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내가 뽑은 S급들이 배신했다 20화>
다른 일행을 살펴보았다.
루스와 바간은 문제없는 상태. 나도 초재생에 의해 몸이 거의 회복되어 있었다.
상태가 안 좋은 휴고를 쉬게 두고 루스를 대동해 시설을 살폈다.
바간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휴고 옆에 남겨 두었다.
시설에는 더 이상 인간은 없었다. 아마도 좀 전에 처리한 암흑 기사와 좀 전에 죽은 노인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았다.
몇 군데 연구실 비슷한 곳이 있어 재활용하지 못하도록 파괴해 버렸다.
그러다가 어느 방에 들어갔을 때,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오염된 드래곤의 비늘 조각(S. 재료)]
- 모종의 실험에 의해 오염된 드래곤의 비늘이다. 어딘가에 사용한 듯 반 정도만 남은 상태. 무구 제작에 사용할 수 있다.
아마 키메라 실험에 사용하고 남은 것 같았다. 검은 어보미네이션의 제작에 사용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건 도대체 어디서 구한 거야.’
어이없어하고 있을 때, 루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주인! 주인! 나 저거 먹고 싶어!”
옆을 보니 루스가 방방 뛰고 난리가 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제껏 먹인 것 중에 승격의 비약을 제외하고 S급이라 할 만한 것은 없었다.
찰나간 고민이 스쳐 지나갔다. 오염된 것을 먹여도 될까.
그러다 깜짝 놀랐다.
귀한 재료를 녀석에게 줘도 되는가가 아니라, 오염된 것을 먹여 탈이 날까 걱정부터 하다니.
‘이제 안 믿는다는 소리도 못 하겠군…….’
“그래, 한 명쯤은 괜찮겠지.”
“응? 무슨 소리야?”
나는 고개를 내젓고는 루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먹어라, 탈 안 나게 맛부터 조금 보고.”
“아자!”
잔뜩 신난 루스가 나를 한 번 껴안더니 드래곤 비늘에 달려들었다.
다행히도 루스는 아무 문제 없이 드래곤의 비늘을 소화시킬 수 있었다.
“주인, 이것 봐라!”
루스의 손에 드래곤의 비늘로 된 방패가 튀어나왔다.
원래 쓰던 방패 대신 드래곤의 비늘을 쓰기로 한 모양.
내가 물끄러미 보고 있자 녀석이 말을 이었다.
“엄-청 단단해. 고마워, 주인!”
그래, 강해지면 좋지. 요즘 같아서는 교육도 딱히 필요 없을 것 같으니까.
녀석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밖으로 나섰다.
* * *
“이번에도 그 스킬로 위치를 알아낸 겁니까, 대장?”
휴고가 씩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나도 말없이 미소 지어 주었다.
이곳은 던전의 입구.
나와 일행은 키메라 연구소 이후 암흑 교단의 아지트를 몇 개 더 부수었다.
그리고 다음 목표로 가는 중에 던전이 있어, 지나는 길에 이곳에 들른 것이다.
‘제법 쓸 만한 것이 나오기도 하고.’
이 던전은 미로 형식이었다.
각각의 구간으로 나눠져 기관 장치를 해체해야 통과할 수 있는 구조였다.
회귀 전에는 제국이 많은 희생 끝에 던전의 패턴을 미리 파악했다.
그 덕에 나와 영웅들이 어렵지 않게 공략했었다.
패턴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공략에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몇 분간 걸었다. 그러다가 상황이 이상한 것을 눈치챘다.
‘왜 아무것도 안 나오는 거지?’
원래라면 진작부터 몬스터가 덮쳐 와야 될 상황. 그런데 몇 번의 구간을 지나도록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루스, 혹시 무슨 냄새 안 나?”
콧잔등을 찡긋하던 루스가 대답했다.
“희미하게 사람 냄새가 나긴 하는데, 잘 모르겠어.”
각 구간이 기관 장치에 막혀 있다 보니 냄새가 잘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 탓에 루스의 후각으로도 긴가민가한 듯했다.
‘가다 보면 뭐가 나와도 나오겠지.’
돌아나가는 길은 확실히 알고 있다. 앞쪽에 심각한 위험이 있다면, 되돌아가면 그뿐.
일단 계속 나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 때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선객이 있는 모양.
“내가 가 볼 테니 나머지는 여기서 대기하도록.”
일행을 멈추어 놓고 인식 교란을 사용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소리를 따라가다가,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빨리빨리 좀 하지, 뭘 이렇게 꾸물거리는 거야! 짜증 나!”
검은 머리의 여자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치고 있었다.
앞쪽에서 제국의 병사들이 기관 장치를 해체하는 중이었다.
암흑 교단의 아지트를 처리하는 동안 시간이 제법 흘렀다.
그사이 이곳저곳의 신전에서 많은 플레이어들이 튀어 나왔을 것이다.
제국은 그중에 재능 있어 보이는 자를 육성하기 위해 던전을 공략하고 있는 시기라는 게 떠올랐다.
회귀 전 보다 시점이 조금 빨라진 것을 보니, 내가 없는 것이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저 여자가 내 대타쯤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좀 더 지켜보는데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진형기.’
자칭 국문과 출신의 건달 같은 녀석이 구석에 앉아 있었다.
녀석의 얼굴은 잔뜩 뭐가 못마땅한지 잔뜩 찌푸려진 상태.
가만 보니 발끝을 달달 떨고 있는 것이 영 불안해 보였다.
나는 조금 지켜보면서 놈들의 전력으로 이 던전을 돌파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보았다.
지금 보이는 병사와 플레이어 정도로는 어림없다는 결론이 날 무렵, 멀리서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뒤로 몸을 뺐다.
‘헬릭스 프레슬리.’
놈은 제국의 마스터 중 한 명이었다.
회귀 전에는 나의 전력이 강해 마스터를 대동하지는 않았었다.
물론 지금도 바간이 있으니 맞붙으면 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저들과 싸울 필요는 없었다.
몸을 돌려 일행 근처에 도착했을 때, 루스가 얼른 달려와 말했다.
“주인, 뒤에 그놈들이야! 암흑 교단!”
골치 아픈 상황에 말려들었다.
암흑 교단은 아지트를 파괴하고 다니는 우리를 쫓아온 것 같았다.
‘쯧, 하필 이럴 때 나타나다니.’
자칫 가운데 끼어 오도 가도 못 할 상황이었다.
“얼마나 뒤에 있는지 알겠어?”
“음, 한 6구간에서 7구간 정도 뒤에?”
말을 듣는 순간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잘되면 좋고, 잘 안되어도 우린 빠질 수 있겠지.’
생각이 들자마자 일행을 이끌고 길을 되돌아 나왔다.
암흑 교단이 미로를 뚫고 들어오기 전에 목표 지점까지 도착해야 했다.
일행을 재촉해 빠르게 달렸다.
그리고 문을 두 번 정도 되돌아 나와, 원하던 곳에 도착했다.
원래는 몬스터가 쏟아지는 곳이지만, 제국 병력에 의해 다 죽고 텅 비어 있었다.
벽 한쪽으로 다가가 이곳저곳을 주먹으로 두들겼다.
이쪽은 잘못된 방향으로 진입자를 보내는 함정.
이곳을 통해 진행할 경우 길을 잃고 빙빙 돌게 된다.
‘하지만 잠시 숨어 있기엔 딱 좋지.’
어느 순간 딸칵하는 소리가 나더니 벽이 갈라졌다.
그리고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암흑 교단이 도착하기 전에 몬스터를 다 처치하는 것이 관건.
“시간 없다. 빠르게 처리해!”
일행에게 외치고 나도 몬스터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 상대할 놈들은 아이언 골렘.
놈들이 강철로 이루어진 몸을 이끌고 덤벼들었다.
아이언 골렘은 핵을 부수기 전까지는 계속 움직인다.
그래서 팔다리를 노리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회귀 전에 싸워 본 덕에 핵의 위치를 아는 것이 다행이었다.
“오른쪽 가슴에 핵이 있다. 핵을 파괴해! 그래야 죽는다.”
그렇게 소리치며 나는 오러 소드를 휘둘렀다.
쾅-
쇳덩어리에 부딪친 칼날이 큰 소리를 내었다.
아이언 골렘 하나가 가슴이 반파되어 쓰러졌다.
큰소리가 울렸지만 문제없었다.
어차피 암흑 교단은 우리를 쫒아오는 중이었다.
앞에 있는 제국 측의 선택은 뻔했다.
‘그대로 전진하거나, 돌아 나오거나.’
암흑 교단이 뒤로 빠지지 않는 이상 결국에 두 집단이 접촉할 수밖에 없다.
특히 암흑 교단은 최근 아지트가 연달아 박살이 나며 약이 바짝 오른 상태.
두 집단이 만날 경우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서둘러라!”
일행들을 독려해 아이언 골렘을 빠르게 해치워 나갔다.
핵의 위치를 안다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상당히 많은 숫자였지만, 오래지 않아 전투를 끝마칠 수 있었다.
그 후에 부지런히 움직여 제국 병력이 있는 쪽으로 흔적을 만들었다.
그리고 옆쪽 통로로 재빨리 진입했다.
벽을 몇 번 두들기자 문이 닫혔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나.’
두 쪽을 맞붙인다는 계획까지는 거의 성공했다. 이제 시간이 흐르면 두 집단이 충돌할 것이다.
얼마쯤 지나자 벽 너머 누군가 이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쿵- 쿵-
그중에는 인간의 소리가 아닌 것이 끼어 있었다. 암흑 교단의 병력이 분명했다.
놈들은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놈들이 지나간 후 간단한 영양 보충을 하며 컨디션을 조절했다.
콰광-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멀리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드디어 두 집단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암흑 교단은 몇 차례 패한 적이 있으니 강한 전력을 끌고 왔을 것이다.
‘마스터와 싸우는 걸 보고 싶은데, 구경 좀 하자고 할 수는 없겠지.’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 후 일행을 이끌고 조용히 전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몇 구간을 지난 후 일행을 멈춰 세웠다.
“내가 신호할 때까지 여기서 대기한다.”
그러고는 나 혼자 인식 교란을 사용해 조용히 전장으로 다가갔다.
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전투가 종반으로 치닫는 것 같았다.
빼꼼히 목을 내밀어 상황을 살폈다.
먼저 눈에 띈 것은 갈가리 찢겨 나간 어보미네이션의 사체.
한 마리가 아니었던지 팔다리가 여럿 보였다.
연구실에서 나타났던 놈처럼 색깔도 짙었다.
‘헬릭스의 솜씨인가 보군.’
서둘러 눈을 돌려 헬릭스를 찾아보았다.
그의 상태는 굉장히 좋지 않았다.
헬릭스는 한 손으로 배를 가리고 있었다. 흘러내리는 장기를 막는 것으로 보였다.
입가에도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제국의 병사들은 이미 다 죽었다. 헬릭스를 제외하고 살아남은 자는 두 명뿐.
한 명은 진형기였다. 특유의 감각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 옆에는 짜증을 내던 여자가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이곳저곳 살피는 것이, 도망칠 방법을 찾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전방의 기관 장치는 아직 뚫리지 않은 상황.
갈 수 있는 방향은 암흑 교단 쪽밖에 없었다.
시선을 돌려 등을 보이고 있는 암흑 교단 쪽 전력도 파악했다.
검은색 어보미네이션이 아직 두 마리나 건재했다. 그 옆에 암흑 사제로 보이는 인물과 암흑 기사 몇 명도 보였다.
‘잘 차려졌군.’
이제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상태.
나는 몸을 돌려 일행에게 돌아갔다.
“검은색 어보미네이션이 둘 있다. 내가 사제를 처리하는 순간, 기습한다.”
작정을 설명한 후 일행을 이끌고 전장으로 갔다.
그런데 그동안 상황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헬릭스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미동도 없는 것이, 결국 숨이 끊어진 것 같았다.
그를 알아챈 암흑 기사와 어보미네이션이 진형기와 여자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움직임을 보아 생포하려는 것 같았다.
일행에게 손짓해 시작한다는 신호를 줬다.
인식 교란을 사용한 후, 뒤에서 지휘 중인 사제에게 다가갔다.
덕분에 등 뒤에 이를 때까지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검을 뽑자마자 놈의 목을 날려 버렸다.
서걱-
사제의 목이 날아간 순간, 암흑 교단의 모든 병력이 내 쪽을 쳐다봤다.
사제의 주문이 풀리며 내 존재를 인식한 것 같았다.
동시에 일행들이 튀어 나갔다.
미리 짜 놓은 대로 휴고는 암흑 기사들 쪽으로 달렸다.
바간과 루스는 어보미네이션들을 상대해 나갔다.
나는 얼른 진형기에게 다가갔다. 녀석의 표정이 멍해지더니 갑자기 소리쳤다.
“이거였어! 그럼 그렇지. 내 스킬이 틀릴 리 없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뱉는 진형기를 보며 등을 돌렸다.
저만하면 살 만해 보이니 전투에 합류할 생각이었다.
“정 형, 고맙소!”
그제야 뒤에서 인사가 들려왔다. 손을 한 번 흔들어 주고 루스에게 합류했다.