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37화>
마차가 멈춰 선 곳은, 저택 뒤쪽 별채 앞이었다.
이윽고 후작이 마차에서 내렸다.
주위를 살피는 모습이 퍽 신중했다.
후작이 별채로 들어간 걸 확인한 뒤에 나는 조심스럽게 마차에서 떨어져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갈 수는 없고…….’
하는 수 없이 조용히 별채로 다가가 벽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1층에는 아무도 없는 건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별채는 2층으로 이루어진 건물.
건물 뒤로 돌아가 배수관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2층 창문틀에 매달렸다. 조심스레 몸을 들어 올려 안쪽을 엿보려 했다.
아쉽게도 창문은 얇은 판자로 막혀 있었다.
하지만 말소리는 새어 나왔다.
“당연히 무슨 일이 있었으니 이렇게 빨리 돌아왔지.”
후작의 목소리였다. 연이어 다른 사람의 말이 들려왔다.
“그러니까 화만 내지 말고 무슨 일인지 말해보라지 않나? 그리고 도네센은 도대체 어디 두고 혼자만 왔나?”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후작에게 묻고 있었다.
“도네센은 죽었네. 플레이어에게.”
“뭐? 도네센이 죽어? 아니 도대체 연회에서 죽을 일이 뭐가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플레이어라니. 플레이어 중에 지금 그 정도로 강한 자가 거의 없을 텐데?”
중년인은 적잖이 놀랐는지 말이 빨라졌다.
후작이 이를 바드득 갈더니 대답했다.
“신탁의 플레이어인 거 같아 죽여 버리려고 했는데, 실패했네. 도네센을 광전사로 만들고도 실패했으니 분명 놈이 틀림없어.”
짐작대로 후작의 목표는 백작이 아니었다.
‘내가 신탁의 플레이어라고? 놈들의 태도를 보면 거의 확신하는 것 같은데…….’
어쨌든 신탁의 플레이어를 저렇게까지 죽이려드는 것을 보면, 놈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분명했다.
순간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말로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 지금이라도 어서 그놈을 처리하러 가세. 어차피 준비는 사제들이 하고 있으니, 나는 다녀올 시간이 있네.”
중년인의 목소리가 후작을 부르는 이름이 이상했다.
‘말로스? 드레오스가 아니라?’
후작의 이름이 바뀔 수는 없다. 아무리 최악이라 해도 세뇌당한 것이리라 짐작했는데, 상황이 더 심각하게 돌아가는 듯했다.
‘애초에 다른 놈이 변장을 한 건가?’
암흑 교단의 수법이라면, 사람을 바꿔치기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잠깐 생각하는 사이 후작의 대답이 이어졌다.
“티보다인, 일단 앉게. 어차피 지금은 무릴세. 놈은 스탄 백작과 함께 있네. 보는 눈이 너무 많아.”
후작의 입에서 아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티보다인? 놈은 암흑 교단의 장로일 텐데.’
티보다인과는 회귀 전 재앙의 날에 싸웠었다. 암흑 마법에 아주 능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럼 티보다인과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후작은…….’
티보다인과 동격의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보아, 후작도 장로급의 인물이라는 말이 된다.
“뭐? 하필 스탄과 함께 있다니. 세뇌가 풀린 후로 그쪽은 영 틈이 없으니, 일이 쉽지 않겠군.”
“그래, 자네는 일단 일을 빨리 마무리하는 데 집중하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을 하루라도 빨리 영접하는 것이야.”
“그래, 이제 준비는 거의 끝났네. 마지막 하나가 만들어지고 있네. 곧 그날이 올 걸세.”
그 후로도 대화가 이어졌다.
놈들은 중요한 무언가를 이곳에서 만들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이라……. 아마 마왕 소환과 관련된 것이겠지.’
게다가 마지막 하나. 아마 저것이 완성되면 재앙의 날이 시작될 것이다.
‘부수고 싶은데…….’
성물을 부쉈을 때 얻었던 스탯을 생각하면 이쪽도 굉장한 보상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방법이 마땅치 않다.
예상대로 후작이 교단의 장로라면, 나 혼자서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최근 연이어 큰 성장을 이루었지만, 장로 둘을 한꺼번에 상대하기는 힘들었으니까.
나는 조용히 건물에서 내려와 구석으로 숨은 다음,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결론은 하나였다.
‘역시 그 방법밖에 없나?’
[정해수]
근력 : 81(A)
민첩 : 82(A)
체력 : 88(A)
마력 : 59(S)
스킬
- 랜덤 영웅 소환 (11790/4000 코인)
┗ 영웅 진화 (11790/10000 코인)
: 진화 가능 영웅 <없음>
- 호문쿨루스 소환
- 초재생
- 인벤토리
- 인식 밖에서
- 멸세폭
- 절대불변
- 강기공
상태창을 확인했다.
장로에 만티코어까지 잡은 영향으로 상태창이 확연히 변해 있었다.
머지않아 모든 스탯이 S급이 될 만한 상황이지만, 그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영웅 소환.
새로운 영웅을 소환할 코인은 진즉에 모였다.
1만 코인이 넘으면서 영웅 진화를 위한 항목도 생겨났다.
그럼에도 아직 소환하지 않은 이유는, 이곳이 수도이기 때문이다.
제국 상대로 일을 벌여야 할 이 시점에 영웅을 소환해 봐야 오히려 방해만 된다.
‘재앙의 날 불러서 희생양으로 써먹으려 했는데……. 어쩔 수 없군. 지금 뽑는다.’
나는 새로운 영웅을 소환해서 미끼로 쓸 생각이었다.
사실 회귀 직후엔 모든 영웅을 직접 죽이고 싶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직접 죽이지 않아도 죽는 것은 똑같으니까. 큰 이득을 볼 수 있기도 하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소환을 진행했다.
‘랜덤 영웅 소환.’
마법진이 빛나고, 잠시 후 누군가 나타났다.
검은색 로브를 입고 기다란 지팡이를 손에 쥔 청년.
[티타 킨조른(S. 마도사)]
- 충성도 : 50 (충성도가 낮으면 배신할 수 있습니다.)
“안녕하…….”
“쉿!”
놈이 인사를 하려는 순간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킨조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놈에게 속삭였다.
“상황이 급하니 인사는 나중에. 지금부터 중요한 일을 맡기겠다.”
굳은 표정을 본 킨조른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해 왔다.
“예, 말씀하십시오, 마스터.”
“이곳은 암흑 교단의 아지트다. 내가 일을 보는 동안 너는 저쪽 본채를 공격한다. 내가 갈 때까지 싸우고 있어라.”
“알겠습니다, 마스터.”
일이 끝나고 놈을 구하러 갈 생각은 당연히 없다.
이대로 보내면 놈은 죽는다. 진화하지 않은 상태로 장로 둘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다.
“시작하지. 가라!”
아마 다시 볼 일은 없을 거야.
나는 킨조른이 뒤돌아서는 순간, 팔찌의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전이가 시전됩니다. 대상을 정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 : 티타 킨조른]
‘티타 킨조른.’
[스킬 점멸이 전이됩니다.]
[점멸]
: 정확히 인지할 수 있는 곳으로 즉시 공간 이동한다. 마력이 높아질수록 이동 거리가 늘어나고 사용 간격이 줄어든다.
순간 감탄이 터져 나올 뻔했다.
굉장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괜히 불덩이나 날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
어차피 나는 검을 주로 쓴다.
그러니 웬만한 마법은 활용도가 높을 수 없고, 오히려 조합하기만 힘들다.
하지만 점멸은 다르다. 이 스킬은 공수 양면에서 압도적인 효용성을 가지기 때문이었다.
‘최근 들어 운이 너무 좋은데…….’
재앙이 코앞이니 불평할 거리도 못 된다. 뭐가 되었든 힘이 될 것은 얻고 봐야 한다.
킨조른을 직접 죽이는 즐거움을 포기하면서까지 일을 꾸미는 것도 같은 이유.
새로 얻은 스킬에 기뻐하고 있는데, 본채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쾅-! 콰르르-
폭음도 들렸다.
주문한 대로 킨조른이 제대로 날뛰는 것 같았다.
나는 별채의 문을 보며 숨죽여 기다렸다.
잠시 후, 문이 벌컥 열리며 몇 명이 뛰어나왔다.
후작과 티보다인, 그리고 암흑 기사와 사제도 몇 명 보였다.
그들은 부리나케 본채를 향해 달려갔다.
‘고맙게 문도 활짝 열어 두셨군.’
놈들이 사라진 후, 나는 열린 문으로 들어섰다.
1층이 텅 비어 있었기에 나는 재빨리 2층으로 올라갔다.
“음……. 여기가 아니었군.”
하지만 예상과 달리 2층은 평범한 집무실이었다.
혹시나 비밀 공간이 있을까 싶어 서둘러 찾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벽에 걸린 지도에 눈이 갔다.
지도에는 여러 군데에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규칙적으로 찍힌 위치가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다.
‘설마…… 마법진인가?’
하지만 지금은 급한 상황이었기에 나는 지도에 표시된 위치만 기억해 두고 얼른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1층을 지나 이번에는 지하로 내려갔다.
그러자 대번에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성물……인가? 엄청 지독하군.’
저번에 성물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종류의 기운이 지하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보다 몇 배는 더 강했다.
복도를 따라 숨죽여 걷자, 이윽고 원형의 큰 공간이 나왔고,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그 즉시 걸음을 멈추고 앞을 살폈다.
그곳에는 암흑 사제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무엇인가 하고 있었다.
놈들은 그 일에 정신이 팔렸는지 사람이 나타나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뭐 하는 거지?’
의아한 마음에 조금 더 가까이 가자, 놈들은 양손을 앞으로 뻗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 세 개의 성물이 허공에 떠서 돌고 있었고, 성물들 아래로 밥상 크기의 철판이 놓여 있었다.
성물과 사제의 기운이 뒤섞여 철판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것이 재앙을 부르는 열쇠인 것 같았다.
‘만든다는 게 저건가?’
잘되었다. 뭔지는 몰라도 저것을 부수면 막대한 보상을 얻을 것이다.
게다가 모여 있는 사제는 보너스!
나는 달려가며 힘껏 점프했다. 그리고 둘러앉은 사제들 가운데로 떨어져 내렸다.
공중에서 성물과 철판을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멸세폭.’
콰쾅!
엄청난 폭음과 충격이 사방을 덮쳤다.
사제들은 단번에 휩쓸려 전멸했지만, 성물은 여전히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역시 한 번으로 안 되는군.’
저번 성물처럼 무언가 특별한 보호를 받고 모양.
나는 통증을 참아 내며 왼손을 들어 올렸다.
‘원혼의 거울.’
손바닥에서 검푸른 광선이 성물을 향해 쏘아졌다.
파스슥-
드디어 성물 두 개가 부서지면서 엄청난 기운이 빨려 들어왔다.
‘하아……. 좋군.’
흡수되는 스탯의 쾌감에 잠시 몸이 멈추었다.
그때, 나머지 하나의 성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철판이 내뿜던 사악한 기운이 막 사라지려는 순간.
쩌저적-
나머지 성물 하나가 저절로 파괴되었다.
그리고 부서진 성물에서 나온 기운이 철판으로 스며들었다.
‘응? 저게 무슨?’
의아해하는 찰나, 철판 위로 무언가의 모습이 나타났다.
“크윽.”
순간, 입에서 저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가위에라도 눌린 듯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언가 압도적이고 사악한 것이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하, 어처구니가 없군. 저게 왜 지금 나타난 거지?’
저것은 첫 번째 재앙의 실체였다.
너무도 어둡고 사악해 대적 자체가 불가능한 존재.
하지만 놈은 결코 본신으로 이곳에 나타날 수 없다.
재앙의 날에도 먼저 화신을 통해 나타날 뿐, 고작 성물의 기운으로 놈이 현신할 수는 없다.
회귀 전 놈의 화신과 싸워 보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놈이 결코 이 자리에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기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몸의 통제가 조금씩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곧바로 후들거리는 무릎에 힘을 주며 소리쳤다.
“꺼져! 이 새끼야!”
입이 열리자 비로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멸세폭!”
놈의 모습을 향해 멸세폭을 내리찍었다.
콰쾅!
아래에 있던 철판이 단번에 부서져 나갔다.
놈의 모습이 스르륵 사라졌다.
“허억, 허억……. 누구한테, 허억, 사기를 치려고.”
나는 그제야 양손으로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연달아 사용한 멸세폭의 충격이 몸을 옥죄어 왔다.
하지만 쉬고 있을 시간이 없다.
갑자기 등장한 마왕의 의념 때문에 시간을 잡아먹었다.
킨조른이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지만, 이곳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곳.
곧 장로가 들이닥칠 것이다.
나는 격통을 참으며 걸음을 옮겼다.
겨우 1층에 올라섰을 때, 현관으로 누군가 달려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몸 상태를 생각하면, 지금 적과 마주치는 것은 좋지 않다.
주위를 재빨리 살피며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저기다!’
나는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