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26화>
놈이 턱을 괴지 않은 손을 들어 허공에 휘두르자 마법진이 나타났다.
곧이어 마법진에서 스켈레톤들이 쏟아졌다.
앞선 단계에서 봤던 워리어와 아처 등은 물론, 거대 스켈레톤도 2기나 되었다.
스켈레톤들이 진형을 갖추고 전진해 왔다.
“가자!”
일행을 이끌어 맞서 나갔다. 지금 갖춰진 전력이면 저 정도는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다.
* * *
쾅-
바간의 모닝스타에 마지막 거대 스켈레톤의 두개골이 깨어졌다.
그러자 미동도 없이 앉아 있던 리치의 자세가 변했다.
턱을 괸 손을 풀더니 뼈만 남은 양손으로 박수를 쳤다.
딱딱딱-
뼈 부딪치는 소리가 난 후, 왕좌 뒤쪽에서 무언가가 나타났다.
시커먼 기운을 줄기줄기 흘리며 나타난 놈들은 데스나이트였다.
그중 2기의 데스나이트가 장검을 뽑아 들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를 보며 나는 조용히 명령을 내렸다.
“바간이 하나를 맡는다. 그동안 나머지를 빨리 처리하고 합류한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바간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한 놈에게 접근했다.
그를 확인하고서 루스와 함께 나머지 한 놈에게 달려들었다.
먼저 달려든 루스의 클로가 데스나이트의 장검과 격돌했다.
쾅-
루스의 몸이 튕겨져 나왔다. 그사이 나는 데스나이트의 측면으로 돌아갔다.
때마침 휴고도 나머지 방향을 점하며 움직였다.
나는 오러 소드를 놈에게 휘둘렀다. 데스나이트의 시커먼 오러 소드가 마중 나왔다.
쾅-!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렸다.
‘정면 승부로는 쉽지 않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칼을 다시 부딪쳐 가는 사이, 휴고가 망치를 휘둘렀다.
데스나이트의 상체를 목표로 한 망치는 재빨리 회수된 장검에 막혔다.
그 순간, 데스나이트의 발이 휴고의 가슴을 걷어찼다.
퍽-
휴고가 발에 차여 뒤로 굴러갔다.
입에 가는 핏줄기를 흘리는 것이, 내상을 입은 것 같았다.
그때 루스의 공격이 데스나이트의 갑옷을 후려쳤다.
휴고를 상대하느라 보인 빈틈을 노린 공격.
데스나이트의 갑옷이 클로에 움푹 파였다.
놈의 장검이 루스를 향했다. 그 틈을 노려 나는 부서진 갑옷 사이를 찔렀다.
푹-
데스나이트의 갑옷 사이로 검이 박혀 들어갔다.
순간 놈의 눈에서 안광이 폭발했다. 시커먼 오러가 놈의 몸 주변으로 뿜어져 나왔다.
빠르게 검을 회수해 뒤로 물러서는 순간.
콰아앙!
놈의 주위로 검은 기운이 폭발했다.
그와 동시에 나를 포함한 일행들이 모두 뒤로 떠밀려 날아갔다.
그 후, 놈의 입에서 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휘이이-
그러자 허공에 시커먼 구멍이 생겼고, 그 안쪽에서 유령마의 모습이 보였다.
낭패였다.
‘젠장, 빨리 끝내야 된다.’
데스나이트가 말을 타는 순간, 전투력은 급증한다.
그 전에 결단을 내려야 했다.
“루스, 말을 막아라!”
“응!”
루스가 소환되려는 유령마에게 불꽃을 쏟아부었다.
화르르-
말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 순간, 데스나이트가 루스를 향해 움직였다.
유령마가 공격당하자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드는 모습이었다.
‘기회!’
리치를 상대할 때까지 아끼려 했던 멸세폭을 데스나이트의 등을 향해 사용했다.
바간 쪽에 데스나이트가 남은 상황에서 시간을 끄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콰광-
데스나이트의 갑옷이 날아가고, 놈의 등을 관통하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유령마를 상대하던 루스가 일순 반전해 데스나이트에게 불꽃을 쏘아 내었다.
가슴에 뚫린 구멍으로 불길이 들어가, 놈의 몸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크아아……!
놈의 손에 들린 장검이, 비명과 함께 떨어졌다. 그리고 데스나이트의 몸이 재가 되어 허공에 날렸다.
데스나이트가 죽자 소환이 취소된 유령마도 사라졌다.
발에 차여 날아갔던 휴고가 다가왔다. 급하게 포션을 마셨는지 앞섶이 젖어 있었다.
“휴고, 저놈을 상대할 때까지 쉬고 있어라.”
여전히 왕좌에 앉은 리치를 고갯짓하며 휴고에게 말했다.
“예, 죄송합니다. 대장.”
휴고가 물러나 몸을 추스르는 것을 보며 바간에게 시선을 돌렸다.
안타깝게도 바간이 상대하던 데스나이트는 이미 유령마에 올라 있었다.
놈의 손에는 기다란 마상창이 들려 있었다.
“루스, 충돌한 후 덮친다. 준비해!”
“응, 주인. 알았어!”
유령마가 바간에게 달려들었다.
바간은 방패를 앞으로 내민 채 단단하게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쾅!
돌진해 오는 유령마가 절대불변과 부딪치는 순간,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왔다.
데스나이트의 마상창이 단번에 부러져 나가고, 유령마가 휘청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돌진하던 기마는 관성에 의해 바간을 덮쳐 갔다.
바간이 옆으로 몸을 미끄러트리며 돌진을 아슬아슬하게 비켜 내었다.
순간 루스와 함께 데스나이트에게 달려들었다.
검을 휘둘러 유령마의 목을 단번에 베어 냈다.
데스나이트의 눈이 분노로 달아오르는 순간, 루스의 불꽃이 놈의 상체를 휘감았다.
시커먼 기운을 끌어올려 불길에 저항하는 데스나이트.
놈이 말에서 뛰어내리며 루스에게 장검을 내리치는 순간, 바간의 모닝스타가 놈의 머리를 후려쳤다.
쾅-!
데스나이트의 투구가 박살 나 날아감과 동시에 놈의 머리가 반쯤 깨어졌다.
그리고 그곳으로 루스의 불길이 쏘아졌다.
끄아아-
머리가 타들어 간 놈이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퍽, 퍽-
다가가 목을 몇 번이고 칼로 내리쳤다. 그제야 놈이 확실하게 죽었는지 재로 변해 갔다.
“#$&*$#&*@.”
데스나이트가 죽자 리치가 무언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왕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구부능선은 넘었다.’
이번 전투만 잘 치르면 던전도 끝이다. 그리고 앞으로 계획된 일을 해 나갈 준비도 마련된다.
마음을 다잡고 리치가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정신만 차리면 오히려 쉽게 끝낼 수 있다.’
놈의 약점을 알고 있으니 계획대로만 되면 데스나이트와의 전투보다 수월할 수도 있었다.
리치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리치의 주위에서 짙은 녹색의 연기가 원형으로 솟구쳐 올랐다.
“독이다!”
밀려오는 독 구름을 향해 루스가 앞으로 나섰다.
루스의 양손이 모이고, 불길이 넓게 퍼졌다.
치지직-
불의 방패에 닿은 독 구름이 타서 없어졌다. 그사이 일행은 뒤에서 튀어 나갈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리치는 독 구름이 효과가 없자 다른 기술을 사용했다.
놈의 입에서 다시 주문이 흘러나왔다.
허공에 시커먼 기운이 뭉치더니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망령이다. 오러나 불로 공격해라!”
망령은 주위를 떠다니며 일행들을 호시탐탐 노렸다. 놈들에게 당하면 생명을 조금씩 흡수당한다.
일반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몹시 성가신 놈들이었다.
루스가 사방으로 불길을 내쏘아 망령을 견제하는 동안 휴고와 눈빛을 교환했다.
이번에는 녀석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제껏 녀석이 멸세폭을 쓰지 않은 것도 이 순간을 위한 것.
리치의 몸 주위에는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쳐져 있었다.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가해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휴고의 힘이 필요했다.
리치에게 접근하려는 순간, 뼈로 된 바리케이드가 갑자기 생겨났다.
다가오는 일행을 막기 위한 리치의 마법이었다.
바간이 모닝스타를 크게 휘저었다.
모닝스타의 추가 분리되어 오러로 만든 끈에 연결되었다.
부웅-
허공에서 빙글 돌던 추가 뼈 바리케이드에 충돌했다.
콰쾅-
뼈 바리케이드가 단번에 휩쓸려 나갔다.
그 사이로 휴고와 함께 몸을 날렸다.
휴고가 앞서 나가며 리치에게 돌진했다.
리치가 무어라 주문을 쓰려는 것이 보였지만, 휴고의 망치가 한발 빨랐다.
콰쾅!
멸세폭이 리치의 보호막에 부딪혔다.
촤아앙-
사방으로 충격파가 퍼져 나가며 무언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틈을 노려 리치에게 달려들었다.
리치가 나를 노려보며 안광을 빛낸다. 입에서는 연신 무언가 주문을 외는 중.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강력한 기운이 검 끝에 머물러 있다.
순간 리치의 신형이 사라졌다가 멀찌감치 떨어져 나타났다. 놈이 순간 이동으로 자리를 피한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애초에 목표는 놈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휘두르던 칼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내질렀다.
칼이 향한 곳은 리치가 앉아 있던 왕좌. 그곳에 멸세폭이 작렬했다.
콰쾅-
먼지가 가라앉자 왕좌의 모습이 드러났다.
왕좌는 놀랍게도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가운데 크게 금이 가 있었는데, 그곳으로 하얀 기운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끼아아아아악!”
리치의 처절한 비명이 귀를 찔렀다.
왕좌야말로 리치의 라이프베슬. 놈이 불사성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둔 생명의 저장고였다.
‘빌어먹게도 단단하군.’
멸세폭 한 방이면 당연히 파괴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부서지지 않았다.
얼른 오러를 끌어올려 왕좌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쾅쾅-
왕좌의 금이 더 벌어지며 새어 나오는 기운의 양이 많아졌다.
순간 등 뒤가 섬뜩해 몸을 날렸다.
콰직-
리치의 팔이 뱀처럼 늘어나 내가 서 있던 장소를 내리찍고 있었다.
멸세폭의 사용으로 전장에서 이탈한 휴고를 제외하면 일행은 셋.
놈의 시선을 끌 동안 누구든 라이프 베슬을 완파하면 이 싸움은 끝난다.
리치는 팔을 길게 늘여 라이프 베슬로 다가가려는 일행을 막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입이 멈춘 걸 보니, 놈도 주문을 사용할 여력이 없는 모양.
놈에게 다가가며 오러 소드를 끌어 올렸다.
뱀처럼 변한 팔에 피하지 않고 맞부딪쳐 갔다.
쾅-
멸세폭의 후유증이 남아 고통이 밀려왔지만,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칼을 부딪쳤다.
쾅-
오러 소드와 격돌한 리치의 팔이 주춤했다.
그 틈을 노려 바간의 모닝스타가 휘둘러지며 오러에 매달린 추가 라이프 베슬을 향해 날아갔다.
순간 리치의 모습이 사라졌다가 왕좌 앞에 나타났다.
양팔을 들고 막아선 채 입을 웅얼거리자, 뼈로 된 벽이 생겨났다.
콰쾅-
모닝스타는 단번에 뼈 벽을 허물고 들어가, 리치의 팔에 부딪쳤다.
리치가 움찔하며 물러서는 순간, 루스의 클로가 라이프 베슬을 향했다.
쾅-
불붙은 클로가 왕좌를 내리치자 금 간 왕좌가 크게 흔들렸다. 그 탓에 새어 나오는 기운이 더 강해졌다.
분노한 리치가 몸을 휙 돌려 루스를 공격했다. 뱀 모양의 팔이 루스를 향해 휘둘러졌다.
루스는 드래곤 비늘 방패를 앞세우며 얼른 자리를 피했다.
쾅-
리치의 팔과 루스의 방패가 부딪쳤다. 루스가 뒤로 튕기며 굴렀다.
리치는 루스에게 정신 팔린 틈을 노려 뒤로 접근했다. 다만 라이프 베슬에 과도하게 집중하느라 본신에 대한 방비가 허술했다.
그 틈을 노린 나는 달려가며 놈의 등에 검을 휘둘렀다.
촤악-
놈의 등이 갈라지며 시커먼 기운이 흘러나왔다.
빠르게 나아야 할 놈의 상처가, 라이프 베슬의 파괴로 회복되지 않았다.
놈이 내게 몸을 돌리는 순간 바간의 모닝스타가 다시 한번 왕좌를 노렸다.
하지만 막 공격이 적중하려는 순간, 리치의 몸이 또다시 사라졌다.
놈은 얼마나 다급했던지, 왕좌 위에 앉은 상태로 나타났다.
쾅-
리치가 손을 들어 모닝스타를 막았다.
‘기회다!’
놈이 왕좌에 앉으면서 피한다는 선택지가 사라졌다.
빠르게 달려 왕좌로 향한 나는 검에 마력을 끌어올리며 리치를 겨냥했다.
“부서져라!”
멸세폭이 왕좌를 향해 내리꽂혔다.
리치는 피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손을 들어 막아섰다.
콰콰쾅-
압도적인 충격에 리치의 몸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충격을 전달받은 왕좌에서도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났다.
쩌적-
결국 왕좌가 두 쪽으로 나뉘었다.
동시에 새하얀 빛이 하늘로 쏘아졌다.
저것은 리치가 수백 년간 쌓아 온 놈의 생명력.
이윽고 리치의 찌그러진 몸이 왕좌에서 흘러내렸다. 생명의 기운이 다 빠진 해골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빠각-
뒤에서 나타난 루스의 클로가 놈의 두개골을 부숴 버렸다
“후우- 끝났다.”
몇 날 며칠을 고생하던 던전이 드디어 끝났다.
멸세폭의 후유증을 참으며 성취감을 만끽하고 있을 때, 눈앞에 상자가 떠올랐다.
역시나 내용물은 구슬.
이번에는 한계가 얼만지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회귀 전 일행 중 가장 높은 스탯을 얻은 자가 70이었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칠십! 칠십! 칠십!”
나도 모르는 사이 입에서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주위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구슬에서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드디어 구슬에서 기운이 흡수되는 순간.
마음 놓고 양손을 하늘을 향해 번쩍 치켜들었다.
“아자!”
휴고와 루스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쳐다보았지만, 대꾸할 정신이 없었다.
마력이 80이나 올랐다.
A등급이던 마력이 단번에 S급으로 올랐다. 그와 동시에 몸에 충만한 기운이 들어차는 것이 느껴졌다.
한동안 워낙 운이 없었던 탓인지 기분이 더욱 좋았다.
“운이 좋군.”
잠시 후, 달아올랐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왕좌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이곳에 보관된 것이야말로 이 던전에 들어온 이유.
부서진 왕좌의 파편을 치워 내고 바닥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원하던 물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