행하는데, 그것은 암흑 교단의 술책이었다.

‘피나 영혼 같은 게 필요한 건가?’

무엇이든 생명이 죽으면 나오는 것을 이용해 차원문을 여는 것이 아닐까?

굳이 전면전을 벌인 것도, 많은 죽음이 필요했기 때문이고.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 눈앞에 때마침 백작 저택이 보였다.

곧바로 정문으로 들어가려다 멈칫한 나는 새 스킬을 다시 한번 써 보기로 했다.

‘점멸.’

순간적으로 몸이 저택 현관으로 이동되어 있었다.

갑자기 주위가 변하자 균형 잡기가 쉽지 않았다.

‘역시 연습이 좀 필요하겠군.’

아무래도 틈틈이 사용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아까는 경황이 없어 스킬의 성능을 제대로 확인 못 했다.

지금 보니 이동 가능한 거리는 10미터 남짓.

마력에 영향을 받는다니, 차후 더 늘어날 것이다.

‘한 30초 정도 더 있어야 다시 쓸 수 있군.’

재사용 시간도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이 또한 마력이 증가하면 줄어들 터였다.

“자네, 언제 온 건가?”

현관문을 열고 로비로 들어가자 마침 백작이 서 있었다.

기별도 없이 들어온 것에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어쩌다 보니 정문을 통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낀 백작이 얼른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집무실로 가 단둘이 마주 앉았다.

“그래, 갔던 일은 어찌 되었는가?”

백작의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백작에게 어디까지 이야기하면 될까?

별채 2층에서 보았던 지도에 표시된 위치. 그것은 아마도 철판의 위치일 것이다.

그것을 지금 백작에게 말하면, 재앙 자체가 일어나지 않을 확률도 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제국의 전력을 깎고 황제의 의도를 파악하려면 재앙은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차원문을 방치할 수도 없다.

‘화신체를 막지 못하면, 다음은 본체가 나온다.’

그렇게 되면 세상이 멸망한다. 아무것도 밝히지 못한 채 그냥 죽을 수는 없다.

백작에게 설명할 내용을 정리한 나는 말문을 열었다.

“후작은 암흑 교단의 사람이었습니다.”

백작의 표정이 굳었다.

“세뇌당한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말로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더군요. 암흑 교단의 장로 같았습니다.”

“장로라고? 그럴 수가……. 그럼 진짜 후작은 어디 있나?”

“…….”

후작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뻔한 일.

내 대답이 없자 백작이 허탈한 듯 말을 내뱉었다.

“그렇군. 그럼 이미 2년 전부터 다른 놈이었군. 그놈들이 왜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슬슬 백작에게 정보를 전해 줄 차례.

물론 이쪽이 필요한 만큼만이다.

“놈들이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수도 외곽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켜 공격할 예정인 것 같았습니다.”

백작의 놀란 표정을 바라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그와 동시에 수도 내부에도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할 것입니다. 민간인을 학살할 계획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백작은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한참을 고민하던 백작이 입을 열었다.

“혹시 증거는 있나?”

“장로가 두 명이나 있었고, 병력도 많았습니다. 증거를 가져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대신 놈들이 만들고 있던 것을 부숴 놓았습니다.”

“만들던 것? 그게 뭔가?”

“마왕을 소환하는 데 필요한 물건으로 보이더군요. 마지막 하나만 만들면 된다고 했으니, 머지않아 다시 만들어질 겁니다.”

“자네 덕에 그나마 시간을 조금 벌었군. 잘해 주었네. 지금 가도 증거를 찾기는 어렵겠지?”

“후작의 지위를 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증거부터 치워 뒀겠지요.”

무언가 꿍꿍이가 있어 후작의 자리를 차지했을 터.

지위를 잃지 않으려면 증거랄 만한 것은 이미 치웠을 것이다.

‘철판과 성물을 부수었으니, 딱히 중요한 것도 남지 않았겠지만.’

“당장 내 병력으로 후작을 칠 수는 없네.”

재앙 때문에 병력을 수도 인근으로 끌고 올 수는 있었다.

하지만 증거도 없이 병력을 수도 내부로 들여 후작을 공격할 수는 없었다.

백작의 말이 이어졌다.

“내일 회의가 있네. 대신들은 물론 황제 폐하도 참석하네. 그곳에 후작도 올 것이야. 내가 동태를 살펴보겠네.”

“알겠습니다. 대처는 그 후로 하지요. 그리고 사람을 시켜 후작의 저택을 감시하도록 하십시오. 증거는 빼돌렸더라도, 뭔가 단서를 찾을 수도 있으니까요.”

“알겠네. 사람을 보내지. 자네는 어쩔 생각인가?”

“저는 따로 할 일이 있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에 다시 말씀을 나누시지요.”

“그래, 몸조심하게.”

백작이 너무 설치는 것도 좋지 않다.

적당히 관망하다가, 때가 되었을 때 이쪽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는 것이 최선이다.

백작과 말을 마치고 같이 집무실을 나왔다.

“주인!”

문 앞에 루스가 있었다.

“주인 냄새가 나서 일어났어!”

“그래, 밥이나 먹으러 가자.”

연회에 이어 후작 저택에서 일을 벌이느라 벌써 아침이 밝아 있었다.

방방 뛰는 루스를 데리고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는 이미 휴고가 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넬도르가 앉아 있었다.

“대장, 돌아오셨습니까?”

“여어, 갔던 일은 잘되었나?”

둘이 연달아 인사해 왔다.

“그럭저럭. 근데 넬도르 자네는 왜 여기 있나?”

넬도르가 껄껄 웃으며 대답해 왔다.

“백작님과 성격이 제법 잘 맞더라는 말이지. 어제 연회 끝나고 한잔 더 하려고 이리로 왔지.”

어이가 없었다. 어제 그 상황에서 술을 더 마시려 들다니.

나는 넬도르를 한참을 쳐다보다가 생각을 달리했다.

‘혹시 저 자식……. 완전 여우 아니야?’

백작과 친분을 맺는 것은 노르트 입장에서 나쁜 일이 아니다.

재앙이 코앞이니 백작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고.

‘나한테 친한 척한 것도…….’

플레이어 중에 강자와 친분을 만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뭐, 방해만 하지 않으면 상관없다.’

그리고 녀석을 써먹을 데가 있을 것도 같았다.

식사를 마친 후 넬도르는 돌아갔다.

“백작님이랑 언제 다 같이 한잔하세! 곧 있으면 큰일 치러야 되는데, 미리미리 마셔 둬야지.”

끝까지 너스레를 떨었지만, 진면목이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었기에 나는 떠나는 그를 깊은 눈으로 응시했다.

* * *

이틀 뒤, 충분히 휴식을 취한 나는 루스와 휴고를 조용한 곳으로 불렀다.

“지금부터 할 일이 있다. 내가 말하는 곳을 살피고 와라.”

“뭐 하는 곳인데?”

루스가 물어 왔다.

“재앙과 관계있는 곳이다. 어떻게 되어 있는지 멀리서 보고만 와라.”

“응, 다녀올게.”

“다녀오겠습니다, 대장.”

지도에서 본 위치 중 몇 군데를 가르쳐 주고 녀석들을 내보낸 다음, 나 역시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지도에 표시된 곳 중 일행에게 맡기지 않은 곳으로 이동했다.

위치는 수도 외곽의 숲속.

나는 인식 교란을 쓰고 목표 지점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누가 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