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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21화 (2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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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21화>

바간은 강력한 방어력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어보미네이션을 압도해 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루스의 경우 우위에 있지는 못했다.

비록 사제가 죽어 주문이 풀렸지만, 검은 어보미네이션은 여전히 높은 내구도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루스의 클로로 치명타를 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곳저곳 피부만 긁어 놓은 상태였다.

다행스러운 점은, 루스의 드래곤 비늘 방패 역시 아주 단단하다는 것.

루스는 웬만한 공격은 모두 드래곤 비늘로 흘려내었다.

결국 어보미네이션 또한 루스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하는 상황.

근처로 다가가다가 루스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루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루스는 몸을 좌우로 크게 움직이며 어보미네이션의 시선을 잡아 두었다. 클로의 공격도 더욱 과감해졌다.

루스가 주의를 끄는 동안 내가 어보미네이션의 뒤로 돌아갔다.

굳이 길게 끌 이유가 없었다.

단순한 오러 소드만으로는 치명상을 입히기 힘들다.

남은 방법은 하나.

‘멸세폭.’

달리는 가속도를 이용해 점프한 후, 놈의 등골에 언브레이커블을 내리찍었다.

콰쾅-

굉음이 울리며 어보미네이션이 앞으로 처박혔다. 반동에 의해 튕겨나가 바닥을 구르다가 몸을 일으켰다.

쓰러진 어보미네이션은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이미 목 아래부터 등허리까지 구멍이 뻥 뚫린 상황.

아무리 어보미네이션 같은 괴물이라도 살아 있을 수 없다.

그러고 나서 멸세폭의 반동이 치료될 때까지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굳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상황은 마무리 되어 가고 있었다.

놈이 처리되자, 루스는 아직도 싸우고 있는 바간에게 합류했다. 바간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싸움을 얼른 끝내고 싶은 것 같았다.

나는 시선을 돌려 휴고 쪽을 바라봤다.

지난번 키메라 연구소에서 암흑 기사 둘에게 고전했던 휴고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동안 암흑 교단의 아지트를 털며 얻은 스탯이 만만치 않았다. 그 덕에 다수의 암흑 기사를 상대로도 압도하고 있었다.

다섯이던 암흑 기사가 벌써 넷이나 죽고 하나만 남은 상황.

‘곧 끝나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진형기 쪽을 보았을 때, 의외의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진형기의 칼이 여자의 심장에 박혀 있었다. 여자는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부르르 떠는 중.

진형기의 얼굴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회한을 담고 있었다.

‘도대체 뭐지?’

진형기를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뒤를 찌를 인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것도 암흑 교단이라는 적이 남아 있는 와중에.

머지않아 싸움이 끝났다.

그리고 바간이 진형기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모닝스타가 들린 상태.

바간의 태도가 심상치 않았다.

위협을 느낀 진형기가 몸을 움찔 떨었다.

바간이 진형기의 앞에서 입을 열었다.

“왜 플레이어를 죽였지? 너도 같은 제국의 플레이어 아닌가?”

모닝스타에는 기운이 넘실거리는 상태. 계속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바간, 물러나라!”

강한 의지를 담아 내뱉은 말에 바간이 움찔했다.

“……예.”

잠깐의 망설임 후 놈이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여전히 손에 쥔 모닝스타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휴고, 다들 데리고 뒤쪽에 가 있어라.”

이럴 때는 그래도 휴고가 가장 낫다.

휴고가 바간과 루스에게 쑥덕거리더니 어떻게든 둘을 데리고 멀어졌다.

잠깐 동안 정적이 흘렀다.

진형기가 주먹을 쥐고 여자의 시체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한 방 한 방 여자의 시신이 부서져 갔다.

처음에는 주먹질이라 불러도 좋았던 것이, 어느 순간 한탄이 되어 있었다.

진형기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물병을 꺼내 옆에 놓아 준 후 그와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단단히 있었나 보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물을 들이켠 진형기가 다가왔다.

“고맙소, 진짜.”

허리를 푹 숙인 진형기가 말을 이었다.

“이 은혜는 진짜 잊지 않겠소. 내가 내뱉은 말은 꼭 지키는 사람이오.”

“알았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봐.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 보이는데.”

내 말에 진형기가 맞은편이 철퍽 주저앉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년은 다른 곳에서 나온 플레이어요. 그쪽에서 제일 잘나갔다더군. 물론 당신한텐 턱도 없겠지만…….”

그녀는 잘난 능력만큼이나 성질도 까다로웠다. 제국이 재능 있는 플레이어를 우대하는 것을 안 이후로 안하무인의 태도를 취했다.

“거기까진 괜찮았소. 근데 저년이 던전을 공략하는 데 꼭 플레이어를 데리고 가겠다지 뭐요.”

제국 측 인사들은 자기 맘대로 휘두를 수가 없었다.

안하무인으로 굴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은 재능이 떨어지는 플레이어들뿐이라는 걸 그녀도 알았던 모양이다.

“플레이어끼리만 가서 던전을 공략해야 실력이 더 빨리 오를 꺼라나. 개소리를 지껄이며 떼를 쓰더니…….”

결국 딱 한 번만 실험해 보기로 결정이 되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때 끌려간 것이 진형기의 부하들.

“나는 그전 던전에서 부상을 입는 바람에 빠졌소. 다행인지 불행인지.”

말하는 진형기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같이 죽지 못한 죄책감이 얼굴에 묻어 나왔다.

결과적으로 던전 공략은 실패했다. 그리고 살아 돌아온 것은 여자뿐.

말을 마친 진형기는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한참을 기다리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한테 생존 본능이라는 스킬이 있소.”

녀석은 나한테 고마운 마음 때문인지 비밀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생존 본능은 사용자의 생존에 위험한 요소를 파악하게 해 주는 스킬이었다.

행위나 사람, 물건 등 굉장히 광범위하게 적용되지만, 그 내용은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으로 알려 준다고 했다.

진형기가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을 처음 만난 날도 그 덕에 험한 꼴 안 볼 수 있었지.”

“대충 예상은 했어.”

“방금 전에도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거라는 신호를 보내더니, 결국 살게 되는군.”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웃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다시 생각에 빠진 그를 기다렸다.

진형기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정 형, 난 당신이 좋소.”

설마…… 아니겠지?

찌푸려지려는 표정을 겨우 추스르며 진형기를 노려봤다. 그러자 진형기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요? 난 엄청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오. 좋다는 건 그런 뜻이 아니오!”

“그럼 뭔 소리야?”

딱히 녀석에게 호감을 살 만한 일이 있었던가. 뭐, 생각해 보니 먼저 해를 끼친 적은 없군.

“방금 전에 목숨을 구해 준 것도 있고, 당신 됨됨이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오.”

“내가 딱히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세상에서 당신처럼 강한 사람이 약자와의 거래를 잘 지키는 것부터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소리요.”

뜻밖의 대답에 내가 물끄러미 쳐다보자, 진형기가 말을 이었다.

“내가 볼 때 당신은 무언가 목표가 있소. 그걸 방해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당신을 속이고 배신하지만 않는다면 결코 남에게 해를 끼칠 사람이 아니오.”

‘진형기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튜토리얼에서는 머릿속에 강해질 방법과 복수에 대해서만 들어 있었다. 그러니 꼭 틀린 말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말 그대로요. 당신이 좋다는 거요. 거기다가 은혜를 입기까지 했으니 꼭 갚아야지.”

부하들을 잘 돌볼 때부터 알아봤지만, 정이 깊은 놈이다. 하지만 그런 면은 이딴 세상에서는 딱히 장점이 못 된다.

잠시 후 진형기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의외의 말이 튀어 나왔다.

“내가 수도에 갔을 때 황제를 만났소. 근데 말이오, 너무너무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소. 그 바람에 어전에서 토할 뻔했지.”

그 말에 나는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황제라…….’

놈에게 무언가 내가 모르는 비밀이라도 있는 것인가.

“무슨 소리지?”

“난 수도로 돌아갈 거요. 그래서 재앙을 막겠다는 황제가 왜 그런 느낌을 주는지 알아봐야 되겠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당신이 제국과 썩 친한 사이는 아닌 거 같거든. 황제가 왜 그런지 알아볼 겸 수도에서 자리 잡고 있다 보면, 당신한테 도움이 될 날도 있지 않겠소? 당신 따라다니다 가랑이 찢어질 것 같기도 하고.”

녀석을 보며 픽 웃어 주었다. 녀석과의 관계가 이렇게 흘러갈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어쨌든 녀석은 말을 쏟아내고 나자 마음이 풀린 모양인지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가서 밥이나 먹지. 일어나.”

나는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때 진형기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그자, 느낌이 좋지 않소. 단순히 날 위협해서가 아니요.”

‘역시, 영웅 놈들에게 무언가 있다.’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말이 이어졌다.

“강도는 좀 덜했지만…… 황제와 비슷한 느낌이었소. 조심하시오.”

“명심하지. 충고 고맙다.”

바간이 제국에 지나치게 신경을 쓸 때 짐작은 했지만, 진형기의 말을 들으니 의심이 더욱 깊어진다.

황제와 영웅들은 처음부터 연관되어 있었다. 애초에 내가 배신당한 것은 나와 영웅들의 관계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분명히 무언가 있어.’

나는 진형기를 이끌고 일행에게 합류했다. 바간은 여전히 말이 없는 상태.

하지만 딱히 놈의 기분을 풀어 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밥 먹으면서 좀 쉰다. 그 후에 던전 공략을 마무리하지.”

“밥! 밥! 밥!”

신난 루스의 목소리가 가라앉은 분위기를 그나마 환기시켜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던전 공략이 재개되었다.

“난 여기서 기다리겠소. 어차피 수준이 안 맞아서 도움도 안 될 거요. 나갈 때 밖까지 데려다 주시오.”

“좋을 대로. 그럼 이따 보지.”

진형기는 이곳에 남기로 했다.

이미 보스 방이 멀지 않은 상황. 오늘이 가기 전에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암흑 교단과의 전장을 통과해 다음 방으로 나아갔다.

몇 번인가 기관 장치를 해체하고 전투를 치렀다.

드디어 보스방의 문 앞. 던전 자체의 난이도가 상당한 만큼 보스 또한 까다롭다.

‘제국이 마스터를 동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각오를 다지고 문을 열자 커다란 광장이 일행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저것이 던전의 보스 후오른이다.

나무의 정령인 엔트가 오염되어 탄생한 존재. 오염된 탓에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지만 강력한 물리 능력을 갖추고 있다.

나는 일행을 이끌고 좀 더 다가갔다.

그때 나무 기둥에서 두 줄기 금이 생기더니 이내 벌어져 눈동자가 되었다.

동시에 눈에서 검붉은 안광이 쏘아져 나왔다.

그르르륵-

후오른이 몸을 일으켰다. 뿌리는 다리가 되고 가지는 팔이 되었다.

바간이 앞으로 튀어 나가고, 루스와 휴고는 좌우로 갈라졌다.

쾅-

후오른의 팔이 바간의 방패와 부딪쳐 굉음을 토해 내었다.

강한 내구도를 지닌 후오른의 가지는 절대불변의 방패와 맞부딪치고도 부서지지 않았다.

나는 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빠르게 달려 나가, 휘둘러 오는 놈의 가지를 후려쳤다.

팍-

맞닿은 느낌이 나무가 분명한데도 잘라 내지 못했다. 놈의 가지에는 파인 자국만 조금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때 뿌리가 발차기처럼 날아왔다.

옆으로 몸을 굴려 피했다.

공격이 빗나가자 뿌리는 다시 회수되었다.

돌아가는 뿌리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후오른의 몸통으로 접근했다.

그런 다음 마력을 한계까지 집어넣어 뿌리와 줄기의 사이를 베어 갔다.

파각!

이번에도 완전히 베어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까 전 보다는 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었다.

뿌리가 사분의 일 정도 베어져 수액이 흘러나왔다. 분노한 놈이 노려보는 것이 느껴졌다.

놈이 팔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궤적이 변화무쌍해 피하기 힘들었다.

몸을 뒤로 물리며 칼을 들어 놈의 공격을 막았다.

쾅-

강력한 충격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몸이 뒤로 떠밀려 날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놈의 뒤로 두 명의 인영이 접근했다.

전투 시작 시점에 좌우로 나눠 우회한 루스와 휴고, 둘의 공격이 후오른의 배후에 적중했다.

휴고의 망치에 맞은 나무껍질이 파편이 되어 흩날렸다. 다만 속까지 타격을 주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사이 루스는 가지를 밟고 뛰어올랐다. 이어 높은 곳에 클로를 박아 넣고 주욱 긁으며 떨어져 내렸다.

루스의 공격에 더 큰 통증을 느낀 건지, 뿌리가 솟아올라 루스를 후려치려 했다.

순간 바간이 움직였다.

그간 후오른의 팔 한쪽을 맡고 있던 바간이 재빠르게 놈의 가까이로 접근했다.

루스를 후려치기 위해 한쪽 뿌리를 들어 올린 후오른은 나머지 한쪽만으로 몸을 지탱하는 상황이었다.

그곳에 바간의 공격이 적중했다.

횡으로 휘둘러진 모닝스타가 후오른의 뿌리를 때렸다.

쾅-!

순간 뿌리가 삼분의 일쯤 으스러지며 놈의 몸이 균형을 잃었다.

쿵-

자빠진 놈의 얼굴 쪽으로 달려갔다.

뿌리 공격을 드래곤 비늘로 방어한 루스도 이미 달려드는 중.

놈의 얼굴 부위가 치기 좋은 높이로 내려온 지금이 기회였다.

일행이 모두 공격하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접근할 때였다.

후오른의 눈이 붉은 안광을 내며 치떠졌다.

그리고 머리털처럼 달려 있던 잔가지에서 나뭇잎이 비수처럼 발사되기 시작했다.

“피해!”

나는 그렇게 소리치며 몸을 뒤로 날렸다.

그나마 멀리 있던 휴고는 몸을 안전하게 빼는 중이었지만, 바간과 루스는 나뭇잎 칼날에 직격당할 상황이었다.

순간 몸을 둥글게 만들어 드래곤 비늘방패 뒤로 숨기는 루스.

수많은 나뭇잎들이 그 위를 두들겼지만 흠집도 나지 않았다.

나는 안도하며 내 쪽으로 날아오는 나뭇잎을 칼로 쳐 내었다.

다만 바간은 적잖이 낭패를 당한 듯했다. 이곳저곳 생채기가 나 있었다.

‘그렇군. 저런 방법이면…….’

언뜻 바간을 상대할 방법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후오른에 집중할 때. 머리를 내저어 생각을 떨쳐 내었다.

나뭇잎을 날려 일행을 견제한 후오른이 어느새 몸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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