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36화>
검과 검이 얽혀 힘 싸움을 벌였다.
제법 힘을 불어넣었는데도 놈의 검이 밀려나지 않았다.
“플레이어치고는 제법이군.”
도네센의 비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도 후작 따까리치고는 제법이야.”
내가 태연하게 맞받아치자, 놈의 얼굴이 굳어지며 검에 힘이 들어갔다.
말을 거칠게 했지만, 제법이라는 것은 진심이었다.
‘생각보다 강한데?’
진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연회에 호위로 데려오기는 놈의 실력이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솜씨인데도, 백작이 처음 보는 인물이라…….’
주위의 반응을 보아도 썩 유명한 기사로 보이지는 않았다. 확실히 이상했다.
그사이 도네센의 공세가 강해졌다.
쾅-
다시 한번 오러 소드가 맞부딪혔다.
충격과 함께 서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놈의 눈이 치떠지더니 살광이 뿜어져 나왔다. 마음대로 되지 않자 살기가 치솟는 모양이었다.
놈의 칼에서 솟은 오러가 한층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검 끝에 강기공을 끌어 올렸다.
쾅-
강기공과 맞부딪친 놈의 오러가 튕겨 나갔다.
이번에는 나는 제자리고, 놈만 두 걸음 물러섰다.
나는 놈을 쳐다보며 도발하듯 씩 웃어 주었다.
분노한 도네센이 격렬하게 칼을 휘둘러 왔다. 나는 검을 슬쩍 피해 내며 가슴을 노린 찌르기를 날렸다.
그러자 도네센이 이를 악물고 몸을 비틀었다.
내 찌르기가 놈의 상체를 스쳐 지나갔다.
슷-
놈의 옷이 칼끝에 닿아 잘려 나갔다.
동시에 살의를 띤 놈의 눈빛이 내게 쏘아져 왔다.
다시 한번 놈의 검이 휘둘러졌고, 이번에도 나는 옆으로 움직여 피해 내었다.
장로와 만티코어를 연이어 잡고 크게 성장한 덕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그 순간, 놈의 왼손 소매에서 무언가 발사되었다.
푸슛-
한 가닥 바늘이 내 눈을 노리고 쏘아져 왔다. 순간 강기공을 나는 끌어 올려 머리를 보호했다.
파삭-
쏘아진 바늘이 강기에 막혀 부서졌다.
‘어이가 없군. 대결 중에 암습이라니.’
놈은 아예 작정을 한 듯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바늘을 쏘아 낸 후 연이어 검을 몰아쳐 오고 있었다.
뒤쪽에 있는 후작을 슬쩍 살펴보았다.
이런 행위는 후작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후작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저 뱀처럼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는 상태.
도네센 못지않은 살기가 눈가에 감돌고 있었다.
‘이건 좀 과한데? 나한테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자기 명예는 신경도 안 쓰고 이쪽만 노려보고 있군.’
애써 이런 대결 구도를 만든 것도 확실히 수상했다.
좀 전에 있었던 크리스의 연설이 무슨 내용이었는가?
평소의 관계는 제쳐 두고, 재앙을 위해 힘을 합치자는 것이었다.
근데 연설이 끝나자마자 시비를 걸더니, 말꼬리를 잡아 기어코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이놈!”
잠깐 생각하는 중에 고함 소리가 들렸다.
내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 것을 눈치챈 도네센이 광분해서 덤벼들었다.
자존심이 많이 상한 모양인지 한층 더 과격한 움직임이었다.
이번에는 나도 놈의 칼을 피하지 않고 강기공을 끌어 올려, 칼을 마주쳐 갔다.
쾅-
강력한 폭음이 울리고 놈의 신형이 뒤로 쭉 밀렸다.
나는 이를 부드득 가는 놈의 얼굴을 보며 짓쳐 들었다.
쾅-
다시 한번 칼이 맞부딪쳤다. 이는 내가 의도한 상황이다.
도네센은 힘에 밀려 피할 여유가 없었다.
그를 확인하고서 나는 놈의 정면으로 칼을 계속 내리쳤다.
쾅-쾅-쾅-
놈이 칼을 머리 위로 들어 내 공격을 간신히 방어했다.
하지만 힘에 붙이는지 놈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콰앙-
“크윽-!”
결국 도네센의 입에서 신음이 튀어나왔다. 놈의 팔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놈의 눈이 붉게 빛났다.
‘음? 저건!’
그리고 놈의 기세가 강해지기 시작했다.
쾅-
폭음이 일며 몸이 뒤로 밀려났다.
나는 재빨리 후작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후작은 여전히 이쪽을 노려보기만 할 뿐, 아무런 변화도 없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주위를 언뜻 둘러보아도 별다른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순간에도 도네센의 칼은 휘둘러져 오고 있었다.
나는 칼을 막아 가며 상황을 확인했다.
‘놈은 광전사화되었다! 분명해.’
암흑 교단과는 지긋지긋하게 싸웠기에 바로 알 수 있었다.
회귀 전의 기억까지 더듬어 보아도, 놈의 상태는 광전사화가 틀림없었다.
주위를 살핀 것은 주문을 사용한 자를 찾기 위한 것.
하지만 그럴 만한 자는 보이지 않았다.
‘후작이 가장 의심스러운데.’
그런데 후작은 처음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어쩔 수 없으니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일단 도네센부터 처치한다.’
쾅-
강기공을 최고로 끌어 올려 맞부딪쳤고, 그 반발력으로 놈이 다시 밀려났다.
분노한 놈이 미친 듯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놈의 칼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절대불변.’
원혼의 거울에 절대불변을 건 것이다.
쾅-
폭음과 함께 놈의 칼이 튕겨 나가는 순간, 나는 이미 그 뒤를 따라 몸을 날리고 있었다.
뻗어 나간 검 끝이 놈의 가슴을 갈랐다.
푸슛-
피가 솟구쳤다. 하지만 놈은 멈추지 않았다.
시뻘건 눈동자로 이쪽을 노려보며 검을 내려치는 모습에 나는 놈의 정체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치명상인데 주춤하지도 않고. 틀림없다.’
나는 놈의 검을 단검으로 튕겨 내며 바짝 접근했다. 그 후 왼손의 강기공이 놈의 몸통을 두들겼다.
퍽-
“크억-!”
놈의 입으로 피가 주르륵 흘렀다.
명치에 정확히 들어간 타격으로 일순 움직임이 멎은 상태.
나는 놈의 가슴에 닿은 왼손을 밀어내며 칼을 휘둘렀다.
서걱-
도네센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자 주위가 조용해졌다. 전투의 강력함과 잔인함에 사방이 숨죽였다.
잠깐의 정적 끝에 한꺼번에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오! 대단한 솜씨다. 멋지군!”
“주, 죽었다!”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살인에 놀랐다.
후작은 여전히 차가운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백작의 목소리가 장내를 진정시켰다.
“이만하면 여흥으로는 넘치는 것 같소. 인명 피해가 나왔지만, 보셨듯이 전투가 과열되어 어쩔 수 없는 사고였소.”
이 부분에서 별 이견은 없는지 주위에서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당사자인 후작이 말이 없자 별문제 없이 넘어갔다.
오히려 암습에 대해 따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후작에겐 다행인 상황.
주위를 둘러보던 백작이 말을 이었다.
“이제 그만 연회를 계속 진행합시다.”
백작의 목소리에 주위 사람들이 호응했다.
후작은 끝까지 미동도 없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잠시 후, 나는 백작과 테라스로 나왔다.
“정말 미안하네,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네.”
백작이 정중하게 사과해 왔다.
사실 어느 순간 백작에게도 짜증이 났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있다.
“괜찮습니다. 후작이 그렇게까지 물고 늘어질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그나저나 그놈은 진짜 전에 본 적이 없습니까?”
“도네센이란 자를 말하는 거라면, 진짜 처음 보네. 그런 자가 있다는 소리도 들어 본 적이 없네. 결투 중에 암기를 사용하는 데다가, 마지막에 보인 그 광기는…….”
백작도 그 장면을 생각하면 꺼림칙한지 말을 흐렸다.
그래서 나는 백작에게 놈의 정체를 말해 주었다.
“백작님, 그자는 암흑 교단의 끄나풀입니다.”
“뭐라고? 말도 안 되네. 후작의 사람일세. 후작이 아무리 권력에 미쳤어도, 그럴 리가 없네!”
“그동안 암흑 교단과 많은 싸움을 해 왔습니다. 놈들의 수법은 손바닥 보듯이 알고 있지요. 도네센이 마지막에 보인 행동은 암흑 교단의 주문에 의한 것이 분명합니다. 백작님도 보셨지 않습니까?”
백작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생각이 많은 것 같았다.
‘하긴 머리가 복잡하겠지. 내부에 암흑 교단의 세력이 파고들었을 수도 있는 상황이니.’
조용하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여기 있었구나!”
돌아보니 루스와 넬도르가 와 있었다.
넬도르는 이미 잔뜩 마셨는지 술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루스에게는 고기 냄새가 났다.
“주인, 아까 싸우는 거 봤어! 멋졌어! 근데 그놈 암흑 교단이야, 알지?”
주위를 의식한 듯 루스가 조용히 말해 왔다.
‘루스까지 이렇게 말할 정도면 확실하다.’
“루스, 혹시 주변에 그놈들 더 없어? 주문을 건 놈이 있을 거야, 분명히.”
루스가 코를 찡긋하더니 말했다.
“음, 없어. 근데 아까 그놈도 눈 빨개지기 전까진 냄새가 안 났어.”
도네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어보미네이션에 습격당했을 때도 루스가 미리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놈들에게 정체를 감추기 위한 방법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느 놈이 암흑 교단일까?’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후작이었다.
하지만 놈의 지위를 생각하면 증거 없이 함부로 조사할 수가 없다.
게다가 그 정도 지위를 가진 자가 암흑 교단에 가담할 이유가 없다.
생각에 잠긴 백작을 보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설마…….’
나는 얼른 백작에게 말을 걸었다.
“백작님, 드레오스 후작의 행동이 원래 그랬습니까? 어느 순간 갑자기 사람이 달라지거나 하지 않았나요?”
“그게 무슨 소린가? 사람이 달라지다니…… 설마?”
백작도 떠오르는 것이 있는지 침음을 삼켰다.
잠시 생각하던 백작이 말을 이었다.
“한 2년쯤 전부터 갑자기 주위에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네. 그전까진 나와도 사이가 썩 나쁘지 않았다네. 설마 내가 당했던 것처럼…….”
백작이 말을 흐렸다. 본인이 당했던 일이 떠오르는지 미간이 찌푸려졌다.
“예, 세뇌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말씀드렸듯이, 도네센은 암흑 교단의 기사가 확실합니다. 실력을 보면 제법 높은 위치에 있는 놈이 틀림없습니다.”
갑자기 그 정도 인물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이런 일을 벌인 이유가 궁금했다.
게다가 사람이 많은 곳에서 광전사화까지 사용했다.
‘꼬리가 잡힐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일을 벌이다니.’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다가 이쪽을 쳐다보던 후작의 눈빛이 떠올랐다.
‘설마?’
이전에 내가 암흑 교단을 상대로 벌인 일들을 알아낸 건가?
‘하지만 그것이 이 자리에서 일을 벌일 이유가 될까? 굳이 당장이 아니라도 이쪽을 노릴 기회가 있을 텐데.’
순간 장로를 처치할 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신탁의 플레이어.
마치 한 명을 지칭하는 듯한 단어.
놈이 나를 신탁의 플레이어라고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장로의 태도를 봤을 때, 신탁의 플레이어는 놈들에게 꼭 제거해야 할 대상.
‘억지를 부려 상황을 만든 것도, 수하를 버리면서까지 무리한 것도…… 내가 목적이었던가?’
이쪽에 대해 미리 알고 있던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굳이 연회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아마도 백작과 언쟁 중에 눈치를 채고 일을 벌인 것 같았다.
백작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진짜 세뇌당했다면 큰일이네. 차라리 권력이 미친 것이 낫지.”
침중한 표정을 짓던 백작이 말을 이었다.
“마땅한 증거도 없으니 공론화시킬 수도 없고, 방법이 없군.”
도네센은 이미 죽었다.
후작이 특별한 행동을 취하거나, 암흑 교단 특유의 기운을 흘리지도 않았다.
백작의 말대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답이 없는 상태.
정상적인 방법이 안 된다면, 과격한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혹시 후작이 머무르는 곳을 알고 계십니까?”
“자네, 설마? 으음……. 수도에 저택을 가지고 있네. 아마 거기서 지내겠지.”
말리려던 백작이 말을 삼키더니, 후작이 머무는 곳에 대해 내게 알려 주었다.
그도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빠르게 움직여야 되겠습니다. 오늘 일은 놈들에게도 가벼운 사항은 아닐 겁니다. 분명 뭐가 되었든 움직임이 있을 테니, 오늘이 적기입니다.”
“알겠네. 언제 움직이겠나? 미리 준비하겠다면 먼저 밖으로 나가 있게.”
잠시 방법을 생각한 결과, 혼자 움직이기로 했다.
‘인식 교란이 있으니 혼자 가는 것이 낫다. 루스는 두고 간다.’
조용히 잠입하는 것이 목적이지 당장 후작 저택을 뒤엎어 버릴 생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막 생각을 마치고 나가려는데 넬도르가 뻘줌하게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상황이 다급해 서로 소개도 하지 않은 게 생각나, 나는 얼른 백작에게 넬도르를 소개했다.
“백작님, 이쪽은 노르트에서 온 사절 넬도르입니다.”
“노르트의 제왕 라넬디드의 둘째 아들 넬도르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넬도르가 먼저 인사를 건네었다.
“나는 아베나스탄의 영주 알베르 드 스탄 백작일세. 나도 반갑네. 다만 상황이 급해 인사를 길게 할 수가 없군.”
인사를 마친 넬도르에게 내가 말했다.
“이봐, 넬도르. 내가 급히 어딜 가 봐야 하는데, 백작님과 같이 좀 있으면 안 될까? 호위도 겸해서 말이지.”
“안 될 거 없지. 사방에 술과 음식인데 안 될 게 뭐 있겠나, 하하하.”
영 미덥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다.
루스를 믿는 수밖에.
“루스, 너도 백작님과 함께 있어라.”
“응, 주인. 여기 맛있는 거 많아서 좋아! 다 먹으면 또 가져와!”
‘……어떻게든 되겠지.’
분위기를 보아 후작이 연회 끝까지 남아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나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나는 백작에게 저택의 위치를 빠르게 물은 후 테라스 밖으로 몸을 날렸다.
정문 근처에 숨어 기다리자 후작의 마차가 나타났다.
움직이는 마차를 따라 나도 달렸다.
마차가 후작의 저택에 도착하고 대문이 열리는 동안, 나는 마차의 바닥에 달라붙었다.
마차는 계속 이동해 저택의 뒤편으로 향했다.
‘어디로 가는 거지? 분명 저택 입구를 지난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