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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30화 (30/149)

 # 30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30화>

* * *

“휴고, 예전에 그런 말을 했었지? 네가 떠나고 싶은 날이 온다면 말하겠다고. 그때 모든 것을 나의 처분에 맡기겠다고.”

“예, 그랬었지요. 근데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십니까?”

지금이야말로 휴고와의 관계가 결정되는 순간.

녀석을 지긋이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전투가 시작되면 내가 신호를 할 거야. 그때 바간에게 멸세폭을 사용해라.”

“예? 그게 무슨……!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바간을 죽일 거야! 휴고, 동참해라! 따르지 않겠다면 여기까지다.”

휴고와도 정이 들었다.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녀석이 거절한다면…… 그냥 떠나보낼 생각이었다.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될 것이다.

영웅을 죽이는 데 동참하지 않는다면 일행으로 둘 수 없다.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한참 말이 없던 녀석이 물어 왔다.

회귀한 사실을 밝힐 수 없으니, 딱히 말할 것이 없었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했다.

“바간은 나의 원수이고 적이다. 놈이 지금껏 나를 따르는 이유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없다. 결정해라, 휴고!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나는 바간을 죽일 거다.”

강한 의지를 담아 말했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묵묵히 휴고의 결정을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녀석이 결연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 * *

발코니로 다가가자 장로가 이미 나와 있었다.

상당히 놀란 표정.

전투가 너무 빨리 끝나, 의아한 것 같았다.

“생각보다 대단한 분들이셨군. 분명 플레이어인데, 이 정도의 플레이어가 존재하다니……. 설마!?”

말을 하던 장로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러더니 날카로운 음성으로 물어 왔다.

“네놈이 설마 신탁의 존재인가?”

세 번의 재앙은 플레이어에 의해서만 막아 낼 수 있다. 그것이 신탁의 내용이었다.

물론 거기서 플레이어라 함은 플레이어 한 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장로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이 세계에 있는 플레이어들 중 한 명이 자신들의 일을 방해할 것이라 확신하는 태도였다.

황당함에 내가 말이 없자 장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말 네놈이 신탁의 플레이어라면, 차라리 잘되었군. 더 자라기 전에 내가 싹을 잘라 주마!”

장로의 몸에 강력한 기세가 어리기 시작했다.

투구 사이로 드러난 놈의 눈빛이 시뻘겋게 빛났다.

곧이어 놈이 장검을 뽑아 들었을 때, 바간이 나서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쾅-

장로의 검도 바간의 절대불변을 뚫지는 못했다.

이는 이미 예상했던 상황. 나는 장로의 공격이 막힌 순간을 놓치지 않고 검을 찔러 갔다.

그때 장로가 왼손을 들어 올렸다.

쾅-

장로의 앞에 검은색 기운으로 이루어진 육각형의 방패가 생겨났다.

허공에 둥둥 떠 있던 방패는 장로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저것은 일종의 자동 방어 마법으로, 몸 주위를 위성처럼 떠다니며 공격을 알아서 방어해 준다.

‘성가시군.’

확실한 기회를 잡아, 군더더기 없는 찌르기로 공격했다.

그럼에도 완벽하게 막혔다.

순간 루스의 불길이 장로를 덮쳐 갔다.

클로만으로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루스는 빠르게 불꽃을 꺼내 들었다.

화르르-

검은 마법 방패가 불꽃을 막았다.

두 기운이 허공에서 팽팽하게 맞섰다.

그때 휴고의 망치가 장로의 옆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쾅-

폭음이 터지고 휴고가 뒤로 나가떨어졌다.

장로의 장검과 맞부딪친 충격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가소롭구나! 제 발로 날 찾아와 주다니, 마신께서 보살피셨음이야.”

장로가 여유롭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놈에게 위협적인 공격을 하지 못한 상황.

그때, 바간이 방패를 앞세워 돌진했다.

장로도 바간의 방패에 특별한 효용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표정을 굳히더니 땅에 발을 굴렀다.

쿵!

놈의 주위로 검은 기운의 물결이 일었고, 사방으로 동심원을 이루며 퍼져 나갔다.

바닥에서 시작된 검은 파도에 바간이 비틀거렸다.

불을 내뿜던 루스도 주춤하며 물러섰다.

파괴력은 없지만, 상대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기술이었던 탓이다.

검은 파도가 지나간 직후, 곧바로 몸을 날렸다.

‘막혀도 상관없다!’

나는 장로에게 달려들며 마력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멸세폭.’

장로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장검을 들어 멸세폭을 막아 왔다.

콰쾅-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또다시 퍼져 나갔다.

“크윽”

입에서 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이제껏 멸세폭을 사용하며 맞부딪친 가장 강한 기운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반동 역시 아주 컸다.

그 때문인지 왼손에 착용한 원혼의 거울이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잘 쌓아 두어라.’

이번 공격은 빈틈을 노린 게 아니었다.

장로의 실력을 봤을 때 틈이 있다고 쉽게 찌를 수 없었다.

차라리 정면 공격이 낫다. 맞부딪쳐 원혼의 거울에 힘을 쌓는 것이 목적이었다.

어차피 전투에서 사용할 수 있는 멸세폭의 횟수는 한정되어 있다.

기운을 최대한 쌓은 후 한 방으로 승부를 건다.

충격이 가라앉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잠시 흔들리던 일행은 다시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면 장로는 상당히 놀란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로의 검 끝은 부러진 상태였고, 놈의 팔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 하찮은 것이! 죽여 버리겠다!”

부상에 분노한 듯, 사나운 음성이었다.

루스와 휴고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바간도 다시 방패를 앞세우고 한 발씩 전진해 나갔다.

휴고의 망치가 장로의 어깨로 날아갔고, 동시에 루스도 배후에서 클로를 휘둘렀다.

망치가 재빨리 날아온 육각형 방패에 막혀 튕겨 나갔다. 루스의 클로는 장로의 검에 막혀 멈춰 섰다.

장로가 발을 들어 루스를 걷어찼다.

놈의 검에 클로가 얽혀 피할 수 없었다.

순간 클로를 손으로 되돌려 빠져나왔지만, 한발 늦은 상황.

퍽-

그대로 배를 차인 루스가 뒤로 날아갔다.

그 순간, 바간의 공격이 장로를 향했다.

모닝스타의 머리 부분이 쑥 뽑히더니, 길게 늘어난 오러에 연결되어 철퇴처럼 장로에게 휘둘러졌다.

부웅-

원심력을 이용해 끌어 올린 기세에 대기가 진동했다.

장로도 그 기세를 무시하지 못하고 바간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자동 방어 마법만으로는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검을 휘둘렀다.

콰콰콰콰쾅!

큰 폭음이 울리고, 바간이 날린 추가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직접 타격을 가하지는 못한 탓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장로의 팔에 흐르는 피가 더욱 많아졌다.

빠드득.

장로가 이를 갈았다.

예상과 달리 빠르게 우리를 처치하지 못하고, 상처까지 입은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

그사이 장로의 뒤로 접근한 나는 큰 동작으로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받아라!”

놈이 검을 들어서 막으려다가, 주춤하고 몸을 뒤로 피했다.

멸세폭에 한 번 당한 탓인지 검을 쉽게 맞대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멸세폭을 사용하지 않았다. 놈의 심리를 이용한 속임수.

대신 장로가 뒤로 움직이는 순간, 일행의 공격이 쏟아졌다.

이미 오래도록 손발을 맞춰 온 덕에 일행은 내 과장된 동작의 의도를 눈치채고 있었다.

루스의 손에서 불길이 뿜어졌고, 휴고는 장로의 검을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불길이 마법 방패에 막히고 망치가 검과 얽혔다.

그때 바간의 모닝스타가 움직였다.

강한 기운을 머금은 추가 일직선으로 날아간 것.

그에 다급해진 장로가 왼손을 들어 올려 추를 막았다.

콰쾅-

추에 실린 거대한 기운이 장로의 손을 밀어내고 몸통으로 나아갔다.

퍼억-

추에 맞은 장로가 뒤로 날아갔다.

벽까지 밀려 나간 장로는, 벽에 기대어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서 있었다.

장로의 왼팔은 박살이 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고, 갑옷도 가슴 부분이 움푹 찌그러져 있었다.

큰 타격을 입었는지 입에서 피가 줄줄 흐르기까지 했다.

“크윽, 이놈들. 감히!”

장로의 눈에서 시뻘건 광화가 피어올랐다.

순간 놈의 시선이 손에 낀 반지로 향했다.

반지에서 빛이 나더니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르릉-

하지만 나는 대신 혀만 찰 뿐이었다.

‘쯧, 결국 불러낸 건가. 어차피 건물 안이라 놈이 도움이 되진 않을 텐데…….’

“마, 말도 안 돼! 저게 뭐야!”

“젠장! 도망쳐!”

그때 발코니 밖에서 비명과 파괴음이 들려왔다.

게다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지, 땅이 계속 떨렸다.

“네놈들은 이제 한 놈도 남김없이 다 죽을 것이다. 그분이 오실 길에 제물이 되어라!”

장로가 광기 서린 음성을 내뱉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별 상관이 없었다.

놈이 불러낸 괴물은 제국의 병력과 상대하는 중이었고, 어차피 건물 안에 들어올 수도 없는 크기다.

‘우리가 제국과 한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자기가 패하더라도 이곳의 인간을 다 죽이겠다는 악의가 느껴졌다.

일행은 벽에 기대선 장로에게 다가갔다.

놈도 마지막 승부라고 느꼈는지 자세를 바로잡았다.

역시나 바간이 방패를 세우고 앞장섰다.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바간의 옆으로 휴고가 따르는 중.

순간 휴고와 눈이 마주쳤다.

약속했던 신호가 오갔다.

그리고 장로의 검이 바간의 방패에 막히는 순간.

나는 검을 휘둘러 바간에게 멸세폭을 날렸다.

순간 눈을 치뜬 바간이 모닝스타를 움직여 검을 막아 냈다.

그 짧은 순간에, 방패에 걸렸던 절대불변이 모닝스타로 옮겨 간 탓에 검이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비록 멸세폭이 바간을 직접 타격하지 못했지만, 폭발의 기운은 달랐다.

강력한 기운이 바간의 몸 주위를 휩쓸었다.

그 반동으로 내 몸도 폭발하는 기운에 휘말려 튕겨졌다.

그때를 노려, 휴고의 멸세폭이 바간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꽈앙-!

이번에는 바간도 반응하지 못했다.

바간이 휴지처럼 구겨져 구석으로 처박혔다.

구멍 뚫린 놈의 갑옷에서 핏물이 줄줄 흘렀다.

방패와 모닝스타는 날아갔고, 양팔은 이상한 각도로 비틀려 있었다.

그러는 동안 장로를 막고 있는 것은 루스였다.

루스는 불타는 클로를 휘두르며 장로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다.

잠시 당황하던 장로가 날뛰기 시작했다.

기회를 잡았다고 여긴 모양.

부상을 당한 장로라 하더라도 루스 혼자 감당하기는 힘들었다.

퍽-

아니나 다를까, 루스가 장로의 발에 차여 날아갔다.

생각보다도 강한 힘이 실렸는지 루스의 높은 체력으로도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루스를 떨쳐 낸 장로가 내 쪽으로 재빨리 달려들었다.

내 멸세폭이야말로 가장 위협적인 대상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사이 나는 몸에서 증기를 뿜으며 주저앉아 있었다.

짧은 간격으로 두 번이나 사용한 멸세폭이 몸을 망쳐 놓은 탓이었다.

특히 멸세폭이 맞부딪친 대상이 장로의 검과 절대불변의 모닝스타인 게 문제였다.

그 반동은 평소의 몇 배나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고개를 들어 장로를 올려다보았다.

놈이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흐흐흐, 갑자기 서로 공격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상관없지. 다 마신께서 보살피신 것이야. 이제 그만 죽어라!”

장로의 검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나는 왼손을 들어 올려 검을 향해 내뻗었다.

손으로 칼을 막으려 한다고 생각했는지, 장로의 입에 비웃음이 걸렸다.

하지만 칼날이 손에 닿기 직전.

손바닥에서 검푸른 광선이 쏘아져 나갔다.

쓰앗-

압도적인 힘이 장로의 검을 세상에서 지워 버렸다.

광선은 검을 넘어 장로에게까지 가 닿았고, 곧 장로의 머리도 녹여 버렸다.

놈은 머리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어떤 반응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 모습에 속으로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끝내주는군.’

멸세폭의 반동을 두 번이나 축적한 원혼의 거울은 압도적이었다.

나는 몸이 회복되는 것을 기다리며 주위를 살폈다.

발에 차여 날아갔던 루스는 끙끙대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높은 체력 덕에 큰 부상은 면한 것 같았다.

휴고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싸움이 끝난 것을 깨닫자 다시 철퍼덕 쓰러졌다.

멸세폭의 반동이 만만치 않은 듯했다.

‘녀석도 스탯이 많이 올랐으니, 반동도 더 커졌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털썩-

그제야 목 없이 서 있던 장로의 시체가 쓰러졌다.

워낙 깔끔하게 녹여 버린 탓에 이제껏 서 있을 수 있었던 듯했다.

그때 쓰러진 놈의 손에서 무언가가 굴러떨어졌다.

‘음…… 이건 반지군. ……설마?’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힘겹게 손을 움직여 반지를 주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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