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32화>
나는 루스에게 들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보리스를 찾았다.
“살아 있으면 좋겠는데.”
보리스의 스킬은 굉장히 훌륭하다.
일단 신체를 강하게 해 주는 것만 해도 도움이 된다.
온몸으로 오러를 뽑아 전 방위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은 보너스다.
“보리스, 보리스! 어디 있나?”
놈을 부르며 한참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녀석의 숨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죽었나 하고 포기하려는 찰나,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 누구냐? 얼른 이리 와서 나를 꺼내라!”
시체 더미가 들썩이며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방향으로 시선을 따라가니 아래에 깔린 보리스의 모습이 시체 틈으로 보였다.
시체들을 걷어 내자 놈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곳저곳 상처가 있었지만, 가장 심한 것은 배에 난 자상. 깊게 찔린 곳 안쪽으로 내장이 보였다.
한데 가만히 보니 상처의 모양이 특이했다. 칼에 베인 것이 아닌 침 같은 것에 푹 찔린 듯한 상태.
게다가 심한 악취가 배어 나왔다.
생각해 보니 보리스의 스킬과 스탯이라면 이 정도 상처에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렇다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
‘만티코어에게 당했군.’
만티코어의 꼬리에 있는 독침에 찔린 것 같았다.
쉴즈처럼 즉사할 정도로 당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지만, 대신 독에 의해 차츰 죽어 가고 있었다.
나는 보리스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보리스, 안녕. 나 기억하지?”
“너, 너 이 새끼!”
보리스의 성질머리는 그 와중에도 여전했다.
그에 나는 인벤토리에서 해독약과 포션을 꺼내 놈의 눈앞에 흔들었다.
“살려 줄까?”
이 해독약으로 만티코어의 독을 해독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일단 놈을 꾀기만 하면 되니까.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해독제를 보자마자 절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 얼른 나를 치료해라! 빨리!”
“흐음.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닌 거 같은데? 자꾸 화만 내면 난 갈 거야.”
발길을 돌리는 시늉을 하자 보리스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원하는 걸 말해라. 내가 제국에 말해서 뭐든 구해 주마.”
슬슬 고기가 미끼를 물기 시작했다.
“딱히 원하는 건 없는데……. 아! 내가 강한 동료를 모집 중이거든. 너라면 충분할 것 같은데 어때? 내 동료가 되지 않겠어? 그럼 살려 줄게.”
어색한 대사에 속이 느글거렸다.
진형기에게 거절당했던 때가 잠시 떠올랐지만, 꾹 참고 열심히 연기했다.
놈은 굉장히 어이없는 말을 들은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대답했다.
“으으, 알았다. 너의 동료가 되지. 이제 빨리 상처를 치료해라.”
원하는 말이 나오자 나는 얼른 스킬을 사용했다.
그런데.
[스킬 전이가 시전됩니다. 대상을 정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이 없습니다.]
‘뭐? 이게 무슨?’
보리스를 쳐다봤다. 놈은 빨리 치료하란 뜻을 잔뜩 담고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보리스, 진짜 내 동료가 될 생각이 있는 거지?”
“그래, 자꾸 말 시키지 말고 치료나 해라!”
[스킬 전이가 시전됩니다. 대상을 정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이 없습니다.]
‘하, 이 새끼가.’
주먹을 들어 녀석의 얼굴을 후려갈겨 버렸다.
퍽-
“크억, 무슨 짓이냐? 네 동료가 되겠다고 했잖아!”
퍽퍽-
놈의 얼굴을 연이어 내려치며 말했다.
“나는 스킬로 파악할 수 있어, 네가 진심인지 거짓인지. 근데 네 말엔 진심이라고는 없군.”
“크윽, 그럼 내가 너 같은 원숭이 새끼랑 진짜 동료가 될 줄 알았냐?”
동료가 될 생각이 없는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놈이 무릎 꿇고 사정해도 받지 않는다.
그나저나 스킬이 적용되지 않을 정도면, 동료가 될 생각은 진짜 조금도 없었던 것 같았다.
“진짜 쓸모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군.”
더 이상 놈과 실랑이할 필요가 없었다.
퍽퍽-
뭐라고 계속 떠들려는 입을 뭉개 버린 후 놈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당겼다.
그렇게 보리스를 질질 끌어 데려간 곳은 만티코어의 사체가 있는 곳.
보리스는 마스터들의 주검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스터가 나타나 자신을 구해 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던 모양.
나는 불에 활활 타고 있는 만티코어를 향해 보리스를 던져 버렸다.
“크, 크아악! 빨리 꺼내라. 뜨거워, 꺼내 줘!”
몸에 불이 옮겨 붙자 놈의 목소리가 다급해져 갔다. 신경 쓰지 않고 놈을 지켜봤다.
“제발, 제발 꺼내 줘. 살려 줘! 뭐든 할게!”
몸이 타들어 가자 놈이 드디어 간절히 빌기 시작했다.
나는 놈을 끌어 낸 후 땅바닥에 굴려 불을 대충 껐다.
“자 이제 얘기해 봐. 동료가 되고 싶어? 진심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해. 마지막 기회니까 신중하게 말하라고.”
보리스는 길게 생각지도 않고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드디어 자신의 처지를 인식한 모양인지, 당장 불에 타 죽는 것보다는 동료가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될게, 동료가 되겠어. 뭐든 할 테니 일단 불 좀 꺼 줘!”
대충 땅에 굴린 탓에 보리스의 몸에는 아직 불씨가 살아있었다.
놈의 간절한 표정을 보며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전이가 시전됩니다. 대상을 정해 주세요.]
[지정 가능 대상 : 보리스 메드베데프]
‘보리스 메드베데프.’
[스킬 강기공이 전이됩니다.]
이번에도 안 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급하긴 급했던 듯했다.
강기공 스킬의 성능이 궁금했지만, 놈을 먼저 처리한 후 알아보기로 했다.
한 나는 놈을 다시 불구덩이로 걷어차 넣어 버렸다.
퍽-
“크악! 왜, 왜 그래? 진짜야. 진짜 네 동료가 되고 싶다고. 이제 그만, 그만해도 되잖아!”
“너 같은 놈은 내 쪽에서 사양이라서. 우리 일행들도 싫어할 거야.”
그렇게 말하며 옆을 힐끔 쳐다보자 루스가 보리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너 재수 없어! 쓸모도 없고 냄새나!”
“마, 말도 안 돼. 살려 줘! 제발…… 크아악!”
비명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만티코어의 독에 당한 것 자체가 치명상이었다. 거기에 화상까지 입으니 얼마 버티지 못한 것이다.
보리스의 죽음을 끝으로, 주위에 살아 있는 생명은 더 이상 없었다.
그 많던 제국의 병사들도, 암흑 교단의 교도들도 모조리 시체가 되어 있었다.
일을 계획한 입장에서 뿌듯함과 처참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머리를 저어 부정적인 마음을 털어 냈다.
‘아직이다. 놈들의 목을 모조리 딸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복수는 이제 시작이다. 벌써부터 마음이 약해질 수는 없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보리스에게 얻은 스킬을 확인했다.
[강기공]
: 오러의 밀도와 강도를 높인다. 강기를 활용해 몸을 보호할 수 있다. 강화된 오러는 공방 어디에나 사용 가능하다. 마력이 높을수록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이게 놈이 늘 몸에 두르고 다니던 스킬이군.”
전투 시 보리스는 특별한 오러를 사용했다. 온몸을 감싼 오러는 공방에 모두 사용되며, 놈을 난전의 스페셜리스트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강기공을 조심스레 끌어 올려 보았다. 몸 주위를 파란 오러가 감쌌다.
일반적인 오러에 비해 굉장히 밀도가 높고 점성이 강한 느낌이었다.
나는 아직 불타고 있는 만티코어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콰콰쾅-!
강기에 휘말린 만티코어의 사체가 으스러지며 멀리 튕겨 나갔다.
“아주 좋군.”
일반적인 오러보다 확실히 파괴력이 강하다. 주먹에 느껴지는 반발력도 확연히 줄었다.
마치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더 강해진 느낌.
‘어쩌면 멸세폭의 반동도 줄여 줄 것 같은데.’
당장 몸 상태가 완전치 못하니 실험해 볼 수는 없지만, 왠지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인종 차별한 건 이제 용서해 주마.”
여전히 활활 타고 있는 보리스를 향해 한마디 해 준 후 몸을 돌렸다.
마침 몸이 좀 나아졌는지 휴고가 건물에서 나오고 있었다.
“몸은 좀 괜찮나?”
“예, 대장. 이제 좀 살겠습니다. 그래도 제대로 움직이려면 한 며칠 걸릴 것 같습니다.”
휴고는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어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이래저래 무리를 많이 했으니, 저 정도면 양호한 것이다.
“마차에 타라. 이제 수도로 간다.”
그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루스가 냉큼 물어 왔다.
“수도? 거기 어디야? 먹을 거 많아?”
먹을 것? 당연히 많다.
머지않아 수도에는 루스의 기준으로 영양가 있는 것이 넘쳐 날 것이다.
“그래, 먹을 거 엄청 많아. 열심히 하면 배터지게 먹을 수 있을 거다.”
“응, 주인. 열심히 할게!”
이윽고 휴고가 마차를 끌고 왔다.
“가자, 수도로.”
* * *
마차는 꾸준히 나아갔다. 드디어 도착한 수도에는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주인! 사람 진짜 많아. 너무 많아!”
“그래, 많구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곳곳에 제국인의 복장과 다른 의상을 하고 있는 자들도 보였다.
“대장, 저 사람들도 제국인 맞습니까? 복장이 좀 많이 다른데요. 생김새도 좀 다르고.”
휴고가 가리킨 곳에는 털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은 자들이 성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중얼거리듯 답했다.
“북쪽에서 온 자들이군. 제국인이 아니야. 아마 재앙 때문에 의논 차 모여든 것 같다.”
이맘때면 제국을 둘러싼 군소 국가의 사절단이 수도로 모여든다.
애초에 나머지 모든 나라를 합쳐도 제국에 대항할 수 없다. 어찌 보면 제국이 이미 천하를 통일한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제국이 그들을 나라의 형태로 그냥 두는 것은, 그들의 영토 바깥쪽에 존재하는 것들 때문이다.
‘당장 거기까지 생각할 때가 아니야.’
나는 멀리 뻗어 나가려는 생각을 떨쳐 내었다. 눈앞에 다가온 첫 번째 재앙에 대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때 누군가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뭘 그리 자꾸 쳐다보는 거지? 노르트인 처음 보나?”
휴고가 쳐다본 것이 마음에 안 든 것인지, 털가죽 옷을 입은 자 중 하나가 대거리를 해 왔다.
적갈색 머리와 수염이 온 얼굴을 뒤덮고 있는 거한.
허리춤에는 무거워 보이는 도끼가 매달려 있다.
그것을 쉽게 휘두를 만한 근육이 몸에 붙어 있기도 했다.
‘귀찮게 되었군. 거친 놈들인데.’
노르트는 제국 북쪽에 존재하는 소국이다. 척박한 환경 때문인지 성정이 거칠고 투박하다.
휴고가 덩칫값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내가 대신 나서며 말했다.
“응, 처음 봐. 신기한 옷을 입었군.”
옆에 있던 휴고의 눈이 둥그레졌다. 내가 사과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노르트인에게 평범한 사과는 통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방식이 있었다.
“솔직해서 좋군. 하지만 예의를 어겼으니 대가는 치러야 한다.”
“좋다. 네가 할 텐가?”
발로 바닥에 선을 주욱 그으며 물었다. 다가온 노르트인의 눈이 둥그레졌다.
“우릴 처음 본다더니 거짓말이었나?”
“아니, 당신들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뿐이야. 근데 듣던 것보다 말이 많군.”
쿵-
노르트인이 발을 쿵 구르더니 들고 있던 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곤 거칠게 걸어가 그어놓은 선을 밟고 섰다.
“라넬디드의 아들 넬도르다. 와라!”
나도 선의 반대편을 밟으며 말했다.
“정씨 가문의 해수야. 시작하자고.”
막상 마주 서자 놈의 거대한 몸이 체감되었다.
키는 185센티미터 정도로 나와 비슷했다. 하지만 옆으로 벌어진 육체는 압도적인 볼륨을 자랑했다.
가로와 세로가 별 차이 없어 보이는 체형.
그것도 모조리 근육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전사의 몸이었다.
선을 밟고 서서 소개를 했다는 것은 이미 시작을 했다는 의미.
놈이 망설이지 않고 주먹을 휘둘러 왔다.
일체의 마력이 들지 않은 순수한 육체의 힘. 이것이 노르트인이 사소한 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이 싸움에 마력을 끼워 넣어서는 안 되고, 타인이 참견해서도 안 된다.
싸움이 끝나면 분쟁도 끝나고, 패자는 승자에게 예를 갖추어 사과해야 한다.
후웅-
머리통만 한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선을 밟은 발을 떼면 패배다. 그러니 피할 곳도 없다.
나는 왼손을 펼쳐 놈의 주먹을 막아 갔다.
퍽-
놈의 주먹이 왼 손바닥에 부딪히며 멈추었다. 손바닥에 얼얼하긴 했지만 부상은 없다.
높은 스탯과 용인화된 육체가 만들어 준 결과였다.
이제 이쪽의 차례.
나는 치켜든 왼손으로 놈의 주먹을 움켜쥐며 오른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놈도 똑같이 왼쪽 손바닥을 펼치며 막아 왔다.
땅을 꽉 움켜쥔 발가락이 무릎을 지나 골반으로 힘을 전해 준다.
허리가 회전한다.
압축되었던 등 근육이 순간적으로 팽창하며 주먹에 힘을 싣는다.
팡-
주먹이 뻗어 나가는 순간, 공기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퍽-
“크윽.”
주먹을 막아 낸 손바닥이 크게 뒤로 튕겼다.
그 손을 따라 놈의 몸이 주르륵 밀렸다.
발은 이미 진즉에 선을 벗어났고, 입에서 새어 나온 신음은 덤이었다.
“어이, 넬도르. 승부를 인정하나?”
나는 노르트인을 보며 말했다.
잠시 손바닥을 주무르던 놈이 웃으며 대답해 왔다.
“으하하, 이거 대단한 전사였군! 이 넬도르를 이렇게 쉽게 물러나게 하다니. 승부를 인정한다. 너의 승리다, 해수.”
말을 마친 넬도르가 다가와 나를 얼싸안았다.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지만, 그들의 문화가 이러니 어쩔 수 없다. 너무 쳐다본 휴고가 잘못이지.
“알았으니, 그만 좀 놔.”
그제야 팔을 푼 넬도르가 손바닥으로 어깨를 팡팡 치며 말해 왔다.
“오늘 대단한 전사를 만났으니 술이 빠질 수 없지. 연회를 연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